제15호 2011년 겨울 살림,살림

[ 살림의 현장① ]

하얀 찔레꽃 흐드러진 오솔길에 대한 기억

고유기



이제는 사방이 해군이 쳐놓은 장벽으로 막혀버린 강정마을 구럼비 바다. 그 구럼비에서 해군기지 건설을 위한 육상 공사장으로 이어지는 길목 한 편에는 작은 오솔길이 있다. 지난 5월 어느 날, 그 곳을 혼자 걷게 되었는데, 오솔길 한 쪽에는 하얀 찔레꽃이 그야말로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그 때의 기억은 아직도 강렬하게 나를 붙잡고 있다. 나에게 하얀 찔레꽃이 그 향기와 함께 흐드러졌던 5월의 오솔길은 내가 나고 자란 '고향'에 대한 기억의 상징처럼 남아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는 고향에 대한 기억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고향에 대한 그 기억이란, 곧 그 곳에서 보냈던 유년시절에 대한 기억이기도 할 것이다. 누구에게나 유년의 기억은 특별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고향에서 보낸 유년의 기억이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여전히 삶의 동인이 되고, 어떤 경우에는 삶의 향방을 결정하는 '보이지 않는' 이유로 작용하기도 한다. '고향'의 그 기억은 스스로의 삶과 생애를 관통하는 '정체성'으로 남는다. 강정 구럼비 해안의 그 오솔길은 나에게 곧 '고향'이었고, 사십이 넘은 지금까지도 내 삶에 관여하는 유년시절, 그 때의 인상으로 살아났다. 때문에 지키고 싶었던 것은 '평화'라는 어쩌면 커다란 가치 보다는 구럼비의 그 작은 오솔길이었는지 모른다. 내가 지키고 싶었던 것은 강정마을 구럼비로 표상된, 그러나 지금은 사라져 가는, 고향에 대한 기억이고, 그것으로부터의 내 삶 자체였던 것이다.

지난 여름 이후,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강정마을을 찾고 있다. 강정을 지키겠다고 찾아든 그 많은 사람들이 평화에 대한 신념이나 사회변화를 추구하는 사회운동의 논리만으로 온 것은 아닐 것이다.  강정 구럼비 해안에서 하루를 보내다 보면, 그저 구럼비 바위에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거나 너럭바위에 마치 말똥게처럼 귀를 대고 착 달라붙어 무언가 소리를 찾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그 사람들에게 구럼비 바위와 앞에 보이는 범섬과 수평선과 해안의 작은 습지들, 돌틈의 이름 모를 꽃들은 그 자체로 일종의 위로가 되고 성찰이 되고, 어떤 이에게는 그 어느 의사의 처방도 흉내낼 수 없는 치유의 명약이 되었던 것이다. 때문에 해군기지 부지로 결정나기 이전에 강정마을 구럼비 해안은 '명상 센터'로 불리기도 했던 것이다. 이 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지키고 싶었던 것은 바로 그것이 아닌가 한다. 힘들고 지친 삶을 위안하고 심지어는 강력한 삶의 의지를 선물하는 구럼비의 바로 그 자연말이다.

설촌 450년이 된 강정마을의 사람들은 바로 그 자연, 구럼비의 바다와 바위와 함께 살아왔다. 하지만 지난 450년 동안 이 곳의 주민들은 그 자연, 구럼비의 바다와 생명들에게 그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보여주는 대로 보고, 주는 대로 받았다. 때로 큰 파도에 재난을 당해도 순응하며 살아왔다. 구럼비 바다, 그 곳은 보여지는 그대로의 그냥 '환경'이 아니다. 수백 년 동안 마을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가 녹아있는 살아 숨쉬는 그대로의 '역사'인 것이다. 설촌 450년 마을 공동체의 중요한 거점이자, 조상 대대로 생명을 이어온 지속가능한 삶의 원천인 것이다. 지금 구속 수감돼 있는 마을 주민, 종환이 형님은 이곳에서 고스란히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만약 지금 그가 돌아온다면 제일 먼저 구럼비로 달려갈 것이다. 그에게 이곳은 단순히 고향 이상의, 삶의 근거인 것이다. 이곳 구럼비가 사라진다는 것, 이곳을 다시 출입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자신의 존재 자체를 지우는 것과 같다. 이 얼마나 가혹한 일인가! 비단 종환이 형만이 아닐 것이다. 늘 일상의 배경이 되고, 삶을 지탱하는 바탕이 되었던 이곳을 폐쇄하고, 출입자체를 죄악시 하는 것이 얼마나 참담한 충격으로 다가왔을까.

서귀포시 강정마을 구럼비. 그 바다 속에는 이름과 모양을 달리한 수많은 연산호가 꽃을 피우고 있다. 바닷가에는 붉은발말똥게, 층층고랭이, 맹꽁이, 기수갈고둥 같은, 이제는 찾아보기조차 어려운 희귀 동식물이 다양하게 서식하고 있는 그야말로 생태계의 보고이다. 보름 날, 범섬을 끼고 하얀 얼굴을 드러내는 보름달을 멀리서나마 마주하며 한동안 멍해지곤 했던 기억들이 새롭다. 그 달빛을 받고 반짝이는 은결의 밤바다는 실로 왜 이 곳이 절대보전지역이어야 하는가를 실감나게 했다.

그 동안 국가는 귀중한 예산을 들여 이곳의 생태자원을 관리해 왔다. 그러나 4년 전, 이 곳이 해군기지의 후보지로 결정되는 순간,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렸다. 군 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절대보전지역을 해제해 달라는 군의 요청에 대해 제주도당국은 '원활한 국가사업의 협조'를 이유로 법이 정한 원칙도 뒤로하고 이를 수용해 버렸다. 정부는 녹색성장을 국정 제일의 모토로 천명해 놓고도 정작 국가의 귀중한 생물자원을 오히려 안보의 걸림돌인양 지워버리려 한다. 'DNA 전쟁'이라는 말이 들려올 만큼, 세계가 생물자원의 보유를 놓고 경쟁하는 시대에 과연 군사기지만이 안보의 유일한 수단인지 되새겨 봐야 한다. 이 아름답고 귀중한 경관과 생태계를 잘 보존하고 보살피는 것이 이른바 국가 경쟁력을 위해서도 더 필요한 일이 아닌지 묻고 싶다.

안보는 총구로부터 나오고, 국익이 보다 첨예화된 무기로부터 보장된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나라 국방연구원이 안보를 위한 선결과제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국민들은 '정치․경제․사회적 안정'을 최우선으로 꼽았다고 하는 보고를 접한 것이 벌써 6년 전의 일이다. 우리 역사는 나라가 위난이 닥칠 때마다, 목숨을 내놓고 일어섰던 것은 바로 '민초'들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지금의 안보는 더 큰 기지, 더 강력한 무기를 들여오는 데 있지 않다. 노인 자살률이 OECD 최고인 나라, 경제적 공포로 인해 더 이상 자식 낳기를 거부하는 나라, 등록금 마련을 위해 30만원에 자기 몸의 피를 뽑고 팔아야만 대학을 다닐 수 있는 나라.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위협받고 있다는 생각에 몸을 던져 저항하는 주민들을 힘으로 제압하고 겁박하는, 그런 안보가 우선인 나라에서 진정한 안보란 무엇이어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초겨울의 아침, 모든 매스컴이 제주가 소위 '세계 7대 경관'에 선정됐다고 일제히 알리고 있다. '제주, 세계인의 보물됐다!', '제주, 세계의 보물로 우뚝서다'와 같은 환호의 문구들이 이 아침 신문 머리기사로 굵게 새겨져 있다.

신문들을 들추다가 구럼비의 그 작은 오솔길을 떠올린다. 얼마 전 있었던 구럼비 발파에도 그 오솔길은 무사한지… 그러나 안부를 물을 길이 없다. 보물이 된 '제주'는 있을지언정, 그 안에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보물'로 추상화된 풍경 안에 구럼비와 범섬과 그 바다의 수평선, 돌들, 작은 꽃들, 그리고 그 오솔길은 어디쯤에 있을까? 혹시 '보물'이란 이름도 생소한 스위스 어느 민간재단의 사무실 탁자 위에 놓인 문서가 빚어낸 '헛것'은 아닐까? 세계의 서열구조 안에서만 보물이 되는 제주의 풍경은 얼마나 반짝일 수 있을까? 살아있다면 내년 봄에 다시 필, 구럼비의 그 작은 오솔길에 피어날 하얀 찔레꽃에게 물어보고 싶다.

글을 쓴 고유기님은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시민운동가입니다. 마을사람들 다수와 온 나라가 걱정하는 데에도 정부가 아름다운 강정마을을 짓부수고 해군기지를 건설하는데 반대해 제주군사기지저지범대위 활동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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