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호 2011년 겨울 살림,살림

[ 살림이 읽은 책 ]

난파선에서 내려 시골에서 정처를 찾아라

최성각

이 책을 쓴 ‘정기석’을 우리는 ‘정풀’이라고 부른다. 오래 전, 필자가 '풀꽃운동'을 하던 시절 그가 스스로 정한 아이디가 정풀이었다. 그를 알게 된 지 그러고 보니 10년도 넘었다. 그런데도 그를 만난 것은 아주 짧은 순간, 딱 한번뿐이었다. 그때 인상은 그가 수줍음이 많은 내성적인 사람이라는 것, 그런데도 범상치 않은 뜨거운 내열(內熱)이 느껴지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가 금년에 책을 두 권이나 펴냈다. 7월에 《마을을 먹여 살리는 마을기업》(이매진)이라는 책을 펴내더니, 이윽고 가을에 《마을시민으로 사는 법》(소나무)이라는 책을 다시 펴냈다. 첫 책이 나온 뒤, "곧 나올 두 번째 책에 더 애착이 간다"고 그가 언뜻 비춘 기억이 난다.

나는 그보다 더 자주 이사를 다니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는 내가 알기만으로도 지난 십여 년간, 아마도 열너댓 번 이상 이사를 다녔다. "이번에는 정말 이곳에서 오래 머물고 싶습니다"라는 식으로 연구소 사이트를 통해 그가 새로 옮긴 곳에 애착을 보인다. 그러나 얼마 후에 그는 다시 짐을 싸서 다른 마을, 다른 산자락, 다른 강어귀에 가 있곤 했다.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알고 있는 그의 처를 언젠가 나는 꼭 만나고 싶다. 그렇게 자주 이사를 하는 남편 옆에 계시는 그 여인네는 어떤 분이실까? 그렇게 자주 가거지(可居地)를 찾아 헤매는 남편과 같이, 짐을 싸고 푸는, 그 여인네는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가 어딘가 뿌리를 내리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쩌면 그는 평생 이 나라에서 살 만한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이번에 낸 책들이야말로 어쩌면 그가 지은 '집'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한마디로 요약해 도시에서 빌빌거리지 말고 하루빨리 시골에 가서 사는 게 옳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시골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얼마 전에 FTA 협상의 한국 측 통상관리로서 참 오랜 기간 동안 설쳐대는 한 친구가 망언을 했다. 그는 "국의 농업문제는 농민의 모럴헤저드 때문"이라며 "하루 종일 일은 않고 다방에 죽치고 앉아 공짜 돈이나 타먹으려는 작자들이 많다" 기염을 토했다.

내 전에도, 강기갑 의원을 강의원이 즐겨 입는 한복 때문인지 핫바지로 여기고 마구 대하는 것을 보고, 이 친구가 상당히 오만방자하고 불손한 친구로구나, 하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지만, FTA 협상 때 오고간 영어문서도 제대로 읽지 않고, 읽었다 해도 엉터리로 해석한 이 친구가 '도덕적 해이'를 뜻하는 '모럴헤저드'라는 근사한 영어를 사용했지만, 웃기는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설사 다방 농민이 적잖다고 해도 그를 질타하기 전에 도덕적 해이를 말하려면, 농사도 안 짓는 고관대작 나리들이 타(처)먹은 직불금부터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태어나 살고 있는 내 나라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가를 단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건들이 참으로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지만, '직불금 사건'도 그 중 하나다. 분명히 나랏돈이 불법적으로 새나갔고, 타먹으면 안 될 녀석들이 타(처)먹은 게 명백히 밝혀졌건만, 아무도 처벌을 받지 않고 슬그머니 넘어간다. (하지만 '직불금'이라는 말이 살아 있으므로 언젠가 이 사건은 다시 고개를 처들 것이라 믿고, 또한 그래야 한다.)

새마을운동을 일으켜 지켰더라면 좋았을 것까지 모조리 없애버린 '박정희'만 해도 그렇다. 그는 밀짚모자 쓰고 논두렁에 앉아 막걸리 기울이는 '대한뉴스' 흑백 동영상으로 농민을 사랑한다는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남겼지만, 정작 그가 필사적으로 추구한 일은 한 나라의 총체적 공업화였다. 오죽하면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날 때 감격해 울었다 할까! 산업강국이 오매불망 그의 꿈이었고, 그가 총에 맞아 떠난 뒤에 이어진 정권도 그 점에서는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생기면서부터 시작된 길고도 긴 산업입국의 대행진 속에서 이 나라의 농업은 천천히 궤멸되었고, 농민들은 등에처럼 성가신 존재로 무참하게 추락해버렸다. 농사를 죽였으니 제대로 된 농정農政이 있을 리 없다. 경쟁력, 생산성 따위의 천박한 효율주의에 사로잡힌 덜 떨어진 이들에 의해 농업은 능멸당했다. 급기야, 자동차와 반도체 팔아 식량문제를 해결하거나 다른 나라에서 농사지은 것을 사 먹으면 그만이라는 폭언을 일삼는 정권마저 출현했고, 사람들은 그런 망국적 기획 앞에 그렇게 돌아가나 보다, 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것은 얼마나 철없는 포부인가. 반도체나 자동차는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입에 들어가는 것을 자기 땅에서 산출하지 못하고 영위되는 삶은 허방을 짚는 위태로운 삶이라는 것을 그들이 외면했으니.

농촌을 죽인 대가로 살찌운 도시는 과연 살 만한 곳이 되었는가? 연일 공사 중인 도시는 하수구 냄새로 들끓고, 공해에 찌들어 있으며,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으로 늘 좌절하고, 헤쳐 나갈 삶의 방도를 찾지 못한 젊은이들은 매일같이 자살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쓴 정기석은 서슴없이 도시를 ‘난민촌’이라 부른다. 더 이상 난민촌에서 생을 탕진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제정신 가진 사람이 갈 곳은 농촌마을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돈도 없고 땅도 없는 이 탈도시 유민들이 어떻게 농촌에 뿌리를 내릴 것인가? 농사를 짓지 않고도 농촌에서 삶을 가꿀 수는 없을까?

이 책은 바로 그 긴요한 물음에 대한 정기석 식의 진지한 해법서이다. "농촌으로 가라, 그곳이 출구다"는 주장은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그런 권고에 빠진 게 있었다. 땅이 없고 지닌 돈이 변변찮은 이들은 번번이 도시 난민으로 되돌아오곤 했기 때문이다. 정기석의 주장은 의외로 간단하다. 도시에서 정처를 찾지 못한 난민으로 살 때 익힌 각자의 재능과 체험을 마을에서 되살리면, 이 나라 농촌은 더욱 풍요로워진다는 확신이 그것이다. 땅도 돈도 없는 귀농자들이 곧 시골의 자원이 된다는 이야기다.

환쟁이는 그림으로 마을에 기여할 것이고, 목수는 또한 그의 재능으로 좀 '다른 집'을 지을 것이다. 글쟁이나 편집쟁이는 책읽기 운동을 벌일 수도 있고, 말을 정확히 구사해야 사태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마을신문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사업가는 농촌에서만 가능한 사업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깽깽이출신은 음악이 입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귀를 통해 마음을 적시고 사람을 한데 묶는 놀라운 것인즉, 음악을 통해 살아있다는 기쁨의 체험을 확산시킬 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딴 사람에게 없는 재주는 한 가지씩 있을 텐데, 그 재주를 시골에서 같이 사용하고 누리자는 것이다. 도시에서 잘 나갔던 이들은 잘 나간 체험이, 맨날 실패만 했던 사람은 실패에서 배운 귀한 것들을 지니게 마련인데, 그런 것들이 모두 시골을 풍요롭게 할 것이라는 확신이다. 이 확신은 정기석이 직접 십 수 년간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이 나라 시골 구석구석을 돌멩이처럼 뒹굴고 들개처럼 헤맸기 때문에 가능한 확신이다. 그의 방황은 얼추 잘못 보면 성깔 더럽고 까칠한 적응 불능자의 개인사로 여겨질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에게는 다시는 난파선을 타지 않겠다는 확고한 결심이 있었기에 그가 선택한 자발적 유목의 시간은 절대 개인사에 국한해 함부로 말할 일이 아니게 된다. 그가 보여준 비타협적 모색의 치열함은 실로 감동적이었다. 그 내용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마을기업' '마을시민'이라는 그가 만든 신조어가 곧 그의 확신의 산물이다. 그가 꿈꾸는 마을기업은 노동의 열매를 독식하지 않는 기업이며 가장 낮은 곳에서 험한 일을 하는 사람을 소외시키지 않는 인간의 얼굴을 한 기업이다. 그가 소망하는 '마을시민'은 무슨 일을 하며 어디에 살든 '깨어 있는 시민'으로서의 자각된 개인이며 어떤 힘으로부터도 휘둘리지 않는 주체적이며 자유로운 개인이다.

옛 사람들은 말하기를 '달이 차면 기울고, 극極 하면 반反 한다'고 했다. 멀지 않은 앞날에 우리는 우리가 매몰차게 버린 농촌으로 어쩔 수 없이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살 길이 그 길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골은 도시적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안전판이 아니라 지속가능하지 않은 엉망진창의 '지금 이 대로의 삶'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농촌을 다시 발견하고, 한때 이농을 할 때처럼 다시 대규모로 농촌으로 삶의 터를 옮겨가기 시작할 때 정기석이 애써 소망한 마을기업, 마을시민은 난민촌을 떠난 우리를 어머니처럼 위로하고, 원군처럼 부축하고 나침반처럼 방향을 잡아줄 것이다.

정기석의 노력은 본인 자신도 모르게 박정희의 성취가 간과한 틈새를 메우고, 그 폐해를 회복하는 일에 기능하게 된 셈이다. 난민촌을 떠나 자신의 온당한 삶을 찾으려는 용기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은 훌륭한 교과서 구실을 하리라 믿는다. 이미 시골에 터를 잡은 이들에게도 이 책은 많은 생각할 거리를 줄 것이고, 하루라도 빨리 난파선에서 내리고 싶은데 주저하고 있는 이들에게도 이 책은 큰 용기를 줄 것이다. 먼저 난파선에서 내린 이들이 어떻게 시골에 닻을 내렸는다, 그것이 바로 정기석 같은 비타협적 고집쟁이의 눈에 의해 소상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의 책에 추천사를 부탁받고, 나는 그 글의 끝귀절에 이렇게 썼다.

"나는 정기석처럼 치열하고 정기석처럼 정직한 사람을 많이 만나보지 못했다."

최성각 님은 7년째 서울과 시골을 들락거리는 두 곳 생활을 하면서 거위도 키우고 닭도 치고 헌 집에서 나온 목재로 오두막을 짓기도 합니다. 《날아라 새들아》, 《달려라 냇물아》,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 등의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풀꽃평화연구소 소장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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