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호 2011년 겨울 살림,살림

[ 살림이 본 영화 ]

돼지같이 먹기만 하는, 길고양이처럼 외로운

이영진

애니메이션은 말랑말랑하고, 다큐멘터리는 따분하고. 관객들이 흔히 갖고 있는 편견입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두 편의 영화는 이러한 선입견을 싹 씻어줄 것이 분명합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인디다큐페스티발, 서울환경영화제 등에서 매진 사례를 기록한 화제작 <돼지의 왕>과 <고양이춤>을 소개합니다.

<돼지의 왕>
감독 연상호
목소리 출연 양익준, 오정세, 김혜나, 김꽃비, 박희본
제작연도 2011년
상영시간 97분


<돼지의 왕>은 후일담이다. 경민과 종석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친구 철이에 대한 후일담이다. 소설가를 꿈꾸지만 대필 작가로 살아가야 하는 종석(목소리 연기 양익준)은 어느 날 경민(목소리 연기 오정세)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을 받는다. 경민은 무슨 마음에서인지 종석을 찾아와 떠올리기조차 싫은 중학교 시절의 끔찍한 기억들을 꺼내 놓는다. 연상호 감독의 <돼지의 왕>은 학교폭력을 소재로 한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디즈니 표 애니메이션부터 미야자키 하야오의 재패니메이션까지, 국내에서 개봉하는 애니메이션은 대개 가족 관객에게 따뜻한 해피엔딩을 안기는 판타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연상호 감독은 원한과 분노의 복수극을 선택했다. 참고로 <돼지의 왕>은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다. 어떤 이는 몇몇 장면에서 폭력을 과도하게 전시했다며 눈살을 찌푸릴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지레 <돼지의 왕>을 외면해선 안 된다. <돼지의 왕>이 진짜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폭력은 따로 있다. 성인이 된 경민과 종석이 더 이상 "그때가 그래도 좋았지"라고 말할 수 없는 순간, 숨기고 있던 폭력의 진짜 의미가 관객 앞에 노출되고, 우리는 심장을 둔기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느낄 것이다.

강민 패거리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종석과 경민, 수호신처럼 나타나 종석과 경민을 돕는 철이 등 <돼지의 왕>의 전반부는 학원물의 흔한 드라마트루기(편집자 주: 영화의 기둥 줄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희곡이나 방송용 대본을 집필하는 방법)를 따른다. 감독이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이 에피소드들에서 영화 <품행제로>, <말죽거리 잔혹사> 등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교실을 빌어 와 그 안에서 권력과 폭력의 상관관계를 따져 보려고 한다는 점에서 전상국의 《우상의 눈물》이나 혹은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같은 소설이 연상되기도 한다. <돼지의 왕>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종석과 경민이 기억하는 철이의 모습이 자꾸 변한다는 것이다. 종석과 경민이 기억하는 첫 번째 철이는 '영웅'이다. 하지만 철이는 영웅 대신 '괴물'이 되고 싶어 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건 악이지. 착하게 살면 될까? 아니야. 힘을 가지려면 악해져야 해. 계속 병신처럼 살고 싶지 않으면 괴물이 되어야 해."

철이가 괴물이 되어야 한다고 할 때, 종석과 경민이 갖게 되는 건 두려움이다. 하지만 후일담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아직 두 사람이 털어 놓지 않은 세 번째 철이가 있다.

영웅은 누구와 싸우더라도 아무런 해를 입지 않고 살아남아야 한다. 괴물은 어떤 해를 당하더라도 살아남아야 한다. 하지만 철이는 결국 그렇게 하지 못한다. 철이는 종석과 경민처럼 자신 또한 돼지임을 잘 알고 있다. 철이에게는 '돼지들의 왕'이라는 왕관만이 허락될 뿐이다. <돼지의 왕>이 다루는 진짜 갈등은 강자와 약자의 대립이 아니라 약자와 약자의 다툼이다. 먹이사슬 안에서 불안과 공포의 하중을 가장 많이 견뎌 내야 하는 이들은 맨 아래에 있는 계급이다. <돼지의 왕>의 후반부에선 살아남기 위해 전략을 수시로 바꾸는 약자들의 싸움이 전개된다. 종석과 경민에게 철이는 돼지의 왕으로 머물러선 안 된다. 철이가 원치 않는 세 번째 철이, 그러니까 희생양으로서의 철이를 완성하기 위해 종석과 경민이 공모하는 잔혹한 엔딩은 불편하다기보다 무섭다.

"살아남는 순간은 권력의 순간이다. 죽음을 목격하며 느꼈던 공포감이 사라지고 서서히 만족감이 생겨나게 되는데, 그것은 죽은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자는 서 있는데, 죽은 사람은 땅바닥에 누워 있다. 마치 격투가 있었고 자기가 다른 사람을 쓰러뜨린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살아남기 위한 투쟁에서 모든 인간은 타인의 적이며, 어떠한 비통함도 이 같은 본질적인 승리에 비한다면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

<돼지의 왕>은 우리의 끔찍한 폭력의 역사를 환기시킨다. 한때는 영웅으로 여겨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괴물로 불렸으며, 결국엔 희생양으로 사라졌던 이들의 얼굴을 기억하는가. 그때 우리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과거를 자책하는 듯 보이는 경민은 실은 복수를 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거를 후회하는 듯 보이는 종석은 실은 안심하는 것은 아닐까. 폭력의 진짜 가해자가 누구인지 밝혀질 때 <돼지의 왕>은 살아남은 돼지들에 대한 무시무시한 저주의 노래가 된다.

<고양이춤>
감독 윤기형
출연 깜냥이, 희봉이, 잠보, 예삐
제작연도 2011년 상영시간 76분


"고양이를 좋아하세요?" <고양이춤>은 길고양이를 찍은 다큐멘터리다. 태어나서 고양이를 키워본 적 없는 두 남자, 시인 이용한과 광고감독 윤기형은 어느 순간 마법에 걸린 것처럼 길고양이들에게 사로잡혔다. 지금은 두 사람 모두 길고양이를 뒤쫓고 있다. <고양이춤>은 카메라를 들고 길고양이를 스토킹하는 두 남자의 기록과 내레이션을 번갈아 교차하면서, '길 위에서 태어나 길 위에서 사랑하고 길 위에서 죽는' 길냥이들의 세계를 묘사한다. <고양이춤>의 매력은 예쁘게 생긴 고양이들을 비추는 데 있지 않다.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며 호기심이 무척 많다는 초보적인 사실을 알게 된 두 남자가 길고양이들이 지닌 각각의 캐릭터를 파악하고 이름을 붙여준 뒤 인연을 쌓아 간다. 그 과정이야말로 흥미진진한 관람 포인트다. 사료를 갖고서 축구를 하는 깜냥이, 카메라 앞에서 요염한 포즈를 취하는 희봉이, 사료에 대한 보답으로 죽은 새를 물어다준 바람이, 틈만 나면 코골며 자는 잠보 등 갖가지 이름을 갖게 된 길고양이들이 두 남자의 애정이 아니었다면 과연 제 속을 보여줬을까.

<고양이춤>은 두 남자가 낯선 길고양이를 만나 스스로를 치유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한 남자는 자유롭게 삶을 누릴 것 같은 시인이고 여행가다. 다른 한 남자는 승자독식의 세계에서 살아가야 하는 광고감독이다. 상반된 환경의 두 사람은 그러나 똑같은 병을 앓고 있다.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 내야 하는 직업을 가진 두 사람은 대놓고 말하지 않지만 외로움과 무료함과 투병 중이다. 시인 이용한이 '사료 축구'를 하고 '비닐 봉지 마술쇼'를 하는 길고양이 남매 희봉이와 깜냥이에게 마음을 뺏기고, 광고감독 윤기형이 잠보와 예삐라는 이름을 가진 길고양이들의 애정 행각을 힐끗거리기 시작한 것도 그놈의 외로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경계를 허물고 가까이 다가가 손을 건네는 두 남자는 흡사 사랑에 빠진 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큐멘터리 서두에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이 수준은 그 나라에서 동물들이 받는 대우를 보면 알 수 있다"는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 등장하는데, 꼭 현인의 말이 아니더라도 길고양이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환경들에 분노가 치미는 건 두 남자의 안타까운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고양이춤>을 처음 봤던 건 올해 초 인디다큐페스티발 예심 심사 때였다. 사실 출품작 중 애완동물 혹은 반려동물에 대한 다큐멘터리는 셀 수 없이 많았지만 그 중에서 눈과 귀를 사로잡는 작품은 찾기 어려웠다. 대부분은 우리 집 강아지와 우리 집 고양이에 관한 사적인 애정 고백록에 불과했다. 애견인과 애묘인이 아니라면 이 같은 일기에 빠져들기 쉽지 않다. 하지만 <고양이춤>은 달랐다. 집고양이 대신 길고양이를 소재로 삼았기 때문은 아니었다. <고양이춤>이 흥미로웠던 건 고양이를 바라보는 태도와 그들을 바라보는 두 남자의 위치였다. <고양이춤>의 길고양이들은 소유의 대상으로서 애완동물이 아니었다. 가족처럼 함께 집 안에서 사는 반려동물도 아니었다. 그들은 인간이라는 종과 더불어 지구에 사는 또 다른 종이었다.

"길 위에 사람이 산다. 길 위에 고양이가 산다."

<고양이춤>의 마지막 내레이션이다. 이는 길고양이를 찍는 원칙이기도 했다.

"고양이에게 신뢰받지 않고는 고양이를 찍을 수 없다."

이용한 시인의 말이다. 누구나 카메라를 들어 원하는 것을 찍는 시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윤리는 바로 이것이다. <고양이춤>은 길고양이들에 대한 애정을 촉구하는 동물 다큐멘터리만은 아니다.

이영진 님은 <씨네21>에서 13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영화 보는 걸 귀찮아 해 동료들에게 일 안 한다는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습니다. 다만 다큐멘터리에 대한 애정은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많이 가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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