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호 2011년 겨울 살림,살림

[ 몸살림 ]

화, 마음의 불을 몸으로 끄다

이달희

'화'는 '억울하고 분한' 생각과 감정을 담고 있는 '마음의 고통'입니다. 화는 마음과 몸에 고통을 주고, 생각과 감정과 행동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몰고 가 자신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와 현실 생활에 장애를 줍니다. 화를 풀면 될 텐데 왜 그게 잘 안되어서 '화병'이 되는 걸까요. 《화가 풀리면 인생이 풀린다》라는 책을 낸 틱낫한 스님은 "화는 살아 있는 생명체와도 같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마음속의 불덩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런지에 대한 답이 여기 있군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이!
 
'화병'이라고 하면 흔히 중년 여성들의 답답한 가슴을 떠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저를 찾아오는 많은 화병 내담자들 중에 적절한 사례를 살펴 보니까 스물세 살 젊은 대학생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군요. 아마 발병 원인도 참 안타까웠지만 치유의 전개과정이 극적이어서 그런가 봅니다.

화는 한이 되고, 한은 용서로 풀린다
작은 체격에 윗몸이 발달한 그이는 첫 상담을 하는 동안 줄곧 굳어 있는 무표정의 얼굴로 눈을 불안한 듯 치켜들고, 한 곳을 가만히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어깨 근육을 계속 실룩거리며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길을 가다가 느닷없이 낯선 사람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했다고 담담하게 말합니다. 이른바 '묻지마. 폭행'의 피해자가 되었던 거지요.

그는 도대체 영문도 모르고 당해야 했던 그 사건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 그리고 피해의식을 보상하기 위한 복수심 때문에 오랜 시간동안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충격적인 사실을 처음엔 자신의 현실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무력감 때문에 한동안은 하루의 대부분, 무려 20시간을 잠만 잤다는군요. 그리고 잠자는 동안 꿈속에서도, 깨어 있는 동안에도 누군가가 자신을 또 폭행하려 할지도 모른다는 강박적인 생각이 들어, 대상이 분명치 않은 무의식 속의 가해자와 끊임없이 가상의 전쟁을 벌이느라 온몸의 근육들이 쉴 틈 없이 꿈틀거리며 움직였습니다. 눈을 뜨고 길을 가면서도 가해자를 찾아 복수하겠다는 마음으로 칼을 품고, 분노의 눈길로 사람들을 훑어보고 다녔습니다. 잠시도 분노의 감정을 몸과 마음에서 내려놓을 수 없었던 그는 늘 만성적인 피로감과 대인관계에서의 어려움 때문에 사회생활에 큰 장애를 겪었습니다. 다니던 고등학교도 중퇴하고 검정고시로 대학에 들어갔지만 도저히 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지금', '여기'라는 시공간의 마당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안전함'과 '돌봄'이었습니다. 두렵거나 혹은 복수하고픈 대상으로부터 떨어져서, 이곳이 충분히 보호받고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안전기지'임을 온 몸과 마음으로 느끼게 해주는 것 말입니다. 어린 시절 어떤 고통스런 일을 체험하고 돌아왔을 때 토닥여 주는 어머니 같이, 품에 안겨 한참 울 수 있었던 어머니의 품과도 같은 약손요법으로 몸과 마음을 이완시켜 안도감과 편안함을 느끼게 했습니다.

그런 다음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말로 표현하도록 했습니다. 억울함과 분노와 원한의 감정이 피처럼 섬뜩하게 묻어 마치 시퍼렇게 날 선 칼날처럼 날카롭게 느껴지는 언어들이었습니다. 그때 그 자리에서 아무도 자기를 지켜주지 않았고, 부모님마저 보듬고 돌보아주기는커녕 사내 녀석이 그런 일로 약한 모습을 보이냐고 나무라기만 했다고 합니다.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많았는지 몇 차례 만나면서 이야기가 길게 이어졌습니다. 다 들어주었습니다. 억울했던 자기 내면의 소리들을 온전하게 받아들여 주었습니다. 판단과 비평과 비난이 없는 무조건적인 수용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견디기 힘들었을 텐데 정말 애 많이 쓰며 잘 견뎌왔다"고 등을 토닥여 주고 안아 주었습니다. 그때 그에겐 자신의 억울한 심정을 온전하게 받아주고 보듬어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겁니다.

"그날 이후, 제 가슴 한가운데에 늘 커다란 불덩어리가 활활 타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선생님의 손길이 와 닿으면서 그 불이 어느 날 스르르 꺼졌어요. 그들에게 그대로 복수하지 않는 한 용서라는 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늘은 '용서한다'라는 말이 떠오르는데요."

용서라는 말을 꺼내면서 부정적인 정서의 악순환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기를 스스로 선택할 그이의 모습에서 진정성이 느껴졌습니다. 진정한 용서는 어디에 존재하는지 모르는 대상과 화해가 없이도 일어나며 무조건적입니다. 어느 누가 강요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안도의 한숨을 깊게 '후욱' 하고 내쉬는 그이의 얼굴은 정말 평화로웠습니다. 몇 차례의 치유 작업을 거치면서 정신의 키가 한 뼘은 성숙한 듯했습니다. 그는 편안하게 지나온 삶과 참된 자기와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사고의 순간, 이미 잃어버렸다 생각했던 자기존중감과 삶에 대한 의욕을 갖게 되면서 여자 친구도 생겼고 공부를 계속하면서 현실로 다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마음의 불을 끄려면 먼저 소통하게 하라
화병을 '가슴앓이'라고도 합니다. 명치 아래에는 위장이 들어있는데도 그 부위를 마음의 반응구로 표시하는 까닭은 그곳에 나타나는 위장 증세가 대부분 마음의 아픔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몸을 스캔하듯 살펴보면 몸통의 윗부분과 머리로 에너지가 모여 있는 듯한 형상일 것입니다. 화의 정체인'억울(抑鬱)'이란 말을 보더라도 '누르고 막혀 있다'는 뜻이 담겨 있지 않은가요. 이처럼 마음의 작용이 일어나는 가슴을 중심으로 에너지의 소통에 장애가 있다면 그것을 거두어 주어야 합니다. 정체되어 있던 기운이 고르게 분산되고 몸이 조화와 균형을 찾게 해 주어야지요. 몸이 바뀌면 마음도 다시 평정을 찾게 되고, 마음이 바뀌면 생각도 바뀝니다. 몸과 마음이 조화와 균형을 찾게 되면 맑은 맨 눈으로 세상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분별의 안목이 생기고 자기 이해와 사랑의 마음이 다시 제자리를 찾게 됩니다.

이제 사랑이 담긴 손길로 온몸에 맺혀 있는 화와 한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방법을 알려드릴 테니 잘 활용하시길 바랍니다. 화를 가슴에 담고 있는 사람에겐 마음으로 꼭 쥐고 놓지 않고 있는 생각의 끈으로부터 잠시 자유로울 수 있게 해 주어야 합니다. 어떠한 요구나 바람도 이야기하지 마세요. 생각은 청개구리와 같아서 하지 말라는 것을 따라 하게 되어 있으니까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호흡입니다. 약손이 진행되는 동안 받는 이는 코로 숨을 들이마신 다음, 입을 조금 열고 입으로 숨을 길게 토해 내도록 합니다.

먼저 엎드려 눕게 한 자세부터 시작합니다. 받는 이의 왼쪽에 자리를 잡은 다음 어깨뼈를 사이에 두고 목뼈와 등뼈가 이어지는 부분에서부터 어깨뼈 안쪽 골을 따라 오른쪽 손바닥을 넓게 얹고 가볍게 체중을 실어 머뭅니다. 그런 다음 척추를 따라 있는 근육 줄기 양쪽의 골을 양쪽 손바닥을 벌려 네 손가락으로는 바깥쪽을 받치고 엄지 끝을 세워 짚어 멈추기를 하면서 호흡과 함께 천천히 오르내립니다.

다음 바로 누운 자세에서에서는 아래 팔의 한 가운데와 아래쪽을 따라 연결된 근육 줄기를 잡아 짚어 주어 풀어 주고, 네 손가락 끝을 접어 가슴의 갈비뼈의 골 사이에 닿도록 하고 천천히 짚어 나가며 압통점이 나타나면 짚어 멈추기를 반복합니다. 그리고 명치 부위에서 힘주어 누르지 말고 배꼽 쪽으로 부드럽게 짚어 밀어 내리기를 여러 번 반복합니다. 깊은 한숨이 나오면 아주 좋은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치 생명체와도 같은 화의 치유는 관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나를 사랑한다거나 혹은 나를 이해하고 인정해 준다는 느낌이 들 때 치유가 일어나는데 이는 약손요법과 심리상담을 중심으로 하는 신체심리치료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사랑과 공감은 언어보다는 신체적인 표현과 접촉 등의 비언어적인 의사소통의 경로를 통해서 그 진정성이 감지됩니다. 사랑과 공감은 머리로 하는 논리적 이해가 아닌 가슴으로 하는 감성적 이해이며,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되는 파동의 동질성을 함께 공유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마음의 불덩이를 건강한 이별 의식을 통해 잘 보내고, 부디 생각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되기를 진정으로 바랍니다.

이달희 님은 한국약손연구회 대표간사, 정신세계원 본부장을 지냈습니다. 시민단체 한국건강연대 사무총장이면서 시민건강아카데미 온건강대학 교학처장, 이달희신체심리치료센터 소장입니다. 중앙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에서 자아초월상담학을 전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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