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호 2011년 겨울 살림,살림

[ 교육살림 ]

온 나라 쉽쓰는 영어에 대한 미신들

김승현

"영어는 가능한 일찍 시작할수록 좋다던데", "6~7세 정도에는 경제적 부담만 아니라면, 영어유치원에 보내는게 좋지", "영어에 대한 흥미를 길러주려면 방학 때 해외영어캠프에 한 번씩은 보내야 돼" …

대부분의 부모들은 주변에서 이런 말을 듣게 되면 마음이 흔들린다. 실제로 주변에 물어보면 일반적인 부모들은 물론이고 공동육아나 생협,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회원들과 같이 비교적 자녀교육에 소신이 뚜렷하다는 부모들조차 다른 것은 모르겠는데 영어만은 어쩔 수 없다거나, 영어사교육을 시키고 있지는 않지만 내심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기 힘들다고 토로하는 경우를 많이 듣게 된다. 한편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우리말을 배우는 것도 힘겨운 나이부터 부모로부터 영어 배우는 경쟁에 등을 떠밀려 고생을 하고 있다. 그야말로 온 나라가 영어사교육 부담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마치 진실인 것처럼 통용되고 있는 영어사교육의 잘못된 정보와 자녀 영어교육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확산하기 위해 '아깝다! 영어 헛고생'이라는 소책자를 제작하여 국민들에게 보급하는 운동을 시작하였다. 이 책은 비록 달걀 한 알의 무게(43g)에 불과하지만, 지난 3년 동안 영어사교육 관련 주제로만 36차례의 토론회와 강좌를 거치면서 정리한 내용을 토대로 하였고, 대학교수, 교사, 학원 강사, 의사 등 다양한 영역의 영어교육 전문가와 함께 작업을 하였기 때문에 내용만큼은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다. 다음은 소책자에 담긴 12가지 잘못된 정보와 올바른 진실에 대한 항목들이다.

※ ‘아깝다! 영어 헛고생' 소책자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누리집(www.noworry.kr)에서 누구나 전자책 형태로 볼 수 있으며, 책자를 직접 보고 주변에 배포하고자 하는 개인과 단체는 50부(1만5000원) 단위로 신청할 수 있다.● 영어교육은 빠를수록 좋은 것 아닌가요?
● 우리말 배우듯이 유아시기에 하루 30분 정도 영어는 필수 아닌가요?
● 6~7세 정도에 영어유치원 보내는 게 대세 아닌가요?
● 영어는 영어수업이 시작되는 초등 3학년 이전에 미리 해놔야 한다는데요?
● 아무래도 영어교육은 영어전문학원이 좋겠죠?
● 엄마표 영어로 성공하는 아이들이 많다던데요?
● 요즘 초‧중학교 때 영어원서를 읽는 게 유행이라고 하던데요?
● 영어에 대한 흥미를 길러주면 영어캠프에 보내는 것이 좋다면서요?
● 초등학교 때 1~2년 조기유학을 다녀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 토익(TOEIC)과 텝스(TEPS)를 미리 해놓으면 고입과 대입에서 유리하다면서요?
● 회화 중심의 실용영어능력이 갈수록 중요해지지 않나요?
● 글로벌 시대에 경쟁하려면 초중고 시기에 영어는 미리 끝내놓아야죠?

(‘아깝다! 영어 헛고생' 소책자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누리집(www.noworry.kr)에서 누구나 전자책 형태로 볼 수 있으며, 책자를 직접 보고 주변에 배포하고자 하는 개인과 단체는 50부(1만5000원) 단위로 신청할 수 있다.)

12가지 정보 중, 몇 가지만 살펴보면 이렇다. 먼저 영어교육과 관련하여 부모들이 잘못 알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오해는 영어조기교육의 효과와 관련된 부분이다. 요즘 많은 부모들은 가능한 자녀가 어릴 때 영어교육을 시작하면 시작할수록, 마치 모국어를 배우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영어를 습득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는 각 나라가 처한 영어사용환경의 차이를 무시한 잘못된 환상일 뿐이다. 우리나라는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거나, 최소한 제2언어로 사용하는 나라들(예를 들어, 필리핀, 인도 등)과는 달리 일상적으로 영어를 접할 수 없는 환경이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노출을 해준다고 해도 이들 나라에서와 같이 영어를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 일찍 시작하는 것보다 오히려 충분한 모국어 습득, 이해력의 발달, 영어 학습에 대한 동기부여 등이 갖춰졌을 때 시작하는 것이 우리나라와 같은 영어환경에서는 훨씬 효과적이다. 즉, 영어교육은 일반적인 믿음과는 달리 '조기교육(早期敎育)'이 아니라 '적기교육(適期敎育)'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영어유치원에 대한 오해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부모가 경제적 부담만 아니라면 영어유치원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 고민을 하지만 영어 학습의 효율성을 생각한다면 결코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볼 수 없다. 영어유치원을 함께 운영하는 유명 영어전문학원에서 오래 근무했던 전직 강사는 토론회에서 이런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엄마들은 이런 사실을 몰라요. 다섯 살인 아이가 2년에 걸쳐 습득한 영어수준을 초등학교 1학년 아이는 6개월 정도면 다 터득할 수 있지요. 실제로 영어학원에서 보면 5세부터 영어유치원을 다닌 아이나 1학년 때부터 배운 아이나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레벨에서 만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해요." (김나경, 前 S영어전문학원 강사 및 교수부장)

그리고 무엇보다 이 때는 우리말을 익히면서 추상적 개념과 사고가 본격적으로 발전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자신의 연령보다 낮은 3~5세 수준의 대화를 영어로 주고받는 영어유치원은 자녀의 지적, 정서적 성장에 오히려 해가 된다는 것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된다. 동덕여대 우남희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공동육아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과 영어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의 창의력을 비교한 결과 공동육아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이 훨씬 창의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결론적으로 영어유치원은 많은 돈을 들여서 영어는 별로 얻지 못하고 정작 중요한 것은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선택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해외 영어캠프의 효과에 대해서도 너무 큰 기대를 갖지 말라는 것이 관련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아직 어린 아이들이기 때문에 개별 활동이 불가능하고, 그러다보니 수업시간에 만나는 원어민 선생님이 영어로 얘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 되기 때문에 실제로는 국내에서 원어민이 있는 방과 후 교실이나 캠프에 참여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영어캠프를 생각한다면 굳이 해외로 나가거나 고비용의 사교육 캠프에 의존할 필요가 없고, 학교나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흥미와 체험 위주의 캠프나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이외에도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각 연령별, 단계별로 부모들이 맞닥뜨리게 되는 영어사교육 관련 주제들에 대해 잘못된 오해와 올바른 관점을 정리하고 있으며, 특히 대안과 관련해서는 영어동화 읽기의 장점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다독(多讀), 학교 실용영어교육의 새 대안"이라는 주제로 작년 세 차례의 토론회를 열고 영어원서 읽기를 기반으로 하는 영어 학습전략과 방법이 우리나라와 같은 영어사용환경에서 매우 유용한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제안한 바 있다. (물론 이마저도 우리나라에서는 너무 과열되어 있기 때문에 영어원서를 활용하되 '쉬운'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서울대 이병민 교수는 소책자에서 영어동화의 장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다.

"영어동화는 우리처럼 외국어로 영어를 배우는 환경에서 많은 이점이 있어요. 우선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영어에 노출이 가능하고, 듣기 활동을 병행할 수도 있죠. 따라 읽거나 써보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말하기, 쓰기의 기초 연습이 되고요. 무엇보다 자녀의 흥미와 수준에 따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동기부여가 되고 자기주도 학습능력을 길러줄 수 있습니다."

자녀가 장기적으로 영어 학습에 성공할 수 있는지를 예측하는 가장 정확한 잣대는 '영어 학습을 얼마나 좋아하는가'와 '영어 학습을 얼마나 스스로 지속할 수 있는가'이다. 따라서 초중고 시기의 영어교육 목표는 영어실력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영어에 대한 흥미와 동기를 유지하고 혼자 공부할 수 있는 기초 실력과 습관을 마련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 영어사교육은 초등학교 시기에 집중되어있는데, 이 시기에 지나친 영어선행학습으로 인해 당장 조금 앞서나가는 것을 대가로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는 우(愚)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부모의 올바른 관점과 분명한 중심이 필요하다.

글을 쓴 김승현 님은 서울 숭실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이며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정책실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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