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호 2011년 겨울 살림,살림

[ 아이살림 ]

하나였던 두 생명의 완전한 일치

신순화

아이 셋을 키우면서 제일 가슴 뻐근하게 행복했던 일을 꼽으라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젖을 먹여 키운 일'을 들겠다. 마흔 넘어 셋째를 가졌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이가 있어서 낳고 기르는 일이 힘들 거라고 사람들이 염려했지만 나는 새 아기 덕분에 시들었던 내 가슴이 다시 달콤한 젖으로 부풀어 오를 수 있게 된 것이 더없이 기뻤다. 따스하고 사랑스런 어린것을 안고 젖을 물리는 그 시간의 행복을 다시 느낄 수 있다니, 그저 고맙고 또 고마웠다.

물론 젖 먹이는 일이 처음부터 행복하고 기쁠 수만은 없다. 젖이라는 것이 아이를 낳았다고 바로 나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출산의 힘겨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젖몸살이라는 또 다른 고비를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젖몸살이 애 낳는 일보다 더 힘들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 모든 고비들을 겪고 나면 하루하루 내 젖으로 커가는 아이를 지켜보는, 말할 수 없는 행복을 느끼게 된다. 물도 먹지 않는 어린 아기가 오로지 내 젖만으로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란 얼마나 놀랍고 경이로운지. 아이를 낳고, 젖을 먹이는 일을 통해 나 자신이 한 생명을 살아가게 하는 엄청난 능력이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 뿌듯한 자각은 '엄마'로서 내 자신을 더 신뢰하게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겪는 수많은 어려움들을 더 힘 있게 헤쳐 나가게 했다.

젖 주는 달콤한 시간이 지난 후에는 다시 젖 떼는 어려움이 있다. 첫아이 때 23개월간 물리던 젖을 떼었을 때, 아이는 3일 만에 엄마 젖을 잊어버렸지만, 엄마 몸이 그 사실을 인식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하루 24시간, 2년 동안 만들어 내던 젖을 더 이상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데는 한 달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젖 말리는 약은 몸에 안 좋다고 해서 먹지 않았고, 젖을 압박하거나 묶어 두는 것도 안 좋다고 해서 그냥 생으로 말렸다. 아이가 더 이상 빨지 않는 젖은 가슴을 채우고 겨드랑이와 목 언저리까지 차올랐다. 팽팽하게 젖으로 차오른 유선들은 화끈거리고 욱신거렸다. 몸이 이렇게 맹렬하게 만들어 내는 젖을 아이에게 다시 빨리고 싶은 유혹을 참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한 달 내내 울면서 살았다. 몸이 스스로 젖을 거두어 가는 그 시간들을 내 의지와 힘으로 올올히 견디면서 처음으로 젖을 물렸던 그 시간들이 내게 준 성장과 행복들을 되새기고 또 되새겼다.

젖을 물리고 떼는 과정을 통해 나는 엄마가 되는 모든 일에는 반드시 필요한 시간과 거칠 과정이 있고, 그것들을 온전히 겪어 가는 일을 통해 수없이 다시 '엄마'로 태어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 무엇보다도 젖을 주는 일이 나를 '엄마'로서 크게 했다.

안타깝게도 요즘은 젖보다 분유로 크는 아이들이 훨씬 많다. 직장에 다니는 엄마들이 늘어난 데 가장 큰 원인이 있겠지만 젖을 먹이는 일보다 분유를 먹이는 일이 더 수월하고 간편하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물론 분유를 먹이면 젖몸살이니 젖 떼는 고통을 겪을 일도 없고,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이 먹일 수도 있으니 아이를 떼어 놓고 외출할 수도 있고, 옷도 편하게 입을 수 있다. 아이가 배고파 울 때 밖에서 허겁지겁 수유실을 찾아 헤매는 불편도 없다. 얼핏 모유 수유보다 훨씬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젖을 먹이는 일은, 아기와 엄마가 하루에도 수없이 서로를 제일 가깝게 '접촉'하는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신생아 때부터 엄마와 풍성하고 다양한 접촉을 하며 큰 아이가 몸도 건강하고 마음도 단단하게 여문다. 가장 좋은 방법은 엄마 젖을 먹이는 일이다.

엄마와 한 몸으로 지내던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고 나면 다시는 그 이전처럼 엄마와 완전히 한 몸이 될 수 없다. 아기는 온 몸으로 접촉을 소망한다. 그것을 가장 완벽하게 채워 주는 것이 바로 젖을 물리는 일이다. 젖을 먹일 때 아기는 엄마와 신체의 가장 많은 부분을 맞댈 수 있다. 얼굴과 몸의 앞쪽은 모두 엄마의 가슴과 배에 닿아 있고, 엄마는 젖을 물린 쪽 손으로는 아이의 머리와 어깨를, 다른 손으로는 아기의 손이나 몸을 꼭 잡아 준다. 입으로 달콤한 젖이 들어오고 온 몸은 엄마와 닿아 있고, 귀로는 익숙한 심장박동 소리가 들리고, 엄마의 다른 손으로는 부드러운 터치를 받을 수 있는 그 순간을 아기들이 열렬히 소망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온 존재 전체로 엄마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아플 때, 무서울 때, 다치거나 놀랐을 때, 단순히 지루하거나 졸릴 때도 젖보다 더한 위안은 없다. 젖은 바로 아기를 채워 준다. 엄마의 부드럽고 따스한 젖꼭지가 입에 닿는 순간부터 아기는 빠른 속도로 진정된다. 젖먹이 아기를 키운 엄마라면 모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엄마 젖을 물고, 엄마의 따스한 몸에 꼭 밀착되어 엄마를 쓰다듬고, 안고, 만지고, 느끼면서 아이들은 안심하고, 진정되고, 다시 힘을 얻고, 엄마를 제 안에 가득 채운다.

이런 과정이 길어진다고 염려할게 뭐 있을까. 일하는 엄마가 아니라면, 아이가 젖을 찾는 기간이 30개월이 넘어선들 어떤가. 아이를 달래기 위해서 쥐어 주는 달콤한 군것질거리나, 화려한 만화 영상이나, 인공적인 장난감보다 젖이 훨씬 더 낫지 않을까.

남미의 어떤 부족은 아이가 다섯 살 때까지 젖을 먹인다. 원할 때는 언제든 젖을 물린다. 그 부족의 아이들은 서양 아이들이 그 나이에 표출하는 짜증이나 신경질이 없다고 한다. 엄마 품에 안겨 마음대로 젖을 빠는 일은 아이에게 그 어떤 일보다 큰 만족과 기쁨을 준다. 그 일을 충분히 겪게 하는 것이, 일부러 서둘러 젖을 떼는 것보다 더 많은 장점들이 있다. 아이 버릇이 나빠질까봐, 이빨이 상한다고 하니까, 젖 먹이는 일이 귀찮고 힘들어서, 혹은 주위에서 이젠 떼라고 하니까 젖을 뗀다면 아이와 젖을 빨고 먹이면서 나눌 수 있는 정말 커다란 기쁨과 선물들을 놓치게 된다.

젖먹이는 기쁨은 돌 지난 뒤 더 크다
나는 아이의 가장 기본적인 성격이 엄마가 어떻게 수유를 하는가에 따라 형성되는 게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갓 태어난 아이는 그야말로 욕망의 덩어리다. 그중 가장 큰 욕망이 젖을 빨고자 하는 욕망이다. 그 욕망이 충분히, 기쁘고 따스하게 채워진다면 다른 환경들이 부족하고 미흡하다 하더라도 아이는 잘 자랄 것이다.

22개월로 들어선 막내 이룸이는 지금도 젖 먹는 시간을 제일 좋아한다. 사람들은 "아직도 젖을 먹여요?" 하며 놀라지만 젖을 오래 먹인 엄마들은 안다. 젖 주는 진짜 즐거움은 돌 이후부터 느낄 수 있다. 이 무렵의 아이와는 젖을 물리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면서 많은 소통을 하며 젖을 먹일 수 있다. 아이가 젖을 빨면서도 표정으로 얼마나 많은 감정들을 내게 전하는지. 우리는 서로의 몸을 간질이며 장난도 하고, 이야기도 하고 대답도 하면서 젖을 물리고 또 젖을 빤다. 내 몸과 아이의 몸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란 참으로 신기하고 벅차다. 내가 젖으로 녹아서 이룸이 안으로 흘러들어가는 느낌이랄까. 내가 주고 싶은 기쁨, 행복, 감사함, 고마움 같은 감정들도 그 순간 젖을 통해서 이룸이에게 흘러 들어간다고 느낀다. 그래서 젖을 줄 때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한다.

예쁘다고,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궁둥이를 톡톡 두드리며, 또 뺨을 어루만지며 고백하고 속삭인다. 다 안다는 듯, 엄마 마음을 다 안다는 듯 젖을 열심히 빨며 '응' 하고 대답하는 이룸이를 보고 있으면 내 안에 있는 모든 사랑이 이 아이에게로 흘러들어가서 더 큰 사랑이 되어 내게 돌아오는 것 같다. 막내만큼은 원할 때까지 젖을 먹일 생각이다.

아쉽게도 우리나라 모유 수유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 직장을 다니지 않는 엄마들 중에는 아이를 분유로 키우는 엄마들이 많다.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산업화된 출산, 쉽게 권해지는 제왕절개, 갓 태어난 아이를 엄마 곁에 두지 않고 신생아실로 거두어 가는 관행들, 이 모든 것들이 엄마의 자연스런 수유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태어나자마자 젖을 물리고, 엄마 곁에서 수시로 젖을 빨 수 있어야 모유 수유를 수월하게 할 수 있다.

엄마젖으로 크는 아이들이 늘어가야 엄마와 아이들의 건강도 더 좋아진다. 더 많은 엄마들이 엄마와 아이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들을 용감하게 극복하고, 젖을 통해 아이와 가장 진하고, 깊은 애정을 주고받으며 행복한 육아를 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절실하다. 긴 인생 속에서 내 아이를 품에 안고 젖을 먹이는 순간은 너무나 짧다. 본래 하나였던 두 생명이 젖을 통해 다시 하나가 되는 그 순간을 귀하고 행복하게 누리자. 최대한 서로를 느끼고, 나누고, 친밀하게 결합하고, 그 충만함을 서로 채워주며 즐기자.

나는 젖 먹이는 엄마다. 한 생명을 먹이고 살리는 사람이다. 태어나서 이보다 더 중한 일을 알지 못한다. 이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나 역시 그 큰 사랑을 받아 이때껏 살아올 수 있었던 은혜를 갚고 싶다.

신순화 님은 필규, 윤정, 이룸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한겨레>가 운영하는 육아 전문 사이트 '베이비 트리'와 네이버에 열어 둔 블로그를 통해, 행복한 출산과 육아에 관해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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