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호 2011년 겨울 살림,살림

[ 살림이 눈여겨 본 이 물건 ]

약이 되는 향기로운 풀 - 허브차

김준

기원전 2700년경 고대 중국. 신농씨가 물을 끓이고 있는데 갑자기 바람이 일더니 나뭇잎 하나가 날아와 물속으로 떨어졌다. 보글보글 끓고 있던 물속에 나뭇잎이 잠기자 이내 물빛이 연한 초록빛으로 변하면서 좋은 향이 퍼져 나왔다. 향에 끌려 물을 마신 신농씨는 싱그러운 맛에 홀딱 반하고 말았다. 드라마틱한 이 이야기는 중국에서 전해 내려오는 차의 유래로, 여기서 등장한 나뭇잎이란 차나무의 잎이다.

세 집 건너 한 집이 커피집이다보니 온 세상 사람들이 커피만 먹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커피집 메뉴판에는 갖가지 식물 이름의 차도 함께 올라 있고, 우유를 섞은 카페라떼만큼 티라떼(밀크티)도 은근한 인기몰이 중이다. 《타임》지는 '2008년 아시아 베스트 제품'에 허브차를 꼽기도 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차와 허브차는 다르다. 차는 차나무, 그러니까 차나무의 어린잎을 볶거나 쪄서 만든 녹차, 이를 반쯤 발효시킨 우롱차, 완전히 발효시킨 홍차 등을 말하고, 허브차는 허브로 만든 차를 말한다.

허브(Herb)는 오래전부터 인류에게 유용한 식물로 사용되어 왔다. 풀과 열매가 지닌 신비한 효력이 밝혀지면서 하나의 특별한 풀로 다루게 된 것이 허브의 시초다, 허브의 풀과 열매는 지혈, 진통, 음식이 썩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허브는 '초록색 풀'이라는 뜻의 라틴어 '허바(Herba)'에서 나온 말로, 옥스포드 영어사전에는 '잎, 줄기가 식용, 약용에 쓰이거나 향기나 향미로 이용되는 식물'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넓은 의미에서는 인간에게 유익하게 이용되는 거의 모든 초본식물, 곧 꽃과 씨앗, 줄기, 잎, 뿌리 등이 약이나 요리재료, 향료, 살균 살충 방부제 등으로 널리 사용되는 모든 식물을 일컫는다.

허브를 이용한 최초의 인류는 6만여 년 전 네안데르탈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라크 북부에서 꽃으로 매장된 묘가 발굴되었는데, 꽃을 분석해 본 결과 서양톱풀과 같은 종류의 허브로 밝혀졌다. 구약성서 창세기 제1장에는 "모든 풀을 식물로 주노라"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에서 식물이란 허브를 뜻한다. 이렇듯 허브는 고대부터 종교 혹은 신화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었다. 허브로 환자를 치료하고, 신전에 허브 향을 피우며, 죽은 자에게 허브 향료를 뿌리는 등의 행위는 대부분의 문화에서 신성시되어 종교적인 의식에 따라 행해졌다. 특히 아름답고 향이 강한 식물인 허브는 질병과 건강, 인간과 신, 죽음과 영생을 잇는 매개체로 믿어 신성하게 여겼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좋은 향을 지닌 허브가 나쁜 병을 물리친다고 믿었다. 기원전 1500년경에 쓰인 파피루스에는 800여 종에 이르는 약초 이름과 처방법이 빼곡히 적혀 있다. 잉카 유적지에도 향료의 흔적이 남아있다. 허브를 치료에 이용한 기록으로는 고대 중국의 한방 치료를 가장 오래된 것으로 꼽는다. 중국 의약의 선조인 신농씨는 매일 수많은 식물을 직접 먹으며 독초를 구분하고 그 해독제를 연구해 왔다고 전해진다. 히포크라테스도 400여 종의 약초 치료법을 연구했는데, 이는 지금까지도 아로마 요법으로 이용되고 있다.

현대의학이 발달하기 전까지 허브는 인류의 유일한 치료법이었다. 고대 잉카인은 피부병이 생기면 '성스러운 나무'로 부르던 구아바의 열매를 음료로 만들어 먹었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는 쿠미스쿠친이라는 허브를 우려 이뇨제로 사용했다. 그리스에서는 몸속 독소를 배출하는 기능을 지닌 마조람을 강장제와 해독제로, 북아메리카 인디언은 '인디언 허브'로 불리는 에키나시아로 상처를 치료하고 감기를 예방했고, 호주의 원주민인 에버리진은 강한 항균 성분을 지닌 유칼립투스를 상처를 치료하는 약초로 애용했다. 점차 사람들은 가정에서도 허브를 기르기 시작했다. 중세 유럽의 수도원과 교회의 정원들은 마을 사람들을 위한 약방이기도 했다.

허브차는 허브의 영양과 약효를 손쉽게 섭취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꾸준히 이용되어 왔다. 허브를 차로 마시면 허브에 들어있는 향기 성분이 코로 들어가 마음이 안정되는 아로마테라피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복용 효과로는 허브의 공통적인 효능과 허브 고유의 약리효과가 있다. 대부분의 허브차에는 강력한 항산화제인 카테킨과 항균 항암 성분인 바이오플라보노이드, 각종 성인병에 효과적인 섬유질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허브 속 미네랄과 비타민A, B1, B2, C, E 등은 면역력을 높이는데 효과적이다. 칼로리가 없다는 것도 큰 매력이다.

화학약품, 화학조미료, 합성향료의 뒤편으로 물러났던 천연 허브에 대해 다시 관심이 높아지면서 허브차 수요는 매년 급상승하고 있다. 하루 종일, 거의 모든 음식과 함께 곁들일 만큼 홍차를 좋아하는 영국에서도 카페인이 든 홍차 대신 허브차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은 홍차보다 허브차를 더 즐긴다. 허브의 나라로 불리는 독일에서는 이미 18세기부터 허브차가 자연건강차로 자리 잡았다. 독일의 가정에서는 여러 가지 허브차를 항상 준비해 두고 민간약으로 이용한다. 가장 대중적인 차는 위와 간에 좋다고 알려진 페퍼민트다. 감기에 걸리면 냄비나 주전자에 땀을 나게 하는 라임블라썸의 꽃이나 로즈힙, 저먼 카모마일 따위를 넣고 10~15분간 달여 마신다.

술을 마시지 않는 모로코인들은 '아차이'라고 불리는 민트티를 유별나게 좋아해서 아침에 눈을 떠 잠들기 전까지 끊임없이 마신다. 모로코의 민트티는 설탕을 듬뿍 넣는 것이 특징이다. 다도 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허브차가 인기를 끌고 있다. 어느 레스토랑에서는 아예 허브 화분을 가지고 나와 그 자리에서 잎을 뜯어 싱싱한 차를 만들어 준다. 신종 플루가 극성을 부렸던 때에 홍콩에서도 허브차 소비가 부쩍 늘었다.

허브의 종류는 전 세계적으로 3천여 종에 이른다. 당귀(안젤리카), 박하(민트), 고수(코리앤더), 회향(딜), 백리향(타임) 같이 동서양에 공통되는 허브도 많다. 우리가 즐겨 먹는 쑥, 마늘, 씀바귀, 달래들도 일종의 허브다. 허브는 향과 약효가 저마다 조금씩 달라 상황에 맞게 골라 마시면 더 좋다.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허브차들은 다음과 같다.

잎을 이용한 허브차
레몬그라스: 잎을 부비면 레몬 향이 나기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태국의 전통 스프인 톰얌쿵 안에 넣는 허브로도 유명하다. 몸속의 노폐물을 빨리 배출시켜 피부를 깨끗하게 한다. 피로에 의한 식욕 부진, 소화불량에 효과가 있다.
레몬버베나: 버베나는 '제단을 장식하는 풀'이라는 뜻. 유럽에서는 와인과 섞어 마시기도 한다. 특히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인기 있는 허브로, 우울증과 불면증에 효과가 있다.
로즈마리: 고대 이스라엘, 그리스, 로마 등지에서는 종교의식에 사용되었다. 항산화작용이 강하고 집중력을 높여 준다.
페퍼민트: 고대 이집트인, 로마인들도 무척 좋아한 허브로, 서양 박하 중에서 가장 역사가 깊고 수요도 많다. 한때 교회에서 이걸로 십일조를 내기도 했다. 향이 상쾌하고 청량감이 있어 허브차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좋다. 호흡을 편안하게 하고 위액의 분비를 조절해 소화를 돕는다.
루이보스: 항산화성분이 풍부해 남아프리카에서는 불로장생 차로 즐겨 마셔 왔다. 임산부에게도 좋다고 알려져 있다. 남아프리카에서는 밀크티로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다.

꽃을 이용한 허브차
라벤더: 허브의 여왕이라 불릴 만큼 향이 좋아 인기가 많다. 유럽인들은 주로 신경 안정을 목적으로 마신다. 진정 작용이 있고 진통을 약하게 한다.
카모마일: 새콤달콤한 사과향이 난다고 '대지의 사과'라는 애칭이 붙었다. 유럽의 허브요법을 대표하는 허브로, '식물들의 의사'로 불릴 만큼 효능이 뛰어나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안심하고 마실 수 있다. 몸을 따뜻하게 하기 때문에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감기 치료를 위한 민간약으로 즐겨 마신다. 우유와도 잘 어울려 밀크티로 마셔도 좋다.

열매를 이용한 허브차
로즈힙: 들장미의 열매로 품명은 'Dog Rose'. 원래는 '가시가 많은'이라는 뜻의 'Dag rose'였는데 미친개에게 물린 로마 병사가 이 장미 뿌리로 병을 고쳤다고 해서 Dag가 Dog로 되었다는 재미난 이야기가 전해진다. 맛이 새콤달콤하고 비타민C가 레몬의 60배나 되어 유럽에서는 건강 음료로 즐긴다.
펜넬: 허브 속 단맛이 식욕을 떨어뜨려 고대 로마 여성들은 다이어트 특효약으로 애용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뇨작용을 통해 체내의 불필요한 수분을 배출하고 변비를 해소해 뱃속에 들어 있는 가스를 내보내는 일 또한 다이어트를 돕는 데 한몫하는 부분. 어원인 '마라스론'은 그리스어로 '마르다'는 뜻.

허브차는 한꺼번에 많은 양을 마시는 것보다 몇 시간 단위로 나누어 마시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일반적으로는 하루 세 번, 식후에 마시도록 권한다. 사람마다 마셨을 때 나타나는 효과가 다 다르기 때문에 혹시 병 때문에 치료 중인 사람이나 임산부, 어린아이들은 반드시 의사와 상의한 후 마시도록 한다. 100퍼센트 자연 성분인 허브를 뜨거운 물에 직접 우리는 것이니 만큼, 농약을 치지 않고 유기농으로 재배한, 생산지며 생산자가 정확히 기재된 제품을 구입하는 것이 좋다.

*참고: 《허브이야기》, 《전통차 허브차 한잔에 담긴 건강 마시기》, 《차 수첩 - 세계인이 즐겨 마시는 168가지》, 《홍차, 녹차, 허브차, 한방차 54가지 무작정 따라하기 - 오후의 행복 티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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