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호 2011년 겨울 살림,살림

[ 다시 본 이 물건 ]

늘 신선하게 먹을 수 있다는 착각 - 냉장고

이소영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온다. 물건이 필요하면 마트에 간다. 냉장고를 열면 먹을 것이 있다.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오고 마트에 가서 장을 보듯이 냉장고 속에 온갖 먹거리를 쟁여 놓는 것은 현대를 사는 소시민들에게 당연한 일이 되었다. 한때는 사치품이었던 가정용 냉장고가 시간이 지나면서 생활필수품이 되었다. 냉장고라는 백색가구(White furniture)가 - 이제는 백색가구가 아니다. 우아하고 세련된 자줏빛까지 있다- 집안 한 구석을 당연하게 차지하는 필수품이 되고 말았다. 아직까지 스스로 사들인 적은 없으나 그럼에도 크든 작든 늘 사는 곳 한 구석에 저렇게 자리잡고 있는 냉장고에 대해 '딴지' 한번 걸어 본다.

양문형 냉장고에 선남선녀가 기대어 있는 광고가 구매욕을 자극하더니 이제는 칸칸 냉장 방식이 다르다는 김치냉장고를, 김치란 것을 한 번도 담아본 적 없을 것 같은 참하게만 생긴 남자들이 광고한다. 1913년 미국에서 가정용 냉장고가 처음 보급되었다. 우리나라에는 1960년대 금성사에서 처음 냉장고를 내놓았다. 당시에는 냉장고를 집안에 들여놓는 것이 부를 과시하는 일처럼 여겨졌다. 이제는 냉장고쯤은 누구나 갖추고 사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고 그들 모두가 부유층이 된 것은 아니다. 그런 연유인지 용량이 더 크고 더 많은 기능을 뽐내는 냉장고를 '냉장'이라는 기능 때문이 아니라 지위와 부를 드러내기 위해 구매하고 또한 구매하도록 교육되고 강요된다. 강요 아니라 자발적인 소비라고 반론을 할 수 있겠다. 잘 살펴보자. 독신 혹은 2인 가족이 점차 늘어나 2005년 기준 전체 가구의 43%나 된다. 4인 가족이라고 해도 그토록 큰 냉장고에 그렇게 많은 김치를 한 번에 담가 보관해야 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나는 열대지역인 아프리카 케냐에서 냉장고 없이 살아본 적이 있다. 아이를 가져 한창 입덧을 할 때라 시원한 물김치가 너무도 먹고 싶어 생강, 마늘, 배추, 소금만 넣고 이틀 정도 두었더니 잘 익었다. 그늘에 두었다 먹으면 차지는 않아도 시원했다. 5일쯤 지나고 그걸 먹으면 푹 삭은 국물 맛이 끝내줘 한 숟갈도 버리지 않고 끝까지 먹었다. 그러다 또 먹고 싶으면 다시 담가 먹었다. 여러가지 양념이 들어가는 배추김치를 그렇게 자주 담가 먹는다면 사실 귀찮은 일이겠다. 하지만 그 편리를 위해 굳이 옷장만한 김치냉장고를 들여 놓아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오존층 파괴와 지구온난화를 부르는데
한때 냉장고 작동 매체인 염화불화탄소 계열의 냉매제, 프레온가스 때문에 세상이 시끄러운 적이 있었다. 냉장고 개발 초기에는 냉각장치 사용을 위해서 암모니아나 이산화황이 쓰였지만 그로 인한 독성과 악취를 해결해야 했고 동시에 냉장고의 대중화를 위해서라도 매우 저렴한 화학물질이 필요했다. 경제 논리로 계산되어 단시간에 만들어진 프레온가스는 단열에서도 금속 부식과 플라스틱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냉매제이다. 하지만 이것이 전 세계 냉장고와 에어컨 수천만 대에 주입되면서 예상치 못한 환경문제가 생겼다. 2008년 한 해에만 전 세계에서 냉장고는 8,500만 대나 판매되었다. 프레온가스가 대기 중에서 순환하며 만들어지는 염소 원자 하나는 오존 분자 10만 개를 파괴한다. 이 때문에 오존층에 구멍이 생기기 시작했다. 프레온 냉매제 때문에 남극 오존층에 생긴 구멍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또한 프레온가스는 온실효과까지 유발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대체 냉매제 생산이 시급하다는 여론이 일었다. 이 때문에 부탄이나 천연가스 등을 대체 냉매제로 쓰는 냉장고가 생산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안정적인 냉매제가 아닐 뿐만 아니라 이 대체 물질들도 온실효과를 유발하고 있다.

녹색소비생활관련 교육 덕에 플러그 뽑기는 기본 실천 과제가 되었다. 하지만 24시간, 365일 절대 뽑을 수 없는 가전제품이 있다. 한 순간도 쉼 없이 전기를 소비하는 것이 바로 바로 냉장고다. 이 전기 먹는 괴물이 생필품이 되었으니 우리는 더더욱 친환경 재생에너지 개발에 힘써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화석연료나 핵발전으로 생산되는 전기가 아니라 태양열, 풍력, 지열 등을 활용한 재생에너지 말이다.

지금의 소비 행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에너지를 생산하는 발전소만 친환경적으로 바꾸면 문제가 해결될까. 2010년 지구환경보고서에 따르면, 지금 쓰는 에너지의 양만큼 재생에너지로 교체하려면 전 세계가 앞으로 25년 동안 매초마다 200㎡의 태양광 발전 패널을 만들고, 매초마다 100㎡의 태양열발전소를 짓고, 또 매 시간마다 3메가와트의 풍력 터빈 24개를 쉬지 않고 건설해야만 한단다. 재생가능 에너지를 공급 받기 위한 설비를 마련하기 위해 초기 25년 동안 발생시킬 이 막대한 양의 탄소를 배출 하는 것은 어쩔 것인가.

먹지도 않고 버리는 음식이 넘쳐나는데
식품 가공 회사와 대형 마트는 싼 가격에 대량의 농축산물을 소비자에게 공급한다. 덕분에 소비자들은 늘 필요한 양보다 더 많은 먹거리를 사들인다. 싼 맛에, 하나를 사니 하나를 더 줘서, 혹은 가격 상승을 대비해 미리 다량 구매하여 냉동실에 차곡차곡 쌓아 두는 알뜰한 소비자가 된다. 과연 냉장고가 가득 차서 행복한가. 싼 값에 구매했다는 성취감을 맛보게 해 준 그 음식 재료들을, 비싼 전기요금을 물어가며 보관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봐야 한다. 식구도 별로 많지 않은데 이렇게 쌓아 두는 이유가 뭘까. 쌓아두지 않고 열심히 꺼내 먹는다고 해도 문제다. 필요 이상 구매했기 때문에 음식은 더 먹고 더 먹으니 살이 찌고 결국 건강도 나빠진다. 살찌우며 틈틈이 열심히 꺼내 먹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존재조차 몰랐던 음식물이 냉장고 구석에서 발견되면 찜찜해 하며 결국 갖다 버린다.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가 아니라 완전히 새 음식을 단지 먹기 싫어서 쓰레기로 버리는 것이다.

음식물을 최대한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게끔, 음식의 유통기한까지 꼼꼼히 알려주는 모니터가 장착된 최신 냉장고가 등장했다. 가축을 항생제로, 채소를 살충제로, 가공식품을 첨가물로 채워 넣는 이유와 냉동냉장시설을 쓰지 않는 제조공정을 불법으로 취급하는 까닭과 냉장고가 무관할까? 규모의 경제라는 구호 아래 소규모 식품가공업이 망해야 하는 이유와 최첨단 냉장고는 과연 무관할까.

생필품이 되어버린 가정용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는 도대체 어떻게 살았을까. 어른들의 말을 빌면, 김치나 장은 옹기에 담고, 건어물 등도 독 안에 차곡차곡 넣어 두면 공기가 통해 보관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반찬거리는 그때그때 만들어 먹었고, 남으면 부엌 찬장에 보관했고, 오래 넣어두지 않고 곧장 다 먹어치웠다. 며칠 내 먹을 부재료는 바람에 말렸다, 예를 들어 보리밥을 짓기 위해 삶은 보리쌀 등은 대바구니에 대강 널어 바람 잘 통하는 곳에 두면 살짝 말라서 며칠 동안 두어도 상하지 않아 한꺼번에 삶아두기도 했다. 혹여 남을 만큼 음식을 많이 했다면 이웃들과 나누었다. 과일이나 열매류는 제철에 나는 것을 있는 만큼만 먹었다. 남으면 말려서 저장하기도 했지만 거의 다 제철에 소비가 끝났다. 냉장고 없이도 살았다. 때문에 먹지도 않고 버리는 음식도 없었다.

결국, 제철 음식, 제 고장의 음식을 먹는 것이 답이다. 다들 아는 얘기겠지만 냉면은 원래 겨울 음식이었다. 우리는 더운 여름에 시원한 냉면을 찾지만 이북에서는 겨울에 냉면을 먹는다. 시원한 맛이 별미인 동치미도 겨울 음식이다. 가을에 거둔 고구마를 겨우내 보관해두고는 삶아서 동치미와 같이 먹으면 썩 잘 어울린다. 겨울에 냉면을 먹고 동치미 국물을 마신 것은, 추운 겨울이나 돼야 얼음이 얼기 때문이었다. 다시 제철음식, 지역음식이다.

누구의 손때를 거쳐 내게까지 왔는지 알 수 없는 모터 소리 요란한 중고냉장고를 열었다. 친정과 시댁에서 보내온 각종 건강 떡, 냉장 보관하라는 유기농 쌀, 잘 익은 김치 한 통과 된장 한 통, 마늘장아찌, 그리고 언제 먹다 말았는지 알 수 없는 한약 몇 봉. 이 냉장고 안에 기후 변화, 식량 문제, 에너지 파동, 고용 불안, 사회 양극화 등등 모든 사회문제가 다 들어있는데 나는 결국 내 목구멍으로 들어가는 딱 그것만 생각했다. 밥상 안전은 내 밥상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냉장고를 쓰기 전, 그 시절로 돌아가자는 말이 아니다. 그 시절을 살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 시절에 있었을지 모를 또 다른 문제점까지도 다 해결할 수 있다고 목처을 높일 자신은 없다.

어쩌면 좋을까. 어쩌란 말인가. 텃밭에서 제철 음식을 키워 먹고 어쩌다 많이 생긴 음식은 이웃과 함께 나누고 뒤뜰에 장독 묻어 놓고 쓰면 좋겠다. 그것도 차일피일 미루게만 되는 시골살이가 아니라, 그냥 도시에서 시골 같은 생태도시가 있어서 그런 일이 가능하면 좋겠다. 꿈만 꾸는 에코토피아다.

한 가지 방법은 공동 주거를 하고 공동 냉장고를 이용하는 방법인데, 개인주의가 만연한 이 시대에 이 또한 유토피아적 발상이다. 물론 이상을 현실로 실천해 나가는 이들도 점차 늘고 있다. 지속가능한 일은 쉽게, 지속가능하게 않은 것은 어렵게 만들자고 애쓰는 이들이 많다. 유럽에서는 대안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 생태적인 마을을 꾸려 놓고는 퇴비 활용을 위해 만든 '푸세식' 화장실에 좌변기를 앉혀 놓는다. 그러면 되겠다. 냉장고에 너무 익숙해졌으니 장독을 냉장고 형태로 만들어도 되겠다.

현실을 비판하고 이상을 꿈꾸며 실컷 침 튀겼으나 결국 책장을 덮으면 일상으로 돌아가 버릴 수많은 나를 위해 한 가지만 당부하자. 지금 소유한 그 냉장고만이라도 대형 혹은 신제품으로 바꾸지 말고 끝까지 함께 쓰자고. 혹여 문제가 생겨 바꾸게 되더라도 소형 중고가 어떠신지. 중고가 싫으면 소형이라도. 내가 그리 실천하면 다음 세대는 분명히, 당연히, 지속가능한 집과 마을에서 냉장고 없이도 풍족히 살아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소영 님은 에코토피아를 꿈꾸는 살림꾼입니다. 한살림의 모심과살림연구소 연구원, 부산대 생태유아교육사업단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고려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인드라망, 지금 여기의 에코토피아》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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