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호 2011년 겨울 살림,살림

[ 살림이 만난 고집쟁이 ]

의사보다 농부가 좋아

김세진



약속 시간이 지나자 불안해졌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건물이 아닌 길가 텃밭에서 만나기로 했던 터다. 남양주 사릉, 진건중학교 옆에 있다는 텃밭은 얼핏 보기에 이것 하나뿐인 것 같지만, 내가 모르는 어딘가 쯤 또 다른 텃밭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혹여 엇갈리기라도 하면 전화를 걸면 될 터인데 이상래 씨는 그 흔한 휴대전화도 없다.

다른 밭을 찾아가 보지도, 전화를 걸어 보지도 못하고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한 남자가 다가왔다. 오토바이를 타고 수염을 기른 행색은 의사처럼 보이지 않았다. 배추며 파를 돌보는 모습도 평범한 '농부'로만 보였다. 그렇지만 이웃 텃밭지기의 말로는, 평소 배추벌레를 핀셋으로 집어 골라내고, 열무나 당근 같은 작은 씨앗을 균일하게 줄을 맞춰 뿌리는 '씨뿌리기의 달인' 같은 모습은 영락없이 의사답다고 했다. 그는 평소 정교한 수술을 많이 해야 하는 심장혈관 전문의다.

그가 의사가 된 계기는 단순했다. 고등학교 친구들이 모여 서로 누가 뭘 하는 게 좋을지 말하다 그의 직업을 의사로 정했기 때문이란다. 공부를 곧잘 했고 아버지가 의사였던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의사가 되었지만 진료실에 가만히 앉아 손님을 기다리는 게 적성에 맞지 않아 응급실 근무를 자원했다. 응급실에서는 한 명의 환자와 오랫동안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게 아쉽긴 하지만, 다 죽어가는 사람이 응급처치로 살아나는 식의 극적인 일들이 일어나곤 한다.

오토바이에 오줌통 싣고 텃밭으로 출근하는 즐거움
병원에만 갇혀 있던 의사가 우연한 계기로 텃밭 농사를 시작했다. 친구네 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었는데 상추가 떨어지자 친구가 마당 텃밭에서 상추를 따왔다. 그도 직접 키운 상추로 상추쌈을 먹고 싶었다. 집 근처 도봉산 밑에서 두 평정도 텃밭을 분양 받아 주말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상추와 부추 등 몇 가지 채소를 함께 키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진흙탕에 빠졌다"고 한다. 지금 그는 집에서 오토바이로 30분 거리인 남양주 사릉에서 25평 밭을 경작하고 있다. 철 따라 콩도 거두고, 부추와 파도 뽑고, 양파와 마늘, 고구마도 캐는 밭이다.

그는 배추를 묶으며 월동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날이 더 추워지면 배추가 얼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겉 배추가 속 배춧잎을 다 에워싸도록 묶는다고 했다. 입에 노끈을 물고 양손 가득 통통한 배춧잎을 모아 쥐는 손길이 꽤 만족스러워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사릉에서 같이 텃밭을 일구는 열두엇 도시 농부들 밭에서도 그의 배추는 눈에 띄었다. 바로 이웃한 배추보다 다섯 배나 몸집이 컸다.

"벼는 농부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정말이라니까요. 텃밭에 자주 나와 많이 보고 물도 주고 벌레도 잡아 주고 퇴비도 주고 손길이 많이 갈수록 쑥쑥 자라요. 요 옆 밭이랑 같은 날 심었는데 이렇게 차이가 나요. 저 집은 배추 심은 날 밖에는 얼굴을 못 봤거든요. 가만히 놔둬도 생명이니까 자라긴 하는데 이렇게 차이가 나요. 신기하죠?"

그는 발자국 소리를 들려주느라 주말에 쉬지 못한다. 응급실 당직으로 밤을 새운 다음날도 잠을 줄이고 텃밭에 간다. 피곤할 땐 집에서 쉬고 싶기도 하지만, 농사는 때를 놓치면 안 되는 일들이 있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밭에 오면 한 주 사이에 부쩍 커버린 작물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무척 신기하고 힘이 난다.

그는 가끔 작물들에게 줄 선물을 들고 온다. 오토바이에 싣고 오는 하얀 플라스틱 통 안에는 그가 모은 오줌이 들어있다. 바로 밭에 뿌리기도 하고 며칠씩 묵혀 발효된 다음 뿌리거나 거름을 만들 때 섞기도 한다. 집에서 오줌을 모을 때는 어린 딸들도 몇 번 동참했다. 밖에서 볼일을 보고 물을 내릴 때마다 버려지는 물과 오줌이 아깝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마다 오줌 색깔과 향이 다 달라요."

그는 마치 오줌감별사처럼 이야기했다. 성별에 따라 다르고 무엇을 먹었느냐에 따라서도 다르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오줌에는 특별한 성분이 있어서 밭작물들이 특별히 잘 자라는 것 같다고 했다.

"제가 술을 자주 마셔서 알코올 성분이 오줌으로 많이 나오는데, 그게 식물의 성장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

스스로 생각해도 억지다 싶은지 이야기 하면서도 웃는다.



가방끈 짧은 의사 농부, 아직은 배울 게 더 많아

사실 술을 마시지 않고는 견디기 힘든 순간들이 많다고 했다. 응급실에서는 누군가의 죽음을 종종 목격하게 되는데 그게 괴롭다. 사람을 살리지 못했다는 자책에 시달리면 며칠이고 계속 그 생각에 매여 잠도 안 온다. 그걸 잊기 위해 술을 자주 마셨다. 술이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 수단이었는데 텃밭이 생기고부터는 달라졌다고 한다. 가끔 텃밭에서도 막걸리판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밭에서 먹는 막걸리는 그 어느 곳에서 먹는 것보다 달다. 마음이 편하고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들과 마셔서 그런 것 같다고.

텃밭에서는 누구도 이상래 씨를 '의사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두 딸 한슬, 예슬이의 아빠라고 '두슬이 아빠'라고 부른다. 또 남들보다 대학을 2년이나 더 다닌 그를 텃밭지기들은 '가방끈이 짧다'고 놀려대기도 했다. 텃밭에서는 농사와 관련한 공부 외에 중요한 것은 없다. 귀농운동본부의 도시농부학교, 생태귀농학교, 귀농전문학교 중 하나를 수료하면 겨우 텃밭에서 가방끈을 내밀 수 있다. 무작정 텃밭을 시작한 그도 점차 가방끈을 늘려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병원에서는 별종이다. 응급실 의사가 휴대전화가 없는 것부터가 그렇다. 급한 일들은 어떻게든 연락이 되기 때문에 정작 그는 불편한 게 없는데, 회사 사람들은 그를 신기하게 여기는 것 같다. 전화기를 잃어버린 참에, 돈도 아끼고 물질도 아낄 겸, 남에 의해 시간을 침해받지 않고 얕은 관계들을 맺지 않고 '천천히, 깊게' 살아보겠다는 이야기를 하면 고개를 갸웃할 게 뻔하다.

귀농하겠다고 하면 회사 사람들은 "이 병원 그만두고 어느 병원으로 가실 거예요?"라고 묻는다. 농사만 짓겠다면 '미쳤나'라거나, '뭐 먹고 살려고 하냐'고 물을 게 뻔하다. 그래서 그냥 "있어요"라고 얼버무린다.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죄인이 된 느낌이다. 중학생이 되는 딸을 데리고 서울에서 지방으로 간다는 이야기들을 듣고 사람들은 '애 교육은 어쩔 거냐'며 대책 없는 아빠 취급을 하기도 한다. 그들 앞에서는 '딸이 되도록 대학에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필요하면 가는 거지만 그렇지 않으면 갈 필요 없다', '자연에서 자라는 게 아이들에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냥 대충 얼버무릴 뿐이다. 그들의 대화에 온전히 어울리기 어렵다. 모이면 재테크에 대해 이야기하는 의사들 사이에서, 정보에 어두운 그는 늘 할 말이 없다.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어도 이야기가 잘 되지 않는다.

텃밭에는 선생님, 공무원, 주부, 아이티 관련 업계 종사자 등 직업이 다양한 사람들이, 농사를 짓는다는 것 하나로 모였는데도 늘 즐겁다. 긴 설명이 필요 없다. 귀농하려는 이유에 대해서, 채식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이상래 씨는 그와 닮은꼴인 텃밭지기들을 '골수분자들'이라 불렀다. 남들이 뭐라 하든,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삶을 우직하게 살아내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들렸다. 그리고 그는 그들과 만나는 세상을 '외눈박이 세상'이라고 했다.

"흔히 외눈박이가 비정상이라고 하지요. 하지만 그건 두눈박이 세상에서 볼 때 그런 거고, 외눈박이 세상에서는 두눈박이가 비정상이잖아요. 여기 모인 사람들은 외눈박이예요. 사람들은 우리들을 이상하다고 하지만 그건 세상을 보는 기준이 달라서예요."

이들 외눈박이들은 남들이 재테크에 대해, 사교육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저 농작물 자라는 이야기, 자기 먹거리를 자기가 해결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저 밭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데, 하다 보면 식량 자급자족의 필요성, 지구 온난화 등 꽤 묵직한 주제까지 이야기하게 된다. 두슬이 아빠를 만난 그날도 갑작스레 막걸리판이 벌어졌는데 마늘 심는 얘기를 하다가 마늘 육종 이야기, 토종 씨앗을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 소비자들의 역할, 다국적 종자 회사의 현실, 정부 정책의 문제까지 이야기가 커졌다. 같이 있으니 벌리는 일도 용감무쌍해진다. 몇 해 전에는 콤바인을 빌리지 못했다고, 손으로 밀밭을 베고 발로 밟는 탈곡기로 밀을 털었다. 5분만 밟아도 까끄라기와 쭉정이가 옷 안으로 날아들어 온 몸이 따갑고 숨이 막혔지만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그 일을 했다. 보통 '생태근본주의자'들이 아닌 모양이다.



무슨 농사를 지어야 할지, 퇴비는 어떻게 만들지 의논하기도 하고 같이 두부를 만들기도 하고 공동 텃밭도 경작하면서 이들은 서로 잘 아는 사이가 되었다. 두슬이 아빠가 귀농하려는 고집을 꺾지 않아 가족들과 얼마나 어려운 시간을 보냈는지도 잘 안다. 일주일 동안 집에서 나와 공동창고로 사용하는 텃밭 옆 허름한 컨테이너에서 생활했던 것도 모두 지켜보았다. 그의 표현대로 '지옥 같았던' 시간 동안 외눈박이들은 그에게 힘이 되었다. 그들은 귀농하려는 두슬이 아빠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농사지으며 땀 흘린 만큼 열매를 거두는 기쁨을 알기 때문이다.

동시에 두슬이 엄마의 마음도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 대학병원의 의사, 조교수라는 안정적인 자리를 두고 고정 수입이 보장되지 않는 농사를 짓겠다는 것, 아직 아이들이 초등학생인데 교육시설이 변변찮은 지방으로 가는 것, 앞으로 들어갈 교육비에 대한 대처 계획이 없는 것이 얼마나 불안한 일인지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뭘 먹고 살 거냐"고 물으면 "농사지으면 뭐든지 먹고살 수는 있다. 근데 당신이 먹고산다고 말할 때 생각하는 기준과 내가 말하는 기준은 다를 수 있다"라고만 대답하는 남편이 미덥지 못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안 되면 의사 일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농사에 집중하거나 목숨 걸지 않을 것 같기 때문에 귀농해서 의사 일은 하지 않겠다'는 소신이 분명한 남편이 답답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그들은 두슬이 아빠에게 너무 일방적으로 자신의 생각만 얘기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귀농을 결심하고도 불안해하는 두슬이 엄마를 텃밭으로 데려오라고, 그러면 우리가 설득하겠노라고 얘기한다. '귀농은 미친 짓'이라고 말하는 두눈박이들에만 둘러싸여 있으면, 마음이 불안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외눈박이는 그의 세상을 찾아 한 걸음 더 내딛기로 했다. 이상래 씨는 내년에 제천으로 귀농한다. 먼저 큰딸과 함께 가고, 작은딸이 교육 과정을 마치는 후년에 아내도 합류하기로 했다. 그곳에서 농사도 짓고 집도 지을 생각이다. 자기가 살 집을 스스로 짓지 못하는 동물은 인간뿐이라는 반성에서 집을 지으려고 한다.

그에게 땅은 결코 불로소득을 내지 않는 곳이다. 재테크처럼 적게 심은 것에서 많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그저 심은 만큼, 농부가 땀을 흘린 만큼 정직하게 결과를 낸다. 그는 오늘도 땅의 정직함을 가까이서 맛볼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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