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호 2011년 겨울 살림,살림

[ 이 사람의 살림살이 ]

바느질로 세상과 나를 되살리다

우미숙



언젠가 쓸모 있을 거라고 모아 놓은 빈 유리병들. 구멍 난 것이지만 현관 바닥 한 번 닦고 버린다고 바구니에 잔뜩 담아 놓은 양말들. 허리 살이 빠지면 입을 거라며 비좁은 장롱에 잘 모셔 놓은 치마와 바지들. 몇 번 입지 않은 옷인데 아이들이 부쩍 커 버린 탓에 버리기 아까워 서랍장에 넣어 놓은 옷들….

집안 곳곳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자리 차지하고 있는 물건들이 수두룩하다. 어떤 이는 이를 잡동사니라고 한다. 자기 쓰임새가 다해 더 이상 쓰일 데가 없는 신세라고 할까. 버리지 못해 껴안고 있는 물건은 집안에 가득하지만 다시 새것을 사들이는 게, 넘쳐 나는 물건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대개의 사람들 모습이다. 빠르게 소비되고 또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고 다시 버려지는 소비 형태는 새로운 물건과 함께 쓰레기도 넘치게 쏟아낸다.

잡동사니에 파묻혀 그 물건에 얽힌 과거에 붙들려 있는 사람들에게 이제 그만 지난 기억들에서 벗어나라고 충고하는 이들도 있다. 때문인지 지금 이 순간에도 쓰임새가 없어진 물건들이 수도 없이 집밖으로 쏟아져 나온다. 매일 재활용장 빈자리를 가득가득 메우는 폐가구들과 폐휴지, 헌옷들. 하지만 이러한 잡동사니들도 눈썰미 있고 손매가 매운 알뜰 살림꾼들에겐 귀한 살림살이가 된다.

살림고수들은 "그것 몇 푼이나 한다고 집으로 끌고 들어오냐I"는 집안 어르신의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낑낑대며 끌고 와 기어이 새로운 물건으로 탈바꿈시킨다. 그뿐이랴 집안 구석구석에서 사람의 눈길을 받지 못하는 소품들과 옷가지들도 이들 살림꾼의 손에 이끌려 다른 모습으로 태어난다. 이를테면 생을 다한 물건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다.

일산에 사는 김윤경 씨(40세)도 그런 알뜰살림꾼이다. 장롱에서 잠자는 옷을 꺼내 다른 쓰임새로 만들고, 버려진 가구를 다른 용도로 변신시키는 되살림꾼.

집안 곳곳 잠자는 물건을 깨우다
김윤경 씨는 마을에서 알뜰살림꾼으로 알려져 있다. 아파트 재활용장에 버려진 가구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탁월한 눈썰미로 버려졌지만 생명력 있는 물건을 골라낸다. 바느질 솜씨도 꼼꼼해 집안 살림살이에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그의 집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거실 벽에 걸린 사진 게시판이다. 사진 서른 점 이상은 붙일 수 있는 크기다. 이는 김윤경 씨의 남편 솜씨다. 사진 촬영을 즐기는 탓에 보기에 괜찮은 작품들을 걸어 놓을 만한 자리를 찾다가 직접 만든 것이다. 보통 스튜디오에서 찍은 가족사진 한두 개 걸어두는 것과 달리 한 곳에, 그것도 거실 벽 중앙에 넓게 걸려 있는 게 특이했다.

동네에서 주워 온 나무판으로 액자를 짜서 자석을 붙이고 그 위에 종이를 잘라 붙여 만든 것이다. 액자로 집안 여러 곳에 붙이면 지저분하고 멋이 없어 깔끔하게 한다고 아이디어를 냈는데 식구들 모두 만족한다. 김윤경 씨는 무엇보다 비용이 들지 않은 점에 대만족이다.

김윤경 씨는 집안의 되살림 작품들을 직접 안내하며 보여 주었다. 먼저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생각해 만든 벽난로 모양의 장식장을 소개했다. 작은방과 화장실 사이에 놓여 있는 이 가구는 서랍 두 개를 위 아래로 다른 방향으로 맞춰 놓은 것이다. 헌 천으로 만든 옷을 입힌 인형들, 조각 천으로 이어 붙인 양말, 헌 천으로 한 땀, 한 땀 손바느질 흔적이 드러난 작은 트리가 때 이르게 크리스마스 기분을 냈다.

부엌에는 되살림꾼의 작업장이 마련되어 있다. 재봉틀과 바느질 도구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재봉틀은 외할머니의 유품이다. 요즘엔 가볍고 작으면서 쉽게 박음질할 수 있는 재봉기들이 많이 나오지만 그에게는 이만한 훌륭한 게 없다. 그의 작업장은 거창하지 않다. 컴퓨터 책상을 개조해 작업대로 쓰고 있다. 재봉틀 아래 선반에는 그동안 모아 놓은 헌옷과 자투리 천들이 가득하다. 밖으로 보이면 지저분할 수 있어 천으로 커튼을 만들어 달아 놓았다. 궁하면 구하라. 매사 필요한 게 떠오르면 집안 곳곳에 잠자는 물건들을 깨워 필요한 것을 만들어 낸다.

"어릴 때 아버지가 옷을 만들어 입혀 주셨던 기억이 나요. 그 손재주가 나에게 전해진 게 아닌가 해요."

뭔가 만들고 바느질을 하면서 불현듯 떠오른 게 아버지의 기억이다. 자신의 유전자 기원을 찾은 거다. 정작 그의 딸들은 그런 재주가 있는지 잘 모르겠단다. 하지만 엄마의 일을 재미있어 하고 흉내 내고 싶어 한다. 엄마의 작업대가 좋아 보였는지 아이들이 자신들의 작업대도 만들어 달라고 졸라대, 하나 장만했다. 재활용장에서 가져온 침대 헤드와 두꺼운 책 몇 권. 낮은 탁자 위에 두꺼운 책 몇 권 씩 양쪽으로 쌓아 받침대를 만들고 침대 헤드를 그 위에 얹었다. 훌륭한 작업대가 완성되었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그림도 그리고 소꿉장난도 한다.

짧아진 소매에 털 달고, 스타킹은 발목 타이즈로
김윤경 씨의 되살림 진수는 바느질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자투리 천으로 인형 옷을 만들던 솜씨가 알뜰 되살림꾼의 밑천이 되었다. 소파 위 쿠션, 수납장 커튼, 현관문 앞 발판, 가방, 컵받침과 테이블보. 그의 바느질 흔적이 곳곳에서 보였다. 주로 집에서 사용하는 소품들은 헌옷 조각을 이어 붙여 만든다. 특히 남편의 넥타이는 고급 재료다. 손가방이나 컵받침에 많이 들어간다.

아이들 옷은 주로 벼룩시장을 이용해서 구매하지만, 가끔 만들어 주기도 한다. 엄마가 직접 만들어준 옷은 아이들에겐 큰 자랑거리다. 큰딸 한복도 그의 옷을 줄여 만들어 주었다. 기장과 품을 줄여 예쁜 조끼까지 만들어 입혀 보니 오래된 느낌이 전혀 나지 않았다. 한복천 자투리로 모자까지 만들었다. 한 벌을 만들기보다 부분적으로 고쳐준다. 소매가 짧아진 점퍼는 털을 더 달아 줘 소매 길이를 맞추고, 스타킹이 짧아지면 발목을 잘라 리본을 달아 줘 발목 타이즈로 만든다. 이렇게 아이들 옷은 조금씩 손보면 작다고 버리는 일이 줄어든다. 새로운 장식으로 새 기분도 나니 새 옷도 이만하지 못할 것이다.

옷을 되살리는 게 말은 쉽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다. 대개 헌옷을 장롱 구석에 쑤셔 박아 놓고 언젠가 뭔가 만들 것이라는 마음만 가지고 오늘내일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그가 몇 가지 되살림 옷 만들기 요령을 일러 준다.

"천을 잘 모아 놓는 것도 중요해요. 대개 이곳저곳에 너저분하게 늘어놓는데 천 상자를 마련해 잘 개켜 보관하세요."

바느질의 기본이다. 도구와 재료가 작업대 가까이에 잘 정리되어 있어야 뭔가 시작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재봉틀이 없는데 어떻게 일일이 바느질을 할지 막막한 이들도 있다. 그는 "재봉틀은 일을 빨리 할 수 있어서 좋지만, 소품들은 손바느질도 가능하고 재미도 있어요" 하며 손바느질의 재미를 강조한다. 손바느질이 어렵지 않다는 건 식탁 위에 놓여 있는 소매 필통에서 알 수 있었다. 셔츠 소매 끝 부분을 잘라 만든 주머니. 양 끝을 바이어스로 마감하고 단추 있는 쪽을 열개로 사용하는 주머니다. 이것도 손바느질 작품이다.



꿈꾸는 아줌마들의 가게, 꿈마네
되살림 바느질에 더 애착이 간 것은 '되살림 가게'를 시작하면서부터다. '꿈마네'라는 이름의 되살림 가게는 올해 8월에 6명의 아줌마들이 공동출자해 만들었다. 낡고 버려진 것을 필요한 사람들이 나누는 일반 녹색가게와 달리, 다른 곳에서 다른 용도로 쓰이던 옷과 천을 모아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 판매한다.

'꿈꾸는 아줌마들의 가게'의 줄임말인 '꿈마네'는 2009년 겨울에 몇몇 사람들이 만나 '일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꾸리기 시작해, 바느질을 통해 세상과 나를 되살리자고 뜻을 모은 지 1년 반 만에 맺은 결실이다.

김윤경 씨는 '일하는 사람들의 모임' 처음부터 참여하여 꿈마네 공동출자자로 함께 작업하고 있다. 꿈마네 6명의 주인공은 각각 맡은 역할이 있다. 홍보나 대외 활동을 하는 대표, 옷을 걸고 가격을 확인하는 매장 관리, 만들고 팔린 물품을 등록하는 물품 관리, 주문이 들어오면 시안을 만드는 수석 디자이너 등. 김윤경 씨가 맡은 역할은 총무 회계다.

꿈마네에 나가는 날은 주 3일. 그중 하루는 전체회의 날이다. 공동 작업을 하는 곳이라 시간과 일감을 조절할 수 있다. 아이를 돌보고 집안 살림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도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이 그에겐 행운과도 같다.

혼자 꼬물꼬물 뭔가 만들고 만족하는 생활보다 지금 꿈마네 일이 한없이 행복하다는 김윤경 씨. 꿈마네 전과 후가 삶에서 큰 변화의 시점이었다.

"제가 원하는 일을 뜻이 맞는 분들과 함께 일할 수 있어 좋아요. 어떤 공간에서 뭔가 만들고 사람들을 만나는 일, 내가 되살림 운동을 하는 게 행복해요."

제 역할을 다하고 버려진 물건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되살림에 그는 열정을 쏟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재봉틀 앞에 앉아 뭔가를 만들고, 아이들이 잠든 뒤 밤에 혼자 바느질을 하는 시간이 그에겐 무척 소중하다.

그에게 소망이 있다면 자신이 잘하는 바느질로 어딘가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다. 불우한 청소년들과 함께 옷과 물건들을 되살려 생활에 필요한 귀한 물건을 만들어 보는 것. 그들의 부모님과 이웃 어른들에게, 친구들에게 그들의 작품을 보여 주며 자긍심을 갖게 하는 일, 앞으로 그가 꼭 하고 싶은 일이다. 그러한 일들 모두가 그에게는 삶을 되살리고, 세상을 되살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셔츠로 앞치마 만들기

안 입는 면 셔츠는 앞치마의 좋은 재료다. 우선 가볍고 바느질이 쉽다. 오물이 묻어도 표시 나지 않고 잘 구겨지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앞치마를 하나 구하려면 1만5천 원 정도 비용이 드는데 직접 만들면 몇 백 원으로 좋은 앞치마를 하나 장만할 수 있다.



① 먼저 셔츠 뒤판을 옆선과 어깨선, 소매선, 목선 중심으로 자른다(초크로 금을 그어 놓고 하면 더 편하다).

② 왼쪽 옆선에서 아래를 지나 오른쪽 옆선에 이르기까지 두 번 접어 박음질을 한다. 나머지 부분에 바이어스를 대고 박음질을 한다. 옆선으로 바이어스를 길게 늘어뜨려 끈을 만들고, 이어서 목선으로 올라가 목에 거는 고리로 만들고 다시 옆선으로 내려온다.

③ 옆쪽으로 더 두르고 싶으면 옆면에 다른 천을 덧대면 되고, 주머니를 별도로 달 수 있다.


우미숙 님은 한살림에서 조합원 소식지 <좁쌀 세 알>을 만들고 글을 쓰는 일을 해 왔습니다. 현재 한살림성남용인 이사장이며 《살림이야기》 편집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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