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호 2011년 겨울 [특집] 명태, 밥상 위의 바다 / 핵 없는 사회를 위해

[ 개인 실천 ]

핵발전소 막으려면 플러그를 뽑자

김선미

이메일로 온 10월 전기요금고지서를 클릭한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진 탓에 슬슬 전기요금도 올라갈 때라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보기 드물게 3만원도 안 되는 요금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과 비교해보니 8월 3만2천490원 9월 3만600원 10월 2만8천320원으로 점점 요금이 줄어들었다. 쑥쑥 올라가는 아이 성적표를 받아보는 것 마냥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뭘 어떻게 아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나를 칭찬해주고 싶어서 고지서 구석구석을 뒤져보았다. 우리집 전력사용량은 236.0kw. 누진제를 적용하는 요금체계에 따라 처음 1단계 100kw까지는 1kw당 57.3원씩, 2단계 100kw까지는 118.4원 그리고 3단계 36kw는 175.0원씩 계산되었다. 전달보다는 고작 1kw를 더 썼고, 작년 같은 달보다는 무려 32kw를 덜 썼다. 그런데 왜 요금이 이렇게 많이 줄었을까. 나는 지뢰찾기 게임을 하듯, 답이 있을만한 곳을 모두 클릭했다. 전자고지서는 1년 동안의 전기요금과 사용량을 그래프로 분석까지 해주는 등 편리한 기능이 많았다. 에어컨이 없는 우리 집은 12월 전기요금이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을 보니, 전기로 된 보조 난방기구들 때문이라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늘 금액만 확인하고 닫아버리던 고지서 속에 제법 많은 정보들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해답은 엉뚱한 데서 나왔다. TV시청료 2500원이 빠져 있었다. 오랫동안 거실 구석에서 자리만 차지하던 낡은 텔레비전을 지난여름 아예 집안에서 치워 버렸다. 그 뒤로 계속 시청료 안 낼 방법을 찾았지만 담당부서 전화 연결이 어려워 포기하고 있었는데, 지난달 한전에서 먼저 전화가 걸려왔다. 고객정보를 확인하는 직원에게 텔레비전 버렸다는 말 한 마디로 간단히 해결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못 쓰게 된 텔레비전 내다버린 것을 칭찬해야 하나, 이참에 전기요금을 공부한 걸 자랑해야하나.

나는 평소 쓰지 않는 전기플러그를 뽑는 일만큼은 부지런하다. 그다지 부지런하고 알뜰한 사람도 아닌데 전기요금엔 집착을 하는 편이다. 그런데도 여섯 가구가 같은 출입구를 쓰는 빌라 현관 앞 우체통에 전기요금고지서가 꽂히는 날이면 다른 집은 얼마나 나오는지 들여다보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심지어 3년 전 전기압력밥솥을 살 때는 대기전력 문제로 부부싸움까지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밥 짓느라 고생하는 아내를 위한 선물이라며 남편이 예약기능이 있는 밥솥을 덜컥 사버린 게 화근이었다. 나는 2~30분 더 자기 위해 밤새 전기밥솥을 대기시켜 놓는 일은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좀 유난을 떨긴 했다. 그래서 내가 뱉은 말에 책임지려고, 지금까지 예약기능을 무시한 채 새벽에 일어나 밥솥에 코드를 꼽고서, 압력추가 흔들리는 소리가 날 때까지 쪽잠을 더 잔다. 아침마다 전기밥솥 때문에 벌을 서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사실 한번 해 놓은 밥을 서른 시간 넘게 보온시켜 놓을 때면 결국 내가 엉터리라는 게 들통 나면서도 계속 밥통 앞에서 오기를 부리고 있다.

대신 계속 주문을 걸 듯 나를 세뇌시킨다. 전기를 아끼지 않으면 생명이고 평화고 다 소용없는 일이라고! 특히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이후,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저항과 실천이란 생각을 했다. 원자력발전이 위험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전력난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결심이 굳어졌다.

지난 9월 15일 대규모 정전사태로 온 나라가 화들짝 놀랐을 때는, 행여 정부가 전력수급을 핑계로 원전 확대정책을 계속 밀고 가려는 '꼼수'를 부리는 게 아닐까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한전을 찾아가 호통을 쳤다는 대통령은 곧 이은 9월 22일, 유엔 원자력안전고위급회의에 가서 '후쿠시마 사고가 장애가 될 수 없다며 우리나라는 계속 원전을 확대할 것'이라는 연설을 했다. 대체에너지만으로는 전 세계적인 에너지 수요증가와 기후변화 문제를 대응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원자력 활용은 불가피하다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를 들면서.

그러나 2007년 과학잡지 <네이쳐>는 원자력발전에 대해 이렇게 물었다.

"재앙적인 지구온난화를 지금에라도 저지하려 한다면, 무엇 때문에 가장 느리고 가장 비싸며 가장 효과가 떨어지고 가장 유연하지 못한, 아울러 가장 위험하기까지 한 기술을 선택해야 하는가."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가장 가까이 목도하면서도 이렇게 태평할 수 있다니. 무시무시한 위험을 무시한 채 원자력이야말로 여전히 녹색성장의 힘이고, 경제를 살리는 친환경에너지라고 쉬지않고 광고하는 정부가 더 무섭다. 이미 좁은 국토에 21개나 되는 원전을 가동해 핵 발전량 세계 5위를 자랑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2024년까지 원자로 14기를 늘리겠다는 정부다. 한반도가 아무리 일본 열도와 달리 쓰나미와 지진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이라 해도, 우리는 화약고를 안고 사는 분단국가 아닌가. 한반도에 세워진 모든 핵발전소는 언제든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자살용 시한폭탄을 품고 사는 것만 같아 소름이 돋는다.

이렇게 원자력발전이 무섭고 싫은데 어떻게 전기를 태평하게 쓸 수 있을까. 서울의 밤을 휘황찬란하게 밝히기 위해 고리, 월성, 울진, 영광 같은 벽지의 주민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고 생각하면 죄의식마저 느껴진다. 우리는 올가을 블랙아웃 직전까지 갔다는 대규모 정전사태를 겪어보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전기 공급이 끊긴 세상의 공포를 체험하기에는 충분했다. 급기야 11월 민방위의 날에는 정전대비 훈련까지 한다고 했다. 도대체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물 쓰듯 펑펑 전기를 쓰다가 전력이 바닥날 지경이 된 것일까.

역설적이게도 전력소비가 급증한 데는 전기가 남기 시작한 것이 문제였다고 한다. 1980년대 국내 원전 설비가 늘어나면서부터 남아도는 전기 때문에 값싼 심야전력제도를 도입했다. 우리 집은 지난 10년 동안 시골에 있는 단독주택에 사는 동안 치솟는 기름 값에 벌벌 떨면서 도시보다 혹독한 겨울살림을 경험해 보았다. 그때 비싼 돈을 들여 심야전기보일러를 설치한 이웃들은 도시의 아파트마냥 실내온도를 높이고 반팔 차림으로 겨울을 나면서도 한동안 아쉬울 게 없어보였다. 기름 값에 비하면 전기요금이 너무 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값싼 전기 때문에 늘어난 과소비는 금세 전력부족 사태를 낳았다. 어느 순간 심야전기 요금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물론 전력부족 문제가 심야전기난방 탓만은 아닐 것이다. 그 사이 집집마다 초대형 텔레비전과 냉장고, 에어컨 같이 전기를 많이 쓰는 생활용품들이 급속히 늘어났고, 광고를 위해 아파트 외벽까지 야간조명으로 밝히는 등 우리 모두가 에너지과소비사회 만들기에 일조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아무 거리낌 없이 전기를 펑펑 쓰던 사람들 모두가 원전설비를 계속 늘릴 수밖에 없다는 주장에 원인제공자가 된 셈이다. 그러니 이제 집집마다 전기플러그 옆에 '전기를 덜 쓰는 만큼 원자력발전소를 빨리 멈출 수 있습니다'라고 꼬리표라도 달아주고 싶다.

사실 요즘 가스레인지에서 발생하는 유해가스가 주부의 폐암발생을 높인다는 뉴스 때문에 우리 집도 전기레인지로 바꾸어볼까 하고 귀가 솔깃해 있었다. 멀쩡한 가스레인지가 갑자기 내 건강을 갉아먹는 애물단지처럼 보이고 얼른 전기레인지로 바꾸지 않으면 큰 일이 생길 것처럼 불안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후배의 말을 듣고 겨우 평정심을 되찾았다.

"언니! 뭐든 옛날 방식이 훨씬 나아요."

환경책을 만드는 1인출판사 대표인데, 음식물 쓰레기도 지렁이를 키워 처리할 정도로 생활 속에서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는 친구였다. 그는 전기가 가스나 석유, 우라늄 같은 1차 에너지를 써서 만드는 가장 비싼 형태의 에너지원이란 사실을 상기시키며, '가스불로 직접 조리하면 될 것을 굳이 화석연료를 태워 만든 비싼 전기로 음식을 익혀야 할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심지어 설거지를 하고 있는 내 등 뒤에서 수돗물조차 전기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까맣게 잊고 있지 않느냐는 소리에 뜨끔하기까지 했다. 그래, 비싼 돈 들여 전기렌지로 바꾸고 그것만 믿고 환기를 게을리 하면 오히려 더 해로울 거야. 전기요금은 누진제 때문에 더 올라갈 테고…. 나는 새 물건에 대한 욕심을 지그시 눌러버렸다.

스위치만 누르면 모든 게 해결되는 전기용품의 편리함은 종종 달콤한 독이 되기도 한다. 사실 전기요금은 둘째 치고, 한꺼번에 전기밥솥에 밥을 많이 해놓고서 여러 끼니 오래된 밥을 먹어치우는 것도 문제였다. 가스불로 밥을 할 때는 가마솥이나 압력솥으로 갓 지은 밥을 먹었는데 생각해보니 밥상에 소홀해진 이유가 다 전기밥솥 탓인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최근 '아홉 달 동안 전기료 3천700만 원을 절약했다'는 아파트 단지를 소개한 신문기사에서도 전기밥솥을 압력솥으로 바꾸는 사례가 눈길을 끌었다. 지난 10월 15일자 <머니투데이>는 성남시 금호어울림아파트 주민들이 매월 16일이면 '불 끄고 별 보자'는 캠페인까지 벌이는 절전 운동에 대해 소개했다. 저녁 9시면 5분 동안 집안의 불을 모두 끄고서 에너지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데, 같은 층에 사는 모든 가구가 참여하면 부녀회에서 2천 원짜리 작은 선물을 주며 독려한다고 했다. 이 아파트 주민들이 에너지절약운동에 동참하게 된 것은 '7, 8월에 전기요금이 4만 원 나온 집이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자 주부들끼리 비법을 나누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안 쓰는 플러그 뽑아두기나 조명기구 전구 수를 줄이는 잘 알려진 방법부터, '냉장고에 보관하는 식품을 60% 이하로 줄이면 연간 87kWh를 절약하고 신선도 또한 높아진다는 사실, 전기밥솥 대신 압력솥으로 밥을 짓고 보온밥통에 넣어두는 것만으로도 누진제의 요금폭탄을 피할 수 있다'는 소소한 생활의 지혜까지 공유했다고.

물론 주민들뿐만 아니라 관리사무소에서 한전과 공용부문 요금제 계약방식을 보다 저렴한 쪽으로 변경하면서 공동전기료를 크게 아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관리사무소와 입주민이 함께 시스템과 생활방식 모두를 바꾸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이 이웃들을 고무시키지 않았을까. 그것은 3천700만 원이란 돈보다 귀한 선물 아니었을까. 무엇보다 밤에 불을 꺼야만 별이 더 잘 보인다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알려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실천이다. 잠시라도 스위치를 내리고 플러그를 뽑아보면 분명 많은 것이 달라질 테니까.

올 겨울도 전력수급상황이 심각하다는 뉴스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면서 '녹색성장의 힘, 친환경에너지 원자력발전'의 광고도 멈추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원자력발전을 결코 멈출 수 없다고 사람들이 설득당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하지만 체르노빌과 후쿠시마가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되지 않는다고 누가 과연 장담할 수 있을까. 나는 무섭다. 그래서 플러그 하나라도 더 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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