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호 2011년 겨울 [특집] 명태, 밥상 위의 바다 / 핵 없는 사회를 위해

[ 일본 시민사회 대응 ]

산다는 것은 행동하는 것이다

박맹수

지난 10월 15일 오후에 교토 시내 동지사대학에서 열린 '일본 엔트로피학회'의 월례 심포지엄에 참석했다. '일본 엔트로피학회'는 설립 당초부터 일본 시민사회의 '반원전' 및 '탈원전' 운동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해 온 학회로 유명한데, 지난 8월에는《원전 폐로를 향하여》라는 책을 펴내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 시민사회에 거세게 불고 있는 원전 폐쇄운동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기도 했다. 10월 월례 심포지엄에서는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한 방사능 오염 제거 상황>이라는 주제로, 현재 방사능 오염 제거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해 후쿠시마 현지에서 방사능 '제염' 작업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2명의 전문가의 발제와 토론이 이어졌다. 2명의 발제 가운데 특히 주목할 만한 내용은 교토세이카대학의 야마다 쿠니히로 교수가 발제한 <총력전으로 '제염'을 시작합시다 - 방사능 제염 회복 프로젝트의 시도>라는 내용이었다.

야마다 교수는 발표에 앞서 "현재 일본에는 방사능 오염 제거에 관한 전문가가 한 명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일본 정부에서 주도하고 있는 방사능 오염 제거를 위한 지침이나 방책들도 대부분 그 실효성에 의문이 생기나"고 전제하고, 자신이 후쿠시마 현지에서 시도하고 있는 실험적인 '제염' 방법 세 가지를 소개했다. 방사능 오염 가운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세슘 134와 세슘 137'인데, 이것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그 존재 형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하였다. 사람에게 치명적인 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세슘은 기본적으로 1)물에 녹은 상태, 2)유기물에 부착된 상태, 3)암석 성분에 '케이산염' 형태로 결합한 상태 등 세 가지 형태로 존재하며 이 가운데 가장 제거하기 어려운 것이 암석 성분에 결합한 것으로, 후쿠시마에는 지붕의 기와 등에 부착되어 있어 현재 거의 제거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물이나 유기물에 부착되어 있는 세슘은 세 가지 방법으로 제거하고 있다고 한다. 첫째, 그물망과 폴리비닐 알코올(PVA)액을 사용하여 토양의 표층을 벗겨내는 방법. 둘째, 지붕이나 벽 등에 부착되어 있는 세슘을 천과 폴리비닐 알코올(PVA)액을 사용하여 벗겨 내는 방법인데, 현재 벽지 방식의 제염상품을 전문 업자와 공동 개발하고 있다고 했다. 셋째는 초고압 세정, 흡인, 여과를 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이 세 가지 방법 외에도 물에 녹아 있는 세슘 제거를 위해 세슘을 잘 흡수하는 안료가 칠해진 천과 같은 망을 현재 제작 중에 있다고 했다.

야마다 교수는 후쿠시마 사고 수습 과정에서 거의 5개월 이상 방사능 오염 제거에 대해서는 손을 놓고 있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방사능물질이 3만 베크렐 이상 검출돼 오염 제거 대상인 곳은 일본 전국토의 3%에 달하는데, 더욱 심각한 것은 지금도 계속 방사능물질을 배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엄청난 방사능물질이 후쿠시마를 비롯한 동일본 지역 전체를 광범위하게 오염시켰는데도, 원전사고의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도쿄전력이나 일본정부, 그리고 일본 언론 등이 방사능 오염 제거 작업의 중요성을 외치기 시작한 것은 사고가 일어난 지 5개월이 훌쩍 지난 8월부터였다고 한다. 제염 작업이 늦어지면서 방사능 오염에 가장 취약한 어린이들이 대량으로 피폭당할 수밖에 없었고, 둘째 방사능 오염물질이 광범위한 지역으로 확산되게 했으며 제염 방법에 관한 노하우를 축적할 수 없었다는 점을 야마다 교수는 안타까워했다.

원전을 막아내지 못한 시민들의 책임도 막중하다
10월 16일 오후, 교토시 히가시야마구에 있는 마루야마 야외음악당에서 열린 '탈원전 집회'에 참석했다. 이 집회는 2007년부터 해마다 열려 왔는데 올해는 지난 3월에 일어난 후쿠시마 제1원전 폭발사고를 계기로 '탈원전, 어떤 사회를 지향할 것인가'를 주제로 잡았다.

집회에는 지난 9월 6일 도쿄에서 6만 명 이상이 모여 탈원전을 외친 대집회를 이끈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인 르포작가 카마다 씨가 도쿄 집회에 대한 경과보고와 함께 지금 진행하고 있는 탈원전 사회를 위한 1천만 명 서명운동의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이른바 원자력무라(원자력 산업관련 막대한 자금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세력)의 정치가, 관료, 재계와 어용학계 및 언론계 등의 '검은 관계'에 의해 빚어진 참사인 것은 분명하지만,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와 절대로 공존할 수 없는 원전을 막아내지 못한 시민들의 책임도 막중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또한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사회를 바꾸기 위해 일어서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와 있다며 '탈원전을 위한 1천만 명 서명운동'에 참여해줄 것을 호소했다.

카마다 씨의 강연에 이어 재일동포 출신 가수 조박 씨의 노래 공연이 이어졌고 교토시 안팎의 다양한 현장에서 시민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5명의 활동가가 나와 활동 보고도 했다. 첫 번째는 지난 2009년 12월 4일 일본 극우단체인 '재특회(재일동포의 특권을 허락하지 않는 모임)에 의한 교토시 조선제1초급학교 습격사건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에서 활동하는 재일동포 강선화 변호사가 나와 차별과 배외주의에 맞서 싸울 수밖에 없는 재일동포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설명하고 교토 시민들의 지원을 호소했다.

두 번째 활동가는 오사카지역 단위 노조의 연합체인 '오사카 유니온네트워크'의 카키누마 위원장이었다. 그는 '엔고현상'으로 일본기업의 해외 이전이 늘면서 더욱 어려워진 일본 노동자들의 현실과, 그들이 직면한 생계 위협의 실상을 고발했다. 카키누마 위원장에 따르면 현재 일본에서는 최저생계 수준인 연 소득 4백만 엔 이하의 노동자가 4~5백만 명을 이미 넘어섰으며, 그 중에서도 생활보호대상자 수준인 2백만 엔 이하의 노동자도 2백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세 번째 연사는 원전 하청업체 일용노동자들로 조직된 '카마가사키 일용노동조합'의 야마나카 위원장이었다. 그는 원전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피폭노동에 대해 설명했다. 야마나카 위원장은 원전은 대도시에 들어설 리 없으니 그 대신 인구가 적은 지역과 원전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하청업체 일용노동자들이 피폭된다는 것을 전제로 운영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원전 자체가 태생적으로 다른 생명의 희생을 전제로 탄생된 것이고, 원전은 못 생명과는 공존이 불가능한 것이라고 하던 그의 말이 가슴에 남는다.

네 번째 연사는 후쿠시마에서 교토로 피난 와 있으면서 후쿠시마 피난민을 지원하기 위한 '탈원전 티셔츠 프로젝트'의 실무를 맡고 있는 가토 씨였다. 그는 살아남은 가족들도 생이별한 채 생활하거나 후쿠시마의 모든 산업 활동이 궤멸된 상태에서 피난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스러운 일상에 대해 소개하고, 후쿠시마 인근의 방사능 오염 상황을 설명하며 왜 탈원전을 해야 하는지 눈물로 호소했다. 교토시 당국이 공식 집계한 후쿠시마 피난민이 1천 명이 넘으며, '자발적 피난'을 한 사람들까지 합하면 피난민은 5~6천 명에 육박한다고 했다.

마지막 연사는 교토시 가까이에 있는 후쿠이현에서 '후쿠이원전' 반대 및 고속증식로 '몬쥬' 폐쇄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마츠시타 씨였다. 그는 고속증식로 '몬쥬'는 현재 여러 차례 사고 끝에 운전 정지 상태에 있으나, 방사능 누출 등을 방지하기 위해 매일 5천 5백만 엔에 달하는 거액의 관리비를 투입하고 있는 실정이며, 현재 대대적인 탈원전 시민운동을 통해 완전히 폐쇄하기 위해 오는 12월 3일 현지에서 '몬쥬 폐로를 향하여, 전국 집회'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마츠시타 씨는 원래 후쿠이현 중에서도 원전이 밀집되어 있는 비하마쵸의 기초의회 의원 출신으로, 그 지역에서 탈원전과 '몬쥬' 폐로 운동을 앞에서 이끌고 있는 지도자라고 한다. 5명의 현장 활동가들의 보고와 호소에 이어 국회에서 탈원전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사민당의 핫토리 중의원이 국회의 동향에 대해 보고하였는데, 국회의 상황은 거의 비관적이었다.

오후 3시경 이번 집회의 하이라이트인 독일 녹색당 부대표이자 독일 연방의회 의원인 베베르 헤인 씨가 등단했다. 그가 독일에서 녹색당을 중심으로 한 원전 폐지 운동이 성공한 경위에 대해 설명하자 참석자들로부터 열렬한 박수가 터져 나왔다. 헤인 씨는 평범한 주부였던 자신이 탈원전 반대 집회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문제의식을 느껴, 처음에는 지역 주민운동 대표로, 다음은 주를 대표하는 의원으로, 그러고 나서 마침내 연방의회 의원으로까지 활동하게 된 내력을 설명하면서 시민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끝으로 헤인 씨는 지금이야말로 일본사회가 탈원전, 원전 완전 폐지 및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통한 지속가능한 사회 건설을 향해 큰 걸음을 시작해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헤인 씨는 독일이 원전 폐지와 함께 재생 가능한 에너지 개발을 위한 산업이 활성화되면서 원전을 유지할 때보다 6배 이상 새로운 고용이 창출됐다는 소식도 전했다.

소설가로도 유명한 90세의 세토우치 자쿠쵸 여스님께서 등단하셨다. 세토우치 스님을 신문이나 TV 화면 등에서 뵌 적은 있으나 직접 얼굴을 뵙기는 처음이었다. 우선 스님께서는 90이 넘은 노인이 무슨 할 일이 있겠는가 하고 '3·11' 이전에는 거의 외부 출입을 자제하고 있었다고 말씀하시면서, '3·11' 이후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재난 현장에 가서 사람들을 위로하고, 죽은 이들의 천도를 기원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자주 동일본 대지진 현장에 가게 되었다고 하셨다.

스님께서는 평소 일본은 이대로 가면 파멸할 수밖에 없다, 특히 젊은이들의 모습에서 그렇게 느끼고 있었는데, 이번 대지진 현장에 가서 그 생각이 바뀌었다고, 절망에서 희망으로 바뀌었다고 힘주어 말씀했다. 그 이유는 머리에 온갖 색깔로 염색을 한 스물 갓 넘은 여학생, 남학생들이 자원봉사를 위해 재해 현장으로 달려와 하루 종일 불평 없이 묵묵히 쓰레기를 치우고 있는 모습에서 희망을 발견했다고 하셨다. 일본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9월 5일 현재 재해 현장에 자원봉사로 참여한 일본인들이 850만 명이며 그들 대부분이 젊은이들이었다고 한다. 10월 이후에는 아마도 자원봉사자 수가 1천만 명을 훌쩍 뛰어넘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세토우치 스님은 집회 참가자들에게, 그리고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산다는 것은 행동하는 것이다."(生きることは、行動することである.)

그리고 "탈원전을 위한 1천만 명 서명운동에 동참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긍지'"라고 했다. 가슴을 치는 연설을 듣자니 내 가슴 저 깊은 속에서 뜨거운 그 무엇이 솟아오르고 감동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 저 분이 바로 이 땅에 살아계신 부처님이요, 예수님이요, 하늘님이시구나. 나는 오늘 이 아비규환의 일본 땅에서 살아계신 부처님을, 예수님을, 하늘님을 뵙고 있구나" 하는 감동의 눈물이었다.

박맹수 님은 원광대학교 교수이자 모심과살림연구소 연구기획원장입니다. 이 글은 2011년 10월 15일과 16일 이틀에 걸쳐 일본 교토에서 진행된 핵과 방사능 오염 문제, 탈원전 움직임과 관련된 학회 참석 보고서를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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