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호 2011년 겨울 [특집] 명태, 밥상 위의 바다 / 핵 없는 사회를 위해

[ 명태와 민속 ]

부릅뜬 눈이 액을 막아준다고?

전지혜

명태는 우리와 일상생활에 얼마나 밀접할까. 흔히 과음한 다음날 아침이면 해장국으로 '북어국'을 찾고, 즉석 생선국으로는 유일하게 '즉석 북어국'이 슈퍼 진열대에 올라와 있으며, 제사상에 북어가 없는 낯선 광경은 상상하기 힘들다. 또한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관혼상제, 고사, 민간신앙 등에서 우리는 쉽게 명태를 접할 수 있다. 이것은 명태가 즐겨 먹는 음식만이 아니라 우리의 민속과도 중요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부터 우리 민족은 육지 생물로는 돼지를, 바다 생물로는 북어(명태)를 통해 천신과 교감할 수 있다고 믿어 왔다. 그래서 북어는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물로써 제물로 바쳐졌고, 인간의 제액을 대신 받는 액막이 역할을 맡아 왔다. 그 유래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천지신명에게 바치는 신성한 음식은 어느 한군데도 버려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는데 명태야말로 한 부분도 빠짐없이 다 먹을 수 있다. 비린내가 나지 않고 말린 것이 제 모습을 잃지 않는다고 해서 일반 제례나 고사에 올려졌다. 또 머리가 크고 많은 알을 낳는 명태는 사람으로 치면 훌륭한 자손을 많이 두고, 많은 알처럼 부자가 되게 해 달라는 기원을 담을 수 있는 대상도 될 수 있었다.

신에게 바치는 제물의 속성을 간단히 살펴본다면, 유교식 제사상 차림에는 주로 대구포, 북어포 등을 올린다. 대구포가 북어포보다는 정성을 표하는 제물이며, 무속식 상차림에는 통북어가 오른다. 특히 굿상에서 적炙이나 생牲이 상위의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라면 북어는 하위의 신에게 바쳐진다. 이때 통북어는 반드시 눈알이 있는 것을 사용해야 한다. 왜냐하면 항상 눈을 뜨고 있는 물고기는 예부터 어두운 기운을 몰아내는 신성한 존재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이다. 신장개업한 가게에서 고사가 끝나고 나면 제물로 올린 북어를 실타래에 매달아 문 위에 올려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에는 북어의 밝고 큰 눈과 쫙 벌어진 큰 입으로 가게에 들어오는 나쁜 기운을 막고자한 인간의 바람이 담겨 있다. 또 전통가옥을 지을 때 중요한 통과의례인 상량식에도 진설한 북어를 마룻대를 올릴 때 실타래와 함께 묶어 올린다. 항상 눈을 밝게 떠서 수행에 정진하라는 의미가 담긴 사찰의 풍경(風磬)도 그러한 예이며, 전통가구인 괘, 반닫이, 뒤주 등의 자물통을 물고기 모양으로 만든 것도 물고기는 밤낮으로 눈을 감지 않기 때문에 귀중품을 잘 지킨다는 의미가 있다.

명태는 신성한 제물일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닥칠 질병, 불행, 고난 등의 액厄을 미리 막는 액막이 민속에서 대용물로도 사용되는데, 무속에서는 이를 대수대명代壽代命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묏자리를 잡은 후 가묘假墓를 할 때 북어를 묻는 풍습이 있었고, 전염병이 돌 때는 북어 세 마리를 삼줄로 7번 묶어서 상가喪家의 추녀 밑에 묻었다고 한다. 또 새로 구입한 집터에 기가 세다고 하면 몰래 마당에 북어를 묻기도 했다. 인간만이 아니라 나무를 대상으로 한 경우도 있는데, 나무를 벌채할 때 지내는 위령제에는 벌채하는 나무가 쓰러질 때 옆 나무에 해가 되는 것을 막고자 흰 실타래나 한지로 옆 나무에 북어를 매다는 '소지매기'라는 의식이 있다.

현재 강원도 지역에서 전해지는 세시풍속 중에는 정월대보름을 전후해 물가에서 행해지는 어부식魚鳧食이 있다. 흔히 '허수아비 버리기'라고도 하는 '제웅치기' 행사에서 화천 지방은 북어를 사용하고 있다. 즉 정초에 점을 봐서 그 해에 죽을 운이 있는 사람을 위한 액막이 민속으로, 짚으로 허수아비를 만들고 사람이 죽었을 때처럼 묶고 그것에 성명, 생일, 주소를 써서 밖에서 빌면서 태우는 것인데, 화천 지방에서는 오색 천을 묶은 북어가 인간의 대용물로 사용된다. 본래 '제웅치기'의 유래는 한국의 세시풍속을 다룬 《동국세시기》에 나오는데, "나후직성이 되는 사람은 짚으로 추영(방언으로 處容)을 만들어 머릿속에다 동전을 집어넣고 보름날 전날인 14일 밤 초저녁에 길에다 버려 액을 막는다. 이때 아이들은 문 밖으로 나와 추영을 달라고 한다. 그래서 그것을 얻으면 머리 부분을 파헤쳐 다투어 돈만 꺼내고 나머지는 길에 버린다. 이것을 타추희라 한다"고 했다. '나후직성'은 9년마다 돌아오는 나쁜 운을 가진 해로, 이때 짚으로 사람 형상을 만든 것을 '처용'이라고 하였는데, 《삼국유사》에 처용에 관한 설화가 기록되어 있다.

인제군에서도 이와 비슷한 액막이 행위가 있다. 점을 쳐서 좋지 않으면 계란, 동태 등과 당사자의 손톱, 발톱을 깎아 속옷에 싸고 종이에 그 사람의 이름을 써서 함께 넣어 사람이 많이 다니는 사거리에 묻는 것으로, 이것은 나쁜 액을 밟아 없애는 의미를 가진다. 여기서는 건명태인 북어가 아니라 냉동된 동태를 사용한 것이 특이하다. 또 강원도 지역에서 지내는 배고사에는 북어포를 올리고 나서 선원 수대로 북어포를 바다에 던져 액막이로 띄우고 풍어를 기원한다고 한다. 이것 역시 제물로 바친 북어를 인간을 대신할 액막이로 이용한 사례이다.

과거 명태잡이의 본고장인 강원도 고성에서는 해마다 동해 바다 고기의 상징인 명태를 위한 '명태 축제'가 현재까지 열리고 있다. 이때 북어를 제사상에 올려놓고 모시는 '수성제'를 시작으로 나흘 동안 명태 축제가 펼쳐진다. 어부들은 바다와 인간과 명태의 연결고리가 튼튼하고 무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명태가 좀 더 많이 잡히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 밖에도 삼척에선 상갓집에 문상을 다녀와서 살을 맞아 몸이 아프면 종이로 사람 모양을 일곱 장 만들어서 술 일곱 잔과 좁쌀로 지은 밥을 일곱 접시에 나누어 무연고자의 묘에서 무당이 독경을 한다. 이때 그 앞에 환자의 옷으로 북어 한 마리를 싸서 이를 대수대명으로 삼는 사례도 있다.

누구나 한번쯤 보거나 행했을 자동차 고사는 차 앞에 제물(돼지고기, 떡, 과일, 술, 북어 등)을 진설하거나 북어, 소금, 팥 등으로 차체를 두드리거나 바가지, 계란, 북어 등을 바퀴 앞에 놓고 차를 움직여 밟기도 한다. 이때 차 앞에 제물로 북어를 바치는 것은 하늘과 인간의 매개물인 북어의 신성함을 반영한 것이며, 차체를 두드리거나 북어를 밟는 행위는 액막이 행위다. 그 외에도 혼례 때 신부 집에서 함을 들일 때 부정을 가시게 하고자 떡시루나 붉은 천위에 함을 올린 뒤 북어로 함을 두드리기도 했고, 삼재인 사람은 자기가 입던 적삼에 마른 명태 한 마리와 달걀 한 개를 싸서 네거리 길에 버리기도 했다. 그해 신수를 보아 좋지 않으면, 다음날 새벽에 마른 명태에 자기 이름과 생년월일을 쓴 종이를 짚으로 묶어 네거리에 묻거나 버리기도 했다.

제물이나 액막이의 사례뿐만 아니라, 서민에게 친숙한 물고기인 탓에 명태에 관해서는 재미있는 금기와 속담이 많이 남아있다. 우선 명태와 관련된 금기를 몇 가지 소개하자면, 임신 중에 명태 가시를 먹으면 태어날 아기의 팔다리에 혹이 나는데, 임신 사실을 알고 먹으면 부모가 살아있을 때 혹이 나고, 모르고 먹었으면 부모가 죽은 후에 혹이 난다고 한다. 또 임신 중에 명태 대가리를 먹으면 태어날 아기의 손가락에 흠집이 난다고 한다. 어업과 관련해서는, 대가 끊기는 것을 막기 위해 한 배에 부자父子가 함께 승선하지 않는데, 강원도에서는 특히 명태 연승어선에 부자가 절대로 함께 승선하지 않는다고 한다. 낚싯줄을 잡아당길 때 호흡이 잘 맞지 않으면 고기를 놓치게 되므로 부자간의 정의가 손상되는 것을 막고자 한 것이다.

'북어 껍질 오그라들 듯'이라는 속담은 구우면 형편없이 오그라드는 북어 껍질의 성질에 빗대어 재산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표현한 속담이다. 껍질과 관련된 것으로 '이 사람 눈에 명태 껍질 발랐나'는 가까이 있는 물건을 빨리 찾지 못할 때 쓰는 말이다. 명태가 흔한 지방에서는 눈병이 났을 때 안대 대신에 마른 명태 껍질을 물에 적셨다가 눈에 발랐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그 밖에도 '명태 만진 손 씻은 물로 사흘을 국 끓인다'는 몹시 인색한 사람의 행동을 조롱하는 의미로, '명태 한 마리 놓고 딴전 본다'는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른 양면성을 의미하는 속담이다. '동태나 북어나'는 이것이나 저것이나 다 마찬가지라는 의미, '북어 한 마리 부조한 놈이 제사상 엎는다'는 보잘것없는 것을 주고 큰 손해를 끼친다는 의미, '북어 뜯고 손가락 빤다'는 크게 이득도 없는 일을 하고 나서 아쉬워하는 모양을 비웃는 속담이다. '명태 대가리 하나는 놀랍지 않아도 괭이 소위가 괘씸하다'는 입은 손해보다도 그 저지른 짓이 밉다는 말, '식은 밥이 밥일런가, 명태 반찬이 반찬일런가'는 음식 대접이 좋지 않은 것을 타박하는 의미의 속담인데, 그만큼 명태가 흔한 음식이었고 서민들에게 친숙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신에게 바치는 제물과 액막이라는 주술적인 관념에 명태(북어)를 사용했을까. 전통사회에서 다산과 풍요는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신성함의 상징이었고, 그러한 신성함이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동시에 인간의 액을 막아 줄 수 있는 주술적인 의미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결국 서민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물고기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고, 동시에 서민들이 스스로를 위해 부여했던 또 다른 의미가 아닐까 한다. 하루하루가 급히 변하는 현대를 사는 우리지만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액을 피하고 안녕을 바라는 마음은 과거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그 까닭에 명태는 음식으로써만이 아닌 천신과 교감하고 인간이 받을 불행을 대신하는 주술적인 의미를 부여받은 신성한 존재로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게 되었다.

글을 쓴 전지혜 님은 부경대학교 사학과에서 한국석탑 박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해양 환경과 명태>를 공동집필했으며, 국립민속박물관에서 편찬하고 있는 민속 사전에 글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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