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호 2011년 겨울 살림,살림

[ 길을 묻다·길을 가다 ]

우린 모두 40억 살, 온생명의 주인

김선미

지난 11월 초 서울 월계동 한 아파트 앞 이면도로에서 평균치보다 20배 높은 방사능이 검출된 것을 신고한 것은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키고 싶은 엄마들의 자발적인 모임이었다. 뉴스를 보고 부끄러움이 앞섰다. 나는 내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망연자실 불안에 떨고만 있었다는 자책 때문이다. 그러면서 우리 집 앞 도로도 새로 아스콘 포장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괜찮을까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 시커먼 아스팔트 위로 속절없이 노란 은행잎만 수북이 쌓이던 날, 충남 아산으로 길을 나섰다. '후쿠시마 이후' 공포의 시간을 과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물으러 간다.

가는 길은 KTX 순방향 좌석에 앉았다. 열차가 낼 수 있는 최고속도는 시속 305km다. 빠르게 사라져버리는 창밖 풍경에 눈길 둘 곳이 없다. 목적지까지는 30여 분, 깜빡 졸다간 하차할 곳을 놓쳐버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스르르 눈이 감겼다. 눈을 뜨니 천안아산역 가까이였다. 정말 눈 깜빡할 사이다. 하지만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KTX보다 빠른 물체에 타고 있다. 우리 모두가 초속 30km로 태양 주위를 달리는 지구의 승객이니까. 하지만 지구는 지금까지 돈 한 푼 달란 말이 없다. 대신 지구 위 좁은 반도의 한 구석을 달리는 열차는 초고속이란 이름으로 꾀 비싼 요금을 받았다. 고작 1초에 85m를 달리면서 말이다. 차창 밖으로는 가을 햇살이 달아나고 있었다. 그 빛은 1초에 30만km를 달린다. 역시 아무 대가를 요구하지 않으면서.

우리는 태양 에너지만으로도 살 수 있다
밤새 장회익 선생의 자서전 《공부도둑》을 읽으면서 그의 인생에서 아인슈타인과 교감하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읽었다. 사실 물리학자가 아인슈타인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면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는 청주공고 2학년이던 1955년 봄날, 교정에 흘러나온 방송으로 아인슈타인의 작고 소식을 듣던 순간의 생생한 기억으로부터 두 사람 사이 공명이 시작되었다고 믿는다. 훗날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루이지애나 주립대학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을 때도, 학문적 계보로나 성향 모두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증조부 격이라 생각했다. 아인슈타인은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혼자서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했다. 어린 시절 전기기사인 삼촌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대학진학 전에는 실업학교를 다녔다. 소년 장회익은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꼴을 베러 다니며 혼자 공부를 했고, 토목기사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수학과 물리학에 관심을 가졌으며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가 뒤에 물리학자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공통점보다는 과학자의 책임과 역할을 강조하는 그들의 내면이 가장 닮아보였다.

나는 《공부도둑》때문에 이십여 년 전쯤 재미있게 읽었던, 사또 후미다까의 《아인쉬타인이 생각한 세계》도 다시 꺼내 보고, 물리학을 좋아했던 여고생 시절로 시간여행도 떠나볼 수 있었다. 막막한 우주의 힘과 질서가 궁금했던 소녀가 마흔이 넘어 노 물리학자에게 세상의 길을 물으러 가게 될 줄이야. 그런데 그의 나이는 40억 살이라고 했다.

"나는 한 개체로서 10년, 20년 혹은 60년, 70년 전에 출생한 그 누구누구가 아니라 이미 40억 년 전에 태어나 수많은 경험을 쌓으며 살아온 온생명의 주체이다. 내 몸의 생리 하나하나, 내 심성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모두 이 40억 년 경험의 소산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내 진정한 나이는 몇십 년이 아니라 장장 40억 년 이며, 내 남은 수명 또한 몇 년 혹은 몇십 년이 아니라 적어도 몇십억 년이 된다." - 온생명 녹색사상가 장회익의 70년 공부인생 이야기 《공부도둑》 중에서



40억 살의 노인은 아내와 함께 충남 아산 신도시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아내도 자신의 나이를 40억 살이라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역시 물리학자다. KTX 역에서 내려 미래도시처럼 잘 정비된 공원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20여 분 거리에 그의 집이 있었다. 사진기자의 짐이 무거울 테니 차로 마중을 나오겠다는 것을 만류하고 굳이 걸어서 갔다. 그가 늘 오가는 방식 그대로의 길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15층짜리 아파트의 꼭대기 층, 거실에 다락이 있는 복층구조의 집에는 물리학 박사 부부답게 책들로 가득 차 있다. 물리란 모든 사물의 이치를 밝히는 학문이니 아내와 남편의 평생 공부가 담긴 책들이 얼마나 방대한 영역에 걸쳐 있을지 짐작조차 어렵다. 아니 사실은 무엇을 어떻게 물어야할 지가 더 어려웠다.

"살림하는 사람들이 물리학 하는 사람에게 무엇이 궁금할까, 나도 상당히 의외였어요."

선생이 허허 웃으며 건넨 첫인사다. 똑같이 물리학를 연구하고 가르치면서 집안 살림까지 해왔을 아내의 생각은 어떨까, 궁금했지만 물을 기회는 없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물리학자인 모혜정 선생은 차와 정갈하게 깎은 과일을 내어줄 뿐,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일절 남편의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

"나는 사실 강연 같은 거 하면 손해 보는 게 많아요. 이 사람 물리학자다 그러면 사람들이 잘 안 와, 어려울 거다 못 알아들을 거다 생각해서 청중이 많지 않거든."

선생은, 72세 생일에 사진기자를 향해 혀를 쭉 내밀었던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사진 속 표정만큼이나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후쿠시마 사태를 바라보는 물리학자의 생각부터 물었다. 마치 핵폭탄과 핵발전 원리를 밝힌 아인슈타인과 물리학에 원죄가 있는 것처럼. 때마침 월계동 방사능오염 현장을 방문한 새 서울시장의 행보가 뉴스로 떠오른 날이었다. 선생은 대답 대신 월계동 방사능 수치가 어떻게 알려지게 되었는지 궁금하다며 내게 먼저 물었다. 엄마들이 직접 방사능측정기를 구입해 주변 구석구석을 감시하다가 알려진 일이라고 하자, 놀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장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핵발전은 처음부터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어요. 근본적으로 방사능하고 생명체는 상극이니까요."

그는 방사능 에너지가 워낙 강력하기 때문에 생명의 구성요소들을 근본적으로 파괴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가시광선이나 적외선(자외선도 좀 위험하긴 하지만) 같은 에너지에는 신체가 오랜 세월 적응을 하며 진화해왔지만 방사능은 전혀 다른 성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생명체는 방사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방사능 아니어도 우린 살 수 있잖아요. 본래 모두가 태양 에너지만 가지고 살았어요. 요즘은 태양 에너지로 발전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생명체는 녹색 식물이 가진 태양을 먹고서 근육의 힘을 길러 3~40억 년을 살아온 거잖아요."

40억 년을 신체 에너지만으로 인류가 버텨왔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게 들렸다. 그는 '인류 문명이 만든 최초의 불이란 것도 결국 나무에 저장된 태양 에너지다. 그렇게 30만 년 가까이 우리는 태양의 힘만으로 살아왔고, 석유를 쓴 것도 고작 1~200년 일'이라는 사실까지 차근차근 되짚어 주었다.

"사실 땅속 화석 에너지까지 꺼내 쓰는 것도 상당히 무리한 건데…. 이제 핵에너지까지 쓰겠다는 것은 과잉이고 오만이지. 체르노빌 때는 공산주의 국가니까 관리를 제대로 못했으려니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일본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잖아요. 설령 터지지 않았다고 해도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되는 거였어요."

그는 인간의 주의력이라는 게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했다. 우리의 신경이 진화과정에서 감당할 수 있는 주의력을 키운 게 고작 발을 헛디뎠을 때 조심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런데 원자력은 인간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주의력을 요구한다고. 더구나 핵발전소는 사용하는 동안만 관리하는 게 아니고 몇 천 년 아니 몇 만 년을 계속 관리해야 하는데, 우리 후대에는 아무 이득도 없으면서 관리만 해야 하는 상황이 닥쳐온다는 사실, 그것이 물리학자가 지적하는 핵발전소의 본질이다. 결국 우리가 아이들의 미래까지 흥청망청 써버리고는 후손들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위에 올려놓았다는 소리 아닌가.

과학이 가져다주는 심오한 메시지에 귀 기울이자
'질량과 에너지는 동등하다(E=mc²)'는 현대물리학의 발견은 질량을 가진 모든 물질이 거대한 에너지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에 눈 뜨게 했다. 1g의 물질을 100% 에너지로 바꿀 수 있다면 0℃의 물 1만 톤을 100℃까지 끓일 수 있는 엄청난 힘이라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인간이 석유나 석탄에서 뽑아 쓸 수 있는 에너지는 질량의 1억분의 1도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반면 원자력은 1천분의 1이나 1만분의 1까지 에너지가 되니 그 파괴력도 어마어마한 것이다. 그 원리에서 핵폭탄과 핵발전소가 태어났다. 상대성이론으로 그 힘의 비밀을 알려준 이, 누구보다 그 힘을 잘 이해했던 아인슈타인이 왜 반핵평화운동에 앞장 설 수밖에 없었을지 짐작해본다.

장회익 선생은 물리학만의 책임은 아니라고 했다. 원칙적으로는 안다는 것은 죄가 없는데, 그것을 활용하는 데 잘못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분자생물학자이자 과학사상가인 자크 모노가 《우연과 필연》이라는 책에서 "현대사회는 과학이 가져다주는 부와 힘만 즐기면서 과학이 가져다주는 심오한 메시지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했던 말을 들려주었다. 우리가 어떤 존재이고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하는, 정작 의미 있는 메시지에 대해서는 세상이 온통 귀를 막고 있다는 뜻이다.

그는 그 해답을 찾다가 '온생명'을 만났다. 물리학 공부가 깊어지면서 자연스레 생명이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명의 신비는 '생명체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생명체 밖에서 온다'는 사실이 그가 찾은 답이었다. 그러므로 낱낱의 생명체 밖에 그것이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보생명'이 있고, '낱생명'과 보생명이 결합해 더는 외부 도움 없이도 생명활동을 지탱할 수 있는 단위가 ‘온생명’이라고 정의했다. 지구에 사는 낱생명인 우리들에게는 태양과 한 덩어리인 지구 전체가 하나의 온생명이다. 그가 자신의 나이를 40억 살이라고 한 것도 태양의 힘으로 살아가는 지구의 낱생명들이 온생명과 동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온생명이 어떤 존재고 어떤 위험에 놓여있는가는 과학 하는 사람들이 정직하게만 들여다보면 누구나 읽을 수 있어요. 그런데 지금 그걸 무시하고 있지요. 이대로 가면 모두가 죽는다는 걸 모르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역설적이게도 지금 우리가 처한 환경 문제들이 오히려 고마운 것이라고 했다. 공해를 통해 비로소 온생명이 병들었다는 사실을 자각하도록, 몸이 아프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오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지 않은 사람, 통증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가장 심각한 상황이라고 했다.

“지금 우리 앞에 닥친 문제들이 모두 우리에게 주는 온생명의 경고라고 생각하면 고마워해야지요. 그러니 원인을 바로 알고 본질적인 처방을 위해 모두가 노력해야 해요.”

그것이 온생명 안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이다.

문득 그가 찾은 과학의 메시지와 종교의 메시지에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궁금했다. 그는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했고, 아내와도 고등학교 시절 청주의 한 교회 남학생회 회장과 여학생회 회장으로 처음 만난 사이라고 읽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을 글자 그대로만 믿으라고 강요만 하는 것은 과학의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래도록 교회 울타리를 벗어나 있었다.

"요즘은 교회 안에도 비록 소수지만 생각이 열려 있고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흐름들이 있어요. 지금은 그런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래로 50년 동안 정식 교회에 소속된 적이 없었던 그는, 최근 2년째 천안의 한 교회에 나가고 있다고 했다.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역할을 함께 모색하는 사람들과 만났다고 했다.

"예수님은 뭐냐, 자신이 온생명인 것을 느끼고 가신 사람이구나, 이렇게 이해하니 모든 게 풀렸어요. 결국 자신이 온생명임을 자각하고 인간이 온생명 안에서 온생명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가르치신 분이죠. 그것을 자신의 낱생명을 희생해서 가르쳤지요."

그는 다른 생명체도 내 몸의 일부라는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평화는 저절로 온다고 했다. 그것이 모든 종교의 참된 가르침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이 역시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마음이 행하는 일이 항상 일치하지만은 않는다고 고백했다.

"그래도 나를 낱생명으로만 이해할 때와는 많이 달라요. 내가 온생명이란 생각을 하면 나 혼자 조금 편하자고 환경을 해치고 다른 물건에 해를 끼치는 일이 편치 않거든요."

예전에는 개인의 삶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살아왔지만 지금은 내가 '온생명 안에서 잠깐 동안 활동하다 다시 온생명의 일부로 남게 되는 존재'라는 생각 때문에 인생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 기간 동안 온생명을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다면 더없이 행복하지 않겠냐고 내게 묻기까지 했다.

"그래서인지 산다는 문제가 그렇게 걱정스럽지도 않아요. 이젠 나이 들어 기력이 자꾸 떨어지니까 조금 있으면 내가 쉬게 되는구나 싶고, 그 때까지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게 고마울 뿐이죠."

이런 말을 하는 동안 그는 정말 행복한 표정이었다. 피부도 칠순을 넘긴 사람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맑고 깨끗했다. 온생명인 자신을 자각하고 사랑하는 힘이란 과연 저런 것일까. 그는 그저 나이에 비해 비교적 건강이 좋은 편이라고만 했다.

"공부가 하고 싶어서 공부하면 저절로 공부가 되고, 몸을 움직이고 싶어 움직이면 이게 건강에 좋은 거야. 억지로 하면 얼마나 불행해요. 지칠 때는 뭐든 그만 하는 게 좋아요."

건강과 행복의 비결 모두 하고 싶은 일을 그냥 지금 하면 되는 것이라고 했다. 누구나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단순한 그것, 결국 현명한 사람은 무엇을 아는 게 아니라 아는 대로 행하는 이겠지.

창밖으로 온생명의 중심인 태양이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해거름이 다 되어서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선생 부부의 산책 시간이었다. 아파트 단지 앞 야트막한 산 둘레길에 황토를 깔아 놓은 산책로를 따라 맨발로 40여 분을 매일 함께 걷는다고 했다. 비가 온 뒤에 축축해진 황톳길 위에 올라서자 신발과 양말 속에 갇혀 있던 두 사람의 발바닥이 좋아라 웃는 것 같았다. 맨발로 흙을 밟으며 부부는 황혼의 숲으로 들어갔고, 나는 신발도 양말도 벗지 못한 채 검은 아스팔트 위로 걸어 나갔다.

서울로 돌아오는 KTX 좌석은 역방향이었다. 속도를 등지고 앉으니, 눈앞에서 사라져가는 풍경들을 좀 더 오래 바라볼 수 있었다. 천천히 가더라도 주변에 오래 눈길 던질 수 있다면, 그것이 온생명을 이해하는 길에 가까울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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