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호 2011년 겨울 살림,살림

[ 식담 ]

나만의 레시피로 속이 꽉 찬 한 그릇 밥

문성희

봄, 여름 가을 겨울… 봄, 여름, 가을, 겨울… 봄, 여름, 가을 ,겨울….

순식간에 모든 것이 지나가는 느낌이네요. 아무리 붙잡으려 해도 붙잡을 수 없고, 아무리 머물려고 해도 머물 수 없는 떠밀림이 아니 되려면, 시간의 흐름을 즐길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이 세상 모든 것이 머물지 아니함을 배우면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지나가는 것임을 알고 그저 기다려 볼 뿐입니다. 지난여름 북인도 지방을 여행할 때 만난 95세 요기 할머니는 "시간으로부터 배우라. 시간은 기다리지 않는다. 그저 앞으로 갈뿐이다, 지나간 것, 다가올 것에 마음을 두지 말고, 지금 당장 할일을 하라"고 했어요

'어느새 한해가 기울고 있는 가운데서도, 하루하루 바쁘게 살고 있는데. 변한 것이 없이 보여도 지나 보면 변해 있는 자신과 환경들을 바라봅니다. 이왕 변할 거라면 좋게 변하고 더 나아졌으면 좋겠네요. 이런 변화 속에서도 생명이 다할 때까지 멈추지 않는 게 있다면 밥 먹기와 숨 쉬기, 잠자기와 똥 싸기예요. 어쨌든 이중에서 제일 사실적으로 와 닿는 것이 '밥'입니다. 이 한 그릇의 밥 때문에 싸움이 늘 끊이지 않습니다. 밥은 내 몸이고, 내 영혼을 담는 그릇이며, 내 생명의 줄입니다. 그래서 밥줄, 생명줄이란 말이 있지요.

겨울엔 이것저것 반찬 없이도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이면 외롭고 가난한 이의 몸과 마음을 충분히 녹이기도 합니다. 먹고 사는 일이 복잡한 것 같아 보이지만 단순하게 한 그릇의 밥으로 속을 채우다보면 의외로 '사는 것이 뭐 대단하게 아니네. 간단하네'라는 생각이 절로 들기도 해요. 그렇게 가볍고 투명한 삶의 묘미를 느낄 즈음엔 점점 더 가볍게 밥상을 차리고 싶어져요. 일과 삶과 놀이가 다른 것이 아니 될 때 비로소 '인생이란 좋은 거네' 싶어서요. '삶을 즐기려고 이 세상에 온 것이지, 괴롭고 힘들게 살려고 온 것은 아니잖아' 자주 이런 생각이 들어요. 삶을 즐기려면 무엇이든 가벼워지는 게 좋을 것 같거든요. 사실 늘 밥상을 차려야 하는 밥상지기에게는 밥상 차리는 일이 간단한 일로 여겨지지는 않지만요. 밥상을 가지고 놀 수 있을 때쯤이 되면 '인생이 재미있는 거구나'란 생각이 들더랍니다.

이번 겨울엔 가벼우면서도 실하고, 간단해도 속이 꽉 찬 한 그릇 밥을 만들어 보세요. 꼭 '어떤 재료가 있어야 되겠지'라고 생각하지 말고 있는 것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만들어 보는 게 좋아요. 정해진 레시피라는 건 사실 믿을게 못 돼요. 재료에 따라, 화력에 따라, 양념에 따라서 다 다르거든요 자꾸 해보면 자기만의 답을 가지고 자기만의 레시피가 생기게 됩니다. 요즘 나는 내가 만든 게 제일 맛있어요. 내 입맛에 맞기 때문이지요. 내 몸에도 편하고요. 여기 제안한 레시피를 참고로 가벼운 한 그릇 밥 만들기를 잘 익혀 보세요.
 

들깨소스채소덮밥
재료: 단호박 1/4개. 두부2/3모, 브로콜리 1/3개, 빨강 파프리카 1/2개, 표고버섯 2개
생들깨 수북이 4큰술, 간장 1큰술, 된장 2큰술, 조청 1큰술, 물2컵, 오곡가루 4큰술(감자가루도 좋다), 현미유 2큰술
만들기: 1.단호박은 얇게 저미고, 두부는 도톰하게 썰고 나머지 재료도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2. 팬에 현미유를 두르고, 두부를 노릇하게 지져 둔 다음, 나머지 재료들을 볶아서 맨 마지막에 구워 둔 두부를 넣고 물을 부은 다음 준비해둔 양념을 넣는다.
3. 재료에 맛이 배이면 오곡가루나 감자가루를 풀어 넣고 걸쭉해지면 들깨를 넣어서 밥 옆에 끼얹어 낸다.

잡채밥
재료: 당면 300gm 느타리버섯 8개. 미나리 2줄기, 양배추 1/8개, 파프리카 1/2개 목이버섯 6개 현미유 2큰술, 간장 4큰술, 원당 6큰술. 물2컵, 감자가루2~3큰술
만들기: 1. 당면은 뜨거운 물에 삶아 건진다.
2. 느타리버섯은 찢고 양배추는 가늘게 채 썰고 파프리카와 목이버섯도 썰어 둔다.
3. 프라이팬에 현미유를 두르고 재료들을 볶다가 물과 간장, 원당을 넣어서 간을 맞춘다.
4. 3에 감자가루를 풀어 넣어서 걸쭉해지면 밥과 함께 낸다.
 

무구기자밥
재료: 쌀 3컵, 무 1/2개, 구기자 2큰술. 참송이버섯 6개
만들기: 무를 채 썰어서 쌀 위에 얹고 구기자를 넣어 밥물을 본 다음 밥을 지어 낸다.
tip: 양념장을 곁들이면 좋다. 특히 가을이나 겨울엔 무가 달고 맛있어서 먹기 좋다.



 

콩물국밥
재료: 메주콩 2컵, 배춧잎 3~4장, 양송이버섯 8개, 생콩가루 수북이 4큰술 소금 1큰술, 약초맛물 4컵
만들기: 1. 메주콩은 하룻밤 동안 불려서 믹서에 간다.
2. 배추와 버섯을 썰어서 생콩가루로 옷을 입힌다.
3. 끓는 약초 맛물에 넣고 준비한 메주콩을 넣어서 중불에서 서서히 익힌다.
4. 소금으로 간을 하여서 밥 위에 부어서 낸다.

tip. 너무 센 불에 끓이면 콩이 흩어져서 부드러운 맛이 덜하니까 주의 하고, 뜨끈한 콩물 국밥은 추운 겨울 몸을 덥히는 데 아주 좋다.



* 그동안 연재했던 이 지면을 이번 겨울 호로 마감하게 되어 섭섭한 인사드립니다. 한해를 잘 보내시고 새해엔 더 좋게, 좋게 변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새해엔 더 건강해지시기를 기원합니다.

문성희 님은 이십여 년 동안 요리학원 원장으로 지내며 각종 매체의 주목을 받는 유명 요리사였습니다. 하지만 가장 훌륭한 요리는 재료가 가진 본래의 생명력과 색깔과 모양을 살리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요리학원을 그만두었습니다. 현재 '평화가 깃든 밥상(cafe.daum.net/tableofpeace)'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쉽고 소박한 자연요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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