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호 2011년 겨울 편집자의글

[ 《살림이야기》가 드리는 글 ]

시장, 욕망, 행복

김성희

"요즘 노후 자금이 얼마 드는지 알아? 4억7천이래… 젊었을 때 대비해야지…"
"그렇게 많이 왜 필요해? 우리처럼 살면 큰 돈 없이도 살 수 있어… 오늘 하루 잘 살면 그걸로 된 거야."


몇 년 전에 본 영화 〈행복〉에서의 한 장면입니다. 도시에서 클럽을 운영하며 부나비처럼 살던 남자가 병에 걸려 산속 요양원에 가게 됩니다. 그곳에는 도시와 다른 일상이 있었습니다. 단순한 일과와 무공해 음식. 선량하고 다정한 사람들. 남자는 약한 몸 때문에 원래 그곳에서 살던 무공해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여자는 지극정성 남자를 간호합니다. 그러나 꿈같은 행복도 잠시. 남자는 권태를 느끼고 다시 도시를 기웃거립니다. '인간이 욕망과 권태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가는 존재'라던 야스퍼스의 말이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그 무렵 신문을 보던 남자가 여자에게 짜증스럽게 노후에 4억7천만 원이 필요하다는 기사를 들이밉니다. 신문기자들이 무엇을 근거로 노후에 '행복'하려면 적어도 4억7천만 원이 필요하다고 썼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마음껏 먹고, 좋은 차를 타고 요양원을 이용하고…, 아마도 이런 항목들을 포함시켜 80세 넘게까지 산다는 것을 전제로 했겠지요. 그렇게 하면 과연 늙어서 행복할 수 있을까.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우리사회는 도덕성이나 과거 전력 불문하고 '경제를 살리고', '뉴타운을 개발해주겠다'는 후보를 선택했습니다. 4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습니다.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나라 경제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고 개인들의 삶은 오히려 더욱 고달퍼졌습니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11년 3분기 가계 동향에 따르면 하위 20% 저소득층의 엥겔계수는 22.8%로 7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100만 원을 벌면 먹는 데만 23만 원가량을 쓰고 나머지는 다 줄여가고 있지만 물가가 급등했기 때문에 밥상의 질은 훨씬 더 낮아졌다고 합니다.

정부는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 비준안을 강제로라도 처리 하겠다고 합니다. 이번 호 편집 마감을 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긴장이 팽팽합니다. 법률안 날치기는 몰라도 외국과의 비준안을 날치기한 예는 없다고 합니다. 이번에도 내세우는 명분은 '더 잘사는 나라를 위해서'입니다. 《살림이야기》가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하는 것은, 협상과정의 불합리성, 협상안이 국민 다수의 행복을 침해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내다 팔 수 없는 것,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도태시키고 시장을 통합해 더 많은 교역을 추구하고 더 많이 소비 하는 삶을 추구하겠다는 전제 자체를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살림이야기》가 이번 호에 주목한 내용은 우리바다에서 사라진 명태입니다. 명태가 사라진 것은 치어를 남획한 탓도 있고 기후변화로 바닷물 온도가 올라간 때문이기도 하답니다. 어떤 이유든 우리 세대의 과다한 소비와 자원낭비가 지구생태계를 교란한 때문인 것은 분명합니다. 원자력발전에 대한 기획기사는 이번호에도 이어갑니다. 핵발전은 우리세대가 흥청망청 써버린 대가를 후손들이 핵폐기물 위에서 치르게 하는 일이라는 발언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석가모니는 '룸비니 설산을 두 배로 늘려 황금으로 바꾼들 단 한 사람의 욕망도 채울 수 없다'고 했습니다. 더 많은 돈이 더 많은 행복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 노후의 행복도 4억7천만 원이 아니라 절제와 균형을 통해 도달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을 이제 많은 사람들이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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