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호 2011년 겨울 살림,살림

[ 제철살림 ]

하루 한 가지씩 콩요리

장영란



 친정 엄마가 오셨다. 올해 87세에 거동이 불편하고 귀를 먹어 이쪽에서무슨 말을 하면 눈치로 때려 잡거나 아니면 엉뚱한 소리만 해대는 노할머니다. 오줌을 누시면 요강에는 물론이고, 옷에도 묻히고 방바닥에도 흘리신다. 늙는다는 게 뭔지, 내 노후를 생각하게 한다. 그 노할머니한테 꼬박 시간 맞춰 하루 세끼 차려드리는 일이 보통일이 아니다. 엄마가 오시기 전에 내가 심심하다 외롭다 투정을 하곤 했는데, 지금은 쑥 들어갔다. 하루가 얼마나 꽉 차여 돌아가는지……. 
 

우리 집에 오시고 얼마 안 되어 대상포진에 걸리셨다. 병원에서는 항바이러스제를 이기려면 잘 드셔야 한다는데. 뭐를 해 드리나? 그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게 ‘콩’이다. 그동안 하루 한 가지씩 콩 요리를 해먹자고 마음먹고 잘 지키지 못했는데……. 이제 하루 한 가지씩, 아니 할 수 있다면 끼니마다, 콩 요리를 해 먹어야 하리라. 콩으로 할 수 있는 요리가 뭐가 있는지 한데 모으는 자리로 이번 원고를 정리했다..  

콩밥

풋콩밥
하루를 누워 자고, 끼니 때 밥 먹고 약 먹고. 그런 할머니가 할 수 있는 소일거리가 바로 풋콩 까기. 강낭콩을 한 바구니 따다 안겨드리면 한참을 앉아 콩을 까셨다. 도시에 가면 버스 정거장에 좌판을 벌이고 앉으신 할머니들이 있다. 손님을 기다리며 풋콩을 까서 한 보시기씩 되어 파는 모습이 떠오른다. 이 할매들이 돌아가시면 과연 우리나라에 풋콩이 남아있을까? 자라는 아이들이 풋콩 넣은 밥맛을 알까? 

쥐눈이콩밥
밥에 놔 먹는 콩으로 서리태를 최고로 치지만 서리태는 까만 껍질 속에 푸른 콩알이 들어 있어 찬 기운이 많다. 꿩 대신 닭이라고 쥐눈이콩을 놔 먹어 보니 알이 잘아 밥을 씹을 때 이물감이 적어 먹기 좋다. 알이 잘아 불리지 않고 밥에 안쳐도 괜찮다.   


녹두밥
콩 가운데 가장 알이 잔 콩이 녹두다. 녹두는 해독 능력이 뛰어나다.특히 녹두로 죽을 끓여 먹는 게 해독 작용에 좋다. 이 녹두로 밥을 지어 먹을 수 있다. 녹두를 몇 시간 미리 물에 불렸다가 밥할 때 놓으면 밥이 향기롭다. 녹두알이 쌀알 크기여서 씹을 때 이물감이 전혀 없어 콩밥을 싫어하는 이들도 잘 먹을 수 있다. 약성이 강한 대신 자주 먹는 건 안 좋다.


콩 반찬

중요 팁
1. 콩은 요오드성분이 있는 해조류와 함께 먹으면 좋다. 다시마를 미리 작은 조각으로 잘라 놓고, 콩 요리할 때 꼭 다시마 몇 조각을 넣는다.
2. 콩 요리는 날 땅콩이나 호두, 잣, 참깨 같은 견과류를 섞어서 하면 더 고소해지고, 맛도 부드러워진다. 또 콩단백과 더불어 천연 지방이 들어가니 영양도 완전해진다.

콩비지와 콩국
날콩을 하룻밤 물에 불렸다가 믹서에 갈아 끓인다. 두부를 짜내고 남은 찌끼인 비지와 달리 콩을 통째로 먹을 수 있는 요리다. 다시마와 함께 물에 불렸다가 함께 간다. 갈 때 잣이나 참깨를 조금 섞는다. 나는 콩비지는 되도록 콩물만 되직하게 끓이는 걸 즐기지만 가끔 양파나 잔 멸치, 봄에는 쑥을 넣어 변화를 준다. 콩비지는 요리할 때 간을 하지 않고, 먹을 때 양념장을 맛있게 만들어 곁들여 먹는다. 겨울엔 콩비지라면 여름에는 콩국이다. 콩비지는 되직하게 한다면 콩국은 좀 묽게 하고, 소금 간을 한다. 

두유와 순두부 그리고 콩전
콩비지나 콩국. 둘 다 콩을 껍질째 갈아서 만들다 보니 거친 구석이 있다. 몸이 가끔은 조금 더 부드러운 두유를 달라고 할 때가 있다. 두유를 만들어 먹으면 몸이 기뻐하는 걸 느낄 수 있다. 
콩을 다시마와 함께 하룻밤 불리고 잣을 넣고 곱게 간 뒤, 베보자기에 꼭 짜 콩물을 받는다. 끓여서 뜨거울 때 짜내면 두유가 더 많이 나오지만, 짜는 게 쉽지 않다.

이렇게 하는 게 편하다. 베보자기에서 나온 맑은 콩물을 커다란 냄비에 넣고 끓인다. 콩은 끓으면 순식간에 솟구쳐 오르는 성질이 있다. 되도록 큰 냄비에 넣고, 곁에 지켜 서서 잘 저어 주면서 끓어 넘치려 하면 불을 줄인다. 잘 저어주면서 1~2분 동안 팔팔 끓이면 완성된다. 먹을 때 소금으로 간을 맞춰 먹는데 따뜻한 국으로 먹어도 좋고 차게 식혀 음료수로 마셔도 좋다. 다시마와 잣이 조금 들어가긴 했지만 다른 첨가물 없이 콩과 물만으로 만든 신선한 두유. 이걸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그 순수한 맛을 상상하기 어려우리라.

이 두유를 응고시킨 게 순두부다. 이 순두부를 베보자기에 넣고 눌러 물기를 빼며 굳히면 두부가 된다. 두부를 할 땐 보통 콩을 한 말 정도 하니, 집에서 조금씩 하기는 어렵다. 또 응고제를 자주 먹는 건 좋을 리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첫 끼는 두유. 그 다음 끼는 염촛물을 넣어 순두부로 만들어 먹는다. (콩 500g을 기준으로 할 때 염촛물은 만드는 비율은 물 400cc, 소금 2큰 술, 식초 3큰 술이다.) 염촛물을 넣으면 자연 응고하지만 아무래도 초 특유의 시큼한 맛이 난다. 이도 아니면, 두유에 소금으로 밑간을 하고 위에 신 김치를 썰어 올리면 콩단백이 적당히 응고해 두유와는 또 다른 맛을 준다. 남은 콩비지로는 부침개를 해서 먹으면 콩전이 된다. 김치와 궁합이 잘 맞아 김치부침개에 넣으면 맛있다. 

콩장
거의 하지 않았다가 하루 한 가지씩 콩 요리를 하리라 마음먹은 뒤부터 하기 시작한 요리가 콩장이다. 서리태로 하면 가장 맛있지만 몸이 찬 사람과 여성들에게는 메주콩이 좋다.    콩장은 알 땅콩이나 호두를 함께 넣어 만들면 맛도 좋고 영양도 좋아진다. 콩을 다시마와 함께 물을 3배 정도 넣어 하룻밤 푹 불린 뒤, 그대로 끓이다가 물이 어느 정도 졸아 들고 콩이 익으면 여기에 붉은 고추 한두 개, 마늘 몇 알, 간장, 들기름, 그리고 잔 멸치와 찹쌀조청을 넣어 졸인다. 콩이 푹 물러 먹기 좋다.  


콩의 변신

콩나물
스테인리스 강주전자에 기르면 콩나물 키우기가 아주 쉽다.

날콩가루
메주콩을 곱게 빻아 날콩가루를 만든다. 콩 100% 양념으로 아주 요긴한 양념이다. 배추나 우거지 된장국을 끓일 때 마지막에 날콩가루를 풀어 넣고 한소끔 끓이면 더욱 고소한 된장국이 된다. 김치찌개를 끓일 때도 날콩가루를 두부 대신 풀어 넣고 끓인다. 김치 풀 국을 쑬 때도 찹쌀가루(밀가루)에 날콩가루를 1/4 정도 풀어 넣어 끓이면 구수한 풀 국이 된다.  이밖에도 부추나 엇갈이 배추, 풋고추를 씻어 아직 물기가 남아있을 때 날콩가루를 묻혀 찐 뒤 양념을 하면 구수한 채소반찬을 만들 수 있다.

제주도에 있는 분에게 콩탕을 배웠다. 멸치와 다시마를 넣은 국물이 끓으면, 따로 날콩가루를 물에 되직하게 갠 뒤 국물에 풀어 넣는다. 거기에 무채와 대파를 넣고 소금 간을 하면 끝. 봉화에서는 냉이를 넣고 콩탕을 끓인단다. 향긋하고 영양만점일 듯 싶다.

이밖에도 콩은 된장이나 간장 고추장, 겨울철 별미인 청국장으로 변신한다.

* 된장 만들기는 <살림이야기> 12호, 청국장과 콩나물 기우기는 《자연 그대로 먹어라》를 참고할 것


우리 집 일 년 콩 소비량

이렇게 콩을 하루 한 번 먹으려면 일 년 동안 우리 집에 콩이 얼마나 필요할까? 우리 집 네 식구 콩 소비량이다.

메주콩
메주에 한 말(5되)
청국장 2 되(한 되는 청국장으로, 다른 한 되는 잘 말려서 고추장용 메줏가루로)
날콩가루 2되
미숫가루에 1되
콩국이나 두유는 다다익선이니 있으면 있는 만큼.


다 합하면 일 년에 3~4말 정도 먹는다. 산골에서 콩 농사를 지어 보면 알겠지만 이거 쉽지 않은 양이다. 우선 콩 농사가 잘 안 되게끔 변하는 기후가 문제고, 콩 싹은 새가, 콩잎은 고라니와 토끼가 먹어치우니 콩 농사가 아슬아슬하다. 게다가 콩은 기계화가 안 되어 있고 한 알, 한 알 심는 것부터 거두어들여 쭉정이를 가려내는 일까지가 모두 수작업이다. 가을걷이 때 들판을 거닐다가 땅에 떨어진 콩 알 하나를 발견하면 농부는 허리를 굽혀 그걸 주워든다.


쥐눈이콩
콩나물 길러먹으려면 2~3되
밥에 놔먹는 것도 다다익선 2~3되


이렇게 넉넉하면 좋으나 쥐눈이는 알이 잘아 생산량이 많지 않다. 또 하지 무렵에 심으니 심는 일에도 지쳐 적당히 하고 넘어가고픈 마음이다. 그러니 잘 되어야 2~3되다.

*콩나물 콩에는 오리알태(약간 푸른빛이 도는 노란색 콩)도 있다.

서리태
장물 달일 때 써야 하고, 밥에 넣어 먹고 콩장을 하려면 많은 양이 필요하다. 아무리 없어도 1~2되는 되어야 한다. 지난해는 거둔 양이 너무 작아 씨도 못 건졌지만 그래도 또 심는다.

녹두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녹두. 농사를 짓기가 참 어려운 작물이다. 야생성이 강해 꼬투리가 살랑바람에도 날아가며, 누가 지나가는 옷깃에도 터진다. 꼬투리가 터져 녹두 알갱이가 땅에 떨어지면 알이 하도 잘아서 주워 담을 수가 없다. 그러니 날마다 녹두밭을 살펴 꼬투리가 검게 익는 족족 따서 모아 들여야 한다. 이거, 이거 못하겠더라.

몇 년 포기했다가 올해는 아예 마루 앞마당에 몇 포기 심어 놓았더니 들며 나며 따서 모으기 좋아졌다. 그걸 모은 게 양파 망으로 하나다. 그걸 털면 얼마나 나오려나? 한 대접이나 두 대접쯤? 녹두는 한번에 많이 먹지 않으니 제법 먹을 수 있으리라. 올해 희망사항은 녹두가 1되만 넘는 것이다.


팥이 빠질 수 없다. 팥은 내리는 작용을 해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팥 음식을 먹으면 속 청소를 할 수 있다. 또 팥의 붉은 기운이 몸에 들어간다. 팥은 마늘을 캐낸 자리에 심곤 하는데 해마다 팥은 넉넉히 거두어 남는다. 

이밖에도 재미로 심은 강낭콩이나 제비콩, 껍질째 채소로 먹는 갓끈동부, 초여름 입맛을 돋우는 연두색 완두, 밭둑에 심는 어금니동부도 있다. 이른 풋콩을 먹고 싶으면 일 년에 두 번 되는 더블콩을 심으면 된다. 우리나라는 콩의 종주국답게 콩의 가짓수도 많다.

봄이 되면 콩 심고, 여름이 되면 콩밭에 김매고, 가을이 되면 콩을 거두고, 겨우내 부지런히 먹으며 일 년이 흐른다. 여러분도 새해, 콩 먹으며 알콩달콩하게 사시길! 


 


http://www.salimstory.net/renewal/sub/view.php?post_id=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