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호 2011년 가을 살림,살림

[ 시골 살림 길잡이③건강 ]

소박한 밥 먹고 이웃과 어울려 신명나게 일하면

전희식

3주 만에 놀랍도록 달라져서 이곳에서 나가신 분이 있다. 생활하면서 얼굴이 밝아져서 환하게 펴졌고 무슨 일이든 앞장서서 적극적으로 하게 되었다. 씩씩해진 목소리도 첫인상과 다른 모습이었다. 밥을 다 해 놓고 밥 드시라 해야 느릿느릿 맥없이 숟가락을 들던 그가 변했다. 처음 왔을 때 그는 척추측만증이 있어서 몸이 기울었고, 얼굴은 근심으로 가득 차서 어둡기가 세상 슬픔을 다 담은 듯했었다. 중풍 초기 증세가 왔다는데, 보기에도 몸 한쪽이 어줍은 듯 했다.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비해 폭삭 늙은 모습이었다.

3주 동안 어떻게 지냈기에 이렇게 달라졌을까. 그는 그냥 푹 쉬었다. 이곳 ‘지리산 밝은마 을’ 연수원에 온 첫날부터 몇날 며칠을 죽은 듯이 잠만 잤다. 자고 먹고, 자고 먹고 했다. 가끔 부스스 일어나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다시 잤다. 자연 속으로 깊이깊이 들어간 것도 그 사람의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다. 하루 두 번 30분씩 물속에 들어가 명상하는 물 수련을 열심히 했다. 물은 강하수, 황하수, 염철수, 태극수 등 여섯 기운으로 이루어지는데 기후에 따라서는 서리, 구름, 비, 우박, 번개 등 여덟 모양으로 바뀐다. 오행과 수리(水理)에 맞춰 물에 들어가면, 작은 우주인 몸이 자연과 접속되면서 기운을 얻게 되는 게 물수련의 이치다. 그는 우리가 하라는 대로 물수련과 함께 삼림욕도 열심히 했다. 맨발, 맨몸으로 지리산 산림을 누볐다. 먹는 것도 바꿨다. 며칠 동안 단식을 해서 몸을 깨끗이 비웠고 이후 자연식을 했다. 그는 연수원에서 기르는 채소와 과일과 현미밥을 조금씩 꼭꼭 씹어 감사하며 먹었다.

몸이 아픈 것은 증상이 겉으로 드러나기 전부터 어딘가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불교 이론을 빌어 보자면 몸이 상하기 전에 마음이 먼저 상한 것이다. 마음이 상한 것은 생활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보고 듣고 느끼고 먹고 싸고 냄새 맡고 관계 맺는 것은 동물의 기초적인 인식 단계이지만 생각이라는 것은 자아의식과 연결되어 있다. 불교에서 이를 의식(意識), 말나식(末那識), 아라야식(阿賴耶識), 아마라식(阿摩羅識) 단계로 구분하여 6식, 7식, 8식, 9식이라 한다. 이 부분이 상한 채로 한참 동안 교정이 되지 않으면 몸에 이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생활을 바로 하고 마음을 바로 쓰면 병은 없다. 동서고금의 선생들이 하신 말씀이다. 그렇게 살면 시골에서 가까이에 약국이나 병원이 없어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다.



자연식·전체식·소식·공동식·느린식·감사식·자급식·채식

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되는 건강 관련 프로그램을 보면 하나같이 '뭘 먹느냐'를 중요시한다. 그렇다. 뭘 먹느냐가 건강과 직결된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는 것도 뭘 먹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다. 마이클 폴란은 《잡식동물의 딜레마》에서 "우리가 먹는 한 끼 밥은 고도의 정치행위”라고 했다. 해월 최시형 선생은 동학경전의 《천지부모》에서 "식일완만사지(食一碗萬事知)"라 하여 '밥 한 그릇의 이치가 세상만사 이치와 닿아 있다'고 했다.

나는 좋은 음식을 자연식, 전체식, 소식, 공동식, 느린식, 감사식, 자급식으로 보고 여기에 채식을 더한다. 정기적인 단식도 중요하다. 뭐가 이리 복잡하냐 싶겠지만 한마디로 하면 시골에서 농사짓고 살면 된다는 말이다.

자연식은 있는 그대로의 가공하지 않은 음식이다. 요리 과정이 복잡할수록 좋은 음식에서 멀어진다. 맛을 내고 더 많이 먹게 하려다 보니 부드럽고 달고 고소하게 만드는 것이 요리의 필사적 목표가 되었다. 생고기는 먹기 쉽지 않지만 고기를 굽고 지지고 볶으면 동물성지방이 열을 받으면서 고소한 냄새를 풍긴다. 전체식은 잘라 내고 떼어 내지 말고 전체를 다 먹는 것이다. 겉잎과 뿌리, 줄기 등을 버리지 말고 다 먹는 게 좋다. 거기에 섬유질이 많다. 그렇게 먹으면 영양과 기운이 균형을 잡는다. 공동식은 혼자 먹지 않고 같이 먹자는 말이다. 혼자 먹으면 탈이 난다. 경제비리나 정치비리도 돈이나 권력을 자기가 더 먹으려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고기를 안 먹는 것은 건강에 필수다. 채식만으로도 필요 영양소는 충분하다. 축산 시설, 사료작물 재배와 유통, 동물 학대의 문제, 고기의 질 등에서 육식이 도덕적이지도 않고 반환경적이며 반인륜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기를 잘 지키면서 남과 어울리기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 밖으로 내보내는 말과 글, 생각, 눈빛도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생각의 내용과 방향은 건강에 큰 영향을 준다. 미움, 질투, 화, 원망은 나쁜 생각이다. 좋은 생각은 용서하고 수용하고 양보하고 자기를 낮추고 만물을 사랑하는 것이다. 생각이 늘 그런 방향으로 향하도록 하면 건강은 따 놓은 당상이다. 좋은 생각을 하면 재난과 사고도 안 당한다는 게 경험으로 인한 나의 신념이다.

시골에 가서 살 때 가장 힘든 것이 이웃들과 잘 어울려 사는 것이라는 사람들이 많다. 텃세도 심하고 사고방식도 달라서 같이 어울리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들과 융화하지 못한 것이 시골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가 되고 있다. 흔히 농사가 생각대로 잘 안 된다든가 애들 교육 문제가 안 풀린다든가 하지만 그 뿌리는 시골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게 있다. 사람들과 관계가 꼬이면 다른 일들은 잘 될 수가 없다. 동네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내면 쌀이건 된장이건 푸성귀건 농기계건 많은 것들이 해결된다. 자기가 짓는 농작물과도 잘 어울려 지내야 한다. 이웃과 잘 어울리고, 농산물을 사 먹는 이용자와도 잘 어울리고, 행정관서와 잘 어울리면서 산다면 귀농을 후회하거나 다시 도시로 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욕심을 내서 무리하게 농사를 크게 벌인다든가 동네 사람들과 자신을 처음부터 다른 사람으로 구분 짓고 달리 행동하는 것은 잘 어울리는 모습이 아니다. 어울린다는 것은 각자가 고유한 자기 모습을 잘 지키면서 미워하지 않고 비난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 그래. 그렇지. 맞아." 이렇게 세상을 바라보면 잘 어울릴 수 있을 것이다.

하나됨은 말 그대로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습관된 나'가 '본래의 나'에 일치되는 것이라고 하겠다. '습관된 나'를 자기 자신인 줄 알고 사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온갖 갈등과 번민이 생긴다. '습관된 나'는 자기를 속인다. 경우에 따라 딴짓도 한다. 욕망과 이익을 좇는다. 그러니 쉽게 갈등과 분쟁에 휩싸인다. '습관된 나'를 '본래의 나'와 구분해서 볼 수 있으려면 '본래의 나'를 알아야 한다. 나는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는 것이 자신을 가장 잘 꽃피울 수 있는지를 아는 일이다. 간단하지 않다. 여기까지 가닿으려면 깊은 성찰과 명상이 필수다. 단순한 생활이 필수다. 백태만상이 하나에서 나왔다는 의식에 이르러야 온전한 건강이 온다. 도사 같은 말이고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한대도 어쩔 수 없다. 성자의 삶, 도사의 삶을 살자고 말할 수밖에 없다. 시골에서 농사짓고 산다면 이미 그 길에 접어들었다. 성자의 생활, 도사의 생활로 가기 좋은 조건이다. 도사와 성자가 '본래의 나'라고 보면 될 것이다.

능률, 속도, 욕심이 병을 부른다
일상이 곧 약이요, 일상이 곧 의사요, 일상이 곧 독이고 병이다. 몸에 이상이 왔다면 이미 오래전부터 6식 ,7식 ,8식 ,9식이 다쳤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 처방도 그런 이치에서 나온다. 약으로 몸을 다스릴 것이 아니라 하던 일을 멈추고 쉬어야 한다. 일상의 '습관된 나'를 버리고 하던 일을 멈춰야 한다. 생활이 자연과 너무 먼 것이 건강을 상한 원인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쑥뜸이나 부항, 침, 향 등은 건강을 유지하는 좋은 도구다. 행공을 꾸준히 하는 것도 몸 살림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농사일을 하면서 건강을 챙기는 방법이 있다. 먼저 일하는 자세를 자주 바꾸는 게 좋다. 호미질이나 낫질을 하고, 고추를 따고, 상추를 뜯고, 감자를 캘 때 앞 뒷발을 바꾸거나 손을 바꾸는 것은 중요하다. 칫솔질을 하거나 똥 누고 똥을 닦을 때도 마찬가지다. 풀을 맬 때는 여러 요가 자세를 취해 보기도 한다. 나는 누워서 풀매기를 해 보았다. 능률이 안 오를 거라고 생각할 텐데 당연하다. 병은 능률, 속도, 욕심에서 오니까.

함께 일하는 것도 좋다. 신명나게 일을 하자면 함께 일하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 일의 종류를 섞는 것도 좋다. 그러면 절로 다양한 자세를 취하게 된다. 한 가지 일을 줄곧 해야 할 때도 일의 순서를 조금 바꿔 봐도 일의 종류가 달라진다. 노래를 부르면서 일을 하면 온 몸의 순환이 촉진된다. 농작물과 대화를 해 보라. 풀과 속살거리며 풀매기를 해 보면 새로운 경지가 열린다. 이런 농사법을 나는 선농(禪農)이라고 부른다. 농사의 결실에만 관심을 가지면 농산물 가격이 안 맞거나 흉년이 들면 실패했다고 여긴다. 하지만 농사 과정에서 생명과 우주가 하나 되는 체험을 한다면 늘 충만하다. 절로 건강도 좋아진다. 잘못된 습관과 생활을 중단하면 그 순간부터 몸은 기적적으로 스스로 치유하기 시작한다.

시골에서 살면 도시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쉽게 자연건강법을 체험할 수 있다. 3주 만에 건강해졌던 그분을 처음 모실 때 우리는 아무 계획도 없었다. 와서 우리처럼 살아 보라고 했을 뿐이다.

귀농운동본부 공동대표이기도 한 전희식 님은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존엄성을 지켜드리자는 생각에 전라북도 장수의 산골에 내려가 함께 살며 그 일상을 《똥꽃》, 《엄마하고 나하고》에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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