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호 2011년 가을 살림,살림

[ 살림이 만난 고집쟁이 ]

매일 눈물이 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김세진

날이 더워지면 하루가 멀다 하고 친구들을 불러 모아 튜브를 걸쳐 매고 한강변으로 갔다. 수영을 하다가 시들해지면 나룻배 타는 어른들을 구경하거나 물고기를 잡았다. 나는 모래밭을 걸을 때 발가락 사이로 모래가 비집고 들어왔다가 빠져나가는 그 느낌을 좋아했다. 모래는 따스했고 등 뒤로 내리쬐는 햇살도 따스했다. 이렇게 글을 시작하고 싶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강은 그런 모습이었다고 한다. 나는 그런 한강의 모습을 신문기사나 책을 통해 겨우 볼 뿐이다. 내가 한강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억은 전혀 다르다. 돈도 없고 술집 출입도 어려운 학생들에게 한강변은 술을 마실 수 있는 곳 정도였다. 그곳에서 우리는 강물과 적당히 떨어져 앉아 컵라면을 먹곤 했다. 너무 떨어져 앉으면 그냥 공원에 와 있는 것 같았고 너무 가까이 가면 냄새가 역했다. 우리들에게는 한강에 대한 일종의 이용 수칙 같은 게 있었다. 물을 맨손으로 만져서는 안 된다는 것, 강에서 잡은 물고기는 비록 끓인 것이라도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이 밀어붙인 한강종합개발사업이 끝난 뒤의 한강만 아는 내가, 한강의 원형을 잘 아는 사람과 만났다. 4대강 반대운동에 앞장서 온 여주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장 이항진 씨(47). 그는 전날에도 강을 둘러보느라 다른 지역에 다녀왔다. 4대강 공사 현장에서 어디가 가장 처참한지 묻는 나를 그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금의 한강만 보고 자란 사람들은 그게 익숙해서, 공사 현장에 와도 '강이 그냥 이렇지. 이게 뭐가 어떻다고'라고 해요. 공사가 벌어지기 전 강의 모습을 알지 못하면 얼마나 처참한지 알 수 없죠."

그런 것 같다. 포클레인으로 강바닥 모래를 퍼낸 이야기, 흐르는 강을 반으로 가르고 물고기들을 산 채로 파묻은 이야기를 하면서 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고백하자면 나는 그 마음이 충분히 와 닿지 않았다. 강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대한 토목공사를 목격하면서 그것이 유감스럽기는 했지만 되돌리기에는 너무 멀리 온 게 아닌가 하는 패배감이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마음을 읽었는지 그가 천천히 말을 했다.

"4대강사업은 저들만의 탓이 아니고 우리 안의 욕심, 물욕이 발현된 것이라고 수경 스님이 말했어요. 그 말이 맞아요. 더 잘 살고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 불을 붙인 거죠. 우리가 뽑은 사람이 결정하고 밀어붙이는 것에 대해 아니라고 얘기하지 못해서 겪고 있는 일이죠."

대답을 들으면서 유치하게도 '나는 안 뽑았는데……' 생각했는데 그가 말한다.

"경계를 무너뜨리면 그게 곧 나예요. 내 영역이 견고하니까 어우르지 못하는 거죠. 결국 내가 문제예요. '나만'을 넘으면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깊어지죠."

알 듯도 하지만 여전히 아직 내 문제라고 인정하게 되지는 않았다. '그 생명감수성의 경지에 이르기엔 내 갈 길이 멀다'고 하니 그가 도리질을 한다.

"못 봐서 그래요. 떼로 죽은 물고기가 썩는 냄새를 맡아 보지 않으면 '정말 냄새가 날까?' 싶겠지만 맡아 본 사람은 알아요. 무슨 냄새이고 왜 냄새가 나는지……. 머리가 아는 게 있고 몸이 아는 게 있는데 몸이 알게 되면 완전 달라져요."

몸으로 알게 하고 싶었는지 그가 나를 모래 언덕으로 데려갔다. 강바닥을 판 모래들이 거대한 언덕을 이루고 있는데, 모래가 바람에 날리지 말라고 덮어 놓은 초록색 포장들이 흉물스러운 곳이었다. 원래 벼가 자라고 있어야 할 논이었는데 정부가 사들여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동학에서는 '쌀 한 톨에 우주가 깃들어 있다'고 이야기하잖아요. 여기는 원래 우주를 담는 논이었어요. 여기 쌓인 모래도 강 속에서는 수많은 미생물과 수생생물들의 집이 되고 맑은 물의 근본이 되던 것이잖아요. 이것이 지금 논 위에 산처럼 쌓인 채 사막을 연상케 하고 있어요. 죽음의 현장이 따로 없죠. 논을 뒤덮고 그 위에 모래성을 쌓는 게 4대강사업입니다. 현장에 와 봐야지 안다는 말이 바로 이 말입니다."

과연 그랬다. 가서 보니 온 생태계가 전쟁을 하고 있다는 그의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여주'를 알다

그는 늘 현장에 있었다. 여주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몸으로 겪어 왔다. 아내의 고향인 여주가 좋아 20대 말에 이곳에 자리를 잡은 후 죽 그랬다. 2000년에 남한강 모래 채취를 저지한 것, 초등학교 옆 골프장 건설 반대 운동을 4년 동안 벌인 것, 지역 상권을 초토화시킬 게 분명한 대형마트 건설을 반대한 것, 1996년 여주 쓰레기매립장 건립을 반대한 것도 그의 말대로라면 ‘봤기에 반응한 것’에 해당할 것이다.

벌어지는 일을 본 사람은 그 말고도 여럿일 텐데, 지금 여주 지역에서 함께 4대강 반대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물었더니 전업으로 하는 사람은 홀로라고 했다. 다들 생업을 꾸려야 하는 사정이라 남들을 탓하는 마음은 전혀 없다고 했다. 지난해 수경 스님이 여강선원에서 머물 때만 해도 많은 활동가들이 함께했지만 수경 스님이 떠난 후 그들도 모두 떠났다. 결국 그만 남았다. 힘들었겠다고 했더니 지난해 8년 만에 심하게 앓았다고 했다. 그런데 쉴 틈이 없었다. 졸지에 구제역 파동마저 터져 그 일을 떠맡게 돼 벌떡 일어났다. 주위 상황은 그를 가만히 앓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결국 일 때문에 다시 일어난 것이네요" 했더니 "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 걸요. 한살림도 그렇잖아요. 농약 때문에 다 죽게 된 일을 그냥 볼 수 없어 시작한 거고, 4대강 공사도 내가 두고 볼 수 없으니까 하는 거예요" 한다. "그래도 사람들과 부딪치는 일이 많아 감당할 게 많지 않아요?" 물었더니, "기자님은 감당할 게 없으세요? 다 마찬가지죠. 밥도 먹어야 하고 각자 감당할 거리가 있죠. 그리고 이런 말이 있잖아요.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자리를 옮겨 간 찻집에서 이야기에 집중하려고 의자를 당기다가 컵을 건드려 물을 쏟았다. 행주를 달라고 하자 주인이 "제가 할게요. 이미 젖은 몸인데요" 하고 말했다. "하하. 그러면 이미 젖은 몸, 충분히 젖으세요" 그가 크게 웃으면서 하는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젖었으니 충분히 젖으라는 것과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것, 뭔가 다른 듯 비슷하다.

피할 수 없어서 즐기고 있다는 말은 그가 터득한 '싸움의 법칙'을 내게 일러줄 때 가장 와 닿던 말이다. 4대강사업 반대 운동을 하면서 알 수 없는 일들이 이어졌다. 운영하던 식당 주차장에 나사못이 뿌려져 손님들이 타고 온 차가 펑크 나는가 하면 사무실이 뜯겨져 있기도 했다. 그런 일은 상대를 알 수 없으니 싸울 수도 없다. 그러나 그가 4대강 공사 현장에 가면 여지없이 상대가 나타난다. 그들은 사진 찍는 그에게 주먹질을 해댄다. '모래 싸움'이라고 부르는 그 싸움에서 그가 터득한 노하우는 이렇다.

첫째, 상대가 예상하지 못하게 행동한다. 그가 공사 현장에 가면 덩치가 큰 사람들이 다가와서 내 사업 구간에 왜 왔냐, 국가사업을 방해하면 고소하겠다고 협박한다. 대개들 현장에는 혼자 가지 않고 혼자 가면 그런 협박에 금세 움츠러들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는 조금도 기죽지 않은 모습으로 오히려 큰소리를 친다. 그러면 상대방은 허둥대기 일쑤다. 처음에는 속으로 가슴이 콩닥콩닥했다고 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그들을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나를 겁내는 거예요. 별것도 아닌 것 같은데 자꾸 와서 개기거든."

둘째, 잃을 게 많은 사람이 물러서게 돼 있다. 그들은 명분이 없을 뿐만 아니라 폭력을 행사하고 나면 골치가 아파진다. 현장에서 그를 때리면 그는 요란하게 반응한다. 그러면 대개는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기 마련이다.

셋째, 주인은 물러서지 않는다. 저들은 누군가 시켜서 하는 하수인이고, 자신은 남한강의 주인이라는 것을 늘 잊지 않는다.

넷째, 싸움에서 상대방을 제압하려면 상대에게 인정받아야 한다. 꼭 해야 할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하고 적당히 넘어갈 일은 깨끗이 단념한다. 그런 원칙을 꼭 지키는 사람이라는 것을 상대방이 명심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헛물이라는 느낌을 주면 안 된다. 요약하면, 그는 잃을 게 없는 사람이고 이 강의 주인이라 당당하다.

"우리 제발 잘 지내자"는 건설업체 담당자에게 그는 "우리의 싸움을 사각의 링에서 주먹다짐하는 거라고 생각하지 말고, 장대높이뛰기라고 생각합시다. 이렇게 생각해야 재미있지, 너 죽고 나 죽는 걸로 하면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라고 말했다. 며칠 후 담당자가 "위원장, 장대높이뛰기 그만하고 싶어"라는 문자를 보내 왔다. 그는 "이 시절이 곧 지나갑니다. 저 분의 임기가 곧 지나가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라고 했다. 싸움을 하면서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거다. 어쩔 수 없이 그 일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에게 막말이라도 하게 되면 자신에게 스스로가 폭력을 행사하는 것 같아 마음이 괴롭다고 했다.

그가 싸움꾼이 되기를 자초한 것도 알고 보면 평화에 대한 남다른 소신 때문이다. 평화가 세상을 움직이는 기준이 되어야 하는데 정의 없이는 평화도 없다고 그는 믿고 있다. 정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기울어진 축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그래서 목숨 건 저항이 평화를 이루는 지름길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목숨을 건 그에게 "4대강사업이 중단되지 않으면 크게 절망하지 않겠어요? 이미 2011년 6월말에 공정률이 80%나 되었다는데…" 하고 묻자 그의 눈에 또 얼핏 눈물이 고이는 듯했다.

"공사를 멈추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강은 계속 자기의 모습을 찾으려고 합니다. 모래톱을 복원하려고 강이 스스로 뒤척이는 걸 보면 놀라워요. 강은 강대로 흐르게 두고 나는 나대로 변해야죠. 내 입장과 태도로만 세상을 보지 않으려 해야죠. 강 자체에 죽음은 있을 수 없어요. 생명은 희망이에요. 이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또 다시 이런 짓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가 원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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