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호 2011년 가을 살림,살림

[ 이 사람의 살림살이 ]

몸의 요구 따르니 살림 이치 보여

우미숙

강릉에 사는 2개월 된 아기의 엄마 김아현 씨. 남편의 직장이 강릉이라 그곳에서 첫 아기를 낳았지만 곁에서 돌봐줄 친척이 없어 좌충우돌 산후조리를 하고 있었다. 이때 마침 이웃에 사는 언니 한 분이 이것저것 일러주며 도와주어 큰 힘이 되었단다.

이웃 언니의 첫 잔소리는 "이런 쇠수세미는 치워!"였다. 살림의 '살'자도 몰랐던 초보주부는 어리둥절했다. 금세 은색 녹색 수세미는 쓰레기통으로 들어갔고 천연수세미가 개수대 앞에 걸렸다. 간단한 양념으로 무친 나물이나 채소수프를 가끔 끓여오는 그 언니와 만남은 초보 주부 김아현 씨에겐 작은 충격이었다. 병원에 가지 않고도 아이들을 키운 일이나 입맛을 살리는 간단한 요리, 친환경 집안 살림 이야기를 들으면서 김아현 씨는 《살림이야기》에 이웃 언니를 소개하고 싶어 전화를 걸었단다.



이웃 언니는 세 딸을 둔 50대 초반의 유명순 씨(54)다.

"보통 주부라면 그렇게 살아요. 친환경이 특별한가요? 내 몸이 받아들이는 대로 살면 되는 걸요."

유명순 씨는 아기를 갓 낳은 김아현 씨에겐 자신이 대단해보였을 수 있지만 얘깃거리가 없다며, 남 앞에 자신을 드러내기를 조심스러워 했다. 살림살이란 게 먹고사는 일인데 뭐 대단한 노하우가 있을까마는 막상 사람 사는 일이 그리 만만하지도 않은 법이다. '다들 그렇게 산다'고 하지만 몸 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생활을 꾸려가는 사람들과 다른 무언가가 있다 하여, 쉬운 듯 어려운 그 집 살림살이를 들여다보려 길을 나섰다. 김아현 씨와 두 달 된 아기를 포대기에 싸안고 이웃 언니 집을 찾아 나섰다.

유명순 씨가 살고 있는 곳은 강릉 교동의 주택가, 그리 넓지 않은 이층집이다. 김아현 씨의 두 달 된 아기 진하가 유명순 씨에겐 가장 반가운 손님이었다. 두 딸을 키운 경력이 있어서인지 아기 안는 모습이 편안하다. 아기를 받아 안으면서 유명순 씨는 새댁에게 이것저것 일러준다.

"젖은 먹었고? 아기는 목을 잘 펴줘야 해. 나중에 척추가 휠 수 있다고 해."

잔소리가 필요했던 김아현 씨에겐 오랜만에 만나는 이웃 언니의 말이 고맙기만 하다.

그의 집은 소박했다. 벽에는 남들 한두 개는 꼭 걸어놓는 가족사진이나 그림 한 점 없다. 대신 창가와 벽 선반에 귤피, 국화, 로즈마리 차를 담은 작은 유리병들이 키를 맞춰 진열되어 있다. 부엌의 작은 테이블에는 일반 공책 절반 크기의 화이트보드가 세워져 있다. 해야 할 일을 적어놓은 것이다. 설거지통 앞에는 세제로 사용하는 작은 병이 여러 개 놓여 있다. 베이킹소다, 식초. 밀가루. 그릇을 닦거나 채소와 과일을 씻을 때 사용하는 천연세제들이다. 값이 싼 밀가루나 양조식초도 이용한다. 개수대 위에는 천연 수세미 2개가 집게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다들 그렇게 산다'는 50대 주부의 생활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TV나 잡지를 통해 집안 살림의 정보를 무수히 얻고 있지만 흉내는 낼지언정 '다들 그렇게' 생활로 자연스럽게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집안에 황토 구들, 난방 효과는 물론 가족 찜질방 노릇까지
거실 한 편에 황토로 만든 벽난로가 눈에 들어온다. 난로 흉내를 낸 구들방이었다. 알루미늄 연통이 거실 천정을 가로질러 2층 복도 쪽으로 나 있다. 허리 높이까지 쌓은 이 벽난로는 유명순 씨 남편의 솜씨다. 지금 사용하는 벽난로는 네 번째 작품이다. 아이들 어렸을 때 좋은 추억거리 만들어주려고 처음 만든 것이 아치형 벽난로였다. 밤이나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추억의 겨울을 보낸 기억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다.

처음엔 멋있는 황토난로 정도로 생각해 실내 온도를 높이는 데만 의미를 두었지만 집을 옮겨가면서 난방뿐 아니라 황토방의 역할을 하는 벽난로를 구상하여 만든 게 지금 집에 있는 구들형 벽난로다.  일명 황토구들방은 위에 두 사람이 누워 몸을 지질 수 있을 정도로 꽤 넓은 편이다. 땔감은 동네 공사장에서 얻어온 나무들이다. 겨울엔 특별히 난방을 하지 않아도 된다. 불을 때면 24시간 열이 지속되고 집안이 후끈거린다. 몸이 찌뿌듯할 때 이불 덮고 5분만 누워 있어도 땀이 쭉 흐를 정도라 하니 찜질방이 따로 없다. 이제는 소문이 나 황토구들방을 이용하려는 지인들의 방문이 이어진다. 각자 반찬 한 가지 해 가지고 오면 찜질도 하고 가지고 온 음식을 함께 나눠먹는다. 땔감 넣는 곳에서 밤이랑 고구마도 구워 먹는다.

이렇듯 황토구들방으로 반가운 지인과 이웃들을 만나 구운밤과 고구마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추운 겨울 비싼 난방 기름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니 유명순 씨 가족에겐 황토구들방이 소중한 보물이다.

아이 셋 키우면 저절로 살림꾼이 돼요
첫째 딸은 20대 후반, 막내딸이 고등학교 2학년생이다. 모두 딸이다 보니 아이들 피부나 몸 건강에 주의를 많이 했다. 아이들 어릴 때는 감기가 들면 어성초나 도라지, 귤피를 달여 마시게 하고, 여름을 잘 보내라고 익모초도 달여 먹였다. 아이들이 아파도 병원에 갈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유명순 씨와 막내딸은 화학조미료 알레르기가 있어 밥상을 차릴 때 화학조미료 대신 표고버섯이나 멸치가루를 주로 사용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간단하게 조리한다. 식구들은 모두 밥은 반 공기만 먹는다. 밥은 물론 현미 100%다. 밀가루보다는 밥이나 떡을 먹는다. 요리를 할 때 기름도 많이 치지 않는다.

'다들 그렇듯이' 유명순 씨도 매년 효소를 담근다. 남들보다 더 많은 종류를 만드는 게 다르다. 매실뿐 아니라 배, 복숭아, 복분자, 오가피열매를 이용한다. 고기를 잴 때는 배 효소를 넣고, 손님이 올 때 시원한 음료로 오가피열매효소를 내놓는다. 채소샐러드에는 매실효소나 복숭아효소를 소스로 사용한다. 1년 넘게 묵은 여러 종류의 효소들이 이곳저곳 쓰임새가 많다.

김아현 씨에게 가끔 끓여주었던 채소수프는 그의 집에서도 자주 먹는 것이다. 우엉, 홍당무, 무, 건초, 표고버섯을 넣어 끓이는 아주 단순한 음식이다. 면역력을 높이는 것으로 유명해 산모나 암환자들이 주로 먹는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자주 먹이던 거라 그에겐 하기 어려운 요리가 아니었다. 특별히 따지면서 가린 것은 아니지만 몸에 맞는 것을 찾다보니 간단하게 조리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좁은 집에 사는 최고의 지혜는 '정리'
먹을거리에 유난히 신경 쓰다 보니 유명순 씨 댁 냉장고는 곳간 역할을 한다. 1년 내내 먹으려고 갈무리한 삶은 메주콩, 쑥가루, 쌀가루, 강낭콩, 채소류, 청양고추가 크기가 같은 통에 담겨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냉장고는 용량이 크지도 않고 요즘 '다들 사용하고 있는' 양문형도 아니다. 하지만 냉장고의 1/3 크기의 냉동고엔 1년 식량이 빼곡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래 냉장고도 마찬가지다. 집에서 담근 효소가 병에 담긴 채 나란히 놓여 있었고, 바구니를 이용해 음식물이나 재료를 담아놓았다. 유명순 씨의 손길이 닿은 곳은 한눈에 잘 들어오게 배치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냉장고엔 비닐 커튼이 쳐 있다. 문을 여닫을 때 에너지 손실을 막기 위한 것이다. 끼니 때 번거롭게 반찬을 따로 챙기지 않아도 한 번에 꺼내 먹을 수 있게 쟁반에 먹을 반찬을 놓아 냉장고에 준비해놓았다. 살림의 손길이 남다르다는 말에, 그는 "좁게 살다 보니 정리하면서 사는 게 습관이 됐다"며 일상의 모습이란 걸 강조한다.

쑥떡과 효소 음료로 손님맞이
반가운 이웃인 진하 엄마도 오고 서울에서 손님도 온다고 하니 뭘 대접할지 마음이 조금 쓰였단다. 그냥 간단히 생각한 것이 쑥 카스텔라 떡이다. 체에 한 번 더 쳐낸 쌀가루로 만든 부드러운 떡이다. 봄에 들에서 캔 쑥을 말려 가루를 냈다. 쌀가루는 항상 집에 준비되어 있다. 여기에 곶감을 잘게 잘라 넣는다. 설탕을 넣지 않아도 곶감의 단맛으로 떡이 달게 느껴진단다.

얘기를 나누는 동안 곶감을 잘라 쌀가루에 섞는다. 자주 해 먹는 간식이어서인지 손놀림이 능숙하다. 특별한 찜 기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 찜통에 면 보자기를 깔고 가루를 골고루 편다. 밥하면서 옆에서 떡을 찔 수 있어 그리 어렵지 않단다. 정확히 25분이 지나 불을 끄면 된다니 시간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뜨거운 김이 가시기 전에 모퉁이를 떼어 입에 물었다. 포실포실 부드러운 느낌의, 빵 같은 떡이었다. 설탕을 넣지 않았는데도 단맛이 강하게 났다. 곶감의 위력이다. 떡과 함께 내온 오가피 열매 효소 음료는 한약 맛이 약간 났지만 개운했다.

손님이 오거나 식구들이 집에 있는 휴일에 그는 떡을 자주 한다. 쌀가루와 재료가 냉동고에 항상 준비되어 있어 30분이면 떡을 내올 수 있다. 곶감이 없으면 효소에 달인 콩이나 옥수수를 넣는다. 막 쪄낸 쑥떡의 달고 부드러운 맛이 입안에서 강하게 감돈다.

먹을거리를 모두 집에서 만들어 먹던 시절, 계절별로 1년의 식량을 준비하던 시절이 있었다. 밭에서 따 말린 수세미로 그릇을 닦고, 박을 잘라 물바가지로 사용하고 그릇의 찌든때는 볏짚에 흙을 묻혀 박박 문질러 씻었던 시절이 있었다.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들이 이제는 특별하게 다가온다. 옛날 어머니들의 살림살이를 눈으로 익혔던 장년층의 주부들은 그게 오히려 익숙하다. 그래서 유명순 씨도 자신의 살림살이가 특별하지 않다고 손을 내젓는 것이다.

그저 몸이 받아들이면 따라가고 몸이 거부하면 하지 않는 생활이 자연스럽다. 옛날 어머니들이 하던 대로 따라하면 그게 친환경 살림살이가 되지 않을까.

우미숙 님은 한살림에서 조합원 소식지를 만들고 글을 쓰는 일을 해왔습니다. 현재 한살림성남용인 이사장이며 《살림이야기》 편집위원입니다.


http://www.salimstory.net/renewal/sub/view.php?post_id=5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