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호 2011년 가을 [특집] 옹기, 흙과 불이 낳은 생명의 그릇 / 후쿠시마 이후

[ 책 ]

우리는 '체르노빌-후쿠시마 이후' 사람들이다

최성각

'후쿠시마 이후', 이 나라에 한 권의 책이 발간되었으니,《체르노빌의 목소리》다. 이 책이 발간된 이후 나는 어딜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이 책을 권하곤 했다. 더러 책이야기를 써야 할 때에도 어김없이 나는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쓰곤 했다. 25년 전의 체르노빌 이야기를 오늘 방금 일어난 일처럼 말하는 까닭은 두말할 것 없이 최근에 터진 후쿠시마 사건 때문이다.

후쿠시마 사건을 겪으면서 나는 답답했고, 지금도 답답하다. 그러나 세상은 후쿠시마를 그저 이 세상에 일어날 수 있는 여러 사건들 중의 하나일 뿐으로 간단히 치부하고 넘겨버린 것만 같다. 쉽게 넘어갈 수 없는 일이건만, 이제는 무시하기 다소 어려운 외신 정도로 간주되는 것 같다. 매체는 여론에 귀 기울여 그 내용을 전달하는 나팔수일까? 여론을 만드는 공장일까? 후쿠시마를 겪으면서 매체는 여론을 만드는 권력이라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어느 시기가 지난 뒤, 이 나라 매체가 다루고 있는 후쿠시마는 매우 소극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간간히 무슨 서비스처럼 후쿠시마 이야기가 들려오곤 했는데, 그것들은 바다로 흘러나간 기준치를 초과한 방사성 물질 이야기, 방사능에 오염된 소가 오염된 소인 줄 모른 채 도축되어 일본 전역에 팔려나갔는데 특히 신칸센[新幹線]에 공급되는 도시락 반찬으로 쓰였다는 이야기, 그리고 가장 최근의 후쿠시마 소식은 방사선에 피폭된 암토끼가 ‘귀없는 토끼’를 낳았다는 소식, 같은 것들이었다.

원자로가 폭발한 직후 전문가들은 "서풍이 부니 우리나라는 걱정없다"고 말했고, 방사능 물질에 오염된 바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에는 "해류의 방향이 태평양 쪽이므로 우리나라 연안은 끄떡없다", 심지어 "그 해류가 우리나라 연안에 오는 데에는 몇 년이 걸릴 것이고, 그 사이에 방사능 오염은 희석될 것이다"는 망언도 서슴지 않았다. 전문가란 누구인가? 진짜 전문가는 이 세상의 무슨 일이든 다 너끈히 해석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제대로 알고 있는 게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긴장감 없는 내 나라의 전문가들은 그런 기본적인 소양을 갖춘 사람이 많지 않은 것만 같다.

최근에 들려오는 후쿠시마 소식은 그저 도시락 이야기나 귀 없는 토끼 이야기 정도일 뿐이다. 먼 데 남의 나라 이야기를 하는 투다. 정말 이래도 괜찮은 것일까? '후쿠시마의 진실'은 언제쯤이나 소상하게 밝혀질까? 사실 우리는 후쿠시마에서 큰 사고가 터진 것은 알고 있지만, 그 사고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여전히 잘 모르고 있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매체가 알고 싶은 것을 전달하기보다는 알리고 싶은 것만 알리기 때문이다.

후쿠시마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듣는 일보다 더 요긴한 일은 다시 없을 것이다. 체르노빌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앞날에 후쿠시마에서 들려올 소리와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크라이나 출신 기자 알렉시예비치가 1986년 체르노빌 사고 발생 이후 자그마치 10년에 걸쳐 100여명이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은 생생한 증언집이다. 증언자들은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자신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앞날의 다른 이들을 위해 증언에 임하고 있었다. 듣기 불편하지만, 이 책이 내는 소리들을 경청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체르노빌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실로 끔찍하다. 세상에 이보다 무서운 소리는 다시없을 것이다. 읽기에도 고통스럽지만, 책을 덮을 즈음 이 책에 담겨 있는 목소리들을 서둘러 잊고 싶어진다. 그만큼 끔찍하고, 그 끔직한 전면적 죽음의 현장에서 보잘 것 없는 일상과 초라한 인간의 삶이 기실 말할 수 없이 소중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깨닫게 된다.

이것은 인류 역사상 빈번하게 일어났고, 지금도 쉬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인간종끼리의 학살소식과도 다르다. 이 목소리는 인간종끼리의 싸움박질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들려주는 소리하고도 또 다르다. 굳이 전쟁이라면 이것은 전혀 새로운 전쟁이다. 방사선은 색깔도 형체도, 무게도 없다. 원자로 속의 이 불은 본래 전쟁용으로 인간이 발견해 점화했지만, 불이 붙은 이후에는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 너머에 있다. 처음부터 이런 위험한 불장난을 하지 말았어야 옳았다. 히로시마 나카사키에 사용한 핵은 전쟁용이고, 전력을 얻기 위해 사용한 이 핵은 평화용이라는 말은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틀린 구분이다. 핵과 평화가 같이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체르노빌이 일찍이 그 간명한 사실을 인류에게 극명하게 경고했고, 후쿠시마가 그 사실을 인류가 통렬하게 깨닫기를 인류에게 다시 촉구했지만 세상은, 특히 내 나라는 반드시 유념하고 경청해야 하는 이 진실에 대해 무신경하기 짝이 없다.

체르노빌은 끝났는가? 안 끝났다. 이것은 시작은 있었지만 끝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들은 오염된 땅을 땅에 묻었다. 집을 묻었고, 정원을 묻었고, 우물을 묻었고, 숲을 묻었다. 음악당과 도서관을 묻었고, 꽃과 나무, 그리고 가축을 묻었다. 책상을 묻었고, 거기 딸려 있던 책상서랍도 묻었다. 연애편지도 묻었고, 악보도 묻었다. 그들은 먼저 커다란 지층을 잘라 둘둘 말았다. 땅에 있던 485개 마을 중 85개의 마을을 매장했다. 마을은 땅 위에 인간이 세운 인간 삶의 기본토대다. 토대를 토대에 파묻게 된 이 기이한 비극은 인류가 한번도 체험해보지 못했던 일이었다. 삶을 위해 삶의 현장을 묻었으니 이보다 어처구니없는 방책이 어디 있을까?

그런데, 이것이 묻는다고 해결될 일일까? 원자로는 신속하게 만들어진 석관으로 덮었다. 석관의 유효기간은 겨우 30년, 벌써 방사성 연무질이 흘러나온다. 방사성 물질의 반감기는 수백 년에서 수만 년, 그 시간은 이미 인간의 시간이라 할 수 없는 '영원의 시간'이건만, 고작 30년 수명의 석관으로 대응했다. 80만 명의 해체작업자들에게 소련은 영웅 칭호와 훈장을 내렸지만, 심지어 피폭된 방사선 수치를 자랑하기까지 하던 영웅들은 차례차례 끔찍한 모습으로 죽었고, 지금도 고통 속에서 천천히 죽어가고 있다. 210만 명의 오염지역 거주민 중 70만 명이 어린이였다.

고준위 방사선은 사고 직후 일주일도 안 되어 유럽과 중국은 물론 북미까지 덮었다. 핵재앙 앞에서 국경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금 긋기 놀이인가. 아연실색한 유럽은 자신이 재배한 농산물을 쉽사리 식탁에 올리지 못했고, 우유를 먹지 않았고, 아이 낳는 일이 두려워 몇 만 명의 여성들이 낙태를 했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후쿠시마 이후에 쓴 한국어판 서문에서 "나는 과거에 대해 책을 썼지만, 그것은 미래를 닮았다"고 말한다. 매장해도 숨 쉬는 과거의 의해 우리의 미래가 파괴되었다는 이야기다.

피폭된 사람들이 죽어가는 처참한 모습도 인간의 상상력을 넘어선다. '설명할 수 없는 죽음'들이 전개되었다. 다기다양한 죽음들은 선례가 없는 이상한 죽음들이었다. 살점이 떨어져나가고 뼈가 녹고, 구멍이 없는 자루 같은 아기, 코끼리 코가 달린 아이도 태어났다. 산모들은 아이를 낳은 게 왜 죄가 되냐고, 사랑이 왜 형벌이 되느냐고 절규했다.

'히로시마-나카사키-체르노빌-후쿠시마'는 달리 발음되지만 같은 불의 재앙이다. 경솔하고 과도한 어리석음이었지만 이미 붙인 불은 서둘러 꺼야 하고 다시는 이런 불을 붙여서는 안 될 것이다. 지상에 살아있는 어떤 생명체도 핵재앙에서 벗어날 재간이 없다. 거듭 말하지만, 이 불은 애당초 인간이 함부로 다루고 감당할 수 있는 불이 아니었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지극히 절망적인 일은 내 나라 현실이다. 이미 원자로 21기를 가진 우리나라는 "전력대란이 온다"고 협박하면서 앞으로도 더 지으려고 하고 있으며 그뿐 아니라 원전기술 장사에 달떠 있다. 원전밀도로 말한다면 이미 모범적인 원전선진국이다. 이 나라 최초의 핵발전소인 고리1호기는 숱한 사람들의 간곡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가동기한 재연장에 들어가 100% 풀가동하기 시작했다. 후쿠시마 원자로도 진즉에 폐기했어야 할 것을 연장해 쓰다가 터졌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 채 무심하게 살고 있다.

소련 '핵에너지의 아버지'라 불리는 러시아의 물리학자 아나톨리 알렉산드로프는 "소련의 원전은 사드바르(러시아의 전통 주전자)만큼이나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최근에 외국에 나갔다가 '녹색성장의 아버지'라 불렸다면서 흡족해하시는 우리나라 대통령 역시 '한국형 원전기술'에 대한 자부심에 기염을 토하는 분이시다. 참으로 불안하고 무섭다. 무지막지한 발언을 마구 해대는 우리 대통령만큼이나 가증스러운 세력들은 핵산업으로 이익을 얻는 '핵마피아'들이다. 그들은 "원전을 포기하면 전기세 오를 걸", 하면서 서민대중들을 겁박한다. 그 나팔수들이 '조중동'으로 불리는 주류 언론들이다.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이 나라 주류들이 내는 한가하고 태평스러운 소리와는 다른 목소리들이다. 어찌할 것인가? 두 소리들을 다 듣되, 현명하게 판단하고, 선택해야 할 것이다.

풀꽃평화연구소 소장이기도 한 최성각 님은 7년째 서울과 시골을 들락거리는 두 곳 생활을 하면서 거위도 키우고 닭도 치고, 헌 집에서 나온 목재로 오두막을 짓기도 합니다. 《날아라 새들아》, 《달려라 냇물아》,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 등의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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