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호 2011년 가을 [특집] 옹기, 흙과 불이 낳은 생명의 그릇 / 후쿠시마 이후

[ 핵발전 대안 ]

핵 없는 사회는 가능하다

안병옥

지난 봄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일어난 참사는 인간의 힘으로는 원자력에너지의 위험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원자력 안전 신화의 허구는, 체르노빌의 재앙이 불과 25년 만에 재현되었다는 충격과 함께 여지없이 붕괴되었다. '후쿠시마 이전과 이후의 세계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예상은 세계 곳곳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5월 스위스는 각료회의를 열어 2034년까지 현재 가동 중인 원자로 5기를 모두 폐쇄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탈리아에서는 지난 6월 12일~13일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정부의 원전 부활 계획에 무려 94%에 달하는 국민들이 반대표를 던졌다. 가장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나라는 2022년까지 원전 17기의 가동을 전면 중단하기로 한 독일이다. 독일 정부는 원전을 고효율 소형 열병합발전소 등으로 대체해 나간다는 구상이다.

후쿠시마 이후 갈라진 세계
변화는 원전 강국 일본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일본 국민의 74%가량이 점진적인 원전 폐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간 나오토 총리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의에서 2020년까지 전력부문 재생가능에너지의 비율을 2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하기 전까지 일본은 미국과 프랑스에 이어 핵에너지의 비중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국가였다. 더구나 일본은 2030년까지 원자로 14기 이상을 추가로 건설해 전력의 50%가량을 원자력 에너지로 충당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이 계획은 백지화된 상태다.

하지만 일본이 단순히 원전 신규 건설의 중단에 그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적 조건에 따라 탈핵으로 선회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최근 유력한 차기 총리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세이지 마에하라 전 외무상은 향후 20년간 점진적으로 원전을 폐쇄할 것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는 "전력을 어떻게 만들어내고 사용해야 할지에 대해 혁명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전력의 약 76%를 원전에 의존하고 있는 '원전 천국' 프랑스에서도 지각변동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니콜라스 사르코지 대통령은 "원전 이외에 대안은 없다"며 4세대 원전 기술 개발에 약 14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지만, 내년 대선을 앞두고 사회당 등 야당들이 원전 축소 또는 폐기 당론으로 선회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 프랑스 한 언론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의 77%가 원전을 즉각 혹은 단계적으로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원전 건설의 기치를 더욱 높이 치켜드는 나라들도 있다. 대표적인 나라는 우리나라다. 이명박 정부는 세계 원전 시장에서 최고 대우를 받았던 일본 원전 기술업체의 몰락을 기회로 삼아 오히려 원전 건설과 수출에 박차를 가한다는 입장이다. 최근 정부 일각에서는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원전 위주로 짜인 에너지-믹스의 조정을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하지만 정부가 현재 21기인 원자력발전소를 2024년까지 33기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전면 수정할 가능성은 없다. 현재 신고리 2,3,4호기, 신울진 1,2호기, 신월성 1,2호기가 건설 중에 있으며, 건설 준비 단계에 있는 원자로는 신고리 5,6호기와 신울진 3,4호기이다. 원전 건설 예정지 주민들과 환경 단체들은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 등 설계 수명을 넘긴 원자로의 가동 중단과 신규 원전 건설 중단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물론 국회까지 요지부동이다.
 
그렇다면 이웃나라 일본에서 재앙에 가까운 핵사고가 발생했음에도 우리는 왜 이렇게 조용한 것일까? 원전에 '올인'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왔던 정부는 그렇다 치고 국회와 시민들에게서조차 탈핵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은 것은 왜일까?

'원전은 필요악'이라는 미신
먼저 '약소국 콤플렉스'와 '핵개발 심리'를 거론할 수 있다. 원전 가동에 필요한 우라늄은 농축을 거치면 핵무기 제조 원료가 된다. 사용 후 핵연료도 재처리하면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얻을 수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원자력연구소를 군사기지 근처에 설치할 것을 지시하면서 은밀하게 원자탄 제조 가능성을 타진했다는 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1970년대에 고리 원전 1호기를 건설한 박정희 정권의 목적은 전기 생산보다는 핵무기 개발을 겨냥한 핵기술 보유였다. 2004년에는 국내 과학자들이 국제원자력기구 몰래 우라늄 분리와 플루토늄 추출 실험을 해 큰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사실 남한 핵무장론은 일부 언론과 보수 정치인들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꺼내는 단골메뉴다. 몇 년 전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북한 핵실험에 대응해 남한의 핵무기 보유를 지지하는 국민이 67%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당수 국민들의 무의식 속에는 어쩌면 유사시 남한의 핵무장을 위해서라도 원자력은 필요하다는 심리가 깔려있는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원전문제가 국민들의 관심사 밖으로 밀려난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기 어렵다.

두 번째는 원자력이 값싸고 깨끗한 에너지라는 믿음이다. 원자력은 아직은 다른 에너지원에 비해 발전단가가 낮고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이산화탄소도 적게 내뿜는다. 이는 원전을 포기할 경우 전기요금이 폭등하고 온실가스 배출량이 증가할 것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원자력이 경제성을 상실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사업에서 손을 떼는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다. 원전 안전기준 강화가 예상되면서 사업을 계속할 경우 손실이 더 커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원자로 폐기와 핵폐기장 건설에 들어갈 비용을 포함시키고 턱없이 낮게 책정된 손해배상 책임보험료를 현실화하면, 원전의 발전 단가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증가하게 된다.

원전이 청정에너지이며 기후변화의 대안이라는 주장도 문제다. 원전은 독극물 중의 독극물인 사용 후 핵연료를 만들어낸다. 사용 후 핵연료를 영구적으로 보관할 수 있는 곳은 지구상에 없다. 더구나 전 세계에서 가동 중인 437기의 원전 가운데 355기는 가동된 지 20~43년이 지난 노후 원자로들이다. 현재 건설 중인 원전은 64개에 불과하지만 그마저도 상당수는 완공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수명이 다해 곧 폐기될 원자로와 신규 건설될 원자로 수를 비교하면 전 세계적으로 원전 수는 향후 20년 내에 크게 줄어들 것이 확실하다. 세계 전력 생산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도 1993년 18%에서 2009년 13%로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사양길을 걷고 있는 원전이 기후변화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세 번째로 '원전은 필요악'이라는 신념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원전 수를 줄이게 되면 전력 부족으로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이다. 원전 비판 여론의 확산에 제동을 거는 가장 강력한 힘은 '경제성장과 편리한 삶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상의 전력난과 불편함을 걱정하기에 앞서, 원전 중심의 에너지정책이 오히려 전력공급의 위기를 몰고 올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는 전력의 76%를 원자력에너지에 의존하고 있지만, 주변국으로부터 전기를 수입하다 못해 지난 2009년 겨울에는 제한송전을 해야 했다. 원자력에너지의 비중을 줄여나가면서 에너지효율을 높이고 재생가능에너지를 확대해 오히려 전기를 수출하고 있는 독일과 대비되는 사례다. 원자력에너지는 풍부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값싼 심야전기의 사용을 부추겨 에너지낭비 사회를 조장하는 구실을 한다. 원전 위주의 정책을 편 결과 에너지 다소비 사회가 정착된 뒤에는, 제아무리 원전을 많이 지어도 그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이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국가들의 경험이다.

에너지 사용 줄이고 재생가능에너지 늘려야
원전 위주의 에너지다소비 사회로 갈 것인가 아니면 에너지 절약과 재생가능에너지 중심의 자연과 공생하는 사회로 갈 것인가. 그 선택의 기회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통해 주어졌다. 하지만 원자력에너지의 비중을 줄여 탈 원전사회로 나가는 일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구조와 생활양식을 바꾸고 에너지효율 개선과 재생가능에너지의 획기적인 확대를 통해 실질적인 '에너지 전환'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국민들에게 심어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1990년대 초부터 독일의 시민사회가 그랬던 것처럼 '탈 원전 시나리오'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탈 원전 시나리오'에는 에너지 절약과 재생가능에너지 확대 등 원전을 대체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방법과 경로가 담겨야할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핵 없는 세상은 가능하다"고 믿는 시민들의 힘을 결집하는 것이다. 독일과 일본에서처럼 '원전이 만든 전기를 쓰고 싶지 않은 시민들의 모임', '탈 원전 정치인을 지지하는 어머니 모임', '방사능 오염을 걱정하는 소비자 연대'와 같은 크고 작은 모임이 결성되어야 한다. 극소수만이 원전 관련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도 필요하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는 각 정당의 후보자들이 수명이 다한 노후 원전 폐쇄와 신규 원전 건설 중단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도록 요구해야 한다.

안병옥 님은 학생 시절부터 반공해 운동에 투신한 환경운동 1세대로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과 에너지시민연대 공동대표 등을 지냈습니다. 지금은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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