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호 2011년 가을 [특집] 옹기, 흙과 불이 낳은 생명의 그릇 / 후쿠시마 이후

[ 옹기 쓰는 이 ]

틈이 있는 세상이 좋다

김선미

우리 집에 놀러오는 사람들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꼭 물어보는 것이 있다. 싱크대 위에 올려놓은 수도꼭지가 달린 커다란 항아리인데, '식수옹기'라는 이름으로 공급되는 한살림물품이다. 정수기로 거른 수돗물을 받아두고 식수로 사용하는데, 항아리 한가운데 정종병에 붙어 있던 순미주(純米酎)라고 쓰인 라벨을 붙여 뒀더니 눈에 띄는 모양이다. 재미 삼아 '물을 술처럼 즐기려고' 붙여놓았다고 하면 사람들 눈빛이 초롱초롱 해지면서 옹기물통이 왜 어떻게 좋은지 캐묻는다.

옹기에 수돗물을 받아두면 물맛이 좋아지고 정수 효과까지 있다고 한다. 숨을 쉬는 옹기의 특성 때문이라는데, 숯이나 황토볼 등을 같이 넣으면 더욱 좋다고 한다. 나는 13L 들이 항아리에 물을 가득 받아 수도꼭지처럼 편리하게 쓸 수 있는 이 물 항아리가 좋다. 그러고보니 물 항아리 말고도 찬그릇, 뚝배기, 김칫독, 양념단지, 그리고 나물 무칠 때 요긴한 방구리 그리고 국을 끓이는 솥까지 옹기 제품을 많이 쓰고 있다. 투박한 질그릇에 빛깔까지 칙칙해서 딸들은 엄마의 취향이 점점 시골 할머니 같아진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하지만 소박한 밥상에 어울리는 그릇이라 만족스럽다.

먹거리의 안전성에 대해 눈을 뜬 뒤로는 자연스레 음식을 조리하는 데 쓰는 그릇과 그릇을 닦는 세제까지도 신경이 쓰였다. 이 때문에 그동안 별 생각 없이 쓰던 멜라민이나 플라스틱 그릇 또는 코팅 프라이팬들의 자리를 하나 둘 옹기들이 대신하게 된 것이다. 물론 유리와 스텐레이스, 도자기 제품들도 쓰고 있지만 옹기의 느낌은 더욱 애틋하고 각별하다.

지구 환경을 위해 가까운 먹거리를 먹자는 이야기에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 그릇도 마찬가지 아닐까. 옹기는 선사시대 인류가 만든 최초의 토기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자기가 태어난 땅의 흙으로 그릇을 빚고 잿물로 만든 천연유약을 발라 구워낸 것이 옹기다. 옹기의 색은 유기물이 풍부한 건강한 흙빛 그대로다. 그래서 우리 땅에서 난 먹을거리를 길러낸 흙으로 그릇을 빚어 음식을 담아내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물론 우리 집에도 신혼 때 선물로 받은 '깨지지 않는 아름다움'이란 카피로 견고함을 자랑하는 유백색 수입 그릇이 있다. 그릇 깨기 선수인 내게는 정말이지 안성맞춤인 그릇이었다. 하지만 그 견고함이란 게 결국 경도를 높이기 위해 인위적인 가공을 한 것인데, 어떤 재료로 어떻게 강해졌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미국에서는 한때 발암물질이 함유되었다고 논란이 되었다고도 하고, 소뼈를 갈아 넣은 본차이나 제품은 광우병 위험이 있다는 주장까지 들려왔다. 모든 것이 낭설이라고 해도 불편한 마음까지 감출 수 없었다. 어느 순간 '깨지지 않는' 아름다움이란 마치 '썩지 않는' 또는 '늙지 않는'과 같은 이야기처럼 들렸다. 마치 방부제나 주름개선제 같은 작위적인 냄새마저 풍기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깨지지 않는 그릇마저 여럿 박살을 내본 경험이 있다. 정말이지 그릇 깨기에 관한한 놀라운 소질을 가진 내 손이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그런데 잘 깨지지 않게 만든 인위적인 힘 때문인지 오히려 한번 깨졌을 때는 날카로운 파편들이 산산이 튀어나가 몹시 위험했다. 깨진 조각을 치우다 손을 베기도 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파편들 때문에 아무리 말끔히 바닥 청소를 하고 난 다음에도 두툼한 양말을 신고 한동안 발밑을 사려야 했다.

그에 비해 옹기는 깨지더라도 대개 퍼즐조각처럼 다시 짜 맞출 수 있을 정도로 조각 날 뿐이다. 그래서 버리기 아까운 옹기그릇은 깨진 조각을 맞추어 접착제를 붙이고 지끈 같은 것으로 묶어 화분으로 되살려 쓸 수 있다. 물론 깨진 그릇을 모아두면 집안에 복이 새어 나간다고 싫어하는 어른들 잔소리도 들었다. 하지만 복을 자기 집안에만 쌓아두고 꼭꼭 쟁여놓으면 그것이 때론 화를 불러오지 않을까.

나는 세상에 빈틈이 많아야 좋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복은 넘치는 데서 부족한 곳으로 자꾸 새어 나가야만 진짜 복된 일이 아닐까. 그래서 그릇은 원래 깨져야 아름다운 것이란 말로 부주의한 내 살림살이에 대해 자기합리화를 할 만큼 능청스러워졌다. 심지어 그릇 잘 깬다고 칭찬 아닌 칭찬을 받은 적도 있다. 여주에서 장작가마로 도자기를 굽는 가난한 예술가 선배로부터 "그릇이 깨지기도 해야 우리 같은 사람이 계속 입에 풀칠 할 게 아니냐"는 소리도 들었기 때문이다.

보통 주부들은 그릇이 깨져서 새로 장만하는 게 아니라 싫증이 나서, 새롭고 예쁜 그릇을 계속 사들인다. 기분 전환을 위해, 가족의 식탁을 고급 레스토랑처럼 멋지게 꾸미려면 그릇부터 바꾸라고 여성잡지들은 계속 유혹한다. 자꾸 화장하고 주름 펴고, 새 옷을 사라고 부추기는 시장의 논리와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보다는 그릇에 담긴 음식이 어떤 재료로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더욱 정성을 쏟아야 하는 게 아닐까. 예쁜 그릇에 대한 집착은 먹을거리들이 자연과 농부의 손을 떠나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거대한 식품자본에 의해 움직이게 되면서 내용물보다는 화려한 겉포장에 치중하게 되는 상품의 논리를 닮은 게 아닌지. 나 역시 요리에 자신이 없을 때일수록 보다 예쁜 그릇에 담고 싶어진다. 그러고 보니 옹기는 빛깔이나 모양이 너무 투박하고 단순하다.

옹기는 틈이 있는 그릇이다. 도공과 불과 흙의 조화 속에서 미세한 기공이 살아있는 채로 그릇이 구워진다고 한다. 그 틈으로 그릇이 숨을 쉬기 때문에 음식을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는 것이다. 잠그고 또 잠그는 '락앤락'의 밀폐기술보다 공기가 드나들 수 있도록 숨통을 터주는 옛사람들의 방식이 오히려 과학적이었다니….

지난해 옹기가 보이지 않는 틈으로 숨을 쉰다는 사실을 나는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마흔을 훌쩍 넘고 나서야 처음으로 장을 담근 덕분이었다. 설을 쇠고 나서 시골집 처마 아래, 대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짱짱하게 말라 있던 메주 일곱 덩어리를 가지고 올라왔다. 시어머님이 마지막으로 만들어 놓고 떠난 유품이었다. 정월 꽃샘추위가 한창일 때 돌덩이처럼 단단한 메주를 박박 문질러 씻은 다음 옹기 안에 차곡차곡 담고 천일염을 푼 소금물을 부었다. 소금물 위에 떠오른 메주 사이로 마른 고추와 숯을 띄우고는 베란다 볕이 잘 드는 쪽에 항아리를 옮겨 놓았다. 그렇게 남쪽 창가에 둔 항아리 속으로 여러 날 해가 드나들었다. 볕이 좋은 날 항아리 뚜껑을 열어놓으면 구수한 냄새가 집안 가득 퍼져왔다. 장이 익어가는 동안 유난히 항아리 곁에 둔 화초들이 싱싱하게 잘 자랐다. 마침내 창밖에 진달래가 한창일 무렵 부드러워진 메주를 건져 장을 갈랐는데, 그제야 항아리 표면에 하얀 소금꽃이 핀 걸 알아차렸다. 옹기 밖으로 새어나온 염분이 기하학적 무늬를 그려놓고 있었는데 그전까지는 먼지가 앉은 줄만 알았다.

"와, 정말 항아리가 숨을 쉬는구나!"



나는 항아리에 묻어나온 소금기를 확인하고는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는 아뿔사! 항아리 곁에 있던 화초들이 염분을 빼앗았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조상들이 나무들의 움이 트고 꽃이 피기 전에 일찌감치 장을 담그는 이유도 거기 있다고 한다. 산천초목이 새로 깨어날 때 모든 기운이 그곳으로 쏠린다고, 사람들이 봄에 나른한 것 역시 꽃을 피우는데 기운을 빼앗기기 때문이란 이야기도 떠올랐다. 하지만 아깝다는 생각보다는 숨 쉬는 항아리 덕에 우리가 먹을 장의 기운을 화초들에게도 조금 나누어 주었다고 생각했다. 싱싱하게 살아난 화초들 덕에 나도 충분히 즐거웠으므로, 장이 싱거워졌다고 아쉬할 게 없었다. 장이야 소금을 조금 덧뿌리면 되니까.

그 항아리는 신혼 초부터 시어머님이 쌀독으로 쓰던 것이었다. 내가 살림을 맡고 쌀을 김치냉장고에 보관한 뒤로는 한동안 텅 빈 채로 있었다. 마당 있는 시골집에 살 때는 조그만 장독대를 만들어 장식용으로 구색을 맞추기도 했지만 도시로 이사한 뒤로는 제 할 일을 잃고 옹색한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 년 전, 베란다가 좁은 서울 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굳이 그것을 싸들고 올라온 것이었다. 내가 혼수로 장만한 장롱은 버렸어도 차마 두고 올 용기가 없던 어머님의 항아리.

이제 어머님은 가셨고 항아리는 아직 집에 남아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 땅의 모든 항아리들은 결국 아득한 옛날 흙으로 돌아간 세상 모든 어머니의 살과 뼈로 만들어졌다. 우리가 살아 숨을 쉴 수 있는 것은 흙으로 돌아가는 목숨들이 우리를 계속 먹여 살리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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