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호 2011년 가을 [특집] 옹기, 흙과 불이 낳은 생명의 그릇 / 후쿠시마 이후

[ 옹기 만드는 일 ① ]

9대째 이어 온 가업 옹기장

이학수



"날이 밝자 송 영감은 열에 뜬 머리를 수건으로 동이고 일어나 앉아 애더러는 흙 이길 왱손이를 부르러 보내 놓고, 왱손이 올 새가 바빠서 자기 손으로 흙을 이겨 틀 위에 올려 놓았다. 송 영감의 손은 자꾸 떨리었다. 그러나 반쯤 독을 지어 올려 안은 조마구, 밖은 부채 마치로 맞 두드리며 일변 발로는 틀을 돌리는 익은 솜씨만은 앓아눕기 전과 다를 바 없는 듯했다."

황순원 선생이 지은 단편 《독 짓는 늙은이》의 일부분이다. 1950년 봄에 문예지를 통해 발표한 것인데, 독 짓기에 혼신의 힘을 쏟는 송 영감과 주변 인물들이 등장하여 암울했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면서 독특한 가치 즉 고유한 전통문화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작품이다. 옹기장이인 나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문학작품이다. 덧붙여 소설 내용 중 그릇들을 가마에 넣기 전 모두 밖으로 내어 말릴 때의 적당한 햇빛과 바람을 이야기한 내용, 다 마른 그릇들을 가마에 넣어 재임하고는 불 때기를 할 때 밤낮 칠일 불질하는 모습, 그때 곁 창에 뽀갠 장작을 넣고 막 불로 소나무를 넣는 따위의 표현에서 공감이 되었다. 어쩌면 그렇게도 내 유년 시절의 기억이 새롭게 살아나는지 감회가 새롭다.

내 유년 시절은 참으로 좋았다. 부락에서 조금 떨어진 외딴곳에 집과 독막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는데 할아버지께서 이곳 전남 보성 미력으로 이주해 오셨다. 이곳에서 4남 2녀인 그의 자녀들도 함께 모여 살면서 이른바 가족공동체를 이뤘다. 맏이인 내 아버지와 숙부들은 자연스레 옹기를 접했고 가업으로 옹기 일을 하셨다. 야트막한 산비탈에 길게 누워 있는 가마와 독막, 집 주위 여기저기 놓여 있는 작은 항아리와 큰독들은 나의 친구이기도 했다. 한겨울 매서운 추위에도 양지쪽의 독을 끌어안고 있으면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이곳저곳 흩어져 있는 점토는 좋은 놀잇감이었다. 그러다가 아버지에게 들키면 불호령을 받으며 쫓겨났고, 곧 독막 주위는 얼씬도 못하게 되기가 여러 번이었다.

이러한 유년 시절을 보내며 내 몸과 마음은 선대를 이어받아 장인 기질이 자연스레 몸과 마음에 스며들었다. 특히 일주일 동안 밤낮 가리지 않고 불이 지펴질 때면 나도 모르게 불꽃의 환상적인 아름다움에 매료되곤 했다. 봉창 너머에 너울거리는 불빛들에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겨 '나도 나중에 큰 항아리를 빚어 구워내는 일을 반드시 해 내리라'고 굳게 다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부모님 마음은 달랐다. 외아들인 내가 손에 흙 묻히고 궂은일을 하도록 둘 수 없다고 하셨다. 나는 읍내의 중학교를 마치자마자 도시로 유학해 부모와 떨어져 살게 되었다. 부모님은 말 못 할 옹기장의 애환을 자식에게는 넘기려 하시지를 않으셨다. 아버지 대에서는 숙명처럼 받아들였지만, 그 옹기 가업을 자기 대로서 끝내고자 하셨음이었다.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작업이었으면 되 물림은 안 된다 하셨을까. 또 사회적 냉대는 얼마나 심했기에 나를 교육하는 것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면서 희망을 걸었던 것일까. 지금에 와서야 부모님 심중이 충분히 헤아려 진다.

하지만 나이가 한 살씩 더 먹고 머리가 커 갈수록 집이 끌렸다. 서울에서 다른 공부를 하는 동안 부모님과 그 선친들에 대해 자연스레 이해하게 되었다. 그분들의 고생이 와 닿았고 생업으로써의 옹기장이의 고된 삶도 전폭적으로 이해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옹기가 나의 전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대들이 지금까지 여러 좋지 않은 조건과 환경 가운데서도 8대의 가업을 이어 오셨다는 생각에, 옹기장이 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여겨졌다. 아버지가 노여워 하신 것은 당연했다. 심지어 부자의 연까지 끊자고 하셨다. 6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아버지가 벽처럼 느껴졌고 그 앞에서는 편히 숨쉬기조차 어려웠다. 노여움이 쉽사리 풀릴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아! 자식이기는 부모를 보았는가?' 한철이 지나고서 해가 바뀌자 아버지는 서서히 마음을 여셨다. 자식에 대해 포기한 것처럼 비춰졌다. 나는 이렇게 다짐했다. "아버지 대에까지 이어 온 서러움, 한스러움, 고통들을 이제 내가 풀어 놓을 것이다."

어느 날 아버지는 옹기를 시장에 내다 팔라고 하셨다. 옹기를 쓰는 사람들이 무얼 원하는지부터 알기를 바라셨던 것이다. 제대로 된 가업 교육이 시작된 것이다. 흙을 잘 다루는 일, 가마에 불 때는 기술, 이것들도 중요하지만 먼저 세상과 소통하는 법부터 알도록 하신 아버지의 배려였다. 이것은 나의 대에도, 그 다음 대에도 이어져야 하는 교육철학이고 장인정신이다.



1976년 겨울에 조소를 공부한 아내를 맞아 가정을 꾸리고 본격적인 작업에 돌입했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기술과 기법을 토대로 옹기를 연구하고 만들기 시작했다. 옛 문헌도 찾아 익히고 박물관을 찾아 전통 도기와 옹기도 비교했다. 전통적 이론과 실제에 충실하고 싶어서였다. 훗날 대학원에 진학하여 이론적, 학문적 토대도 충실히 쌓았다. 1990년 봄 아버지와 숙부는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 인정되었고 나와 아내는 전수자로 등록되었다. 선대에서부터 질기게 따라다녔던 한, 천대 받았던 설움을 끊은 것 같았다. 가정의 경사를 맞게 되었다. 가문을 빛나게 해준 것은 자연이었다. 흙, 물, 불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고, 다시 마음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옹기가 살림을 나아지게 하지는 못했다. 일 년에 한차례씩 서울에서 열리는 전시 판매전은 그나마 우리를 먹고살게 했다. 온 힘을 쏟아 수개월에 걸쳐 옹기를 만들고 전시회에서 그걸 팔았다. 그때 매출을 올려 흙과 나무 값 그리고 인건비를 약간씩 충당했는데 이마저 여의치 못할 때가 많았다. 게다가 아버지와 숙부는 연로해 작업을 못 하시게 되었다. 1994년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고, 2001년에는 숙부마저 돌아가시게 되었다. 식구는 느는데 경제력이 따라오지 못해 빚을 얻어 쓰는 일이 잦았다. 급기야 빚은 눈덩이처럼 늘어만 갔다. 그리고 제때에 갚지 못한 부채 때문에 나는 신용불량자가 되어버렸다.

다행스레 한 지인의 소개로 안경 기술을 배우게 되었고 자격증을 취득하여 읍내에 조그마한 안경원을 개원했다. 주경야독이라 했던가. 낮에는 안경원에서 아침과 저녁에서는 공방에서 옹기 작업을 하면서 젊음을 내어 맡기기를 수년, 결과가 좋았다. 고향사람들의 후한 인심이 나로 희망을 갖게 하였다. 옹기는 내게 아버지와 같고 생명과도 같았다. 도저히 그만둘 수 없었다. 생명을 포기할 사람이 있겠는가? 다행히 안경원 수입으로 조금씩 빚을 갚아 가게 되었다. 남은 돈으로 옹기의 재료인 흙과 나무를 샀고 인력에 드는 비용을 댔다. 웬만큼 숨통이 트여 자녀 교육도 할 수 있게 되었다. 2000년, 여러 해 동안 가정의 주 수입원이었던 안경원을 접었다. 그 이래로 오로지 옹기 외길을 가고 있다. 대한민국 전승 공예대전에서 몇 차례 받았고 큰상을 받고 대한민국 도예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또 옹기에 대한 현대적 해석으로 연구하던 냉장고용 단지를 수제품 최초로 만들어 선을 보였고 새로운 모양의 정화수독과 쌀독도 만들었다. 선대로부터 오롯이 지켜내려 온 옹기 가업이 이대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옹기는 내부의 습도와 온도를 조절하는 기능이 있다. 바깥 자극에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또 옹기는 정화기능이 있다. 수돗물을 받아 이삼일을 두었다 마시면 좋은 물맛을 느끼게 된다. 방부 기능도 있어 내용물을 신선하게 보관해 준다. 옹기는 살아 있는 그릇이다. 숨을 쉬기 때문이다. 옹기를 닮은 사람이 되고 싶다. 들숨, 날숨을 제대로 쉬는 사람, 그것 때문에 깨끗해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 흙은 곧고 정직하다. 시계의 추처럼 갔다가는 그길로 다시 온다. 그래서 우리도 흙(자연)앞에서 정직해야 한다. 옹기는 흑갈색과 황갈색으로 옷 입고 당당하게, 제가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있다. 그 덕에 전통문화가 살아 있다. 건강한 삶, 풍요로운 삶의 원천으로 전통문화가 생생히 살아있음을 인해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드는 것을 비단 나뿐이랴! 온고이지신! 옛것을 교훈 삼아 늘 새로움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 옹기처럼.

이학수 님은 전남 보성 미력옹기 대표입니다. 중요무형문화재 96호인 이옥동 님의 아들로 9대째 옹기 가업을 잇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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