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호 2011년 가을 [특집] 옹기, 흙과 불이 낳은 생명의 그릇 / 후쿠시마 이후

[ 옹기의 과학 ]

숨쉬며 온도를 유지하는 놀라운 과학이 숨어 있다

정순경

어린 시절, 장독에서 장난질을 하다 사고를 치곤했다. 자치기를 하다가 남의 집 장독을 부수기도 하고, 홍시를 따다가 장에 떨어뜨려 된장을 못 먹게 만들기도 했고, 남의 집 담장을 넘다가 장독을 부수기도 했다. 비오는 날 장독 뚜껑을 덮지 않아 고추장을 못 먹게 만든 적도 있었다. 음력 2월이 되어 장을 담는 시기에 아버지는 천일염을 물에 녹이고 어머니는 메주를 깨끗하게 손질해서 사이좋게 한해의 장 농사를 준비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내가 그랬듯 우리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들께서도 한 평생을 옹기와 함께 생활해 오셨고, 옹기에 얽힌 삶의 지혜들을 물려주며 가계를 이어 오셨다. 옹기는 간장, 된장, 고추장, 젓갈 등을 발효하기 위한 용기로 쓰이는 것 외에도 저장고로 쓰이기도 했다. 가을엔 곱게 빚은 곶감의 저장고로, 해 끝자락엔 막 수확한 참깨, 콩 같은 곡류의 저장고로, 감자나 깻잎, 가죽잎 등으로 만든 부각과 무말랭이의 저장고로, 정월대보름에 나물 하려고 말린 호박, 박, 산나물의 저장고로 사용되었다. 우물물의 정화조 등으로도 사용되었다. 지금 우리 식생활에서 냉동고와 냉장고가 하는 역할, 정수기가 하는 역할을 해 왔다.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옹기가 가지고 있는 과학적 원리 때문에 가능했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냉동, 냉장고보다도 더 과학적인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왜냐. 첫째, 옹기는 내부에 있는 작은 기공 덕에 통기성과 보온성이 뛰어나다. 둘째, 원적외선 방출이 다른 재질(스테인레스, 유리, 플라스틱 등)에 비교해서 높다. 이것은 이미 실험을 통해서 입증되었다.

기공이 미생물을 살린다
흙으로 옹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작은 구멍들이 생긴다. 옹기에 천연유악을 도포하고 1200℃ 이상의 높은 온도에서 구우면, 유악이 녹아 옹기 벽면을 타고 흘러내린다. 이때 구멍들이 막히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기공이 남는다. 옹기를 잘라서 절단면을 전자현미경으로 자세히 살펴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옹기 표면은 미세하지만 내부에는 작은 기공들이 매우 많다.

옹기의 기공성은 음식이 발효하는데 크게 세 가지 기능을 한다. 첫째, 발효에 영향을 미치는 미생물이 생육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산소와 수분을 조절하는 통로로써의 역할을 하면서 말이다. 기공과 발효의 상관관계를 알아보기 위해 실험했다. 실험을 위해 직접 옹기를 제작했다. 유약을 바르지 않은 옹기는 기공이 크고, 양면에 유약을 도포한 옹기는 기공이 미세했다. 여기에서 간장을 발효할 때 옹기의 표면이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를 관찰했다. 기공이 큰 옹기에는 소금쩍이 많이 붙어 있는 반면 미세한 기공의 옹기 표면에는 소금쩍이 없다. 소금쩍이 너무 많이 나오면 옹기가 샌다고 해서 장을 담그는 대신 저장고로 썼다. 옹기는 기공성이 장점이지만 기공이 너무 많거나 크면 발효식품에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기공률에 따라 발효식품(간장, 된장, 고추장) 용기로써의 쓰임이 달라야 할 것이다.

둘째, 미생물이 잔존할 수 있는 방의 역할을 한다. 사용하지 않는 동안에도 옹기 내부 기공에 미생물이 잔존하고 있다가 이듬해 옹기를 사용해 음식을 발효할 때 그 미생물이 상승효과를 낸다. 사용하지 않은 옹기의 기공에는 미생물이 없지만 사용했던 옹기에 미생물들이 남아 있는 것이 실험을 통해 밝혀졌다.

셋째, 옹기의 기공은 미생물이 외부 온도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보온하는 효과가 있다. 겨울에 입는 오리털 파카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오리털 사이, 사이에 있는 공기층이 외부의 찬 공기를 차단하고 내부의 따뜻한 기온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옹기의 기공은 옹기 내부의 온도가 외기 온도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함으로써, 발효식품에 관여하는 미생물들이 생육할 수 있도록 한다. 미생물의 왕성하게 생육하고, 단백질이 분해 효소에 의해 아미노산으로 잘 분해될 때 최상의 발효식품이 만들어진다. 따라서 미생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옹기 내부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최상의 관리이다. 더운 여름날에도 옹기 내부 온도는 그리 높지 않고, 추운 겨울에도 옹기 내부 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지지 않는다. 옹기는 이렇게 보온 효과를 가지고 있다. 반면, 스테인리스나 플라스틱, 유리 용기는 외기 온도 변화에 따라 내부 온도가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발효식품의 품질 인자인 총질소 함량, 맛 성분인 핵산의 함량도 옹기에서 발효했을 때 가장 많이 나타났다. 관능검사 결과도 옹기에서 발효한 제품이 가장 우수하게 나타났다.

옹기는 다른 용기(스테인레스, 플라스틱, 유리)보다 원적외선을 많이 방출한다. 원적외선의 파장은 식품중심부까지 영향을 미처 중심부의 온도를 상승시킨다. 이로 인해 발효에 관여하는 자가소화효소와 미생물의 생육 활성을 활발하게 한다. 그래서 맛과 향기가 극대화되다. 원적외선 방출량은 발효 유리, 플라스틱, 타파, 스테인리스에서보다 옹기에서 많다.

옹기판에 구우면 빵 맛도 좋다
우리가 즐겨 먹는 빵 또한 발효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는 제품 중 하나다. 빵 반죽은 적정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는 환경에서 효모에 의해 발효가 이루어진다. 이때 효소는 밀가루 단백질과 전분 등을 분해한다. 이로 인해 빵의 조직감, 풍미 등이 형성된다. 발효식품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옹기가 빵의 발효 과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궁금해졌다. 옹기가 가진 특성, 기공성에 의한 보온 효과와 원적외선 방출 성질이 발효 과정에 변화를 주지 않을까? 또 빵을 굽는 과정에서도 영향을 끼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븐 내부의 높은 온도에서 원적외선이 방출되어, 빵 품질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실험을 통해 이런 궁금증을 해소했다. 빵 제조 과정에 옹기를 사용하여 옹기가 빵 품질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았다. 옹기와 옹기판을 용도에 맞도록 제작했다. 그리고 빵을 만들 때 발효 과정(1차, 2차 발효)과 굽기 과정에서 옹기가 빵의 품질에 미치는 영향을 관찰했다.

예상했겠지만 발효실에서 옹기는 반죽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옹기가 지닌 보온성이 반죽덩어리의 온도를 발효실 내부 온도와 비슷하게 유지되도록 했다. 또 반죽의 속이 겉과 같은 온도가 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스테인리스 용기를 사용할 때보다 짧았다. 옹기는 반죽의 전체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게 해서 발효 시간을 단축했다. 빵을 구운 후에 부피와 표면 색상도 우수했다. 옹기판에 놓고 빵을 구웠을 때, 철판을 사용한 것에서 보다 좋은 결과를 보였다. 많은 이들이 옹기판에 구운 빵이 더 맛있다고 했다. 또 구운 빵을 비닐 포장해 실온에서 5일간 저장한 후 빵의 외관을 관찰했을 때도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철판에서 구운 빵은 5개 모두 곰팡이가 피어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옹기판에 구운 빵은 단 한 개도 곰팡이가 피지 않았다. 발효식품에 옹기가 긍정적인 효과를 주었듯, 빵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옹기를 적절하게 활용한다면 더 좋은 품질의 빵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2010년 열린 울산 세계옹기엑스포행사에서 외국인들과 내국인들에게 빵 맛을 물어보았다. 즉석에서 옹기와 철판을 이용한 빵을 각각 만들어 블라인드 테스트를 실시한 결과 90% 이상이 옹기를 이용하여 구운 빵이 맛있다고 스티커로 표시했다. 전통 발효식품에 옹기를 사용하는 것은 널리 알려진 것이지만 빵 발효에 옹기를 접목한 것은 새로운 시도였다. 빵을 주식으로 하는 외국인들이 관심을 보였다. 이렇게 옹기는 우수성을 가진 용기다.

옹기를 이용해 발효시킨 전통 발효식품은 저마다 독특한 맛을 간직한 채 우리 식문화 역사를 이어왔다. 우리가 발효식품의 종주국이라고 불릴 수 있었던 것도 옹기라는 우수한 저장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최근 식생활과 주거 환경의 변화로 옹기가 우리 주위에서 멀어지고 있음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정순경 님은 창원전문대학 식품과학부 교수입니다. 발효식품을 좋아해서 옹기와 친해졌고, 옹기의 신비로움을 한 겹, 한 겹 벗겨 가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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