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호 2011년 가을 편집자의글

[ 《살림이야기》가 드리는 글 ]

눈빛이 깊어지는 계절입니다

김성희

작년 8월 한 달 동안 서울지역에 무려 24일 동안이나 비가 내렸다고 합니다. 다른 지역도 별로 다르지 않았고, 이 때문에 품목과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의 농사가 몸살을 앓았습니다. 잡곡이나 배추 같은 노지재배 작물들은 절반이상 수확을 못한 곳이 많았고 쌀 수확량도 430만 톤 남짓에 그쳐 1980년 이후 제일 적었다고 합니다. 기후변화 때문에 몸살을 앓기는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여서 파키스탄은 물난리로 2천만 명 이상이 피해를 입었고 러시아는 최악의 산불과 가뭄으로 곡물 수확이 줄자 작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수출을 중단시키기도 했습니다.

올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8월 22일까지 단 사흘을 빼곤 매일 비가 내렸습니다. 보통 6월 하순에 시작한 장마가 7월 말에 끝나면 불볕더위가 이어지곤 했는데, 아무래도 뭔가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모양입니다. 아무리 도시에 살면서 뙤약볕을 피해 그늘을 찾아다녀도 여름에서 가을까지 작열하는 태양이 뿜어내는 뜨거운 열기 속에서 낱알들이 영글고 있으려니 생각하면 어쩐지 느긋해지곤 했는데, 2007년 이후로는 달라졌습니다. 매일 쏟아지는 빗속에서 축축하고 우울한 심정으로 개운치 않은 잠을 자고 일어나는 일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인터뷰를 하러 갔던 경기도 파주에서 만난 젊은 농부 김상기 씨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수확을 포기하는 작물이 늘면서 당장 내년 영농자금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막연해졌다고 했습니다.

우리 정부가 어떤 대안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언제나 싸게 식량을 사다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농업과 식량정책을 세워두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여간 조마조마한 게 아닙니다. 기후변화나 천재지변 앞에서 개인들은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쏟아지는 비를 손바닥으로 가리는 정도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기에 말입니다. ‘후쿠시마 이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모든 일들이 우리세대가 지구에 준 충격 때문에 빚어졌다고 인정하고 반성하며 달라지지 않는다면, 원인을 밝히고 해법을 찾는 일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길을 묻다’에서 만난 철학자 윤구병 선생은 살기가 각박해진 인간 생명체가 스스로 개체수를 줄여 난세에 살아남아 종의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동성애, 비혼 등 출산을 거부하고 있다 말합니다. 살기 위해 죽는 모순의 논리를 이해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가슴 한쪽이 허전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렇잖아도 가을은 돌아보며 쓸쓸해지는 계절입니다. 열매를 거두고 다음 해에 쓸 씨앗을 갈무리하면서 우리도 저 씨앗들도 어디서 싹 터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높아진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빛이 깊어지는 …, 그런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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