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호 2011년 여름 살림,살림

[ 교육살림 ]

그가 선생이 되면

글 남호섭

나는 요즘 행복하다. 교사로서 보람이 새삼스럽기 때문이다. 제자가 제 몫을 단단히 해내는 모습을 보는 일 만큼 교사를 기쁘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그런 제자를 한 교무실에서 날마다 보고 있다. 이 제자는 작년부터 모교의 교사가 되어 나와 같이 근무하게 된 것이다.

이미 그는 나와 오랜 인연이 있었다. 쓰는 둥 마는 둥 하는 내 일기장에 그는 이렇게 등장하고 있다. 벌써 햇수로 십년 전 일이다.
 

우리 반장

전교조에서 주최하는 학생의 날 기념 마라톤대회 안내가 식당에 붙어 있기에,
"저거 한 번 해볼래?" 하니 고개를 젓는다.
작년 진주시민마라톤대회에 나가 하프코스를 완주했고, 제 집이 있는 경기도 이천에서부터 학교까지 선배 종명이와 자전거를 타고 온 적도 있고, 지리산이고 지난봄에 소풍 갔던 남해 금산이고 산에 가는 것도 좋아하는 녀석이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물었다.
"상품도 많은데 한 번 달려 보지?"
"저 요즘 죽을힘을 다해 공부하고 있어요."
그러니 마라톤 하러 갈 시간이 없다는 거다.

수업 시간에도 제일 열심이다. 눈망울이 사뭇 진지하다.
어느 때는 시를 써서 내게 들고 오기도 했는데 요즘엔 시심이 말랐나?
안 씻기로 유명했고, 산만한 것도 같더니, 그리고 모든 말은 '펑크'로 귀결시키더니, 녀석이 점점 멋있어 진다.
중학교부터 간디학교를 오 년째 다니면서 학교가 자기에게 해주는 게 별로 없다는 걸 일찌감치 깨닫고, 학교 탓도 안 하고 남 탓도 안 하고, 제자리에서 제 몫을 단단히 해내고 있는 녀석이 보기 좋다. 멋대로 삐죽삐죽 솟은 머리카락들도 멋있어 보인다.
녀석은 우리 반장이다.

-2002년 10월 30일 일기 중에서


나는 십년 넘게 지방과 서울의 학교들에서 교사로 살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학교 교육에 대한 회의가 일었다. 모든 초점이 입시에만 맞춰지고, 성적 경쟁은 극심해지면서 아이들은 생기를 잃어 가는데, 거기에 열심히 복무하고 있는 모습은 결코 내가 꿈꾸던 게 아니었다. 아이들과 나를 위해서 교육운동에 참여하기도 하면서 교육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날들이 많았다.

그러던 중에 대안교육 운동을 만나고 나는 기꺼이 '대안학교' 교사가 되었다. 대안학교 교사 이년 차에 담임을 맡으면서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인 그와 만났다. 그는 나보다 대안학교 '물'을 삼년이나 더 먹은 선배였다.

그때 그와 친구들은 야성이 넘쳤다. 눈빛이 살아있었다. 그동안 내가 만난 아이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유로웠고 개성이 넘쳤으며 스스로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들을 만나는 일이 날마다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들의 내적 성장을 지켜보면서 교사로서 내 나름대로 애써온 지난 세월이 부끄럽기도 했다.

학생들 앞에서 애써 근엄한 표정을 지을 필요가 없었다. 여름이면 반바지에 맨발로 교실 수업을 할 수도 있었다. 교사인 내가 해방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생각했다. 소위 말하는 '대안교육'이 우리나라에서 뿌리내리려면, 대안학교 출신 아이들이 교사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자기들이 받은 교육을 후배들에게 전하게 될 때 비로소 대안교육을 제대로 평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라고.

그 무렵 그는 또 이렇게 내 일기장에 등장하기도 했다.
 

그가 선생이 되면

그는 선생이 될 것이다.
국어 선생이나 역사 선생이 되고 싶다니 그렇게 될 것이다. 제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끓어 넘쳐 기타를 치거나 시를 쓰면서 아이들을 가르칠 것이다.

오늘 근 한 시간을 이야기 나누면서 내내 기분이 좋았다. 그와 이야기 나누는 일은 늘 유쾌하다. 굳이 말을 안 해도 좋을 때가 많다.

○○대학교를 생각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 공부하자고 격려했다. 대안학교 특별전형보다 일반전형으로 응시할 것을 권유했다. 너보다 입시 공부 안 한 아이들에게 그 기회를 주자고도 말했다. 흔쾌히 공부하겠노라 했다. 지난 학기에 공부에 재미를 붙여 자신감도 얻고 성과도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겨울방학이 지나면서 그 리듬을 잃었다고 했다. 그래서 짜증나서 책을 읽는다고 했다. 탁석산의 '한국인의 주체성'을 손에 들고 있었다. 이해가 잘 안 가서 두 번째 읽는 중이라 했다. '한국인의 정체성'도 읽었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조정래의 '한강'을 독파하는 것을 본 적도 있다.

그가 선생이 되면, 최소한 나보다는 좋은 선생이 될 것이다.

-2003년 3월 8일 일기 중에서


그가 3학년 때도 나는 그의 담임이었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내 예언은 적중했다. 그는 정말로 선생이 되었다. 중고등학교 과정 6년 동안 대안교육을 받고 대학에 가서 교직과정을 이수하고 모교에 돌아와 교사가 되었다.

나는 군사독재 시대에 군사훈련까지 받으면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권위적이고 획일적인 학교 틀 속에서 성장하여 교사가 되었다. 비록 그런 교사에게서 배우지만 아이들은 달랐다. 대표적인 자유학교로 손꼽히는 우리 학교 아이들은 도리어 교사들의 딱딱한 머리를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줄 때가 많았다. 아이들의 개성이 다양하고 거침없이 표현될 때는 혼란스러울 때도 있지만 진지하게 교사의 역할을 고민하게 해주었다.

그런 아이들 가운데 하나였던 그가 선생이 되었다. 갑갑한 우리 교육 현실에 대해 '어둠을 탓하기보다 촛불 하나 밝히는 것이 낫다'는 마음으로 시작된 대안교육의 결실 하나. 비록 하나의 열매라지만 그가 품은 무수히 많은 씨앗을 나는 본다.

우리 아이들은 성적 경쟁의 중압감에서 자유롭다. 대학 진학에서 완전히는 자유롭지 못하지만 ‘대안적인 삶’까지도 고민할 만큼은 성장한다. 기숙학교이기 때문에 부모의 욕심이 마음대로 개입할 수 없는 물리적 거리에서 학교를 다닌다. 그러다보면 아이들은 어느 순간 덜컥 자기 자신과 만나게 된다. 자연스럽게 화두 하나씩을 붙들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 나이에 풀 수 없는 이런 고민을 가장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자기들과 똑같은 길을 걸었던 선배라는 것을 아이들은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선생님이다. 아니, 형이나 오빠다. 아니, 친구다.

그는 아이들과의 이런 관계 속에서 우리 선배 교사들이 가지고 있던 한계를 넘어서고 있을 것이다. 국어 선생이자 고등학교 2학년 담임이라는 맡겨진 일에도 구속되지 않고,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서로 하나가 되는 기쁨을 맛보고 있을 것이다. 그를 잘 안다고 믿고 있는 내 눈에는 정말 그렇게 보였다.

그래서 어느 날 나는 그를 붙들고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일 년이 지나고 새 학기도 반이 넘었으니 내 딴에는 오래 참았던 질문들이었다.

모교에서 교사하기는 어떤가?
좋아요. 좋은 사람들과 같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러고 좋아하는 걸 하니까요. 제가 읽고 좋았던 글들을 가지고 바로 수업에 쓸 수 있고, 제 공부를 같이 나눌 수 있어서요. 수업에 간섭이 없으니까 다양하게 해볼 수 있어서도 좋아요.
요즘 저는 제가 하는 일에 홀려 있는 듯해요. 사람들은 보통 일하다 보면 쉬는 것을 좋아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지금 일이 좋아서 그런지 굳이 일과 쉬는 것이 구분이 안가요.

학교 다닐 때 배웠던 것들이 도움이 되나?
(웃음)기억이 하나도 안 나요. 그때 재밌던 수업을 활용해 볼까 하는데 떠오르지 않아요. 선생님들이 신고 다니시던 고무신, 학교에 걸어 다니시던 모습, 이런 것들만 떠올라요.

어떤 교사가 되고 싶나?
교사라는 생각이 아직 안 들어요. 어디 가서도 교사라고 말 못해요. 교사를 떠나서 제가 생각하는 가치가 삶 속에 녹아 있으면 좋겠어요. 의식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요. 선생님들 사는 모습을 통해서 저도 배웠듯 제가 사는 모습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대안교육은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교육'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육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잖아요. 세상살이에 필요한 틀에 맞는 사람을 만들어내야 하니까요. 때로는 충동적이고, 불규칙하고, 게으름 같은 것들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어요.

끝으로, 그는 대안학교 출신으로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에 대해 큰 부담은 없다고 쿨하게 말했다. 짧은 문답 속에서도 그가 선생이 되면 나보다 좋은 선생이 되리라 한 예언이 들어맞는 듯해서 나는 기뻤다. 교육에서는 이렇게 예측 가능한 희망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교육이란 말 앞에다 억지로 '대안'을 갖다 붙이지 않아도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남호섭 님은 경남 산청 간디학교 교사로 십 여년째 아이들과 지리산 품에서 살고 있습니다. 동시집 《타임캡슐 속의 필통》과 《놀아요 선생님》을 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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