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호 2011년 여름 살림,살림

[ 시골살림길잡이 ②먹고살기 ]

내 앞가림 잘하면 세상평화 절로 온다

글 전희식

경상남도 함양군에 가면 서상면이라고 있습니다. 제 고향이 고 바로 아래 함양군 서하면이니 서상면은 아주 눈에 훤한 곳이지요. 며칠 전에 이곳에 갔습니다. 영각사라는 절 바로 밑에 있는 마을인데 이곳에 정착한 귀농 후배 부부를 만나러 갔는데 이 부부는 원래 후배라기보다 제 의조카입니다. 의형제, 의붓아버지는 흔해도 의조카는 좀 생소합니다만 제가 작년 가을에 부산귀농학교에 강의를 갔다가 조카로 삼은 부부입니다. 서상으로 귀농을 한다기에 어찌 반갑든지 강의 뒤풀이 때 위아래 좌우를 한참 따져 보다가 그들의 아버지가 제 셋째 형님뻘이라 조카 삼기로 한 것입니다. 이제 막 30줄에 올라 선 그 젊디젊은 부부네 집에 당도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새 집을 다 지었고 이사도 끝냈고, 고추도 한 300평, 뚱딴지라 부르기도 하는 돼지감자를 한 2천 평이나 심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요즘 한참 올라오는 산나물 뜯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두릅, 고사리, 다래순, 취, 돈나물, 머위 등.

농토는 마을 어른들께 빌렸고, 산으로 들로 오가다가 불쑥 영각사에 가서 주지스님께 인사를 드렸더니 마침 부산에서 절에 와 있던 보살 한분이 자기 땅이 여기 있다면서 부쳐 먹으라고 해서 또 땅을 얻었고, 옆 동네로 먼저 귀농한 선배한테서 관리기 빌려다가 밭 갈았고, 집은 재료비 2천만 원에 인건비 조금 해서 거의 자기노동만으로 3천만 원에 25평쯤 되는 집을 지었다고 합니다.

피 한 톨 안 섞이고 마음으로 맺은 것이긴 해도 조카 삼촌지간이라 그런지 이 부부가 저랑 좀 비슷한 거 같습니다. 특별히 짜임새 있는 계획도 없이 그냥 '널널한' 마음으로 귀농을 한 것이나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살아 내는 것이 그렇습니다. 도시를 떠날 때의 그 초심 하나 놓치지 않고 살려는 것도 비슷합니다. 널널하면 널널하게, 빠듯한 마음이면 빠듯하게 살게되는 게 사람 사는 이치 아닐까 합니다. 자연에 맡기고 살면 자연스런 삶이 되는 것이고 자연에 거슬러 살면 부자연스런 삶이 되지 않겠어요?



뭘 먹고 살지? 그런 걱정부터 버려라

농촌에 가서 뭘 해 먹고 살면 좋을지 얘기하는 이 글에서 뭔가 좋은 아이디어 하나 건져서 시골살이를 편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이는 제 얘기에 실망할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지자체나 귀농 선배들이 하는 고만고만한 귀농안내서 같은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 합니다. 시골로 가서 뭐 해 먹고 살아야 하는지는 사람마다 하는 이야기가 다를 것입니다. 얘기마다 다 맞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시골 가서 뭐 해 먹고 살아야 할지 아등바등 머리 싸매고 고민해서 내려가면 늘 아등바등 머리 싸매고 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살아보니 벌써 17년 동안 시골살이라는 게 뭐 하나 제대로 빈틈없는 계획에 따라 진행된 게 없습니다. 내려 올 때도 그냥 덜렁 내려왔지만, 살아 온 것도 그냥 어떻게 잘 되겠지 하면서 17년을 살다보니 이번 5월에 나온《내 손으로 시골집 고쳐 살기》까지 책도 다섯 권이나 냈고, 농사도 안 지어 본 게 없을 정도고, 애들 유치원 때 내려왔는데 둘 다 장성해서 제 갈길 잘 가고 있고, 집도 세 채나 지어 봤고 귀농이나 생태적인 삶에 대한 강의도 가끔 나가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빠듯하지 않게 사니 이런 저런 기회가 오면 그냥 덥석 잡아버립니다. 전주국제영화제 주최의 무료 워크숍 4개월 과정을 농한기인 겨울철에 등록해 공부한 덕에 아마추어 영화감독으로 데뷔해 영화관에서 자그마치 관객 400명을 모아놓고 상영하는 영광(?)도 있었고, 단소니 대금이니 기타니 하는 것도 해 보고, 노모도 시골로 모셔 와 같이 살 수 있게 되었고, 유럽, 일본, 중국, 호주, 인도, 싱가포르로 해외여행이나 연수도 다녀왔습니다. 제 돈으로 몇 년 적금 부어서 하려 했다면 꿈만 꾸다 말았을 것입니다. 우연찮은 기회에 다 공짜로 했습니다.

계획을 세워 몇 년을 안 먹고 안 쓰고 해서 이룬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거의 모두 다 즉석에서 아니면 이 삼주 전에 덜컥 기회가 와서 한 것들입니다. 웹에이전시 회사도 만들어 시민단체나 대안학교 사이트도 개발해 봤고, 무역회사도 만들어 북한에 밀가루 등 식량도 보냈습니다.

책도 작정을 하고서 글을 써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냥 글 쓰는 게 좋아서 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을 뿐입니다. 처음에는 아이들 일기 지도를 하면서 같이 글을 쓴 게 시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안 해 본 것은 시설농사 즉, 비닐집 농사는 안 했습니다. 그냥 안 하게 된 게 아니고 이것만큼은 절대 안 해야 진정한 농부려니 하는 고집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잘 한 것 같습니다. 비닐집 농사 시작 한 사람들 보면 밤낮이 따로 없고 농한기 농번기도 없습니다. 늘 종종거리며 정신없이 일하고 삽니다. 돈을 많이 버는 만큼 많이 씁니다. 농사짓는 사람이 천하의 근본이라고 하는 것은 하늘을 거스르지 않고 계절과 기후와 자연 조건을 있는 그대로 잘 모셔가며 농사짓는 경우에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절기와 날씨와 기온을 거슬러 시설농사를 하는 것은 천하의 근본은커녕 천하를 괴롭히는 행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귀농해서 뭘 어떻게 해서 밥 먹고 살지 걱정하는 분들에게 제가 생각해도 황당하기 짝이 없지만 일단 그 걱정부터 내려놓으라고 합니다. 대책 없이 내려놓으라고 말 합니다. 걱정을 안 하면 걱정 할 일이 안 생긴다는 게 제 신념입니다. 귀농해서 실패하고 빚더미에 올라앉은 경우는 백이면 백 모두 다 돈 벌려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살아갈 걱정을 산더미처럼 하면서 무리해서 이것저것 시도하다 빚더미에 올라앉습니다.

물론 이게 말처럼 되는 건 아닙니다. 걱정은 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니고 그냥 되는 것이니 말입니다. 생각을 하고 싶어서 합니까. 그냥 생각이 나고 그것을 쫒다보니 생각에 매여 삽니다. 내가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생각이 나를 거머쥐고 이리저리 뒤흔들 듯이.

일의 종이 되지 말자 하고 싶고 재미난 일을 하라
제 얘기를 수긍하는 분들도 정작 돌아서면 다시 막막한 가 봅니다.

"나는 당신처럼 글도 쓸 줄 모른다. 나는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나는 농사지어 본 경험도 없다."

제가 책을 다섯 권이나 냈지만 사실 저는 중학교 때 처음으로 연애편지를 썼다가 맞춤법이니 띄어쓰기니 표현력이 서툴러 여학생이 편지를 받는 것 자체가 창피했는지 빨간 볼펜으로 온통 벌겋게 수정해서 되돌려 준 일도 있습니다. 20대 중반에는 어느 잡지사에서 제가 하던 공장 활동을 토대로 글을 써 달라고 해 한 달 내내 끙끙대며 25매를 썼지만 실리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원고 매당 500원인가 원고료가 통장에 들어 왔기에 이유를 물어보니 채택되지 않은 청탁원고에 주는 원고료라는 말을 듣고 얼굴이 홍당무가 된 적이 있습니다.

농사도 구경만 했지 직접 지어 본 적 없었습니다. 우리가 자식 키울 때는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라',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하지만 정작 자신의 삶은 그렇게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명나는 일을 하면 자신 안에 있는 흥이 절로 살아나고 그러면 관계도 잘 풀리고, 안 보이던 여러 기회들이 다 보이고, 그러다 보면 돈도 벌리고, 건강해서 의료비도 안 들고, 나아가서 자동차 접촉 사고 하나 안 나는 게 다 천지조화의 삶이 아닌가 합니다.

일하는 사람이 노래도 만들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려야 그게 살아 있는 예술이라고 돌아가신 이오덕 선생이 말씀하셨습니다. 일을 해야 감성이 열립니다. 노동은 천지만물과 소통하는 통로입니다. 그러나 신명난 노동이 아니라 돈벌이 노동이 되면 잡초는 원수가 되고 소니 돼지니 콩이니 고추니 나락은 다 돈이 됩니다. 그러면 창조의 기쁨, 생산의 희열은 없어지고 가슴과 머릿속에는 돈의 액수만 춤을 춥니다. 고객관리랍시고 프로그램 깔고 택배 보내느라 헉헉댑니다.

여유 있게 살면서 흥이 나면 흥도 나누고 공감하는 사람들끼리 일판도 춤판도 벌이고 사는 것이 시골로 올 때 마음먹은 것일 텐데 어쩌다 보면 이런 초심은 어디로 가고 해야 할 일만 겹겹이 쌓여 하고 싶은 일은 할 겨를이 없습니다. 이래서는 안 됩니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어찌 살 수 있겠는가.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 하는 일이 얼마나 많으냐고 하실 테지요? 그렇습니다.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하고 싶은 신나는 일로 전화시키는 힘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야 내 삶의 주인이 될 것입니다. 노예가 꼭 고대나 중세에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지금도 엄청난 노예들이 많습니다. 일의 노예, 돈의 노예, 술과 노름의 노예 등등. 모두 다 자기 삶의 주인이 아니라 종인 것이지요.



돈 때문에 돈을 벌어야 하나?
이제 당위와 의무, 분노와 주관적 사명감으로 살 때는 아닌 것 같습니다. 소를 키워라. 오미자가 좋다. 사과나 배를 기르자. 블루베리. 야생 차. 각종 장류, 농촌체험, 교육농장, 산촌유학 등 시골 가서 살려고 하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주제들이 많습니다. 농촌보험도 여러 상품들이 나오고 방과후학교, 이주여성센터, 지역아동센터 같은 일자리도 자주 소개됩니다. 빈집조사활동도 있고 인구조사 보조원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고 싶은 일이 아니면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돈 때문에 억지로 하면 병나고 사고 납니다.

사실 우리가 먹고 자고 옷 입는데 드는 돈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어디에 돈이 많이 들어가나요? 자동차, 통신비, 자녀교육비, 건강의료비, 난방비 등이 꼽힐 것입니다. 이게 정상인가요? 돈을 벌기 위해 자동차, 스마트폰, 의료비, 에너지비가 드는 건 아닌가요? 어처구니없는 악순환이죠.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신명나게 살려면 방법이 있습니다. 먼저, 내 앞가림을 잘하는 것입니다. 내가 온전히 잘 사는 데에만 전념하는 것입니다. 애들 교육, 내 앞가림이 먼저입니다. 애들은 애들대로 복을 타고 납니다. 부모 모시기, 일가친척간의 도리, 사회활동 모두 내 앞가림만 잘하면 절로 풀립니다. 자기 한 몸, 자기 마음 하나 건사하지 못하면서 남의 생각까지 좌지우지 하려고 이러쿵저러쿵 하면서 다툽니다. 사람관계가 악화되는 것만큼 에너지가 쓰이는 게 없습니다. 요즘 '패시브하우스'라고 에너지를 아예 안 쓰는 집이 유행인 모양인데 정작 자신의 생체에너지를 탕진하는 스트레스 만드는 일은 방치하는 것 같습니다. 내 앞가림 잘하는 것은 인류평화의 첫걸음입니다. 우선 내가 온전히 평화로우면 세상 평화도 비로소 시작됩니다.

다음은 대상에 집중하여 일체가 되는 일입니다. 일이면 일. 사람이면 사람. 사물이면 사물에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지극한 마음으로 다가 가는 것입니다. 비가 오면 밭에 모종을 옮겨야 합니다. 비 오기 전에 풀도 매 놔야 합니다. 이처럼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자, 옥수수 한판에 모종이 몇 개입니까? 72개입니다. 같은 날 심었으니 다 같아 보이지만 단 한 개도 같은 게 없습니다. 잎이면 잎, 뿌리면 뿌리가 서로 다 틀립니다. 같이 자라고 있는 호박모종이 쌍떡잎이고 옥수수는 외떡잎입니다. 이런 것이 눈에 보여야 합니다. 한 포기 한 포기 옮겨 심을 때마다 이런 것이 눈에 보이고 하나하나 특색이 손에 잡혀야합니다. 그래야 일이 즐겁습니다. '해야 할 일'을 '하고 싶은 일'로 전화시키는 방법이 이것입니다. 세상 어떤 것도 유심히 그 내면으로 들어 가보면 신비하고 경이롭지 않을 게 없습니다. 세계여행을 떠나야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게 아닙니다. 일상이 다 새로운 것임을 발견하는 것이 시골에서 농사짓고 살 때 만끽하는 특혜입니다. 이럴 때 농사일의 주인이 내가 되고 스스로가 동네일이나 사회활동의 주체가 됩니다.

농촌으로 내려가도 환경조건과 행정지원, 개인의 특장에 따라 다양한 경제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 참으로 하고 싶은 일, 재미있는 일을 하면 행복하게 먹고 살게 될 것입니다. 이때의 재미는 보람도 함께 해야 할 것입니다. 재미만 추구하면 유희가 됩니다. 참 기쁨일 수 없습니다.

귀농운동본부 공동대표이기도 한 전희식 님은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존엄성을 지켜드리자는 생각에 전라북도 장수의 산골에 내려가 함께 살며 그 경험을 《똥꽃》, 《엄마하고 나하고》에 펴냈습니다. 귀농해 살면서 경험하고 느낀 점을 토대로 귀농, 귀촌하는 후배들에게 길라잡이가 되어줄 글을 4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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