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호 2011년 여름 [특집] 원자력, 쉼표가 필요해

[ 자연 속 쉼② ]

억지로 일하지 않으면 일과 쉼이 따로 없네

글 안혜령

이른 아침
잠깐 부엌 문턱에 걸터앉았다. 아침 햇살이 고요한 마당에 비껴들고, 꽃을 떨어뜨린 늙은 산수유는 새잎들을 부지런히 피워 올리고 있고, 뒷산은 연녹색으로 풍성하고, 사위가 적막한 가운데 간간이 새들이 부르고 답하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울린다. 무심히 바라보다가 문득 행복해진다. 이토록 평화로울 수가. 낱낱의 존재가 한데 어울려 이루어내는 이 아름다운 조화라니. 그 청량한 기운을 흠뻑 들이마신다.

봄은 온 천지가 크게 기지개를 켜면서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때, 꽁꽁 묶여 있던 만물의 기운이 새롭게 터져 나오는 때다. 그 활발한 생명력이 내 몸에도 싱싱한 기운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느낀다. 겨우내 방바닥에 등 붙이고 지내던 몸이 자꾸 들썩이고, 가슴이 설레고, 마음은 자꾸 밖으로 향한다.

봄기운이 일기 시작하면 산에, 밭에 뭔가 움직이고 있을 것 같아 꿈틀거리며, 솟아오르고 있을 것 같아 빨리 달려가 봐야 할 것만 같다. 가서 눈을 맞추고, '혹독한 겨울 잘 이겨내었구나. 영차, 힘내라!' 응원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그래 기어이, 찬바람 사그라들기도 전부터 집 안팎을 맴돌고, 뒷산을 헤맨다.

그렇지만 엄연한 자연의 질서가 내 뜻대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뻔히 알면서도 실수를 했다. 나날이 따스해지는 햇살만 믿고, 지난해 얻은 산딸나무 묘목을 옮긴답시고 북향의 언덕배기에 호미를 들이댔던 것이다. 겉흙이 보드랍고 폭신해서 내심 흐뭇했는데, 들이댄 지 얼마 안 돼 호미가 튀었다. 아차, 싶어 호미를 거두면서 내 어리석음과 조급증을 탓했다. 기다려야지, 땅의 속살이 다 제대로 풀리기를 기다릴 밖에.

천지의 기운을 타고 내 몸이 깨어나고, 땅이 깨어나기를 기다려 일하듯 시골에서는 일상이 자연의 흐름을 따라 이루어진다. 해 뜨면 일어나고 해 지면 잠자리에 들고, 해가 들면 일하고 비가 오면 일손을 놓는다. 순환하는 자연의 기운을 따라 봄이 되면 밭을 일구어 씨를 뿌리고, 한여름의 땡볕과 장마를 견디며 곡식과 채소를 기르고, 가을이면 거두고, 겨울이 되면 그 모든 기운을 내려놓고 쉰다. 땅도 쉬고 사람도 쉰다. 그리고 다시 봄, 그 응축된 기운이 올해는 또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펼쳐질까, 그게 궁금해서 가슴이 설레는가 보다.

올해는 뭘 심을지 궁리해 본다. 지난해 얻은 목화 모종 세 그루에서 받은 씨가 제법 되니, 밭 아래쪽으로 둘러가며 심어야겠다. 약솜 정도는 얻겠지. 꽃은 또 얼마나 예쁜가. 수세미도 다시 심어야겠다. 지난해 걸렀더니, 다 나눠주고 이제 설거지할 것도 없다. 참, 마당의 차조기를 밭으로 옮겨야겠다. 잎을 그냥 버려 아까웠는데, 효소를 담아봐야겠다. 머릿속에서는 심을 게 자꾸 늘어나고, 마음은 풍성해진다.

아침 먹고
모종을 밭으로 냈다. 추운 지방이라 사월까지도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하고, 심지어 서리까지 종종 내리는 탓에 하우스 안에 씨 뿌려 놓고는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요 며칠 갑자기 한낮 온도가 훌쩍 올라가니,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것 같다.

밭에 직접 씨를 뿌리거나 모종을 심을 때면 조심스러우면서도 즐거운데, 올봄에는 이 즐거움이 더욱 크다. 밭 흙이 지난해보다 더 좋아졌기 때문이다. 부슬부슬한 흙을 손바닥에 넣고 비벼대노라니 감회가 새롭다. 처음 왔을 때, 이 일대는 온통 자갈밭이었다. 게다가 담배와 옥수수 농사를 내내 지었다는 밭은 곳곳에 둘둘 말린 비닐과 화학비료 자루들이 처박혀 있고, 땅은 질고 박했다. 비라도 한 번 내리면 장화가 푹푹 빠져 꼼짝도 않아 발만 쑥 빠져나왔고, 날이 개면 금세 땅이 딱딱하게 굳어 호미를 댈 수가 없을 정도였다.

예전에 유기농업의 선구자라 할 만한 분들을 찾아뵐 기회가 있었는데, 그 댁 땅들은 어찌 그리 좋던지 걸고 폭신하고 부드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시골에 처음 왔을 때 나는 땅이란 다 그런 줄만 알았다. 씨를 뿌리기만 하면 절로 자라 열매를 맺는 줄 알던 푼수였으니, 우리 밭의 땅을 보고는, 호미를 한번 대 보고는, 그저 경악할 뿐이었다. 이게 밭이라고? 새삼 그분들이 우러러보였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유기농이란 땅을 살리는 일이라는 말이 가슴을 때렸다. "손이 썩어도 유기농한다" 고집하던, 이제는 돌아가신 보은의 이철희 씨가 떠올랐다. 그렇게 평생 삶의 근본을 지키기 위해 애썼던 그분들 생각을 하면, 그분들 땅이 그토록 부럽다면, 내 입 호사하기 위해서, 내 몸 하나 건강해지기 위해서 유기농산물을 먹자는 건 안 되겠다. 유기농이 대세니까, 비싸게 팔 수 있으니까 유기농업을 한다고 나서서도 안 되겠다. 그건 내 식구 등 따습고 배 불릴 일만 생각하는 편협한 이기주의에 다름 아니며, 오로지 이윤만을 좇는 자본주의 논리에 나를 맡기는 것이다. 그게 싫어 시골에 온 게 아니었던가.

일은 더디고 몸은 고달프지만, 호미 들고 곰곰이 땅 들여다보며 풀도 매고 북도 돋우노라면, 그 많은 생명들을 품고 있는 땅에 대한 경외심, 뭇 생명에 대한 연민이 절로 일어난다. 진도의 장금실 씨가 그랬다. 작물 키워 뽑아 먹으면서 "내가 만날 너 잡아먹고 산다. 미안하다"고. 그 말이 어찌나 절절하던지 풀을 매면서 나도 번번이 중얼거린다. 미안하다고.

포클레인이나 예초기에 의존해야 할 때가 없을 수 없지만 되도록 쓰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은, 그 기계들이 가진 일방적이고 기계적이며 맹목적인 작업 방식이 도무지 마음이 편치 않기 때문이다. 예초기를 휘두르다 잘려 나간 풀꽃들, 어린 묘목들이 얼마나 많은지. 칠팔 년 동안 집 꼴을 갖추느라고 몇 차례 큼직한 공사를 벌이면서 사라진 취밭, 고사리밭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전봇대를 박느라고 텃밭 일부가 허물어지면서 그 해 호박은 몽땅 포기해야 했던 일이며, 잠깐 한눈파는 사이에 당귀와 쪽파를 심은 이랑이 무지막지하게 조각나고 사라진 것은 참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 그런 경험을 나만 갖고 있는 게 아니어서 이웃 마을 아주머니 한 분도 "포클레인 한 번 들어왔다 나가면 다 망가져"라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문득 연변에 계신 분이 들려준 이야기가 생각난다. 두만강의 중국 쪽 경계에서 북한 농부 한 사람을 만났단다. 기계화하고 산업화한 한국 농업의 '비약적인 발전'을 자랑스럽게 떠들었는데, 묵묵히 듣고 있던 그 늙스구레한 농부가 "그게 농사여?" 내뱉고는 자기 땅으로 돌아갔다 한다. 그 속뜻이 짐작이 간다.

나는 그 농부 편에 서겠다. 겨우 식구들 먹는 채소 정도 키우며 텃밭을 일구는 처지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내 손으로 흙 만지며 농사짓는 일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땅을 돌볼 수 있는 눈이 트이고 마음이 깨인다고 믿는다. 땅을 돌본다는 것은 땅을 의지하고 있는 무수한 생명을 아울러 돌본다는 말인즉, 그 무수한 생명의 하나인 내가 어찌 땅을 함부로 대할 수 있으랴.

새삼스럽게 밭을 휘 둘러본다. 밭의 절반은 까만 비닐로 덮이고, 골에는 방수포가 덮였다. 한여름 풀매는 수고 덜어준다며 부득부득 비닐을 고집한 남편 덕에 올여름에는 고생이 좀 덜할까. 까만 비닐만 보면 내 숨이 막혀 버리는 듯싶어 안타깝지만, 남편의 자상한 배려에 대한 배려로 한발 물러섰다. 그래도 벌써 기세등등하게 잎 내밀고 있는 풀들이 훤히 보이는 절반 땅은 그래, 내 몫이다. 내 맘대로, 내 식으로 해야지.
토마토는 습기를 싫어하니까 맨 위로 올려야겠다. 사이가 안 좋다니 피망은 멀직이 떨어져 심어야겠고. 가지는 건조한 걸 싫어한다는데 저쪽 좀 진 자리에 심어도 될까. 오이와 강낭콩을 함께 심었더니 한 지줏대를 타고 사이좋게 쑥쑥 자라던 걸 잊지 말자. 고추는 자리를 바꿔주고 그 앞에 배추를 심고, 토마토 아래 대파를 옮겨야지.

열심히 풀매고, 왕겨를 부어 덮고, 틈틈이 효소며 목초액을 뿌리고, 내가 일한 그만큼 땅은 건강해질 것이다. 그만큼 겨울잠도 한결 달고 편해지지 않을까. 웃음이 배어난다.



오후 두 시쯤에

뒷산에 올랐다. 홋잎이며 머위는 벌써 잎이 다 피었고, 다래며 취, 고사리가 한꺼번에 쑥쑥 돋아나는 바람에 날마다 뒷산을 헤집고 다닌다. 하루 세끼 밥 차려 먹을 때를 빼면 온종일 바깥에서 맴돌며 살아도, 봄날 하루해는 왜 이리 짧은지.

남편은 내가 일을 너무 많이 한다고 걱정한다. 하긴 아침에 눈뜨면 밤에 자리에 누울 때까지 내 방에 들어가지도 않는 날이 부지기수니 그런 말을 할 만도 하다. 그러나 일이란 생각하기 나름이어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양을 해치워야 하는 식이라면 농사는 참 고달픈 직업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일해야 하는 때도 분명 있긴 하다. 그렇지만 “밖에 놀 일이 꽉 찼다”던 장금실씨 말에 나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뒷산에 가는 일은 놀러가는 일이다. 밭에서조차도 반은 놀이이니, 꼬박 허리 구부려 일만 할 수는 없다. 오늘 할 일을 정하고 밭에 들어가지만, 일하다 지치면, 그날따라 눈길이 자꾸 옆으로 새면, 그걸로 끝이다. 밭 옆을 흐르는 작은 계곡을 찾아들거나 뒷산에 가 산그늘을 의지하고 앉아 하늘도 보고, 나무도 올려다보고, 새소리도 듣고, 바람 소리도 듣는다. 일하다 말고 이렇게 우아하게 쉴 수 있는 직업이 또 있을까.

뒷산을 오르노라면, 숲길을 걷는 것 자체가 한갓진 일일 뿐더러, 나물 찾느라 두리번거리면서 숲속의 나무와 풀들을 세세히 들여다보게 되는 즐거움도 여간 크지 않다. 지난해 이 모퉁이에서 발견했던 팥배나무가 이렇게 컸네, 저기 군락지에 앵초가 활짝 피었구나. 으름이 너무 왕성하구나, 좀 쳐줘야겠다.

오래된 다래 덩굴 하나를 찾았다. 갓 피기 시작하는 어린순들이 빼곡하니 줄지어 달렸다. 웬 횡재람. 부지런히 손을 놀려 허리에 두른 앞주머니에 따 넣는다. 오늘 저녁 한 끼는 충분히 먹고도 남겠다 싶어 신이 났다.

취도 웬만큼 뜯고 내려와 집 언저리에서 고들빼기, 어수리, 곰취, 땅두릅까지 보이는 대로 뚝뚝 끊어 앞주머니에 넣으니 주머니가 불룩하다. 벌써 배가 부르다.


내일 비가 온다더니, 벌써 빗방울이 돋는다. 비가 오니 내일은 ‘공식적’인 휴일이다. 늦잠을 잘 수 있겠다 싶어, 봄 되고 밀쳐 두었던 책을 다시 펼쳐 들었다. 10시도 안 되었는데, 몸이 노곤하여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자리를 깔고 누웠다.

밤 10시
지난 월요일에는 이 시간에 서울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생맥주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도시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일이겠지만, 예전 같았으면 초저녁이거니 했겠지만, 이젠 감당이 안 되어 서울 한번 다녀오면 그렇게 피곤할 수가 없다. 자고 깨는 시간이 일정하고, 일상이 규칙적으로 흘러가는 질서가 몸에 밴 탓일 게다. 이 단순한 삶이 편안하다. 자리에 누워 빗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비가 오면 멀뚱하니 유리창 너머로 ‘관람’만 하는 게 아니라, 빗소리도 요란하게 듣고, 빗줄기가 팍팍 땅바닥에 내리꽂히는 것도 본다. 그렇게 살아야 숨이 트일 것 같아 시골에 왔으니, 이 밤에 또 한 번 소원이 이루어진다. 감사하다.

안혜령 님은 귀농한 지 팔 년째에 접어들지만, 아직도 도시물을 완전히 빼지 못해 어수룩하고 어중간한 시골 사람으로 살고 있다. 그렇다고 다시 도시에 돌아가 살 생각은 전혀 없다. 꼬부랑 할머니가 될 때까지 밭일을 계속할 것이며, 제손으로 벼농사 짓는 것이 꿈이다. 나이 좀 먹으면서는 "곱게 늙는 것"에 대한 꿈도 함께 꾸고 있다.


http://www.salimstory.net/renewal/sub/view.php?post_id=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