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호 2011년 여름 [특집] 원자력, 쉼표가 필요해

[ 원자력① ]

고삐 풀린 욕망이 예고한 파국, 후쿠시마

글. 황도근

며칠 전 봄비를 맞으며 텃밭을 손질하다가, 장맛비처럼 굵어지는 빗줄기에 일손을 놓고 여주에 있는 대학 선배의 전원주택을 찾았다. 잘 정리된 뜰에서 비온 뒤에 잔잔히 구름 낀 앞산을 보다보니, 그 아름다운 연녹색 산등성이에 거대한 송전탑들이 줄지어 능선을 타고 서울을 향해 뻗어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 주변의 거의 모든 산들은 거대한 송전탑을 몇 개씩 머리에 이고 있으며, 더욱이 서울로 갈수록 송전탑의 규모는 더욱 거대해지고 거미줄처럼 얽혀있어, 그 주변을 지나갈 때는 움찔한 무서움을 느끼곤 했다. 언젠가 서울에서 열린 물리학자들 모임 중에 원거리 전력공급에 따른 전력손실을 줄이는 방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을 때, 죽 듣고 있다가 내가 한마디 던졌다. “전력은 거의 수도권에서 사용하니 인천 앞바다에 원자력 발전소 큰 걸로 몇 개 지읍시다. 그럼 송전탑도 줄이고 전력손실도 없을 테니까.” 순간 묘한 표정과 쓴 웃음들이 스며나왔다.

뉴스에서 본 지 두 달이 지났는데도 거대하게 밀려오던 쓰나미의 검은 물줄기를 잊을 수 없다. 인간이 만든 문명이 작은 장난감처럼 가볍게 구겨지는 모습에서, 두려움보다는 자연에 대한 경배와 겸손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 한순간의 쓰나미로 거의 2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런 엄청난 피해를 입었는데도 몇 달이 지나면서 일본의 지진해일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조금씩 잊혀지고 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의 두려움과 관심은 아직 한명의 사상자도 없는 작은 인간구조물 후쿠시마의 핵발전소에 점점 쏠리고 있다. 핵발전의 문제점들이 거대한 사회적 이슈로 확대되고 있고, 어이없는 공포심으로 다시마와 소금 사재기 수요가 코미디같이 춤을 추고 있다.

원자핵은 판도라의 상자
1922년 6월 독일의 괴팅겐에서 과학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원자물리학자들이 모두 모여 닐스보어의 원자의 양자이론과 원소의 주기율에 관한 연속 강연인 “보어 축제”가 열렸던 것이다. 그 자리에는 노벨상을 받을 젊은 천재들인 페르미, 파울리, 슈뢰딩거, 그리고 하이젠베르크 등이 모두 모여 있었고, 결국 그들은 물질의 깊은 속인 원자핵을 들여다 보게 되었다. 자연을 이해하고자 했던 젊은 천재들이 핵이 들어있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고 싶은 욕망을 어떻게 막을 수 있었겠는가. 그들 중에 정말 멋지고 사회적 인식이 강렬했던 하이젠베르크는 나치군의 우라늄클럽인 군사연구소에서 핵무기의 심각한 문제점을 알고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고, 그 개발을 늦춰 보려고 노력했으나 이미 미국으로 건너간 동료학자들에 의해 핵무기는 진행되었다.

원자핵 문제를 깊이 고민하며 고통스러워하던 또 하나의 물리학자는 안드레이 사하로프이다. 1961년 소련의 북극해에 있는 노바야젬랴 섬에서 초대형 짜르 수소핵폭탄을 폭발시켰을 때 그 위력은 일본 히로시마 핵폭탄의 3300 배 규모였다. 원래는 이보다 두 배 큰 1억톤 규모였다가 지구에 떨어지는 방사능 낙진의 양이 너무 많아서 이를 절반규모로 줄였다고 한다. 사하로프는 1953년부터 시작된 무차별 핵실험을 10년 가까이 지켜보면서 죄책감과 무력감에 사로잡혀있었다. 핵실험이 성공한 어느 날 소련군 고위 장성과 함께 한 축하파티자리에서, 아내가 “당신은 그저 강하게만 만드세요. 인도는 내가 할테니 “라는 농담을 하는 것을 본 사하로프의 심리적 충격은 어떠했을까. 그 이후 그는 가장 대표적인 반체제 인사가 되어 유배와 단식 등으로 치열한 삶의 투쟁을 해야 했다.

이미 우리는 오래전에 알고 있었다. 핵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던 물리학자들도, 그것을 철저히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던 정치가들도, 수없이 많은 원자폭탄실험에 의해 사라진 섬을 지켜본 핵폭탄 집행자들도, 그리고 방사능 낙진을 맞은 수많은 피해자들도 모두 원자핵의 심각한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원자핵 자체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결국 인간의 욕망과 경쟁이 우리를 지배하는 한, 그렇게 처참한 경험을 우리는 반복하려하고 있다. 지금도 권력의 욕망을 유지하기 위해서 북한에서는 사용하지도 못할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고 그 난리를 피우고 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는 자본주의가 만든 인재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논란은 50년이 지났어도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확실히 다른 점이 있다. 체르노빌은 단순히 기술적 사고였다면, 후쿠시마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인재인 것이다. 물론 대형 쓰나미로 인해 전력장치의 문제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지만 지금처럼 손대볼 수 없게 확대된 것은 도쿄전력이라는 민영회사의 욕망의 역사와 자본주의 시장경쟁에서 비롯되었다.

여러 기술적 문제보다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도쿄전력의 시미즈 사장의 태도와 회사의 내력이다. 도쿄 전력은 리만 브라더스 보다 10배나 더 큰 회사이며 일본 전력 수요의 29%를 담당하여, 도쿄 대도시 지역의 2백만 사업체와 2천 6백만 가구에 전기를 공급하고 있다. 시미즈 사장은 도쿄전력의 발전소 자재 조달을 오랫동안 담당했다. 이 업무를 담당하면서 비용을 극한까지 줄이는 능력을 인정받아 성장한 인물이며, 자재부장이었던 1995년 당시 도쿄전력에서 사용하던 유니폼을 전부 중국제로 바꿔 3억 엔의 비용을 절감한 점을 인정받아 부사장에 취임했고, 이때부터 도쿄전력의 핵심 인물이 되어서 별명이 '코스트커터(Cost Cutter)'였다. 즉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비용을 절감하는 경영방식으로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거대기업의 사장이 된 것이다.

또한 도쿄전력의 내력을 보면 이 회사는 적자운영을 만회하기 위해 과거부터 각종 은폐와 느슨해진 안전규정 준수의 여러 사례를 보여 왔다. 카시와자키카리와 원전에서 방사능 누출로 사람이 죽은 사건, 1992년 예비용 냉각 펌프가 고장나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정상적으로 동작하는 것처럼 조작해서 일본 정부의 조사에 합격한 사건, 2007년에는 문제가 된 후쿠시마 제 1원전의 4호기에서 회로 차단기의 문제로 비상발전기 화재가 일어났지만 이를 축소 보고한 사건, 2008년에는 후쿠시마 원전의 안전점검반에 17살의 근로자를 불법 고용했다가 문제가 된 사건 등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모든 사건이 위기상황에 대한 대응능력보다 운영수익에 골몰한 민영기업의 전형을 보여준 사례들이다. 결국 여러 사건으로 발생한 수천억 엔의 적자 규모를 줄여야하는 자본적 경영논리가 도쿄전력 주식회사의 주요 정책일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2030년까지 원자력을 이용한 전력 생산량을 두 배 수준으로 확대한다는 일본정부 계획에 따라서, 14기의 신규 원전 건설과 함께 기존 원전들의 생산량을 늘려 더 오랫동안 운영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40년 동안 사용한 후쿠시마 원전 1호기의 수명 연장 문제는 회사운영상 중요한 경제적 문제였다. 결국 적자로 인한 운영수익 문제에 골몰해 있는 민영기업 도쿄전력으로선 당장 발생할 운영상의 결함에만 대응하는 소극적인 접근 방식을 굳혀갈 수밖에 없었으며, 이것이 이번 쓰나미로 인한 후쿠시마 핵재앙 사태를 제대로 대처할 수 없었던 인재의 큰 원인이었던 것이다.



대체에너지보다 먼저 우리 삶의 형태를 바꿔야
자연의 본질을 이해하려고 원자의 내면을 들여다본 인간의 능력을 탓할 수도 되돌릴 수도 없게 되었다. 최근에는 생명체의 본질을 이해하려고 수많은 통찰력을 가진 학자들이 파고들고 있다. 생명의 내면을 들여다본 순간 인간은 원자력문제 보다 더한 생명체 조작 문제에 당면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결국 우리는 자연의 내면을 파고들어 가려는 욕망보다는 아름다운 지구생명공동체를 잘 유지하기위해, 너무도 위험한 독점 자본주의적 가치관에서 빨리 벗어나려는 운동에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삶의 모습을 보여야한다. 후쿠시마 원전사태는 인간의 자본주의 욕망의 결정적 모습이기 때문이다.

핵발전의 위험성을 줄이기 위하여 대체에너지로의 전환을 주장하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그보다 우선 에너지를 무한정으로 쓰고자하는 우리 삶의 형태를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의 핵심이다. 경쟁적 소비주의와 화려한 밤의 문화에서 벗어나지 않는 상태에서는 문제의 본질을 전혀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 일단 우리나라의 원자력 발전 비율을 20% 이내로 줄이려면 모든 사람들이 10% 이상 에너지를 절감하는 삶의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전력소모를 확대하는 고층건물을 줄이고, 밀폐형 중앙 냉난방의 오피스텔을 개방형으로 바꾸고, 밤의 화려한 네온사인을 줄이고, 점점 대형화하는 가전제품을 자제하고, 지역물류와 소통을 늘리고, 화려한 디자인을 위한 제품생산을 줄이고, 밀집형 아파트보다 친환경 개인주택을 장려하는 등의 생활운동 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미 수많은 원자력 문제를 경험한 독일과 북유럽 사람들의 생명공동체적 삶을 추구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아야 한다.

요즘 한국은 신자유주의의 경쟁과 욕망에 지나치게 노출되어 모두가 생존의 문제로 불안해하고 있다. 조만간에 끝이 보이고 이제는 벗어나야 할 때가 왔다. 모심과 살림의 생명가치를 존중하고자 모인 한살림 생활협동조합 식구들은 누구보다도 앞서서 소비적 삶의 형태를 바꾸는 삶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것이 우리 미래에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황도근 님은 물리학자이며 상지대학교 교수입니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뜻을 좇아 학자로서의 본분만큼이나 생명운동가로서의 활동과 발언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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