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호 2011년 여름 살림,살림

[ 이 사람의 살림살이 ]

온 천지가 먹을거리, 버릴 게 하나도 없어요

글. 우미숙 / 사진. 김세진 전홍규

흐물거리는 상추, 뻣뻣한 양배추 겉껍질, 먹다 남아 말라버린 사과. 먹을 것이긴 한데 먹자니 마땅치 않다. 그렇게 쓰레기통으로 버려지거나, 비좁은 냉장고에서 몇 날 며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먹을거리들이 많다. 과일 ․ 무 ․ 오이 껍질처럼 아예 못 먹을 거라고 작정하고 버리는 것도 수없이 많다. 그러나 사람의 눈과 손에서 벗어난 이런 재료들이 김갑남 씨(51) 손에 들어오면 훌륭한 저장음식으로 탄생한다. 먹을거리에 유난히 욕심이 많은 김갑남 씨는 자투리 채소들을 모아 효소와 장아찌를 담가, 버려질 뻔한 재료들을 재사용한다. 그에겐 온 천지가 먹을거리라 버릴 게 하나도 없다.

그를 만나러 간 날, 그가 손님에게 맨 처음 내놓은 게 목련차였다. 마당에 꽃망울을 갓 피운 목련을 따다 잎을 가지런히 벌려 차 사발에 띄웠다. 그는 마당에 핀 꽃이 땅에 떨어져 시커멓게 색이 바래는 것조차 아깝다.



김갑남 씨는 12년 전, 상주 선교리에 내려와 농촌생활을 시작했다. 이곳은 옛날에 갯머리로 부르던 남편의 고향이다. 집을 짓고 밭을 마련해 식구들이 먹고살 만큼만 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김갑남 씨는 이때부터 들판의 꽃과 풀, 먹다 남은 자투리 채소를 설탕에 재 효소를 만들었다. 발에 밟히는 게 먹을거리로 보이고, 냉장고에 돌아다니는 오래된 채소들이 그에겐 요리 재료로 보였다. 오랫동안 보관하여 먹으려 하니, 말리거나 절이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렇게 발효해서 먹으면 소화기능이 약한 그의 속이 편했다.

나무에 달린 채 얼어버린 곶감도 장아찌로
그의 집엔 음식 쓰레기가 없다. 먹다 남은 무 자투리가 있으면 가늘게 썰어 같은 분량의 설탕을 부어 재 놓는다. 사나흘이 지나면 수분이 빠져나와 무는 무말랭이처럼 꼬들꼬들해진다. 단맛이 살짝 밴 꼬들꼬들한 무를 양념에 버무려 놓으면 무말랭이 무침, 바로 그 맛이다. 국물은 병에 담아 발효해 반찬을 만들 때 이용한다.

양배추 겉껍질, 당근 뿌리, 사과와 토마토 남은 것, 시든 채소도 눈에 보이면 굳이 항아리가 아니어도 남아도는 유리병에 담아 같은 분량의 설탕을 붓고 효소를 만든다. 이렇게 만든 효소들은 장아찌를 담글 때 필수 재료가 된다. 효소와 간장으로 담근 돼지감자 ․ 무 ․ 오이 ․ 고추 ․ 머위 ․ 취나물 ․ 원추리 장아찌는 김갑남 씨 집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요리다. 이렇게 온갖 먹을거리를 저장식품으로 만든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의 솜씨를 일찍 맛본 이들은 그를 발효음식 전문가로 부른다. 이런 별칭에 그는 손사래를 친다.

“무슨, 전문가까지요. 전 그저 유능한 살림꾼이라는 말이 더 좋아요.”


김갑남 씨의 살림 솜씨는 밥상에서 증명된다. 손님을 대접하려고 아침부터 들에 나가 채소들을 뜯어 왔고, 효소와 장아찌로 반찬을 만들었다. 점심 밥상은 노랑 · 보라 · 연분홍 빛 꽃 샐러드 덕에 화려해 보였다. 개나리 ․ 매화 ․ 제비꽃 ․ 달래 ․ 머위 ․ 유채 샐러드. 꽃과 음식은 머릿속에서는 꽤나 어울리지만 선뜻 젓가락을 대기가 쉽지 않다. 망설임 끝에, ‘김갑남 표’ 소스에 버무린 꽃샐러드를 젓가락으로 살짝 들어 올려 한입 먹어 보니 효소와 장아찌 국물로 맛을 낸 소스가 꽃에 살짝 스며들어 상큼한 맛을 낸다. 멋있고 맛있는 색다른 요리다.

효소를 넣은 김칫국물에 버무린 비빔국수도 맵지 않고 시원한 맛을 냈다. 김치를 잘게 썰고 국물을 체에 밭아 텁텁한 건더기를 걸러낸 국물에 무효소 두 수저만 넣으면 시원한 맛의 비빔국수를 만들 수 있다. 뜸이 잘 든 현미잡곡밥에 구수한 된장국도 특별하게 어울렸다. 별다른 국물 맛을 내지 않아도 2년 이상 묵은 된장 자체에서 깊은 맛이 났다. 국거리는 먹다 남은 채소류였다. 유채 · 머위 · 씀바귀 · 냉이. 이 집 밥상에서 빠질 수 없는 게 장아찌다. 깻잎 ․ 달래 ․ 오이 ․ 감 ․ 취나물 ․ 원추리 ․ 돼지감자 장아찌, 나무에 달린 채 얼어버린 감으로 만든 곶감장아찌. 이것만으로도 점심 밥상은 풍성하고 맛있었다.
말없이 먹기만 한다면 잘 차려진 밥상 위 음식들도, 먹는 사람들도 섭섭했을 터. 점심 밥상을 마주하고 효소와 장아찌 이야기를 다시 이어갔다. 10년 넘게 매일 하는 일이라 그런지 그의 입에서 ‘김갑남 표’ 요리법이 술술 쏟아져 나왔다.



김갑남표 요리법은 ‘손맛’

“복잡한 건 딱 질색이에요. 오랫동안 하다 보니 대충 양이 대충 익어요. 몇 그램, 몇 스푼 하는 것, 다 필요 없어요. 손으로, 눈으로 해결해요.”

장아찌 만드는 법을 설명하면 사람들은 으레 “식초와 간장을 얼마큼 넣어야 해요?” 하고 묻는다. "그냥 간간하면 돼" 하고 말하면 눈이 동그래진다. “이 정도, 이 만큼”하며 두 손을 써가며 아무리 설명해도 젊은 사람들은 꼭 숟가락 몇 개가 필요한지 되묻는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계량컵과 계량스푼을 구해 분량을 재기 시작했다.

효소와 장아찌를 전문으로 만들고 알려주려면 공부를 많이 할 것 같은데, 그는 "두꺼운 책을 보는 공부는 안 한다"며 잘라 말한다. 그에게 최고의 공부방은 인터넷이다. 정보검색부터 시작해 카페에서 경험을 나누면서 지식을 익힌다. 시내 은행에 가서 잡지를 보다가 좋은 자료가 있으면 슬쩍 찢어오기도 한다. 신문 스크랩도 열심히 한다. 하지만 그는 살림살이에서 배우는 실전 공부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그의 집 문패에 적힌 '신의터농원'이라는 이름의 인터넷 사이트를 들어가 보면 그가 공부한 자료들을 볼 수 있다. 그는 거기에서 효소와 장아찌, 된장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농사와 살림하는 일상을 글로 풀어낸다.

“세상 뒤집어져도 먹을거리 걱정 없어요.”
매년 만든 장아찌와 된장 ․ 간장 ․ 효소가 앞마당 장독대와 지하 저장고에 가득하다. 90여개가 넘는 마당 장독대에는 10년 이상 묵은 간장과 된장이 담겨 있다. 아마 큰 병도 고칠 수 있을 정도로 약이 될 거라는 게 주인댁의 평가다. 저장고에도 모과 ․ 산야초 ․ 복숭아 ․ 매실 ․ 무 등 온갖 효소들이 병에 담긴 채 진열되어 있다. 세상에 먹을거리가 모두 사라진다고 해도 지금 있는 것만으로도 평생 먹고살 수 있을 거라며 마음이 든든하단다.


또 하나 든든한 것은 집 밖의 들판이다. 그에게 들은 밭이고 장터다. 발에 밟히는 게, 눈에 보이는 모든 게 그에겐 먹을거리다. 머위 ․ 쑥 ․ 유채 ․ 달래 ․ 망초 ․ 민들레 ․ 개나리 등. 요즘엔 김칫거리로 민들레 잎을 열심히 따러 다닌다. 꽃 피기 전에 따야 하기에 마음이 바쁘다. 한 달 전에는 냉이를 캐다가 김치를 담가 주위 사람들과 나눠 먹었다. 맛있다는 말 한 마디에 힘이 솟는 그는, 냉이김치가 떨어져 아쉬워하는 이에게 민들레 김치를 만들어주겠다고 그만 대책 없이 약속을 해버린 것이다. 어깨가 빠질 것 같이 아프고 허리가 쑤셔도 온 천지 먹을거리가 눈에 밟혀 그냥 지나칠 수 없고, 맛있는 김치를 기다리는 사람을 생각해 아픈 줄 모르고 민들레를 캐고 있다.

"땅을 내려다보세요. 발밑에 있는 게 그냥 풀이 아니에요. 소나 양이 뜯어먹고 사는 건, 사람도 먹을 수 있어요."

이름도 모르는 초록빛깔의 풀들, 그저 다 똑같은 풀이었던 것이 그의 말을 들을 후에는 하나하나 독특한 모양과 색으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길게 늘어진 잔디 같은 풀이 달래였고, 들판에 흔하게 흩어져 있던 것이 머위와 망초였다. 이러한 풀조차 그에겐 효소의 재료이고 반찬거리였다. 하물며 먹을거리로 버젓이 인정받는 무 · 양배추 · 당근 · 오이의 껍질과 자투리가 어찌 그의 손에서 버려지겠나.

그는 매일 뭔가를 만드느라 일을 벌인다. 미리 짜 놓은 계획대로 일을 하는 남편과 달리 그는 아침에 눈뜨자마자 그날 할 일을 결정하는 식이다.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과 빠른 말투. 자신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에 비유하는 김갑남 씨. 살림하는 게 정말 재미있다는 그는 남들이 시키는 일은 억지로 떠밀어도 못한다. 오로지 자신의 방식대로 자신의 눈대중과 감각으로 일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런 성격이 있었기에 김갑남 표 자투리요리법과 효소 · 장아찌가 나온 것이리라.

효소를 이용한 샐러드 소스 만들기
효소(1큰술), 감식초(1큰술), 마늘장아찌(2쪽), 장아찌 국물(또는 간장 1큰술), 당근, 제철 과일을 믹서에 한꺼번에 간다.

자투리 채소와 과일을 이용한 효소 만들기
냉장고에 굴러다니는 채소나 과일, 과일 껍질과 같이 버리기에 아까운 것들을 모아 황설탕과 1:1 비율로 섞는다. 항아리나 유리병에 넣어 약 한 달 정도 그늘에 놓아둔다. 한 달 후, 건더기를 면 보자기에 받쳐 거르고, 액체만 병에 담아 6개월 이상 발효한다. 이때 뚜껑은 종이나 헝겊으로 덮어 고무줄로 묶어 놓는다. 병은 햇볕이 들지 않는 그늘에 두어야 한다. 효소는 처음 담근 후에 일주일 간격으로 저어야 공기와 닿는 표면에 곰팡이가 생기지 않는다.

효소를 이용한 장아찌 만들기
생채소(깻잎 ․ 취나물 ․ 명이나물 ․ 고춧잎 ․ 양배추 ․ 양파 ․ 마늘 ․ 마늘종 ․ 무)의 물기를 제거한다. 간장(1컵) ․ 효소(1컵) ․ 식초(1/2컵)를 부어 잘 눌러놓는다. 잎나물은 담근 후, 다음날 바로 먹어도 된다.



김갑남표 장아찌 담그기

* 고추의 꼭지는 절대로 떼지 않는다. 끝 부분에 바늘구멍을 두세 군데 낸다.
* 껍질이 있는 오이와 고추로 장아찌를 만들 때는 장물을 끓는 상태로 붓는다. 조직이 연한 채소로 장아찌를 만들 때는 장물을 완전히 식혀서 붓는다.
* 고추장장아찌를 만들 경우, 수분이 많은 재료는 소금에 삭히거나 절여 재운다. 깻잎의 향이나 가지의 어린 맛을 미리 절여서 없앤 후 장아찌를 담가야 한다.
* 초절임장아찌는 먼저 소금이나 간장으로 절인 후 식초 물에 담그는 것이 순서다. 간이 너무 짜지 않아야 새콤달콤한 맛을 즐길 수 있다.
* 된장장아찌는 깻잎일 경우에는 그냥 담그지만, 다른 채소는 절였다가 담가야 더 오래 보관할 수 있다. 수분이 많은 가지나 호박은 말리거나 절여 확실히 수분제거를 해야 한다. 된장장아찌는 묵은 된장을 쓰는 것이 좋고 너무 짜지 않아야 장아찌의 맛이 좋다.
* 깻잎을 된장에 박을 때는 망에 깻잎을 넣어 된장에 박으면 꺼낼 때 일일이 된장을 훑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다.

우미숙 님은 한살림에서 조합원 소식지를 만들고 글을 쓰는 일을 해왔습니다. 현재 한살림 성남용인 이사장이며 《살림이야기》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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