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호 2010년 가을 살림,살림

[ 살림의 현장① - 20년만에 다시 태어난 '한살림 선언' 《죽임의 문명에서 살림의 문명으로-한살림선언/한살림선언 다시읽기》 ]

이제 진짜 살림이야기가 필요하다

글 주요섭


《죽임의 문명에서 살림의 문명으로 - 한살림선언 / 한살림선언 다시읽기》

이제 진짜
살림이야기가
필요하다

 

 


 

어느 해 어느 달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1990년대 초 어느 날, 말 그대로 무작정 상경이었다. 한살림선언과 한살림운동의 실체를 보고 싶었다. 전북 정읍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시청 부근까지 와서 전화를 걸어 다시 위치를 확인하고 빌딩숲 속에 숨어있는 한살림모임의 작은 사무실을 찾아냈다. 윤형근 간사(현 사단법인 한살림 상임이사)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에게 한살림선언은, 이를테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한살림운동의 실체는 잘 몰랐지만, 한살림선언 얼마 후에 출간된 무크지 《한살림》을 통해본 한살림선언과 생명운동의 전망은 새 길을 찾던 운동권 청년의 생각을 결정적으로 흔들어 놓았다. 이것저것 나름 세상을 공부하고 궁리하던 젊은 촌학구(村學究)로 하여금 사상적 전환, 삶의 전환을 작심케 하였다. 나에게 ‘한살림선언’은 적어도 사상사적으로는, 3·1독립선언에 버금가는 역사적 문건이었다. 일제 강점기때부터 당대 지식인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쳤던 사회주의 이념의 고전 ‘공산당선언’을 넘어서는 한국 근현대 사상사의 한 봉우리였다.


저녁에 대학가 막걸리집에서 윤형근을 다시 만났다. 한살림모임 사무실에서는 무슨 사정이 있어 길게 이야기를 못 나누었던 같다. 그는 낮에 부탁했던 공부자료를 한아름 안고 왔다. 나중에 읽은 스페인 몬드라곤 이야기나 김용옥 교수의 에콜로지컬 코뮤니즘 등은 지금도 머릿속에 선명히 각인되어 있다. 막걸리잔을 주고받으며 나눈 대화 내용은 취기 탓이었는지 어렴풋하다. 짐작컨대 주요섭이 주로 묻고 윤형근이 답했을 것이다. 학생운동의 내부사정과 진로 등에 대해서는 그 반대였을 것이다. 장일순과 김지하에 대해서, 박재일과 한살림운동의 구체적인 모습에 대해서, 그리고 지역에서의 실천 방안에 대해서….

 

1986년 서울 제기동


20여 년 흐른 지금도 빛나는 ‘한살림선언’의 시대정신 


며칠 전, 모심과살림연구소가 격주마다 발행하는 뉴스레터에 임금노동의 대안을 이야기하는 ‘임금노동 너머, 반백수의 경제학’을 쓰고 난 후의 일이다. 초록색 표지마저 너덜너덜해진 무크지 《한살림》(1990년 4월 발행)을 펼쳐 전 세계 녹색운동 조직들의 강령을 비교 소개한 도표를 보다가 한살림운동의 높은 이상과 넓은 안목에 또 한번 깜짝 놀랐다. 일본의 한 학자가 제시한 ‘반나절 노동사회론’을 소개한 대목이었다. 지역, 분권, 자활, 연대, 그리고 반나절 노동, 반나절 활동사회. 아, 20년 전에…!


나에게 ‘한살림선언’과 무크지 《한살림》은 보물단지 같은 것이다. 교과서 같은 책이다. 보물단지 안에는 동서양의 철학적 식견이 담겨져 있고, 새로운 삶의 지혜가 곳곳에 숨겨져 있다. 수시로 보고 참고하고 영감을 얻는다. 숟가락을 들기가 저어되는 낯설고 어려운 말들의 성찬인 듯하지만 잘 음미해보면 그 말 하나하나가 다이아몬드의 원석이며, 새로운 사상의 열쇠말들이다.  


나에게 ‘한살림선언’은 신주단지 같은 것이다. 농가의 시렁 위에 모셔진 신주단지 안에는 다음해 농사를 위한 씨앗들이 모셔져 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생명의 씨앗, 참 생명의 원형이 그 안에 담겨져 있는 것이다. 나에게 ‘한살림선언’은 전환의 척도이며 새 삶의 원형이다. 세계관적 전환, 생활양식의 전환, 사회적 전환의 배경과 방향이 서술되어 있고, 개인과 사회와 문명의 존재양식이 논술되어 있다. 


한국 환경운동사를 정리한 어느 기자는 ‘한살림선언’을 가리켜, “생명운동의 강령이자 생명사상의 교리”라고 말한 바 있다. “‘한살림선언’은 좁게는 서울 제기동 쌀가게의 개업 취지문이자 ‘원주공화국’의 헌법과 같은 것이며, 넓게는 이들이 추구하는 생명운동의 강령이자 생명사상의 교리라고 할 수 있었다.”(신동호, 《환경운동25년사 자연의 친구들》, 도요새, 2008)


그렇다. ‘한살림선언’엔 1986년 제기동 쌀가게에서 시작된, 생명의 먹을거리를 도농직거래로 나누는 한살림 생활협동운동의 큰 뜻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70년대 민주화운동 고향이자 80년대 생명운동의 시원이 된 원주, 그 원주에서 평생을 살며 한반도 남쪽 모든 민초들의 스승이 된 장일순 선생(1928~1994)과 한국생명운동의 역사인 박재일 회장, 생명사상의 지평을 연 김지하 시인 등을 낳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원주시대의 심원한 정신과 꿈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한살림선언’은 존재 자체로 생명사상과 생명운동의 벼리(綱)이며 바탕(質)이자 빼어난 기운(秀氣)이 되었다.


그 ‘한살림선언’을 읽고 또 새겨야 한다고 다시 한 번 마음을 다 잡는다. 재해석하고 재구성하며 재창조해야 한다. 생명운동의 대선배님들의 정신과 사상이 오롯이 담긴 ‘한살림선언’, 생명의 세계관과 공생의 철학이 한국적 맥락에서 간명하게 정리된 ‘한살림선언’, 대안적 삶의 원형과 대안적 사회의 비전을 보여준 ‘한살림선언’, 그 자체로 밥 한 그릇의 앎과 에너지가 된 ‘한살림선언’을 공부하고 또 공부해야겠다. 동학의 말씀처럼 ‘내 마음이 네 마음’, 내 마음이 한살림 마음이 될 때까지.

 

이번에 출간된 《죽임의 문명에서 살림의 문명으로-
한살림선언 / 한살림선언 다시읽기》는
새로운 한살림 시대로 가는 징검다리인지도 모른다.
선언에서 ‘운동, 이론’을 거쳐 ‘생활, 이야기’로 가는 징검다리.
큰 이야기(거대담론)에서 중간 이야기를 거쳐
작은 이야기로 나아가는, 그래서 새로운 차원의 큰 이야기로
재창조되는 징검다리. 한살림은 지금 미분화된
뭉텅이 ‘한’에서 여러 가지 낱낱의 ‘한’으로,
그리고 새로운 차원으로 재통합되는
생명의 그물 ‘한’으로 가는 도정에 있는 것이다.

 

‘선언’에서 ‘이야기’로 가는 징검다리


‘한살림선언’이 다시 출간되었다. 제목은 《죽임의 문명에서 살림의 문명으로》, 부제는 ‘한살림선언 / 한살림선언 다시읽기’다. 20년 전 그 선언을 다시 실었고, 20년 후 후배들의 해석과 생각과 의지를 담았다. 무크지 《한살림》과 비교하니 참으로 빈약하고 허술하다. 물론 출간의 목적이 다르긴 했지만 아쉽고 부끄럽다.


그러나 아니다. 진짜 한살림의 시대가 비로소 시작되었다. 이번에 출간된 ‘한살림선언 / 한살림선언 다시읽기’는 새로운 한살림 시대로 가는 징검다리인지도 모른다. 선언에서 ‘운동, 이론’을 거쳐 ‘생활, 이야기’로 가는 징검다리. 큰 이야기(거대담론)에서 중간 이야기를 거쳐 작은 이야기로 나아가는, 그래서 새로운 차원의 큰 이야기로 재창조되는 징검다리. 한살림은 지금 미분화된 뭉텅이 ‘한’에서 여러 가지 낱낱의 ‘한’으로, 그리고 새로운 차원으로 재통합되는 생명의 그물 ‘한’으로 가는 도정에 있는 것이다. 

 


1987년 쌀가게 한살림이 낸 첫 소식지

 

‘한살림선언 / 한살림선언 다시읽기’에는 ‘한살림선언’에 기대어 가벼운 해석과 시론 수준의 운동이론을 조금 더했다. 2010년 판에 담긴 ‘한살림선언’과 한살림운동은 징검다리일 뿐이다. 하지만 징검다리 없이 내를 건널 수는 없는 법. ‘한살림답게’의 내용은 무엇일까? ‘한살림선언’이 말하는 한살림세상의 비전, ‘자기실현’과 ‘사회정의’와 ‘생태적 균형’은 어떻게 실현가능할까? 한살림운동(생명운동)의 사회적 대안은 무엇일까? 20년 전 20대였던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20년 후 20년 선배들의 나이, 불혹은 훌쩍 넘기고 지천명을 바라보던 때에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한다.


살림이야기의 시대를 고대한다. 밥 짓고 음식물쓰레기 버리는 생활 이야기로 내려와야 한다. 사상과 생활이 만나야 음식물쓰레기를 ‘재생’하는 기술을 만들고, ‘순환’의 제도를 연구하게 되는 것이다. 강령적 선언이 나왔으니 이것이 운동론 혹은 실천론으로 구체화되어야 하고, 결국은 ‘살림이야기’가 생산되어야 한다.

 
도우미가 되면 좋고 또 스스로 어설픈 이야기꾼이 되어도 좋다. ‘한살림선언’은 살림철학 이야기다. 링컨을 빗대어 말한다면, 살림에 의한, 살림을 위한, 살림의 선언이다. 생명살림운동하는 이들에 의한, 살림의 문명을 위한, 사람을 비롯한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생명선언이다. 하지만 40대 남성들의 목소리로 무겁게 천명한 ‘선언적’ 살림이야기다. 이제 진짜 살림이야기가 필요하다. 어머니와 주부와 여성의 진솔한 살림이야기로 다시 써져야 한다. 묵묵히 논과 밭을 일구던 검게 탄 얼굴빛과 굵은 땀방울의 스토리를 겸허하게 경청해야 한다. 소 몰며 농사짓던 견우와 베 짜던 직녀의 사랑이야기가 여기저기서 전설처럼 입에 오르내리기를 바란다. 2010년 ‘한살림선언 / 한살림선언 다시읽기’가 그 도우미가 되기를 기대한다. 견우가 되고 싶다.

 

강원도 원주 송골 해월 최시형 유적지에 모인 한살림선언의 주역들


그 이야기, 박재일 회장의 ‘한살림’ 이야기가 생각난다. 지하철 1호선을 타고 가던 중이었다고 한다. 1986년 어느 날 유기농산물 직거래 매장을 준비하던 박재일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한 생각이 스쳤다. ‘한살림’, 나를 살리고 우리를 살리고, 농촌과 도시를 더불어 살리는 길, 바로 ‘한살림’ 아닌가. 한살림은 이렇게 첫 발자국을 떼었고 한살림이라는 새 길이 열렸다. 생명세상을 일구다 영면하신 박재일 회장님이 벌써 그립다.

 

 


 

↘ 글을 쓴 주요섭 님은 모심과살림연구소 부소장이며 생명운동에 관해 꾸준히 연구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한살림선언이 발표된 지 20년이 지난 즈음에 진행된 한살림선언공부모임에 참여해 논의된 내용을 정리해 《죽임의 문명에서 살림의 문명으로-한살림선언/한살림선언 다시읽기》을 출간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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