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호 2010년 가을 살림,살림

[ 살림의 책① ]

빛의 세계에서는 어둠 속을 볼 수 없다 《어둠의 아이들》

글 김응교

 


빛의 세계에서는
어둠 속을
볼 수 없다

양석일 장편소설 《어둠의 아이들》
(문학동네, 2010) 

 


어떤 인물이 인생의 큰 스승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책도 그렇다. 덮어두면 종이뭉치에 불과하지만 그 책의 영혼과 대화하기 시작하면 책은 어느새 인생의 길벗이 된다.
양석일은 ‘자이니치’(재일 한국인) 2세로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인쇄, 택시운전 일 등을 하다 44세 때인 1980년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한 작가다. 《택시 광조곡》(1981), 《밤을 걸고》(1981), 100만 부나 팔린 베스트셀러 《피와 뼈》(1998), 《뉴욕지하공화국》(2007) 등의 소설과 평론집 《아시아적 신체》(1990) 등을 발표했다. NHK가 2008년 그에 관한 특집 프로그램(4부작)을 방송할 정도로 그는 일본에서 일급 문호로 대우받고 있다. 그의 대표작 《피와 뼈》는 일본의 유명 영화감독이자 배우인 키타노 다케시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다. 이 작품은 시대의 폭력이 한 인간을 어떻게 괴물로 만들어 가는 가를 보여준다. 《피와 뼈》에 나오는 아버지 김준평은 바로 ‘파시즘적 폭력’이 ‘육체화’된 괴물이었다.
2008년, 그의 강연을 통역할 기회가 있었다. 일본 나리타 공항에서 강연이 열리는 부산으로 함께 비행기를 타고 가던 중이었다. 그는 긴장해 있던 내 마음을 풀어주면서 《어둠의 아이들》이라는 책을 건네주었다. 이런 인연으로 일본에서 이미 40만 부가 팔린 이 소설을 번역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나 번역을 하는 동안 나는 형용하기 힘든 자괴감에 빠지곤 했다.

 

 소설에는 ‘어둠의 아이들’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작가는 세계를 어둠의 세계와 빛의 세계로 나누어 표현한다.
우리들 대부분은 빛의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이들에게는 어둠 속의 사람들이 보이지 않지만
어둠의 사람들에게는 빛의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 잘 보인다.
빛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둠 속 사람들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이 어둠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소설은 가난에 찌든 한 가족이 어린 딸을 인신매매꾼에게 팔아넘기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한국 돈으로 불과 36만 원에 팔려간 소녀들은 매춘을 강요당하고, 오래지 않아 에이즈에 감염돼 쓰레기차에 던져지거나, 산 채로 장기를 적출 당한다. 성노리개로 전락한 아이들의 현실은 충격이다.
“TV나 잡지를 통해 외국의 가난한 사람들 이야기를 보아왔기 때문에 그런 일들을 이미 알고 있다고 여겨왔지만 현장에 가서 직접 보니까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방송으로 보는 것과 현장에서 보고 느끼는 것은 많이 달랐습니다. ‘어둠 속 사람’과 ‘빛의 사람’이 흘러가는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굉장히 충격이었습니다.”
빛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영화의 첫 장면에서, 인신매매꾼 츙이 어린 소녀 센라를 36만 원에 사가는 상황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보이더라도 보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소설에는 ‘어둠의 아이들’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작가는 세계를 어둠의 세계와 빛의 세계로 나누어 표현한다. 우리들 대부분은 빛의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이들에게는 어둠 속의 사람들이 보이지 않지만 어둠의 사람들에게는 빛의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 잘 보인다. 빛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둠 속 사람들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이 어둠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건 하나의 문제가 아닙니다.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전쟁, 난민, 차별, 학살, 터무니 없는 범죄, 기타 모든 문제가 집약되어 있습니다. 구미나 일본에서는 도대체 어디에 그런 문제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보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려 하지 않는 자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죠. 그러니까 사실과 진실을 폭로해서 세상의 이 거대한 모순이 머지않아 자기들의 생활 역시 위협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전하는 것이 매스컴의 의무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둠의 아이들》, 233쪽.


양석일의 소설은 종종 너무 잔혹하다는 비판을 듣는다. 《어둠의 아이들》은 묘사도 사실적이어서 한국에서 ‘19세 미만 구독불가’ 표지를 달고 출간됐다. 작품에서 폭력과 외설적 장면이 그대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논픽션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쓸 수 없습니다. 이를테면 프리가토 호텔 안의 상황을 쓰거나 카메라에 담는 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신문이나 방송이나 논문은, 호텔 문 앞까지 아이가 끌려가는 것을 쓰지요. 그러나 소설은 다릅니다. 작가로서 프리가토 호텔, 그 어둠의 방 안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써야 합니다. 그래야 그 아이가 어떤 잔혹한 고통을 받는지 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사실을 넘어 궁극적인 본질을 알릴 수 있다고 봅니다. 일명 ‘허구의 진실’이지요. 미디어나 논문 같은 논픽션이 지적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소설은 허구의 진실을 드러내야 합니다.”


한국어판이 ‘19세 미만 구독 불가’ 조건으로 판매되는 데 대해 그는 “열 살짜리 꼬마가 벽에 그린 음화(淫畵)를 보고 엄마가 화들짝 놀라 열심히 지웠다면 과연 음란한 쪽은 꼬마인가, 엄마인가”라면서 “논픽션 작가라면 자기가 본 사실 이상을 쓸 수 없겠지만, 소설가는 사실을 넘어선 궁극적 본질, 즉 ‘허구의 진실’을 쓰는 존재”라고 이야기 한다. 허구의 진실을 쓰기 위해서는 “잔혹하건 비정하건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써야 하는 것이 작가정신” 이라는 것이다.


“작가는 어둠의 세계를 외면하면 안 됩니다. 작가인 나는 어둠의 세계를 마주하고 이를 기록해야 합니다. 일본에서는 시바 료타료처럼 권력을 대변하는 영웅 이야기를 주로 쓴 소설가가 인기를 얻고 있지만, 작가라면 모름지기 약한 자, 억압받는 자의 편에 써서 그들의 이야기를 써야 합니다.”
이러한 생각에서 그는 동남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동 성매매, 장기매매에 대해 글로 쓰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우리가 있을 곳은 어디인가
《어둠의 아이들》의 결말 부분에서 주인공인 일본인 NGO활동가 오가와 게이코는 일본으로 돌아가자는 난부 히로유키의 권유를 당차게 거절하며, 방콕에 남아 아이들과 함께 지내겠다고 말한다. 태국 마피아에게 목숨을 위협당하면서도 수렁에 빠진 아이들을 구해내고자 하는 게이코의 용기는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저는 난부 선배를 따라가지 않아요. 일본엔 제가 있을 곳이 없어요. 제가 있을 곳은 여기예요. 이곳뿐이에요. 저는 소장님과 손푸, 소오파가 돌아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겠어요. 푼카트와 풋사디를 찾으러 갈 거라고요. 설령 그녀들이 죽었다 해도, 그녀들의 혼을 찾을 겁니다. 아이들과 함께…”
게이코는 참고 있던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리고 눈물을 닦으며 의연한 태도로 “그럼, 모두 식사 준비하러 가요”라고 말하며 아이들을 데리고 방을 나섰다. 《어둠의 아이들》 394~395쪽.

 

소설의 결말에서 한 일본인을 영웅으로 만들었다는 비판도 있으나, 국적을 불문하고 이러한 결단 앞에서는 누구라도 뭔가 뜨끔한 반성을 하게 된다. 세상일은 이렇게 작은 반성에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지 않을까. 마음이 움직이고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시작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한 자각에서부터 시민단체가 움직이고 국가가 나서고, 이러한 비극을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둠의 아이들》을 소설과 영화로 접한 뒤 일본에서는 NGO 회원 가입과 후원금이 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 소설에 대한 토론이 요미우리신문에도 실렸다. 소설에 묘사된 내용이 너무 잔인해서 도저히 번역하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가 마음을 다시 먹고 번역을 마칠 수 있었던 데에도 내 마음 속에 일었던 반성이 작용했다. 충격적인 성폭력 장면을 떠올릴 때면 반성의 쓰라림도 함께 증폭되었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그것도 서점의 가판대에 올려놓지 않아 인터넷으로만 구할 수 있었던 이 책을 우리나라 독자들은 출간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재판을 찍게 했다.


작가 양석일은 70대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매일 400자 원고지 20장 분량을 쓰면서 잡지 네 곳에 장편소설을 연재하고 있다. 그의 평론집 《아시아적 신체》(도서출판 새)와 육영수 저격범인 재일동포 문세광이 주인공인 장편소설 《그 여름의 횃불》 등이 조만간 국내에 출판될 예정이다. 또 2차 대전 당시 한국·중국·일본의 종군위안부들이 만주와 태평양의 섬들에서 겪었던 일을 뼈대로 한 소설 《돌고 돌아오는 봄》을 〈주간 금요일〉에 연재하기도 했다. 비록 그의 소설들이 스타벅스의 커피처럼 달콤하지 않고, 읽기 버겁고 뻑뻑한 것들 일지라도 나는 이들을 꾸준히 번역해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소개할 생각이다. 누군가 이 일을 해야겠기에, 또 읽어주시는 글벗들이 있는 한 이 밤에도 저 차별받는 어둠의 영혼들을 만나 그 마음을 한 줄 한 줄 글로 옮기고 있다.


 

↘ 글을 쓴 김응교 님은 시인이며 문학평론가입니다. 도쿄대학원에서 비교문화를 공부하고, 객원교수로 와세다대학에서 10년 동안 강의했습니다. 시집 《씨앗/통조림》과 소설 《조국》을 집필하고 《오스기 사카에 자서전》 등 번역서를 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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