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호 2010년 가을 살림,살림

[ 살리는 사람을 찾아서 ]

나와 당신이 다르지 않잖아요 - 지리산생태영성학교 교장 이병철

글 김선미 편집위원 사진 류관희


 

나와 당신이 다르지 않잖아요

지리산생태영성학교 교장 이병철

 

 

 

올 정월 처음으로 장을 담갔다. 비록 시어머님께서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메주를 친정엄마 손을 빌어 만든 것이었지만, 좁은 베란다에서 된장 간장이 익어가는 냄새를 맡으며 비로소 어른이 된 느낌이었다. 그런데 날이 더워지자 구더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항아리 주변뿐 아니라 베란다에서 마루 천정을 타고 부엌까지 필사의 여행을 떠나는 녀석들이 나를 놀라게 했다. “엄마! 어떻게 해요!”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울먹이다시피 했다. 잘라낸 손톱보다도 작은 벌레 때문에 나는 다시 어린애가 되고 말았다. 마흔이 넘어 겨우 장 담글 결심을 한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했는데 ‘더는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겠다’는 마음 때문에 전전긍긍했다. 간장은 체에 받혀 끓여냈지만 손수 벌레들을 걷어내야 하는 된장 갈무리는 구원요청을 할 수밖에 없었다. 친정엄마가 올라와 노랗게 익은 된장을 발라내 더는 구더기가 넘볼 수 없는 김치냉장고 속에 꽁꽁 밀봉해 넣은 다음 날, 나는 이른 아침 길을 나섰다. 구더기를 치우고 나니 어찌나 속이 후련하던지 날아갈 듯 행복했다. 적어도 이 사람을 만나 ‘나와 세상이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전까지는 그랬다.

 

숨은 야성을 회복해야 신성에 가까워진다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입곡리 숲안마을로, 이병철 선생을 만나러 가던 날이었다. 연일 온 나라에 폭염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뜨겁게 달궈진 고속도로 위를 달려 점심 무렵 겨우 그가 일러준 동네 밥집에 다다랐다. 음식을 남기지 않고 먹으면 주인이 귀한 차를 대접할 테니 몸을 식히며 쉬고 있으라고 했다. 실한 밥상을 물릴 무렵 양팔 한 아름 풀을 안고 온 사내가 밥집에 들어섰다. 텃밭에서 줄기째 낫으로 베어 온 방아를 안주인에게 꽃다발이라 건네는 이가 이병철 선생이었다. 방아 잎을 넣은 부침개를 맛깔나게 부쳐주던 밥집 여자가 뜻밖의 선물에 함박웃음이다. 선생은 모처럼 집에 다녀간 큰 딸아이를 서울 가는 버스에 태워주고 오는 길이었다. 오미자 우린 선홍색 물 위에 초록 잎새를 얹어 얼음 동동 띄워낸 ‘요염차’를 마시며 근황을 물었다.

 


 

“요즘 일주일에 한 번씩 비박을 해요.”
비박이란 말에 서늘한 산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의 수런거림과 뭇별이 쏟아져 내리는 시리도록 눈부신 밤하늘이 떠올랐다. 그는 매주 금요일 저녁이면 근처 연화산 산마루에 올라 매트리스와 침낭만으로 자고 온다고 했다. 그렇게 자연과 가까이 만나면 몸 안의 숨은 야성을 깨우게 된다고.
“야성을 되찾는 것은 우리도 대지 위에 한 마리 짐승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에요.”
흙바닥에 등을 대고 누우면 풀처럼 키를 낮출 수 있다. 풀섶 사이를 드나드는 벌레들 소리에 귀가 열리고, 떨기나무 수풀을 헤치고 다니는 멧돼지나 고라니 같은 산짐승 소리에 몸을 움츠리게 된다. 인간의 몸뚱이가 자연 앞에 겸손해지는 순간이다. 그렇게 대자연과 만나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니 그냥 내 기분이 좋아졌다. 도인처럼 어렵게 느껴지던 그가 산을 좋아하는 친구처럼 친근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자기 안의 숨은 야성을 회복하는 일이 신성에 가까워지는 길이라고 했다. 국내에 소개된 어지간한 수련 프로그램은 다 섭렵한 그가 도를 찾아 가는 새로운 수행법이다.
“인간은 땅에 발을 딛고서 하늘과 소통하는 존재예요. 우리 안에 하늘을 품은 신령한 짐승을 만나야 해요.”


내 안의 신령함을 진정으로 깨달으면, 비로소 다른 이의 신령함도 깨닫게 된다. 그 신령한 힘으로 하늘의 뜻을 땅 위에 펼쳐나가는 것이 진화의 마지막 단계인 인간의 역할이자 존재 이유라고 했다. 그는 낮고 부드럽게 그러나 신념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 갔다. 
그런데 나는 ‘하늘의 뜻’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뜨거운 한낮 4대강 공사 중단을 요구하며 이포와 함안보 위에 올라가 농성하던 사람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곳은 낙동강이 있는 함안 땅이었다. 강을 파헤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도 자신이 믿는 하늘의 뜻을 펼치기 위해 일한다는 신념에 차 있지 않은가. 그러면 그도 신령한가.


“당연히 신령한 존재지요. 하지만 누구에게나 인식의 단계가 있어요. 이명박 대통령은 자기만 신령하다고 생각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어서 강의 신령함을 보지 못하는 거예요.”
내가 아닌 다른 모든 존재를 대상화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비극이라고 했다. 한편으로는 이명박 대통령 때문에 이 나라 종교 지도자들이 생명의 강을 지키겠다고 팔을 걷어 부쳤으니, 우리에게 엄청난 생태적 각성을 주었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모두가 강으로 달려가 싸울 생각만 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 우리의 강을 파괴하지 않으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깊이 돌아볼 때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없으면 이런 무자비한 일들이 영원히 사라질 것인가, 우리 안에 개발과 파괴를 통해 이익을 얻고자 하는 욕구와 나의 생명과 강의 생명이 분리되어 있다는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근본이 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문득 오래전 도법 스님이 이라크를 침공한 부시 대통령에 대해 저주와 분노를 퍼붓던 사람들을 향해 부시야말로 극진한 애정과 보살핌이 필요한 환자라고 하던 말이 떠올랐다. 그 도법 스님과 함께 생명평화결사를 조직한 사람이 이병철 선생이었다. 그때 두 사람은 전쟁의 화마가 한반도를 공격하게 되면 10만 명이 하얀 옷을 입고 비무장지대에 드러누워 이 땅의 평화를 지키자는 약속을 했다.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는 그 가슴 벅찬 약속…. 뜨거운 한낮의 적요 속으로 그의 이야기는 쉼 없이 흘러나왔다. 나는 모든 게 꿈결처럼 들렸다. 

 


 

그는 격동의 역사 현장에서 뼈가 굵은 운동가였다. 젊은 시절 민청학련 사건으로 옥살이를 한 뒤, 줄곧 농민운동에 몸담았다. 어린 시절 읽은 《상록수》가 그의 삶의 방향을 결정했다고 한다. 소설 속의 박동혁처럼 채영신 같은 이를 만나 농촌과 나라의 운명을 구하겠다는 결심이 그를 고향인 경남 고성에서 가톨릭농민회를 조직하고, 우리밀살리기운동에 불을 지피는 등 우리농촌살리기운동에 앞장서게 했다. 젊은 시절부터 농민들 속에서 농촌공동체 회복을 위해 애쓰던 그가 이후 귀농운동본부를 통해 대안적 삶을 생태적 귀농에서 찾는 새로운 차원의 운동을 펼치기까지 온 마음으로 한 길을 걸어온 것이다.

 


 

그랬던 그가 최근 귀농운동본부장, (사)한살림 감사 같은 공식적인 직함들은 모두 내려놓고서 오로지 지리산생태영성학교 교장으로만 남기로 했다. 물론 생명평화결사의 ‘평생교사’와 귀농운동본부의 ‘귀농학교 교장 선생님’ 등은 놓는다고 놓아지는 이름이 아니어서 그대로 남아있다. 지리산학교는 이제 물질의 시대는 가고 마음을 공부하고 닦아야 하는 새로운 삶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각성에서 출발한 곳이라고 했다. 생활에 발목이 잡힌 나에겐 마음을 닦고 공부한다는 학교가 있는 지리산이 히말라야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이 모든 뜬구름 같은 이야기들을 붙잡기 위해서라도 어서 빨리 그의 집으로 가고 싶었다.


집으로 가는 길은 구름이나 하늘을 나는 양탄자를 타는 대신 그가 운전하는 사륜구동 밴으로 이동했다. 차의 짐칸에 언제 어디서고 노숙을 할 수 있도록 침낭과 매트리스 같은 비박 용품이 실려 있었다. 그가 아내에 대해 쓴 시가 있다. “…대학 한 학기 등록금만큼이나 / 큰돈을 / 단 며칠간의 수행을 위해 / 필요하다는 / 주제를 넘어도 / 참으로 한참 넘어선 / 간 부은 내 말 듣고 / 한동안 어처구니 없어하던 아내는 / 이 아침 / 차표마저 쥐어주며 / 잘 다녀오라 한다 / 도사 공부하여 도사되면 / 그때 잘 봐 달라한다.…”는 시는 제목이 ‘박정희 도인’이다. 그는 히말라야와 바이칼 등지로 영성을 찾아 떠난 순례에서 아봐타 수련까지, 부단히도 먼 길을 돌아서 이제 집 가까운 자연의 품으로 들어가는 듯했다. 낮은 산 고요한 숲에서의 비박은 참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수행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선생의 집은 높고 외진 곳에서 마을을 굽어보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마을 한길가에 여느 농가들처럼 겸손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정갈한 붉은 벽돌집인데, 폐벽돌을 가져다 일일이 닦아 쓴 것이고, 집안 구석구석 여러 사람의 손길이 모여 품앗이로 완성된 집이라고 했다. 이현주 목사가 쓴 ‘숲마루齊’와 ‘이병철 박정희’ 부부의 이름 그리고 ‘달품사의 집’이라 새긴 목판 그리고 별채에 걸린 무위당 장일순의 글씨 ‘閑心亭’까지도 그랬다.


“한심당은 우리 안사람이 지어준 이름이야. 이름으로야 무위당보다 한 수 위지.”
‘閑心’이라 적혀있는 것을 가리키며 ‘寒心’이라 읽어도 상관없다고 웃었다. 오늘 점심 밥상에 둘러앉은 두 딸과도 “우리 집에는 백수가 셋”이란 것이 화제였다고 했다. 그가 집안의 ‘물주’라고 부르는 아내는 근처 마산대학에서 간호학을 가르치고 있다. 딸아이들은 산림학과 심리학 공부를 하고 있는데, 본래 의사가 되고 싶어 하던 아이들을 몸을 고치는 일보다 마음을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고, 사람보다 우선 지구를 지켜야 하지 않겠냐며 설득했다고 한다. 그들 부녀는 그런 말이 통하는 사이인 모양이다.

 


 

선생이 손수 만들었다는 토마토즙을 내왔다. 텃밭에 지천인 토마토를 뭉근하게 오래 끓여낸 것인데 생으로 갈아 만든 주스보다 한결 깊은 맛이 났다. 토마토즙 만큼은 일하는 아내보다 백수인 자기 솜씨가 낫다는 자랑까지 잊지 않았다. 토마토는 앞마당 아래 비가림만 한 비닐하우스 안에서 그가 ‘영성농법’으로 길러낸 것이다. 고추, 가지, 오이, 들깨 등등 채소밭에는 두 내외가 먹고 남을 만큼 푸성귀가 풍성하고, 건너편 다랑이논 세 마지기에서 찰랑이는 벼포기들까지, 귀농학교 교장으로는 부끄럽지 않을 만큼 자급하고 있었다.


“영성농법이라고 뭐 별 거 없어요. 만날 때마다 잘 자라라 힘내라 응원해 주고 박수 쳐주면 식물이 알아듣고 잘 자라요.”
하지만 자칫 영성농법이 격려에 그치지 않고 제대로 안 자라면 곤란하다는 마음이 끼어들면 ‘협박농법’이 된다면서 개구쟁이처럼 웃는다.

 


 

 ‘긴 날을 바깥에만 매달려 있을 때 안에서 도를 닦고 있던’
그와 집 옆 개울로 자리를 옮겨 탁족을 했다. 민청학련사건, 가톨릭농민회 운동, 1987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등 치열한 역사의 현장에서 날이 선 운동가였던 그가 귀농운동본부를 통한 생태공동체운동과 이어지는 생명평화운동까지, 어떻게 영성과 생명을 화두로 평화에 몰두하게 되었을까. 물론 그의 스승 장일순과 난생 처음 ‘형님’으로 모셨다는  박재일 같은 선배들이 어우러져 만들어 낸 한살림 정신과의 만남이 그의 운동 방향을 바꾸어 놓았으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좀더 구체적인 내적 각성의 계기가 궁금했다. 


“나도 이제 늙어가니까요….” 처음엔 이렇게 허허 웃고 말았다. 그리고는 속내를 털어놓는다.
“한 번은 집 사람이 묻더군요. 그래서 당신 때문에 세상이 얼마나 나아졌느냐고. 또 일주일에 한 번, 열흘에 한 번 집에 들어갔는데 애들이 아빠가 집에 안 왔으면 좋겠다고 하는 거예요. 와서는 자세를 똑바로 해라 말투가 그게 뭐냐, 밥을 제대로 먹어라 간섭이 심해지니까 그랬겠죠.”
여느 남편과 아버지들이 한 번쯤 부딪히는 문제들이겠지만 거기서 출발해 깨달음에 이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와 세상을 이원화시킨 것이 문제였죠. 나는 여기 있고 저기 있는 세상이 잘못됐다고 지적만 한 거죠. 그게 과연 진실일까요?”
건강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쳐왔다고 생각했는데, 진정 세상이 달라지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가 과거 가톨릭농민회 사무국장 시절, 농민의 권리를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참농민이 되어 참세상을 만들자”는 슬로건을 내걸게 된 것도 그런 전환이었다고 했다.


우리가 발을 담근 개울에는 소금쟁이가 소리 없이 파문을 일으키고, 물가로 뻗어내린 나뭇가지에는 자벌레가 온몸으로 곡예를 했고, 그 위로 고혹적인 빛깔의 검은물잠자리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인간들만 한가롭지 수생동식물들에겐 치열한 생존의 현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이것 역시 나와 세상을 분리해서 바라보는 마음일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잘 모르겠다. 그래서 그의 말대로 공부가 필요한 모양이다.
“옛날과는 세계가 달라졌어요. 그러니 이젠 공부 방법도 달라져야 해요. 공부는 현상을 있게 한 본질에 대한 탐색이지요?”

 


 

그의 질문은 이제는 다수의 사람들이 물질의 결핍보다도 마음 때문에 더 고통 받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대답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마음공부나 깨달음의 문제가 소수에서 다수의 문제로 절박하게 다가올 만큼 인류가 진화했다는 증거라고 했다. 나는 요즘은 마음공부나 수행을 하는 데도 적잖은 돈이 드는 세상이라는 점이 안타깝다고 했다.
“마음의 평화가 물질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해야 해요. 그러면 깨달음을 얻는 데 돈을 쓰겠다는 것부터가 물질로부터 벗어나겠다는 결단이지요.”
돈과 시간을 내는 것이야말로 절실함의 근거라고. 그래서 깨달음과 영성을 추구하는 이들이 가장 많이 나타나는 곳 역시 부자나라들인 1세계라고 했다. 더 이상 물질의 풍요로부터는 행복을 구할 수 없다는 각성이 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단순 소박한 삶이 아무리 좋다 해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걸 요구할 수는 없어요. 물질의 풍요를 경험한 사람만이 넘어설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럴 필요는 없어요. 모든 사람이란 것 역시 허상이니까.”


99℃의 물이 100℃로 넘어가는 순간의 임계치에서 물이 끓어오르듯, 인류의 자각 또한 1% 변화로부터도 가능하다고 했다. 더불어 “다수를 걱정하기 전에 그대 자신을 걱정하세요.”라는 당부까지 잊지 않았다.
실제로 “…대학 한 학기 등록금만큼이나 / 큰돈을 / 단 며칠간의 수행을 위해” 써본 그는 이제 돈 없이도 평화를 찾는 일상의 수행법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 했다. 늘 ‘감사하고 미소 짓고 또 축복하라’고. 우리에게는 축복을 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그것이 곧 내가 삶을 사랑하고 평화로워지는 마음공부라고.
“이것은 단순히 사랑타령이 아니에요. 오로지 사랑밖에 길이 없기 때문이에요. 왜냐하면 사랑은 가장 밝고 적극적인 에너지니까.”


더위를 먹은 탓인지, 폭포처럼 쏟아지는 영성에 대한 이야기 세례 때문인지 나는 그날 몹시 지쳤다. 직장에서 돌아온 ‘박정희 도인’께서 영성농법으로 자라난 푸성귀들로 차리신 저녁 밥상을 배불리 먹고 나서, 책들이 빼곡한 그의 서재에서 밤새 뒤척임도 없이 깊은 나락 같은 잠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그는 텃밭에서 토마토를 따고, 논에 가서 박수를 세 번 힘차게 치면서 “힘내라! 잘 자라라!”라며 벼들에게 축복을 내리고 있었다. 신기한 것은 선생이 자주 들여다보고 인사하는 앞 논의 벼는 이삭이 실하고 포기가 튼실한데, 조금 소홀했다는 윗논은 안쓰러울 만큼 부실해보였다. 잡풀이 무성한 그의 논두렁 옆에는 팔십을 훌쩍 넘긴 옆집 농부가 제초제를 뿌려 누렇게 만든 논두렁이 사이좋게 이어져 있었다. 그의 서재에는 스승이던 무위당의 글씨로 쓰인 논어에 나오는 ‘오불여노농(吾不如老農)’이란 글귀가 있었다. 그 역시 아무리 자신이 생태귀농의 이름난 전도사인들 옆집 ‘늙은 농부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날마다 깨닫는다고 했다.

 


 

그가 앞마당에서 다섯 가지 짐승의 몸짓을 본뜻 오금희(五禽戱) 라는 체조를 가르쳐주는 동안에도, 출근 준비에 바쁜 ‘박정희 도인’은 옥수수를 삶아 토마토즙과 함께 밥상을 차려주었다. ‘하루하루의 밥상을 영성체 모시듯 하라’는 이야기를 강조하는 선생은 소박한 밥상 앞에서 정성껏 감사 기도를 올렸다.    
그의 시 ‘박정희 도인’은 이렇게 끝이 난다.
“수행길 나서는 차속에서 / 문득 다가오는 깨달음 하나 / 아내가 도인이다 / 긴 날을 바깥에만 매달려 있을 때 / 아내는 이미 안에서 도를 닦고 있었다.”


평생을 사회운동가로 산 그가 자신을 아무 거리낌 없이 백수라 지칭하는 것은 생활인으로 일상의 노동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백수가 세상을 구한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사람이 밥만 먹고 살 수는 없다는 뜻으로 들린다. 돌이켜보면 예수나 석가모니처럼 위대한 성인들 대부분 백수였다. 그가 존경하는 선생님, 무위당 장일순도 감옥에서 나온 뒤로는 세속의 직업분류로는 설명할 수 없는 백수로 살았다. 그 역시 더 많이 비워서 세상과 나의 경계를 허무는 진짜 백수가 되고 싶어했다.
나는 그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구더기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된장 속에서 알을 까고 자라난 구더기와 된장이 과연 다른 것인가. 이명박 대통령과 4대강으로 대변되는 우리 시대의 욕망이 과연 나와 다른 것인가.

 

 

↘ 글을 쓴 김선미 님은 살림하면서 글을 쓰는 두 딸 아이의 엄마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자연을 깊이 만난 이야기 《아이들은 길 위에서 자란다》 《바람과 별의 집》 어린이를 위한 장일순 이야기 《좁쌀 한 알에도 우주가 담겨 있단다》 등을 썼습니다.


http://www.salimstory.net/renewal/sub/view.php?post_id=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