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호 2010년 가을 [특집] 집. 사다, 살다, 짓다

[ 동물의 집 ]

필요와 깜냥을 아는 집짓기와 수리의 달인들

글 사진 박형욱

필요와 깜냥을 아는,
집짓기와 수리의 달인들

 

먹이를 물어다주는 어미와 입 벌린 새끼 물레새

 

한 땀 한 땀 수놓듯 지은 번식의 공간
2009년 여름,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찾은 전라남도의 한 소나무 숲에서 물레를 돌릴 때 나는 ‘찌크 찌크’ 소리와 유사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최근 개체수 감소로 번식 사례가 거의 관찰되지 않는 물레새의 소리라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조심스럽게 지켜보다 몇 발짝을 물러서니, 소나무 가지 사이로 어미가 들어가면서 ‘제제’거리는 새끼들 소리가 들렸다.
물레새가 속한 할미새과 새들 대부분은 꼬리를 위아래로 흔들며 땅바닥에 집(둥지)을 만들지만, 꼬리를 좌우로 흔드는 물레새는 영어 이름(Forest Wagtail)에 걸맞게 나무 위 수평으로 뻗은 가지에 집을 지었다. 소나무 가지와 잎이 무성한 곳에 거미줄과 가는 풀줄기, 이끼 등을 이용해 딱 종지만한 크기와 모양으로 만든 집은, 주변의 솔방울 등과 비슷해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어미새들은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이, 그렇게 정성스럽게 재료들을 엮고 붙여가면서 집을 만들었을 것이다.


사람도 올라설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한 독수리 집. 몽골

 

자그마한 물레새의 집과 달리 독수리의 집은 지름이 2m가 넘으며, 사람이 올라가도 이상이 없을 만큼 크고 튼튼하다. 서너 사람이 수백 평 규모의 호화 주택에 살기도 하는 사람들의 잣대로 보면 이 역시도 허세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간혹 부모새 두 마리가 동시에 새끼와 함께 머무르기도 하는 독수리로서는 제 덩치에 알맞게 집을 지은 것이다. 그러나 이만큼 큰 집을 짓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공력이 들기 때문에, 새로 지은 집에서의 독수리 번식은 실패하는 경우가 제법 많다고 한다. 그러므로 독수리와 같은 수리과의 대형 조류들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지은 집을 보수하고 새파란 침엽수 가지 등으로 곤충 등을 쫓아가면서 몇 해 동안 재사용한다. 새집 보다는 자식이 더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라는 데 집중하는 실속파들인 셈이다.

쏙독새 집 안의 알


새들에 따라서는 다른 새의 집을 재사용하기도 하는데,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면 간혹 묵은 까치집에서 다른 새가 머리를 내미는 경우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행운을 전한다는 파랑새나 부리가 날카로운 것 외에는 순해 보이기만 하는 새홀리기가 간혹 까치와 치열하게 다투는 것은, 까치의 이사를 재촉하기 위해서이다. 재사용되는 집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높은 건 딱다구리과(국어사전에는 딱따구리로 나오지만 조류학에서는 다르게 쓴다) 새들의 집이다. 파랑새, 원앙, 동고비, 그리고 포유류인 하늘다람쥐 등이 이를 재사용하는데, 특히 동고비는 자신이 드나들 수 있을 만큼의 출입구만을 제외하고는 진흙으로 메워버린다. 리모델링을 통해 훌륭한 맞춤형 집으로 새로 꾸민 셈이다.

알을 품고 있는 쏙독새


하지만 모든 새들이 복잡하고 정성이 가득 담긴 집을 짓거나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위장색이 뛰어나고 야행성이라 낮 시간 동안 거의 움직이지 않으면서 알을 품기만 하는 쏙독새는 거의 땅바닥에 흘려 놓는 수준으로 집을 짓고 알을 낳는다. 눈에 잘 띄지 않고 알이 굴러 떨어질 염려가 없는 안전한 조건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는 복잡한 집을 지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너도 나도 다른 사람들의 휘황찬란한 집을 부러워하며 따라 하기 일쑤지만, 동물들은 자신의 필요와 깜냥에 맞게 집을 짓는다.

알을 몸 아래에 붙이고 다니는 배회성 거미



이처럼 정교하고 정성 가득한 집이건, 간단한 집이건 대부분 새집의 주된 역할은 알과 새끼를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다. 아주 특이하게 몇몇 종은 비번식기에 쉬거나 잠을 자는 데 쓰거나 짝을 유인하는 데 과시용으로 쓰기도 하지만, 새들에게 있어 집은 철저히 번식의 공간이다. 번식을 위해 새들은 비, 바람, 추위, 뜨거운 햇빛 등을 막고 천적을 피하고자 주위에 있는 재료들을 이용하여 자신들에게 가장 적절한 집들을 지으면서 진화해 왔다.

새의 집이라고 착각하기 쉬운  멧밭쥐 집 속의 새끼들
 

동물에 따라서는 민물 조개의 아가미에서 부화하고 자라다가 밖으로 나오는 (잉어과 납자루아과의) 각시붕어처럼 다른 생물의 몸 자체를 집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있고, 알집을 몸 아래에 붙이고 다니거나, 부화한 새끼들을 등에 태우고 다니기도 하는 배회성(徘徊性) 거미들처럼 아예 다른 사물을 이용하지 않고 자신의 몸을 직접 이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역시 가장 안전한 번식을 위해 진화한 결과이다.

새끼들의 집을 짓기 위해 잎을 마는 왕거위벌레


사실 동면을 하는 일부 포유류나 크기가 작은 포유류, 곤충 등은 자신들의 몸을 건사하기 위해 집을 이용하지만, 대부분의 동물들은 집을 자신의 후세를 위한 번식의 공간으로만 이용할 뿐 번식기 이외에는 방랑 생활을 한다. 떠돌다가 나무 아래, 굴 안 등 자연이 만들어 준 공간을 약간만 고치고는 쉼터로 이용하는 것이다. 집을 짓기 위해서는 엄청난 공력이 들어가므로 스스로를 외부 환경으로부터 지킬만한 힘이 없는 알이나 새끼를 위해서가 아니라면, 의미 없는 집짓기에 에너지를 소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자연으로 향하는 다목적 집
근래에 들어 사람들은 스스로 집을 짓는 능력을 잃어 버렸다. 더욱 큰 집을 짓기 위해 전문적인 직업이 생겨났지만, 동물들의 세계에서는 분업이 철저한 벌이나 개미와 같은 사회성 곤충이나 동물들을 제외하고는 다들 스스로 제 집을 짓는다. 스스로 자신이 처한 조건에 꼭 맞으면서 새끼의 성장을 고려한 맞춤 주택을 짓는 것이다.

소똥에 서식하는 큰점박이똥풍뎅이


이러한 동물의 집 중에는 두 가지 이상의 목적을 가지는 집들도 제법 많다. 자식을 위한 집 중에는 먹이가 되는 생물 자체가 집이 되는 경우도 많은데, 특히 곤충들 중에는 애벌레의 먹이 식물로 집을 짓는 경우가 많다. 왕거위벌레는 알 하나마다 참나무 잎을 말아 단독주택과 식당을 겸하는 집을 지어준다. 한 마리 한 마리의 새끼가 충분히 먹고 자랄 수 있도록, 공을 들여 한 채씩 집을 지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부의 세습은 아니다. 방어와 이동 능력이 떨어지는 알이나 애벌레가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일 뿐이다. 이 시기를 지난 새끼들은 스스로 먹이를 찾으며 살아가고, 또 자라나선 어미가 그랬던 것처럼 후세를 위해 스스로 집을 짓는다.

여덟혹먼지거미의 ‘먼지’ 집


먹이를 겸하는 집으로 더 기발한 재료를 사용하는 동물도 있는데, 소똥구리의 친척인 큰점박이똥풍뎅이는 소똥 바로 밑에 있는 땅 속에 작은 똥덩어리를 만들고 그 속에 알을 낳는다. 다른 동물의 배설물이라 더럽고 쓸모없을 것 같지만, 이른바 ‘똥집’은 상상보다 높은 양분을 얻을 수 있는 먹이이자, 단열효과가 뛰어나고 유기물이 분해되면서 발생하는 열 때문에 난방 효과도 가지는 투입 에너지 제로의 집이다.

화장실과 주방을 겸하는 오소리 똥굴


앞서 배회성 거미들과 달리 우리가 흔히 보는 조망성 거미들은 몸에 비해 상당히 큰 거미줄을 친다. 이들이 과할만큼 큰 평수의 집을 만드는 것은 모두들 잘 알다시피 거미 자신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먹이도 잡는 두 가지 목적을 위해서이다. 때문에 제 덩치보다 확연하게 큰 집을 짓지만, 거미가 주로 머무는 공간은 상대적으로 아주 작다. 여덟혹먼지거미는 탈피한 껍질, 작은 나무 부스러기, 먹이 찌꺼기 등을 거미줄의 중앙부에 세로로 붙여 놓고 이 속에 숨어서 먹이가 걸리기를 기다리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위치는 다르지만 대부분의 조망성(造網性) 거미는 일정한 좁은 공간에서 주로 생활을 한다.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대저택이라기보다는 주위에 텃밭을 가진 조그마한 시골집 같은 셈이다.

먹이를 구하는 데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을 상충되는 역할이 더해진 집도 있다. 사실 집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우리의 ‘뒷간’에 더 가깝지만, 오소리 똥굴이 단순히 화장실의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소리가 눈 똥은 냄새를 맡은 곤충들이 꼬이게 하고, 오소리는 이를 잡아먹는다. 주방과 식당, 욕실과 화장실도 분리하는 요즘 사람들로서는 자신의 배설물로 먹이를 유인하는 상상하기 싫은 상황이겠지만, 오소리로서는 화장실과 주방을 겸하는 꽤나 효율적인 건축을 하는 셈이다.


먹이이기도 한 집들은 두말 할 나위가 없지만, 번식의 용도를 다한 많은 동물들의 집은 일회용이다. 하지만 동물들이 화려하고 번듯해 보이기 때문에 매년 새로운 집을 짓는 것은 아니다. 짧게는 십수 일부터 길게는 몇 달 동안 알을 품거나 새끼를 키우기 때문에 기생충이나 미생물 등에 오염되기 일쑤고, 냄새나 흔적 등으로 인해 천적이 쉽게 찾아낼 수도 있기 때문에, 동물들은 막대한 에너지를 들이며 새로 집을 짓는 것이다.


선선한 바람이 불면서 어미 물레새들이 정성을 다해 지은 집도 새끼들이 떠나고 나면 을씨년스러운 빈 공간으로 남을 것이고, 또 시간이 더 지나면 비바람에 삭을 것이다. 생명의 온기가 사라져 버린 듯하지만 전혀 안타깝지 않다. 강한 바람과 비, 뜨거운 태양을 견디며 새끼들을 건강히 키워냈고, 자연에서 얻어진 재료들이 이제 쓰임새를 다하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시멘트나 콘크리트와 달리 부서진 나뭇가지며 말라비틀어진 이끼는 자연으로 돌아가 새끼들이 성장해 어미처럼 스스로 집을 지을 때면 또 다시 그 재료로 되돌아 올 것이다. 그리고는 또 다시 비바람과 싸우며 새끼들을 키우는 ‘집’이 될 것이다.





↘글을 쓴 박형욱 님은 자연 다큐멘터리 제작사 와일드넷의 PD로 일하며, 《Wings of the Wind》, 《하늘의 제왕 독수리 추락하다》, 《Warzone Gone Wild》 등 자연, 환경과 관련된 프로그램들의 연출과 디지털 조류백과사전인 《한국의 새》(www.birdcenter.kr)의 제작을 맡았고, 한국야생조류협회, 야생동물 소모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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