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호 2010년 가을 [특집] 집. 사다, 살다, 짓다

[ 게스츠하우스 빈집 ]

빈집으로 오세요 집을 공유하면 어제 만나서 오늘 가족이 될 수도 있어요

글 지음

빈집으로 오세요
집을 공유하면 어제 만나서
오늘 가족이 될 수도 있어요

 



 

집은 개인의 소유물 중 가장 큰 것이며, 그 안에 다른 소유물들이 들어있다. 집 밖에 있는 가장 큰 재산은 자동차인데, 사실 자동차는 움직이는 집에 가깝다. 결국 집은 한 개인이 가진 모든 것이며 사적 소유의 핵심이다. 따라서 집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집 문은 굳게 닫혀있어야만 한다. 집을 개방하고 공유한다는 것은 자신의 소유를 포기하는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게스츠하우스(guests’ house, 손님들의 집) 빈집’처럼 집을 타인과 공유한다는 생각은 황당하고 어이없는 것, 신기하고 재밌어 보이기도 하지만 정작 내가 실천하기는 좀처럼 곤란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 집은 애초부터 공유의 공간이다. 혈연과 사랑으로 맺어진 가족들은 집과 집안의 물건들에 대해서 굳이 무엇이 누구의 것인지를 따지지 않는다. 법적인 소유권은 주로 가장에게 있는 경우가 많겠지만, 그래도 가족들 모두는 내 집이라고 생각한다. 집을 사거나 임대하는 데 더 많은 돈을 냈다고, 다른 가족에게 돈을 더 받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가족 내에서도 사적인 물건이 있을 수는 있지만, 다른 가족이 빌려 쓰지 못할 정도의 것은 많지 않다. 가족이 함께 살아가는 집이라는 공간은 다른 어느 사회나 집단과도 구분되는 공유의 공간이라는 점이 그 특징이며 존재 이유다.
 

모두가 내 것과 네 것을 철저히 구분하고, 내가 더 많이 갖기 위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에 지쳐있다. 이러한 전쟁 같은 세상에서 벗어나서 내 것과 네 것의 구분이 없고, 구분이 있다해도 같이 쓰고, 타인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 되는 곳, 그곳이 바로 집이다. 사적 소유의 냉혹함이 아니라 공유의 따뜻함이 있는 혈연과 사랑으로 맺어진 가족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곳, 홈 스위트 홈이다.
 

그래서 이 집은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 파괴되어서는 안 되는 것,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 것이 된다. 반면 가장 지옥 같은 상황은 믿었던 집에서조차 사회에서와 똑같은 싸움을 반복하는 것이다. 가족이 사회와 완전히 차단된 것도 아닌 다음에야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도 이상할 것은 없다. 공유의 관계가 무너져서, 집에서 내 것 네 것을 따지기 시작하고, 급기야 노골적인 돈싸움으로 치달으면 그 충격과 실망과 배신감은 훨씬 증폭되어 버린다. 부모자식이고 형제자매고 없는 것이고 가족이 가족이 아니게 되어 버리고 만다. 현실에서 실제로 많은 가족은 해체되어 가고 있다. 이런 위기에 대한 한 가지 해법은 가족이 가진 소유물 자체를 늘리는 것이다. 집을 늘리고 더 많은 돈을 집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집 안에서의 싸움을 피하기 위해서 집 밖에서 더욱 치열한 싸움이 필요해진다. 가족과 공유하기 위해서, 아니 공유하기 위한 소유물을 더 많이 갖기 위해서 집 밖에서 더욱 치열하게 사유를 위한 경쟁에 돌입한다.
 

보통의 경우 사람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는 그렇게까지 냉혹해지기는 힘들다. 자기가 좀 손해를 보더라도 참고 마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러나 자기 가족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경쟁과 싸움 속에 자기의 몸을 던진다. 이렇게 집과 가족은 사유의 경쟁으로부터 도피처 또는 해방구에서 사유화의 경쟁 원인이자 그 성과물을 축적하는 곳, 경쟁을 위한 보급처이자 참호로 전락하고 만다. 가족을 위해 무슨 수를 써서든 더 많은 돈을 벌러 나가는 아버지와, 미래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 입시와 영어와 고시 공부를 하는 아이들, 이들의 싸움을 독려하고 위로하며 자기를 헌신해서 가족을 지키며 때로 스스로 싸움에 나서기도 하는 어머니. 집이 답답한 것도 당연하다. 가족들은 언제나 제각각 집을 벗어나기를 꿈꾼다. 차라리 홀로 살아가기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다시 처음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로 돌아가는 것일 뿐 결코 답이 될 수는 없다. 이것이 우리 시대 가족의 현주소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첫째는 집과 가족이 사회와는 전혀 다르다는 믿음이다. 자본주의적인 사회 질서가 엄존하고 있고, 그것을 바꾸려는 노력 없이 우리 집과 가족만은 다를 것이라는 기대는 허망한 것이다. 혈연은 부질없고 사랑은 흔들리기 마련이다. 혈연과 사랑이 당연히 공유의 실천을 낳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가족들은 집 밖에서도 살아가고 그 질서에 익숙해지기 때문에, 집 안에서도 집 밖과 같은 문제는 항상 있을 수 있다. 반대로 공유의 실천이 가족 안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할 이유도 없다. 문제는 가족이 아니라 공유의 실천이다.
 

둘째는 공유의 관계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더 많은 소유로 해결하려는 전략이다. 애초의 집이 주는 행복과 풍요로움은 소유물이 커져서가 아니라, 가진 것이 적더라도 그것을 공유하는 데서 발생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를 지키기 위해서 더 많은 소유가 요구되는 기묘한 역전이 발생된다. 이런 상황에서 관계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것이 돈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이익집단에서는 가능할 수도 있지만, 공유의 공간에서는 터무니없는 것이다. 공유의 실천이 더 잘 일어나도록 관계를 재설정하지 않는 한, 소유를 늘리는 시도는 오히려 관계를 더 소홀히 하게 되고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뿐이다.
 

셋째는 집 자체가 경쟁과 사유의 핵심에 있으며 우리가 모두 그런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집은 곧 돈이다. 집을 사려고 돈을 벌고, 돈을 벌기 위해 집을 산다. 재산, 소득, 지출, 저축, 대출, 투자, 상속 등 돈과 관련된 생활의 중심에는 집이 있다. 보증금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사는 쪽방과 고시원에서 시작해서, 어떻게든 보증금을 마련한 월세방에서 저축을 통해 보증금을 늘려가다가, 전세집을 구해서 월세에서 해방되고, 저축과 투자를 늘리고 대출을 더해 마침내 내 집 마련, 여기서 더 나아가 부동산 투자를 더 가속화해서 늘어난 자본을 자녀에게 상속하는 것. 이 과정을 차례차례 밟아 나가는 것이 우리 삶의 표준 경로이고, 발전 단계이며 어느 단계까지 왔는가가 그 사람이 속한 현실 계급이다.

 

공유의 실천과 가족되기
우리의 삶은 돈을 벌고 집을 사기 위한 투쟁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런 면에서 사실 집을 가족과 공유한다는 것은 진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는 자기 자신과 완전히 동일시 할 수 있는 사람들,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이 아니면 누구와도 집을 공유하지 않는(또는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더 강화된 형태의 사적 소유다.
아니, 분명 공유의 시기는 있었다. 전혀 다르게 살아왔던 두 인간이 사랑에 빠져들어 상대로부터 아무 보답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질 때,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아무런 말도 통하지 않는 갓난아이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신의 삶을 바칠 때, 그것은 더 없이 아름답고 숭고한 선물과 공유의 실천이다. 이러한 실천을 통해 나와 전혀 다른 타자가 나의 가족이 되는 것이고 행복은 이러한 가족되기에서 비롯된다. 반대가 아니다. 가족이기 때문에 공유의 실천이 가능한 것이 아니고, 공유의 실천이 가족을 만든다. 그러나 그러한 실천으로 상대가 나와 동일해질 수는 없으며 나의 소유물이 될 수도 없다. 가족되기를 위한 공유의 실천은 함께 살아가며 지속적으로 일어나야 하며 자연스럽게 확장·확산되어야 하는 것이다. 오히려 가족되기는 집 안이라기 보다는 집 문턱에서, 타인을 받아들이고 타인을 향해 나아감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가족이기 때문에 같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같이 살아가기 때문에 가족이 된다.

 

누구나 손님, 주인, 가족이 될 수 있는 집

현실은 답답하고 길이 없어 보이지만, 거꾸로 보면 진실이 보인다. 모두가 집으로 돈을 벌고자 하기 때문에 집을 위해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된다. 모두가 돈을 집에 투자하기 때문에 집값은 올라가고 집 구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진다. 모두가 자기 집의 물건을 함께 쓰지 않기 때문에 제각각 집에 물건들을 쌓아놓지 않으면 안 된다. 서로가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소유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누구에게도 집을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사람과도 함께 살 수 없다. 가족 간에라도 계산은 정확히 해야 하기 때문에 가족은 소멸된다. 자기가 가진 것을 기꺼이 내어주고 나누지 않기 때문에 사랑도 없다. 모두가 자기 집 문을 열지 않기 때문에 이웃이 없고 친구도 없다.
 

정 반대의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모두가 집으로 돈을 벌려고 하지 않으면, 집 때문에 돈을 벌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집에 투자하지 않으면 집값은 올라가지 않을 것이다. 서로의 물건을 함께 쓰면, 각자가 물건을 많이 사거나 쌓아놓지 않아도 풍요롭다. 다같이 공유하는 것이 풍부하면 사적으로 소유하기 위해 경쟁하지 않아도 좋다. 집을 공유하면 누구와도 함께 살 수 있다. 어제 만나서 오늘 가족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매일같이 이웃과 친구를 만나고, 함께 살자고 프로포즈하며 서로 돕고 사랑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서울 남산 아래 해방촌 게스츠하우스 빈집은 이런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움직임의 하나다. 세상 모든 이와 공유해서 즐거운 집, 누구나 손님=주인=가족이 될 수 있는 집을 만들어가고 있다. 2008년 3명으로 시작한 빈집의 가족은 20여 명의 장기투숙객과 셀 수 없이 많은 단기투숙객들로 늘어났고, 빈집도 5개로 늘어났다. 빈집이 궁금하다면 빈집과 빈집 홈페이지(www.binzib.net)를 방문해주길 바란다. 낯설다고 주저할 필요는 없다. 각자가 자기 집 문을 열고 만난다면, 우리는 이미 한살림이 아니겠는가?



게스츠하우스 빈집은 손님들의 집.
집 떠난 사람들의 집.
주인이 손님이 되고 손님이 주인이 되는 집.
빈집 문을 여세요.
당신의 집 문을 여는 것처럼.
당신의 집 문을 여세요.
빈집 문을 여는 것처럼.

 

 

↘글을 쓴 지음 님은 서울 남산 아래 해방촌 게스츠하우스 빈집(www.binzib.net, 070-8242-1968)에서 장기투숙객으로 살면서, 자전거 메신저(http://blog.jinbo.net/messenger, 070-8226-1968)로 배달 일을 하고 있습니다. 빈집으로 찾아가거나 메신저를 부르면 언제든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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