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호 2010년 가을 [특집] 집. 사다, 살다, 짓다

[ 부동산 거품 붕괴 시대, 현명한 가계운영법 ]

돈에 대한 적극적인 인식, 불편한 소비, 저축이 필요하다

글 제윤경

돈에 대한
적극적인 인식,
불편한 소비,
저축이 필요하다

 


2000년대 최대 화두가 ‘부자되세요’였다. 외환위기를 거쳐 부동산 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상승하기 시작했고 대한민국에서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야 한다는 믿음이 보편화되었다. 때 맞춰 금융시장에서 주가가 상승하고 펀드라는 새로운 투자 수단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렇게 부자가 화두가 된 세상에서 자산시장은 열심히 일해서 돈 버는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어 버렸다. 끝도 없이 오를 것만 같은 부동산, 펀드가 아닌 적금을 가입하면 손해볼 것 같은 자산시장은 그야말로 과열의 시대였다.


그러나 자산시장은 끝도 없이 오를 수 없다. 혹은 이미 형성된 거품이 오랫동안 유지될 수도 없다.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자산시장의 거품이 붕괴되지 않은 적은 없다. 자산시장의 거품이 유지될 수 없는 것을 케인즈 학파로 유명한 민스키는 금융의 불안정성이 자산시장의 거품을 만들고 다시 붕괴를 야기한다고 지적한다. 민스키는 은행의 신용확대와 신용경색이 반복되면서 자산시장의 거품과 붕괴가 반복된다고 설명한다. 이에 대해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의 저자 찰스 킨들버그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은행들은 자금 대여자로서 어떤 때는 무척이나 강한 풍요감에 젖어 제한 없이 자금을 빌려주었다가 어떤 때는 신중함이 극에 달해 차입자들이 ‘바람에 휘둘리도록’ 내버려뒀다.”


많은 중산층은 과도한 부채로 사들인 부동산 가격이 올랐을 때에도 이전보다 더 가난한 일상을 살았다. 소득의 상당부분이 부채이자로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자산 소득을 벌 것이라는 믿음은 장부상의 숫자로만 존재했다. 물론 그 숫자는 2009년까지만 해도 꽤 기특한 것이었다. 구매한 가격보다 무려 몇 천만 원에서 몇 억 이상을 앉은 자리에서 벌었다는 기분을 만끽하게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기특한 숫자들은 조금씩 들떠 있는 중산층들을 배신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빚을 내서 자산 투자에 나설 사람들이 사라지면서 시장에는 매수자는 실종하고 매도자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사겠다는 사람이 없는 부동산 시장은 거래가 실종되다시피 했다. 거래가 이뤄지지 않으니 매각을 해야 하는 절실한 매도자들이 발을 동동 구르게 되고 점점 매도 가격을 낮추기 시작한다. 그나마 빚이 없거나 감당할 만한 수준의 채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빠져나오지 못한 아쉬움을 내 집이라는 소유에 대한 만족으로 달랠 수 있었다. 그러나 주택담보 대출 이자를 내느라 생활비가 부족해 마이너스 통장에 의존해 살아가야 할 만큼 부채가 많은 사람들은 집 값이 더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공포심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제 집에 투자하기 위해 일으켰던 빚은 언제 어느 때에 가정 경제를 덮칠 폭탄으로 돌변할지 예측하기 어려운 때가 되어버렸다.


빚은 절대 자산이 아니다. 옛말에 빚은 소도 잡아먹는다라는 말이 있다. 전통적으로 소는 농경사회 재산의 전부로 상징되어진 것이다. 결국 빚은 전 재산을 삼킬 수도 있다는 말이다. 고도의 금융기법이 난무하는 현실이지만 이미 빚이 한국사회 중산층의 삶을 삼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라도 냉정을 되찾아야 할 때임이 분명하다.

 

새로운 마인드 셋이 필요하다
빚도 자산, 저축은 손해, 투자를 통한 자산 증식. 자산시장이 과열되었던 지난 몇 년간 우리를 지배했던 사회적 의식이다. 이것은 하나의 프레임이 되어 사람들의 관계를 지배하고 일상과 소비, 미래에 대한 꿈까지 지배했다. 사람들은 이 왜곡된 프레임 안에서 이유 없이 불안해하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불행해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위험한 선택으로 이끌었다. 빚내서 투자하게 만들고 저축은 어리석은 것으로 간주되면서 가계 저축률이 제로에 가까운 수준으로 떨어졌다. 월급날은 더 이상 한 달 열심히 일한 대가를 받는 뿌듯한 날이 아니다. 신용카드 결제금과 각종 공과금이 빠져나가고 나면 남는 돈이 없는 앙상한 결제일이 되어버렸다. 벌어서 쓰고 미래를 위해 저축하면서 조금씩 쌓여 나가는 저축액으로 든든한 마음을 갖는 현금흐름이 사라졌다. 대신 신용카드로 먼저 쓰고 열심히 일해서 갚는 채무노예 구조에 갇혀 버렸다. 외상값을 갚아나가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현금흐름 속에서도 여전히 주말이면 나들이 차량으로 길이 막히고 대형마트에는 주차장 진입을 위한 자동차들이 꼬리를 문다. 카드 값 결제로 월급날이 허탈할지언정 소비를 멈출 수 없는 소비주의 사회가 우리를 지배한 무서운 프레임 중의 하나였다. 아인슈타인은 “어떤 문제를 일으켰을 때와 똑같은 마인드로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풍요와 부에 대한 왜곡된 프레임, 즉 마인드 셋으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많이 쓰는 것은 풍요가 아니다
하나를 가지면 그것과 관련된 다른 것도 소유하고 싶어지는 것을 ‘디드로 효과’라고 한다. 18세기 철학자 디드로라는 사람이 친구로부터 서재용 가운 하나를 선물 받고는 그 가운의 색상에 맞춰 서재 전체의 가구를 바꿨다는 데서 유래한 경제용어이다.


새 집을 장만하면 가구나 가전제품부터 혹 집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까지 세세하게 고려해 전동 드릴이 들어있는 공구함까지 장만하게 된다. 새 차가 생기면 오디오 시스템부터 핸즈프리 도구들을, 자전거 하나를 사더라도 안장이나 패들까지 전부 연속적으로 구매하게 된다. 그런데 소비를 하면 할수록 우리는 심리적으로 풍요로워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한 욕구불만에 시달린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이런 현상은 쉽게 욕구를 충족시켜 버리고 나면 포부감이 형성되어 더한 욕구불만이 생겨 버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20평형대 살면 30평형대가 부럽고 30평형대 살면 40평형대에 사는 친구를 만나 잠을 못 이루는 것이다. 끝도 없는 다른 사람과의 비교 원인에는 기업들의 마케팅이 한몫 한다. 얼음 나오는 정수기 CF 속 아이의 간절한 눈망울이 화면 가득 클로즈업 되고 ‘엄마,우리 집은?’ 한마디에 저소득층 가정에서조차 정수기가 필수품이 되어버린다.


우리는 약간의 수고를 덜기 위해 도구를 소유하고 그 도구를 구매하기 위한 돈을 벌려고 뼈 빠지게 일하는 도구 패러다임에 갇혔다. 게다가 그 도구들을 유지 관리하기 위해 답답한 공간을 감수하고 관리하는 에너지까지 낭비해야 한다. 어느 건축업자는 “모든 부자는 자신 소유물의 관리인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말을 했다. 우리는 어느새 없어도 좋을 것들을 관리하고 사느라 끝도 없이 돈이 필요한 갈증에 시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국의 중산층들이 소비 중독에 시달릴 때 그들은 국민 1인당 4장의 신용카드를 가지고(4인 가족이라면 가구당 16장의 카드를 소유한 셈이다) 해마다 냉장고를 교체하고 1회용 접시에 냉장 냉동 반조리 식품을 일상적으로 먹었다고 한다. 우리 중산층 서민의 냉장고 속도 점점 대량으로 소비되고 있으며 유통기한 지난 쓰레기들이 들어차고 있다.


돈에 대한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자산 투자와 소비, 소유에 대한 잘못된 의식은 알고 보면 돈에 대한 막연한 태도가 불러일으킨 오류이다. 많은 사람들이 돈에 대해 자유롭고 싶어하면서 자신이 얼마를 버는지 얼마를 쓰는지 모르고 산다. 심지어 모르고 사는 것이 당연하고 그만큼 돈에 초연해 한다는 자부심까지 갖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자신의 경제생활에 대해 막연한 태도를 갖는 것만큼 무서운 함정은 없다. 막연한 태도가 불안을 야기하고 그 불안이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사람은 모호함 혹은 불확실성에서 공포심을 경험한다고 한다. 그 공포심은 다른 사람들을 중심으로 삶의 가치관을 결정해버릴 오류를 낳는다.
가정 경제를 끌어가면서 우리가 바꾸어야 할 첫 번째는 돈에 대한 태도이다. 소득이 얼마이고 나의 소비 생활은 어떤 기준으로 이뤄져야 하는지에 대한 원칙이 수립되어야 한다. 그러한 적극적인 태도와 원칙은 돈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게 도와준다.


두 번째는 소비의 방식이다. 신용카드가 일상이 되어버린 소비는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생략한 충동소비로 이끈다. 지나치게 편리한 소비 생활이 불필요한 소비를 낳고 불필요한 소비는 욕구 불만을 낳아 또 다른 소비를 연속적으로 충동질 한다. 소비과정은 편리했으나 관리의 불편을 낳는 것이다. 신용카드가 아닌 현금 혹은 직불 결제 시스템으로 불편한 소비 생활을 하자. 불편한 소비 구조는 ‘꼭 필요한가?’, ‘정말 만족하게 될까?’라는 자문과 더불어 신중한 소비를 이끈다. 신중한 소비는 소비의 만족을 극대화하고 또한 재정상태를 안정되게 한다. 적게 소유하고 불편하게 소비한다고 삶이 불행해지는 것이 아니다.


세 번째로 건전한 가정 경제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저축이다. 《행복의 경제학》의 저자 쓰지 신이치는 행복한 사람은 저축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물론 여기서의 저축은 계좌에 들어있는 돈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가 이야기하는 저축이란 물질적 여유만이 아닌 무슨 일이 있을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족, 친척, 친구, 지인들과 가까운 지역이나 직장에서의 인간관계 속에서 자신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키고 나아가서는 자연계와 교감하는 시간을 갖는 등 살아가는 기술까지를 포함한 넓은 의미에서의 ‘사회 안전망’을 이야기한다.


그의 말대로 사회적 관계를 확장시키는 노력으로서의 저축과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기 위한 사회 활동으로서의 저축 모두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저축 계좌가 의미 없다는 것은 아니다. 금융 계좌로서의 저축은 개인에게 미래에 대한 예측이다. 즉 자산을 축적하고 증식하기 위한 의미로서의 저축이 아니라 미래의 소비를 위해 저축이 필요하다. 최근 몇 년간 금융마케팅에 의해 저축의 의미가 퇴색되었다. 투자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만들어낸 금융사들이 왜곡시킨 저축의 의미를 되살릴 필요가 있다. 저축은 미래의 소비이자 욕구를 천천히 단계적으로 실현해 나가기 위한 훌륭한 경제 행위이다.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자기 계획이고 가정경제의 안전장치이다.


가정경제가 지속가능한 풍요를 만들어 가기 위해 이제 소비보다 저축이, 자산의 크기보다 건전한 경제 구조가 중요하다는 반성이 필요한 때이다.

 

↘글을 쓴 제윤경 님은 (주)에듀머니 이사로 합리적인 가계 운영에 대해 활발하게 글을 쓰며 경제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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