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호 2010년 가을 [특집] 집. 사다, 살다, 짓다

[ 집에 대한 다른 생각 ]

빚내서 집 사는 일은 하지 않겠다

글 이규원

빚내서 집 사는 일은
하지 않겠다

 

어릴 때는 서울 변두리에 있던 우리 집이 무척 크다고 느꼈다. 집장수들이 60년대 지은 한옥이었는데 기역자 구조로 작은방 세 칸에 마루와 부엌이 있었다. 마당에는 장독대가 있었고 수돗가에는 시원한 지하수가 뿜어져 나오는 펌프가 있었다. 마당 한 쪽에는 아버지가 누나를 낳고 심었다는 두충나무 네 그루가 드리우는 그늘이 시원했다. 나무로 짠 대문 옆에는 재래식 화장실이 있었다. 우리 집이 크다고 여긴 것은 나중에 생각하니 착각이었다. 내 몸이 작기 때문에 집이 커 보였던 것이다. 어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집을 허물고 당시 유행하던 다세대 주택을 지어 올렸다. 몇 달 새 단층 한옥에서 3층짜리 다세대 주택으로 집이 바뀌었다. 새로 지은 집에 기름보일러를 놓으니 편하기 이를 데 없었다. 더 이상 시간 맞춰 연탄을 갈아주지 않아도 되고 매캐한 번개탄 연기도 더 맡을 필요가 없었다. 보일러 버튼만 누르면 따뜻한 물이 나와 샤워도 해보게 되었다.
중·고등학교에 들어간 뒤 학교와 독서실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집에서는 잠만 자게 되었다. 대학교에 들어가고 군대 갔다가 복학해도 밖으로 돌아다니는 것은 더 심해졌다. 집은 여전히 잠시 잠자는 곳에 머물렀다. 졸업을 앞두고 취업 걱정을 잠시 하긴 했어도 내 걱정거리 리스트에서 집은 빠져있었다. 20대에 무슨 집 걱정을 한단 말인가? 
 

남자들은 집에 대한 고민을 언제부터 하게 될까? 내 경험으로는 결혼 후 분가를 위해서였던 것 같다. 직장생활을 한 지 2년쯤 지난 2003년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혼수는 여자가 준비하고 살 집은 남자가 준비한다는 사회 통념에 따라 여기저기 알아보게 되었다. 직장생활 2년을 했지만, 통장 잔고는 몇 백만 원밖에 없었고, 부모님께 도와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집안이 좀 어렵기도 했고 이제까지 키워주시고 대학공부까지 시켜주셨는데 결혼하는 마당에 도움을 청하는 것은 염치없는 짓 같았다. 아내와 나의 일터가 있는 곳을 고려해 출퇴근이 적당한 중간지점을 중심으로 집을 보러 다녔다. 전세보증금이 비싸 아파트는 꿈도 못 꾸고 대출 가능 한도에 가까운 집을 고르다보니 다세대 주택밖에 갈 곳이 없었다. 그나마 모자란 돈을 맞추려 이리저리 돈을 빌리러 다녀야만 했다. 결혼생활을 빚더미 위에서 시작했다.

 


신혼집을 그렇게 마련했다. 3층 다세대 주택이었는데 맨 위 3층은 주인집이었고 2층과 반지하인 1층을 반으로 갈라 총 5세대가 살고 있었다. 이 집의 가장 큰 문제는 물이 잘 안 나오는 것이었다. 사는 집에 물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때 절감했다. 인류 4대 문명이 강가에서 시작된 것이 괜히 그런 게 아니었다. 옆집에서 변기 물이라도 내리면 설거지하기가 불편할 정도로 물이 쫄쫄 흘러나왔다. 좁은 골목을 따라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태풍이라도 불어야 집안에 바람이 통할 정도니 현관문은 늘 열어놓고 살아야 했다. 2년 동안 그 집에 살다 이사 갈 때가 되었다. 가뭄 맞은 옹달샘 같은 수도를 끼고 산 때문에 물 잘나오고 주차 편하고 바람도 잘 통해 시원하고 치안 상황도 괜찮은 곳을 찾아 나섰다. 싸게 나온 아파트가 있어 전세 자금을 좀 더 대출받아 들어가 살게 되었다. 대출을 많이 받지도 않았고 애도 없이 둘이 벌다 보니 별 부담 없이 갚게 되었다.


2005년부터 아파트로 옮겨 지금까지도 전세로 계속 살고 있다. 그간 아이를 둘이나 낳고 이사를 3번이나 다녔지만 나는 구태여 빚을 내 집을 살 엄두를 내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빚지고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전세보증금이 약간 올라가는 것은 아내와 나의 소득 수준으로 감당할 수 있어 큰 부담은 없다. 전세 계약기간이 끝나는 2년마다 이사를 다니다보면  돈도 좀 들고 불편하긴 하지만 다른 공간에서 살아보는 것도 나름 색다른 느낌이라 괜찮다.


투기 안 하는 사람이 바보취급 당하던 시절도 있었다
사람들은 왜 집을 사지 못해 안달을 하는 것일까. 자고나면 집값이 폭등하던 상황은 나도 기억한다. IMF 구제금융사태에서 벗어난 뒤 집값이 꾸준히 오르면서 부동산 투기 바람이 열병처럼 번져가던 상황. 빚내서 집사는 일이 “투기”가 아니라 “투자”라고 강조하던 사람들. 복부인이 갑자기 투자와 재테크의 달인처럼 추앙받던 일들. 동창들을 만나 술자리를 가지면 늘 집을 얼마에 사서 얼마에 팔아 얼마를 벌었다는 이야기가 안주로 올라왔다. 때마침 뉴타운이다 뭐다 하면서 서울을 온통 공사판으로 만든 이가 계속 집값 부풀리는 데 적격일 것이라는 기대에 힘입어 대통령이 되기까지 했다. 밤새 길게 줄서서 청약을 하고 분양받은 뒤 은행에서 빚내고 집을 산 뒤 전세로 돌리고 나머지는 3년 거치로 이자만 내다가 3년 동안 집값이 오르면 팔고 그 차액으로 평수 넓은 곳으로 이사가는 것이 어지간한 사람들이 누구나 하는 재산증식 과정이었다. 이러다보니 ‘부동산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정도가 아니라, ‘내려서는 절대 안 된다’는 굳은 신념마저 형성된 것 같다. 너나 할 것 없는 이 굳센 신념이 부동산 거품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왔을 것이다.


부동산 거품에 대해 조금 이야기 하자면 자영업을 포함한 우리나라 사람의 연평균 소득은 2천598만 원이다. 평균적인 일반인이 벌어들이는 돈을 한 푼도 안 쓰고 10년을 모으면 2억5천만 원쯤이고, 20년을 모아야 5억 원이다. 서울 강남의 은마아파트 77㎡(23평)한 채의 실거래가는 2010년 6월 기준 8억 7천500만 원이다. 2006년 한창 비쌀 때는 실거래가가 10억 7천600만 원 하던 곳이었는데 경기가 안 좋아져 하락한 금액이 그렇다. 은마아파트는 1979년에 지어졌는데, 보통의 직장인이 20년 동안 쓰지 않고 모아도 지은 지 30년 된 아파트를 살 수 없는 것이다. 또한 1970년대 말에 서울 서초구 한신공영 신반포 2차 아파트 99㎡(30평형)의 매매가가 2천만 원 미만이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10억 원이 넘는다. 월급 30년치를 다 모아도 살 수 없다. 우리는 이런 세상에서 살고 있다.


요즘 ‘하우스 푸어(house poor)’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투기소득을 기대하고 감당하기 벅찬 빚을 끌어썼는데도 금융위기 이후 오히려 집값이 떨어지면서 크게 손해를 본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서울 전체 가구의 69%는 집을 소유하고 있지만 이 가운데 3분의1이 평균 1억9천만 원의 주택대출금을 안고 있다는 것이 서울시정연구원의 발표다(2010년 3월). 집문서가 내 이름으로 돼 있다고는 해도 은행에 월세 살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집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게 된 것은 집을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만 생각해온 탓일 것이다. 


내가 어릴 때만해도 주위에 맞벌이 하는 부모들이 흔치 않았다. 집에서 돈 버는 사람은 아버지 하나로 족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집값이 비싸지 않았고 사교육도 정부에서 금지시켰기 때문에 따로 돈 들어갈 일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특별히 풍족하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부족함을 느끼지도 않았다. ‘오래된 미래’식으로 막연히 지금보다 예전이 더 좋았다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과거보다 많은 것들이 더 나아졌지만 주택 정책과 교육 정책 만큼 장기적인 안목 없이 이리저리 휩쓸려 오히려 더 나빠진 것 같다.
“집은 사는(buy)것이 아닌 사는(live) 곳”이란 시프트(서울시 장기 전세주택)광고는 어쩐지 역설적으로 읽혀 슬프다. 이 광고 문구가 오히려 우리 시대의 자화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집은 우리 가족이 살아가는 기본 공간으로 아늑하고 편해야 한다. 부드러운 잔디가 깔려있는 멋진 집에서 영리한 큰개도 키우며 아이랑 도넛원반을 주고받으며 멋지게 살고 싶기도 하지만 그때문에 은행에 대출 이자를 내며 살고 싶지는 않다. 무엇보다 마음이 불편할 것 같기 때문이다.
내가 잠자고 일어나 밥 먹고 아들딸과 장난치며 노는 지금의 이 집이 전세든 월세든 어떤가. 내 집인데.

 

요즘 ‘하우스 푸어(house poor)’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투기소득을 기대하고
감당하기 벅찬 빚을 끌어썼는데도 금융위기 이후
오히려 집값이 떨어지면서 크게 손해를 본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서울 전체 가구의 69%는 집을 소유하고 있지만
이 가운데 3분의1이 평균 1억9천만 원의
주택대출금을 안고 있다는 것이 서울시정연구원의
발표다(2010년 3월). 집문서가 내 이름으로 돼
있다고는 해도 은행에 월세 살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집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게 된 것은 집을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만
생각해온 탓일 것이다. 

 

↘글을 쓴 이규원 님은 한살림서울 남부지부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던 몇 년 전부터 일관되게 그는 집값 거품은 언젠가 붕괴할 것이며, 빚내서 집 사는 일로 지금의 행복을 유예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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