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호 2010년 가을 [특집] 집. 사다, 살다, 짓다

[ 고단한 집살이 ]

난장치다 쪽방으로, 집을 찾아서

글 이주원 사진 (사)나눔과미래

난장치다 쪽방으로, 집을 찾아서


집은 삶의 터전이고 기반이지만 일상에서 집의 의미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뉴타운 열풍이 상징하듯 부동산을 투기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이 시대에 새삼 집의 의미를 떠올려 본다. 집값 폭등으로 어쩔 수 없이 거리로 내몰리는 주거 약자들에게 집은 재테크의 수단이 아니라 생존의 수단이다.
‘집’이란 무엇일까? 사람들이 들어가 잘 수 있고, 낯선 이들이 함부로 들어올 수 없게 법으로 보장되는 사적인 공간이 바로 집이다. 집은 비바람과 눈보라를 막아주고 추위와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며, 위험한 짐승이나 도둑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고 휴식을 하거나 편안하게 잠을 자는 등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해 주는 곳이다. 또한 집은 가족끼리 단란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쉼’의 공간이기도 하다.
집은 단순한 거처(shelter)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집은 개인에게 있어 가치 있는 것들을 구현하는 일종의 세계인 것이다. 그렇다면 집이 없다는 것은 무엇일까? 집이 없으면 안전을 보장받지 못할 것이며, 영혼과 육체가 편히 쉴 장소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집이 없다면 대개 가족은 해체되었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집이 없어 가족과 이별하고, 쉼이 없는 불안한 삶을 사는 21세기의 유랑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노숙인이 그러하고, 쪽방 생활자가 그러하고, 고시원이나 여관에서 생활하는 이들이 그러하다. 이들의 삶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도록 하자.

 

 

난장치는 거리 노숙인
지하철역, 공원 등에서 노숙하는 행위를 그들의 은어로 ‘난장깐다’ 혹은 ‘난장친다’고 한다. 노숙인들에게 잠자리를 마련하는 것은 끼니를 해결하는 일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들에게 노숙생활을 잘하는 사람들이란 ‘좋은 것들을 얻어먹고, 좋은 곳에서 잠을 자는 사람들’이다. 그만큼 자는 것이 이들의 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그래서 이들에게 ‘자는 장소’에 관한 지식은 노숙생활을 성공적(?)으로 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이 생활 하려면 밥 잘 얻어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잠자리 구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해. 처음에야 당장 배고프니까 잠자는 건 둘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제대로 자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거든. 제대로 못 자면 금방 몸이 축나서 꼬지(동냥질)하러도 못 다녀. 잘못하다간 갱생원 같은 데 끌려가기 십상이야. 그리고 마음이 추워서 그런지 여름에도 아무데서나 자면 새벽 되면 춥거든. 병나발 불고 자도 마찬가지야. 하여간 처음엔 매일 어디서 잘까 궁리하는 게 일이었어. 시간이 지나면서 여기저기 난장칠 데도 잘 알게 되고 그러면서부터는 좀 쉬워졌지.”
노숙에 익숙한 이들은 잠 잘 곳에 대해 매우 다양하고 구체적인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있다.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노숙을 할 수 있는 장소로 40여 군데에서 100군데까지 열거하는 이도 있다. 또한 이들은 다양한 노숙 장소들의 장단점이나 특징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예를 들자면, 어떤 곳이 겨울에 잠을 자기 좋은지, 안전한 장소인지 등에 관해 매우 구체적인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있다.
노숙인들이 ‘난장을 치는’ 장소로는 서울역 지하도, 을지로입구 지하도, 옛 쁘렝땅백화점 지하도, 용산, 종묘공원, 정릉천, 회현역 지하도, 영등포역 지하도, 서소문공원, 인천역, 대구역, 대전역, 부산역 등이 있다. 그들이 선호하는 주요 노숙지역이 지하철역 지하도인 이유가 있다. 난장을 치느라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노숙인들은 새벽 4시쯤에 일어나 주변을 정리한 뒤 5시부터 아침을 먹으러 가던지, 못다 잔 잠을 자기 위해 지하철을 이용한다. 이들은 주로 지하철로 이동하는데, 그들 표현대로 ‘삥차(돈을 내지 않고 지하철 무임승차하는 행위를 일컫는 용어)’를 타기 위해서는 지하철역 지하도에서 노숙하는 것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노숙인들 가운데 노숙이 좋아 선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돈만 있다면 길거리에서 난장을 치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겨울철이나 장마철에 길거리에서 난장치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겨울철과 장마철에는 길거리 난장을 안 하고 여관, 여인숙, 쪽방 등으로 들어가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쪽방 생활자의 애환
불이 났다. 2009년 6월 26일 이른 아침, 부산 남포동의 여인숙에서 일어난 화재는 5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당시 이 여인숙에는 여성 2명을 포함해 모두 9명이 장기투숙 중이었으며 이들 중에서 일찍 출근한 2명의 여성과 미리 대피한 남성 1명을 제외한 5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쳤다.
불이 난 여인숙은 1954년 주택으로 허가받고 지어진 건물로 1968년 여인숙 허가를 받고 숙박영업을 한 매우 노후한 건물이다. 그동안 단 한 차례도 소방점검을 받지 않았고, 완강기 등 비상대피장치나 소화전은 물론이고, 소화기조차도 비치되어 있지 않았다. 이런 유사주거시설은 화재에 매우 취약한 구조이며 이미 비슷한 화재사건이 빈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적극적인 예방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부산소방본부는 화재 참사 후 부산지역의 여인숙과 쪽방을 대상으로 특별 화재 점검과 실태조사를 벌이겠다고 발표했다. 또 소 잃고 외양간 고치겠다는 것이다.
부산에만 해도 327개의 여인숙과 쪽방이 있고, 전국적으로는 엄청난 수의 주택이 아닌 유사주거시설이 있다. 바로 여기가 갈 곳 없는 도시빈민들의 마지막 보금자리다. 거리로 내 몰리기 전에 찾는 가난한 이웃들의 마지막 보금자리인 것이다.
도시의 낙후된 골목길로 들어서면 어렵지 않게 여인숙 간판을 만난다. ‘이런 곳엔 누가 자러올까?’싶도록 쇠락한 여관과 여인숙들. 이런 숙박업소는 이미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이곳에는 장기 실직자와 무연고자, 빈곤 노인 등이 달세 10~25만 원 정도에 장기 투숙하고 있어 이미 오래전에 실질적인 쪽방으로 전락했다. 대략 추정하면 전국의 여관, 여인숙 2만7천330여 개 소(통계청, 2006년 기준)중에 적어도 20% 정도는 이미 유사거주시설화됐고, 이곳 투숙객의 70~80%는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절대빈곤층이다. 이들은 화재 등의 안전사각지대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쪽방, 여인숙 등만의 문제는 아니다. 도시 외곽에 산재한 비닐하우스촌도 같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통계에 잡히는 수치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단신생활자와 가족 단위의 도시빈민들이 여관, 여인숙, 고시원, 찜질방과 거리 노숙을 오가면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집은 희망입니다
집이 없어 좌절하거나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이웃들의 고통을 해결해야 한다. 해법은 무엇인가? 여인숙과 쪽방, 비닐하우스 등의 안전관리를 강화하면 될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이곳들 거의 대부분 극히 노후화되어 있고, 목조 등 화재에 취약한 내외장재로 이루어져 있어 비상대피시설이나 소방설비를 완비하기 어려운 구조다. 따라서 긴급하게 전국적인 특별점검을 통해 실태를 파악하고, 방재대책을 세워야겠지만 근본적으로는 국가 차원에서 공공임대주택을 확보하여 이주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집이 희망이 되려면, 주거약자들이 안심하고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주거가 제공되어야 한다. 주거비가 너무 비싼 우리 사회에서 가장 저렴한 주거는 여전히 정부가 공급하는 임대주택뿐이다. 그런 점에서 2007년부터 정부가 시행중인 쪽방·비닐하우스 임대주택사업의 선례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기존 다가구주택을 매입, 공급하여 기존 생활권 인근에서 최장 10년간 저렴한 비용으로 거주할 수 있게 한 적극적인 주거복지정책으로 그 의미가 크다. 그러나 문제는 입주대상자에 비해 공급량이 한정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정부는 좀더 적극적으로 주거취약계층용 임대주택을 공급해야 할 것이다.

 

 

 

↘글을 쓴 이주원 님은 서민들의 빈곤과 주거문제 해결을 위해 힘쓰는 비영리단체, (사)나눔과미래의 지역복지사업국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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