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호 2010년 가을 [특집] 집. 사다, 살다, 짓다

[ 재개발, 탐욕의 작동원리 ]

눈먼 자들의 도시

글 유채림 사진 박김형준

눈먼 자들의 도시

 


 

 

눈먼, 눈먼, 눈먼 자들 속에서 눈멀기 전에 기억을 남겨야겠다. 첫 번째로 눈먼 건설투기꾼, 첫 번째로 눈먼 건설투기꾼의 돈을 훔친 두 번째로 눈먼 건설시공업자, 검은색 안경을 쓴 눈먼 구청공무원, 눈먼 사팔뜨기 시청공무원, 핸들에 걸칠 만큼 배가 튀어나온 눈먼 정부관료, 눈먼 자들의 신문을 만드는 눈먼 기자들, 그들은 나만 살면 된다고 발버둥치고 있다. 하지만 눈먼 자들에겐 영원히 눈머는 일만 남아 있다.
그들이 사는 동네는 지극히 단순하다. 길은 직선으로 나 있어야 하고, 길 밖으로 한 뼘이나 두 뼘쯤 튀어나온 집은 이동에 불편을 주어 금물이다. 봉창 밖으로 물받이 차양이 튀어나와 있어도 금물이다. 골목 어귀에 평상을 내다놓거나, 고추 모종을 심은 화분이라도 내놓았다가는 큰일이다. 빨래건조대를 내다놓거나 한쪽에 자전거를 묶어놓아도 큰일이다.


골목만이 아니라 집도 단순해야 한다. 여섯 번째 골목으로 들어가 네 번째 나무대문 집은 대문을 열기까지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따른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면 여섯 번째 버튼을 누르고, 6층에 올라 네 번째 집 문 앞에서 인터폰을 누르는 것처럼 아주 단순해야 한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수돗가를 지나고, 댓돌을 만나면 신발을 벗고, 마루에 올라서면 방문 미닫이를 밀어야 하는 집도 금물이다. 눈먼 자들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즉시 신발을 벗고 거실로 올라서야 하는 지극히 단순화된 집이 필요하다.
 

골목과 단층의 집들로 빼곡한 풀무골에 그들이 쳐들어온 것은 5년쯤 되었다. 모든 단층의 집들을 비우는 데 그들은 고작 2년밖에 안 걸렸다. 눈먼 자들은 말한다. 이곳은 사람이 살 곳이 아니다. 슬레이트 지붕이 너무 낮아 자칫 이마를 다칠 수 있다. 골목은 현기증 나게 복잡하다. 여섯 번째 골목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여덟 번째 골목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일곱 번째 나무대문 집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다섯 번째 나무대문 집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부평공단이나 주안공단은 이미 문을 닫았다. 경제발전의 동력이었던 단층집과 골목길의 사람들은 이제 첨단산업과는 무관한 부적격자들이다. 그러니 떠나라! 먹을 만한 찌꺼기가 아직 남아 있는 곳으로 어서 떠나라! 물론 멀리는 못 간다. 아직 단층의 집들과 골목이 남아 있는 곳에서 버티고 있어야 한다. 그만큼만 보상해준다. 너희들이 잉여노동자로 버티고 있어야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파트타임제를 양산해도 군소릴 달지 않는다.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차단한 지 오래다. 설령 아무도 몰래 남쪽으로 튈지라도 그곳엔 이미 먹을 게 없다. 오죽하면 인구 23만을 자랑하던 전북 남원시가 겨우 7만밖에 안 남았겠느냐. 14만 인구를 자랑하던 전남 강진에 겨우 4만5천이 남았겠느냐. 한때 노무현 정권이 행정수도 이전을 통해 남쪽으로의 대대적 탈출을 도모했지만, 눈먼 자들의 불같은 공격에 끝내 꼬리를 감추고 말았다. 그리하여 탈출은 포기했으되, 혹시 지나온 삶의 흔적을 아쉬워하는 자들이 있는가? 그것 역시 웃기는 개소리다. 서울 종로 뒷길에는 600년 역사를 간직해온 피마골(避馬洞)이 있다. 양반관료가 다닌 종로 대로변을 피해 쌍놈들이 다니던 피마골은 그동안 눈먼 자들에겐 부적합한 곳이었다. 구릿한 돼지곱창 냄새와 파전을 튀기는 싸구려 기름 냄새, 시큼한 막걸리 냄새가 진동하는 그곳을 때려 부수고 마천루 계획을 잡은 지 이미 오래다. 하물며 고작 4, 50년의 삶의 흔적을 역사로서 보전하겠다면 조선 개가 다 웃을 소리다.
 

 

눈먼 자들에게 떠밀려 풀무골 단층의 집들은 그렇게 비워졌다. 모두 떠났다. 눈먼 자들의 감시가 살벌해 남쪽으로의 탈출은 포기했다. 보상금에 대출금을 보태어 장수동 담방 마을로 옮긴 자가 있었다. 부평 근린공원 근처에 있는 빌라에 세 들고, 나머지 돈에 대출금을 보태어 꽃가게를 차린 자도 있었다. 자신의 집을 빼앗긴 채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있는 빌라에 셋집을 마련한 자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북한산이 마주보이는 서울 녹번동 단층집에 세 든 자도 있었다. 녹번동 단층집에 세 든 자는 자신의 집을 되찾기 위해 위험천만한 모험을 시도했다. 맞벌이를 선언한 그는 전세금 담보대출을 받았다. 주택청약예금을 해지하고, 사우나를 운영하는 사촌 형을 통해 사채까지 끌어들여 서울 홍대 앞에 어여번듯한 식당을 차렸다. 식당은 대로변 쪽으로 구멍이 나 있는 3층짜리 콘크리트 덩어리 1층이었다. 그는 열사흘 동안 텅 빈 콘크리트 덩어리 속 1층을 꾸몄다. 하수구를 만들고, 개수대를 만들고, 도시가스를 끌어들이고, 바닥에 타일을 깔았다. 식자재를 저장할 작은 창고를 만들고, 창문을 내어 환기시설을 하고, 전기시설을 하고, 대형냉장고와 반죽기, 요리대, 온갖 집기를 사들여 주방을 완성했다. 그는 홀을 꾸미기 위해 더 많은 정성을 기울였다. 대로변 쪽으로 뚫려 있는 곳은 대형 강화유리로 막았다. 현관을 내고, 벽은 원목으로 장식했다. 바닥엔 방음 패널을 깔고, 열두 개의 식탁 세트를 유명짜한 소목수에게 맞췄다. 환기통을 밖으로 빼고, 천장에는 에어컨 두 대를 달았다. 계산대를 만들고, 정수기를 놓아 음용대를 만들고, 화장실로 가는 계단을 만들었다. 최종적으로는 화장실도 꾸몄다.


그는 가게 이름을 두리반이라고 했다. 칼국수 보쌈 전문점인 두리반은 그의 아내가 운영했다. 그는 기왕에 해온 출판 편집일을 계속했다. 두리반은 3개월가량 힘들었다. 서서히 입소문이 났고, TV에 두 차례 소개되었고, 맛집 소개 지면에 이름도 올랐다. 그의 아내는 적자를 면한 때부터 이제 장사할 맛이 난다고 흥분했다. 1년쯤 지났다. 2006년 3월 16일 마포구청이 느닷없이 폭탄을 터뜨렸다. 두리반 일대를 지구단위계획지역으로 발표한 것이다. 그때부터 눈먼 투기꾼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영업을 시작한 지 2년 10개월 만에 명도소송장을 받아들었다. 두리반은 상가임대차보호법 10조를 들어 5년 동안 영업권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맞섰다. 눈먼 투기꾼들은 10조 1항을 들어 재개발, 재건축, 지구단위계획지역의 경우는 예외라고 맞섰다. 법정싸움에서 두리반은 패소했다. 눈먼 판사는 지구단위계획지역은 도정법(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서도 제외되는 곳이므로 보상도 필요 없다고 판결했다. 기막힌 법이었다. 때로는 눈먼 자들을 예외조항으로 빠져나가게 하고, 때로는 법의 사각지대임을 들어 빠져나가게 했다. 도대체 5년 동안 영업 보장하기로 했다면 그 법대로 가는 것이지 웬 예외조항인가. 도대체 재개발처럼 큰 덩어리에서 철거되면 영업보상 4개월, 시설투자에 대한 보상의 의무라는 눈 가리고 아웅이나마 보상이 있고, 작은 덩어리에서 철거되면 그냥 알거지로 내쫓는 법도 법인지. 두리반은 그런 법을 인정할 수 없었다. 이사 비용 3백만 원만 운운하는 눈먼 건설사인 GS건설에 맞서기로 했다. GS건설이 법에 따라 강제집행을 강행하고자 했을 때는 단호히 이를 거부했다. 길바닥에 나앉아 죽는 길과, 싸우다 죽는 길뿐일 때 두리반은 후자의 길을 택했다. 싸움은 오래갔다. 2010년 9월 1일로 두리반 농성은 250일째가 된다.

 


이 글을 쓰는 8월 9일에는 GS건설의 유령회사 남전디앤씨에 의해 전기마저 끊겨버렸다. 전기가 끊긴 지 20일째다. 더더욱 여름은 악랄했다. 폭염은 살을 파고들었다. 뼈에 사무치는 더위, 어둠은 물밑처럼 깊고 주도면밀했다. 악무한적으로 치닫는 눈먼 자들을 용서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이 눈먼 나라의 건설업 비중은 OECD 평균 6~7%보다 무려 세 배 가까운 19~28%에 이른다. 2008년에는 19%였다. 개발이 계속되는 한 땅값은 상승한다. 돈에 눈먼 자들은 땅투기에만 열을 올린다. 개발과 투기가 맞물려 미쳐 돌아가니 눈먼 나라의 산업이 온전히 돌아갈 리 없다. 건설업 비중은 갈수록 높아진다. 땅값 폭등으로 공장은 유지하기 힘들어지고, 땅부자 재벌들 외에는 아무도 공장을 돌릴 수 없게 된다.
그 같은 눈먼 자들은 성한 사람을 그냥 두지 않는다. 영혼이 눈먼 자들은 파괴의 파괴를 일삼는다. 그들은 세상과의 단절을 일삼는다. 1층과 2층의 단절, 콘크리트 덩어리들끼리의 단절, 1블록과 2블록의 단절, 단절은 함께 사는 길 대신 홀로 사는 길을 찾도록 강요한다. 눈먼 자들에게 밀려나 눈먼 자가 되기를 강요한다. 눈먼 자들의 세상, 그 치떨리는 단순화, 9월 1일로 250일째를 맞는 두리반 농성은 그리하여 눈먼 자들에겐 치명적이다. 눈먼 자들에게 맞서 흩어지지 않고 뭉쳐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쓴 유채림 님은 《금강산 최후의 환쟁이》, 《서쪽은 어둡다》 같은 장편과 《사북, 그 머나먼 길》, 《오후 4시》 같은 중단편을 발표한 소설가이며 시인입니다. 아내가 운영하던 서울 동교동의 식당 두리반이 강제 철거되자 8개월째 맞서 농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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