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9호 2010년 여름 살림,살림

[ 이웃나라 살림살이 ]

라오스 산골학교, 태양광발전기로 희망을 밝히다

글 이영란

나는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두 해를 라오스에서 살았다. 한국국제협력단 해외봉사단원으로 라오스 서북지역 싸이냐부리로 파견되었다. 나는 경제협력개발기구 개발원조위원회(OECD/DAC)가 규정한 ‘최빈개도국’ 라오스를 지원하기 위해 읍내 중학교에 부족한 교사(校舍)를 새로 건축하는 사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2009년 개발원조위원회에 가입해 명실상부 부자 나라임을 공인받은 한국에서 파견된 내가 오히려 하루 소득이 1달러에 불과한 라오스 시골 사람들의 도움으로 건강하게 밥 먹고 살 수 있었다고 해야 사실관계가 올바른 서술일 것이다.

 

임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나는 산골의 한 중학교를 찾아갔었다. 지원물품으로 사들고 온 이불과 학용품들을 내려놓으며, 미리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고 오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교장 선생님께 뒤늦은 질문을 했다. 그는 내가 물어주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발전기가 제일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기대에 차 반짝이는 선생님들의 눈을 보며 내가 책임질 수 없는 것을 약속하는 건 아닌가, 슬며시 후회가 밀려왔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 어쩌면 내가 이루지 못하면 나의 후임으로 오는 후배라도 이 일을 실현시켜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위안하면서 그곳을 떠나왔다.


 

라오스 서북부 타이 접경의 두메마을 반싸멧은 수도에서 12시간이 넘게 걸리는, 내가 살던 싸이냐부리 읍내에서 또 4시간을 더 가야 닿을 수 있는 고산족 마을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분류돼 있지만 라오스 정부는 마을에 초등학교 하나는 반드시 둔다는 정책을 펴고 있다. 지나쳐온 산골마다 비록 교실 한 칸짜리지만 초등학교가 드문드문 보였다. 그러나 중학교는 사정이 달랐다. 2백여 집이 모여 살고 있는 고산족 마을들 가운데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반싸(싸멧 마을)에만 학생 180여 명이 다니는 싸나싸이 중학교가 하나 있을 뿐이다. 마을 꼭대기에 올라앉은 이 학교에서 내려다보면 건너편 산 중턱에 가물가물  이웃 마을이 보인다. 제일 가까운 이웃 마을이라도 등교하는 데 걸어서 두세 시간이 걸린다. 조금 떨어져 있는 마을이 네다섯 시간. 열두 시간이 넘는 곳에서 오는 학생도 있다. 이건 아침에 해가 뜨자마자 집을 출발해 저녁에야 학교에 닿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낮에는 사막처럼 뜨겁고 어스름할 땐 춥기까지 한 산길을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오르내리느라 새까맣게 탄 얼굴의 학생들. 여기 학생들이 하는 공부는 통학하는 것부터가 고행이다. 
이렇게 매일 통학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중학교에는 기숙사가 있다. 이름이 그럴듯해 기숙사지 창고보다 못한 판잣집이다. 산꼭대기니 물이 있을 리는 없고 그대로 하늘을 인 화장실과 어찌어찌 학생들이 알아서 끼니를 이어가는 아궁이가 다인 2칸짜리 기숙사에 40명 학생이 기거한다. 명색이 기숙사지만 여학생 방에 겨우 문 같은 것으로 구분이 되어 있을 뿐, 밤 추위를 막기 위한 낡은 이불 외엔 아무런 가구 집기, 칸막이도 없다. 물론 책상도 없다. 설사 뭐가 있다 해도 이곳에서 밤에 공부를 할 수는 없다. 해가 지면 반싸멧은 별빛과 달빛 외엔 완전한 암흑이다. 
마을에는 회관에 한 대, 학교에 한 대 디젤 발전기가 있다. 특별한 날에 저녁 두어 시간 하나의 전등을 밝히기 위해 천둥처럼 요란한 소음을 내는 발전기를 돌린다. 그러나 문제는 소음이 결코 아니다. 라오스에서도 깊은 산골 오지. 발전기를 돌릴 석유 1ℓ를 살 돈도 여간 부담되는 게 아니다. 돈이 있다 해도 사러 갔다 오며 쓰는 기름값이 더 든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것이다.
사실 라오스는 전력수출국이다. 동남아시아의 어머니 강 메콩에서 하는 수력발전으로 라오스는 풍부한 전기를 생산해 수출한다. 최빈국이 전기를 수출한다? 얼른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라오스나 한국이나 세상의 거시지표가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별 상관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국가는 전력을 수출할지 몰라도 내가 살던 읍내 마을 사람들도 전기를 제대로 쓰지 못했다. 라오스에서 전력을 수입하는 주변국들이 자기 돈으로 댐을 짓고 직접 송전선까지 가설해 몽땅 전기를 가져가기 때문이다. 라오스를 위해서 국제기구나 선진국의 차관과 원조로 지은 댐에서 생산되는 전기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있던 학교 체육선생님에 의하면 싸이냐부리 읍내에 전기가 들어온 것은 1992년 무렵이라고 한다. 그는 중학생이던 그때 읍내에 전기가 들어왔고 그 무렵 집에 처음 자전거 한 대가 생겼다고 했다. 사정이 나아지긴 했지만 지금도 싸이냐부리는 읍내 대로변이 아니고는 전기를 끌어다 쓰는 게 쉽지 않다. 이러니 산골 오지 반싸멧은 오죽할까. 언젠가 라오스의 산골짜기 마다 거대한 전주가 서고 송전선이 깔린다고 해도 전기요금을 낼 돈이 없는 학교까지 빛이 들어오기까지는 또 얼마나 요원할까.
1970년대 인도차이나 전쟁 때 미국의 융단폭격으로 초토화된 이후 라오스에는 유난히 아이들이 많이 태어난다. 미국은 베트남뿐만 아니라 라오스에도 한국전쟁 때의 몇 배에 달하는 포탄을 투하했다. 1년 만에 다시 온 학교에도 늘어난 아이들 때문에 판자로 덧대 지은 교실이 하나, 대나무와 갈대로 엮은 기숙사가 한 채 늘어 있었다. 올 가을에 또 한 채를 더 지어야 한단다. 어린 학생들이 학업을 포기하거나 학교에 다니기 위해 멀리 읍내나 도시로 나가 살지 않게 하려면, 산골학교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라오스의 산골에서는 돈은 없어도 허름하지만 집이 있고 어떻게든 끼니는 이어갈 수 있다. 태양광발전기로 밤에 불을 켤 수 있다면 아이들은 기숙사에서 책을 읽을 수 있고 지구 환경을 생각하는 재생에너지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기후변화와 에너지정책에 관심이 높은 우리나라의 시민단체인 에너지정치센터는 라오스, 버마, 인도네시아 등 제3세계와 연대하고 지원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나에게 라오스 산골 학교 이야기를 듣고 에너지자립이 절실한 이곳에 재생에너지 체제가 필수적일 것임을 짚어낸 것도, 아름다운재단 지원금에 지하철노조 신문 광고, 여성주의 저널 일다를 통한 인터넷 모금 등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태양광발전기 설치와 교육 관련한 모든 직접비용 외에 현지조사와 결과 확인을 위해 내가 라오스에 다녀오는 비용까지 마련해준 것도 이들이었다. 이들은 라오스의 재생에너지 회사(공산당이 통치하는 이 나라의 사정상 NGO설립이 쉽지 않아서 회사라고는 하지만 유럽에서 지원하는 재생에너지 지원센터로 이해된다) 썬라봅을 통해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하기로 했다. 현지에 도착해보니 매사 느긋한 라오스답지 않게 이미 학교에 태양광발전기 설치가 끝나 있었다. 송전선으로 오는 발전소 전기는 아니지만 관리책임자인 싸이냐부리 도(道)광산에너지국과 라오스전력공사 관계자들도 이미 학교의 태양광발전기 설치상태를 점검확인했다고 했다. 


태양광발전기 설치 기념간판이 서 있는 언덕 위 학교 진입로로 올라가니 까만 얼굴로 해맑게 웃는 반가운 얼굴들이 보였다. 교무실에서 뛰어나온 선생님들은 고맙다며 어찌나 연신 두 손을 모으며 인사를 하던지. 캄파이 선생님은 교실과 기숙사 방마다 나를 안내하며 설치된 태양광발전기 집광판과 전구들을 자랑했다. 설치와 함께 선생님과 학생 넷은 썬라봅 기술자로부터 태양광발전기 관리와 수리를 위한 교육을 받았다. 보증수리 기간이 1년이지만 수도에서 꼬박 1박2일이 걸리는 이곳까지 사람을 보내 수리를 하기는 쉽지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태양광발전기는 외부의 지원에 의지하지 않는 지속적인 에너지 ‘자립’이 목적이니 자기 힘으로 유지보수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교육받고 있는 이들에게 올 가을에 새로 짓는 기숙사에 손수 전등을 설치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우리가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열심히 배웠고 지금 이것도 기술자를 도와 우리가 직접 설치한 거예요.” 약간 으스대는 듯이 그들이 대답했다.
처음 이곳을 찾을 때부터 나를 안내했던 싸이냐부리 교육청은 이번에도 험한 길을 갈 수 있게 사륜구동 차량과 잠잘 곳, 먹을 것을 마련해 주었다. 동행했던 교육청의 캄씽 선생님은 반싸멧 외에 이 지역에 새로 생긴 중학교 두 곳을 더 보여주었다. 각각 두 시간씩은 더 가야 하는 두메산골이었다. 이미 해는 기울고 멀리 화전을 일구는 산불만이 어둠을 사르고 있었다. 깊은 산골, 대나무 기둥에 풀잎으로 지붕을 얻은 학교들. 반싸멧 중학교보다 더 열악한 상황이지만 내년이면 더 늘어날 학생들을 위해 선생님들은 또 풀잎을 엮어 교실과 기숙사를 지어야 한다며 걱정을 하고 있었다. 해묵은 숙제를 하러 간 길에 나는 또다시 기약도 없는 약속을 하고 말았다. 산골 아이들이 한두 시간이라도 기숙사에서 책을 읽을 수 있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처음보다 쉬울 것이라는 가느다란 희망에 의지한 채 말이다. 

 •이 글을 쓴 이영란 님은 2007년 한국국제협력단 해외봉사단원으로 라오스에서 2년 동안 생활한 경험을 《싸바이디 라오스》라는 책으로 펴냈습니다. 귀국한 뒤 숙제처럼 마음에 담아온 라오스 산골 학교에 태양광발전기를 지원하는 일을 에너지정치센터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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