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9호 2010년 여름 살림,살림

[ 살리는 이야기 ]

룸비니 대성석가사의 화상 입은 소

글 김홍성

 

2008년 가을이었다. 네팔 남부평원지대 룸비니에 있는 한국 사원 대성석가사에 손님이 왔다. 카트만두에 사는 네팔 언론인 바산타 타파 씨 내외와 갓 결혼한 딸 부부였다. 그들은 2박 3일을 머물다 갔는데, 종일 차를 달려 온 첫 날은 곧 어두워질 시간이어서 여장을 풀고 쉬었고, 이튿날 오전에 룸비니 동산으로 산책을 나섰다. 룸비니 동산은 그곳에서 부처님이 탄생했음을 증명하는 기원전 3세기의 역사적 유물이 있어서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며 여러 나라의 수많은 불교 사원들이 늘어서 있기도 하다.    


그 일은 룸비니 동산에 갔다가 여러 절들을 돌아보며 대성석가사로 돌아오는 길에 생겼다. 맞은편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던 서양 여자가 ‘오 마이 갓’하면서 자전거에서 내렸는데, 그것은 옆구리에 심한 화상을 입어 갈비 짝 전체가 시뻘겋게 드러난 암소가 길가에 엎드려 있고, 그 옆에는 배꼽도 아직 안 떨어진 송아지 한 마리가 뙤약볕 속에 웅크리고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우리 일행 중 맨 앞에 서서 걷던 바산타 씨와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가 그냥 지나쳤지만 바산타 씨의 부인과 딸은 어느새 서양 여자와 함께 송아지를 굽어보고 앉아서 ‘오 마이 갓’을 연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위는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듯 못내 안타까운 표정으로 여자들 옆에 서 있었다. 지나가던 농부들도 걸음을 멈추고 서서 참견했다. 농부들은 저만치 떨어진 물가에서 풀을 뜯고 있는 제법 큰 송아지를 가리키면서 그 송아지도 암소의 새끼라고 알려 주면서 말했다.
“그래도 저 놈은 풀이라도 뜯어 먹으니 살긴 살 겁니다. 이놈은 그냥 두면 죽어요. 젖을 먹어야 사는데 어미가 저 모양이니 젖이 나오나요.” 
농부들은 그 암소 가족의 내력도 알고 있었다. 농부들에 의하면, 암소는 불난 농가의 헛간 말뚝에 고삐가 묶여 있었기 때문에 불이 났을 때 불을 피하지 못해서 심한 화상을 입었다. 그리고 불난 농가의 식구들은 살 곳을 찾아 다른 곳으로 떠나면서 도저히 살 것 같지 않은 암소와 어린 송아지들을 버렸다. 이 말을 들은 바산타 씨의 아내와 딸은 급기야 눈물을 글썽였고, 사위는 농부들과 더불어 암소와 송아지들을 살릴 방법을 의논했다. 그러자 바산타 씨의 딸은 눈물 어린 눈에 기쁜 미소를 지으며 서양 여자에게 말했다. 소들은 우리가 보살펴 주기로 했으니 당신은 이제 안심해도 된다고. 그 말을 들은 서양 여자는 주변 사람들은 물론 좀 떨어진 곳에 서 있던 나에게까지 일일이 고맙다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했는데 그녀의 눈에도 눈물이 맺혀 있었다.


대성석가사로 옮기는 내 발걸음은 무거웠다. 농부들이 암소와 송아지들을 일단 대성석가사 마당에 데려다 놓고서 자전거로 한 시간 거리에 사는 수의사를 데리고 오기로 했기 때문이다. 절에 네팔 친구와 가족까지 초대해서 신세를 지고 있는 마당에 버려진 가축들까지 끌고 들어오게 생겼으니 스님들이 뭐라고 하실 것인가! 그렇지만 모르는 척 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절에 도착하자마자 주지 스님에게 양해를 구하려니 스님들이 모두 인근 절에 초대를 받아 출타 중이었다. 결국 대성석가사 정문 바로 안쪽에 있는 사무실 직원 마에스 씨에게만 대충 전후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인근 농촌의 토박이 사내이며, 내가 처음 룸비니와 인연을 맺은 십 여 년 전부터 대성석가사에서 줄곧 일해 온 고참 사무원인 마에스 씨는 평소처럼 별 표정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날 오후 일정은 석가모니가 출가하기 전까지 살았던 카필라바스투에 다녀오기로 되어 있었다. 점심 후 잠시 누웠다가 깜빡 낮잠이 들었는데 사무실 앞마당에서 바산타 씨 부인의 음성이 들려 잠에서 깨었다. 떠날 채비를 하고 나가 보니 소들은 이미 절 안에 들어와 있었다. 어미 소는 담벼락 옆 보리수 그늘에 엎드려서 어느새 누가 베어다 준 꼴을 씹고 있었고, 갓난 송아지는 인부가 길어다 준 펌프 물을 마신 후 어미 옆에 웅크리고 앉았다. 큰 송아지는 정문 오른쪽 담벼락을 따라 자란 풀을 소리가 나도록 열심히 뜯어 먹고 있었다. 소들을 절에 데려다 놓은 농부는 이제 수의사를 데리러 가기에 앞서서 자기 자신에게 돌아올 사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다짐을 둔 후 자전거에 올랐고, 우리는 저녁 식사 전에 부처가 출가 전에 살았던 왕궁 터였다는 카필라바스투에 다녀오기로 하고 바산타 씨의 승용차에 올랐다. 차가 달리고 룸비니 일대의 드넓은 벌판이 펼쳐지자 바산타 씨의 가족들은 즐거운 탄성을 터뜨리고 있었다. 네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바산타 씨를 제외한 나머지 식구들에게는 룸비니가 초행이었다. 운전대를 잡은 바산타 씨도 십 수 년 전에 잠깐 들렀을 뿐이므로 초행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는 갈림길에서 내가 길을 알려줄 때마다 백미러로 가족들을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코리안 가이드 굿, 네팔리 투어리스트 해피.” 바산타 씨의 딸은 깔깔 웃으며 화답했다.  
“베리 베리 해피. 위 아 판타스틱 그룹.”
네팔 사람들이 자기네 땅에서 한국인의 안내로 여행하는 건 특별한 일이기에 하는 농담이지만 나는 별로 즐겁지 않았다. 스님들이 돌아와서 그 소들을 보고 뭐라고 할지가 자못 염려스러웠기 때문이다. 특히 송아지가 풀을 뜯으며 돌아다니다가 화단에서 자라는 꽃나무들을 해칠 것이 염려스러웠다. 정문 안 쪽 펌프 곁에 서 있는 아름다운 꽃나무의 가지를 똑똑 분질러서 장난을 치는 네팔 여학생에게 야단을 치던 스님의 모습도 떠올랐다. 이런 내 속도 모르고 바산타 씨 가족은 마냥 행복한 농담을 즐기고 있었다. 


카필라바스투에서 대성석가사에 돌아오니 농부와 수의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암소는 처음 그 자리에 엎드려서 되새김질을 하고 있었고, 송아지들은 원기를 회복하였는지 장난질도 치고 있었다. 마에스 씨를 비롯한 사무실 직원들은 불에 구운 암소 갈비 냄새를 맡고 날아오는 까마귀들을 후여 후여 쫓아주는 와중에 수의사는 소의 상처를 소독한 후 소에게 먹일 항생제 구입비와 왕진비 등을 바산타 씨의 사위에게 청구해서 받았다. 수의사를 데리고 온 농부도 얼마간의 사례비를 받았다. 남은 문제는 소들을 어디로 옮겨서 치료하느냐였다.  소를 잡아먹는 우리나라에서라면 멀쩡한 송아지는 돈을 주고라도 사서 길러볼 테지만 소를 잡지 않는 네팔에서는 골칫거리에 불과했다. 암소는 젖을 짜거나 일을 시킬 수 있지만  불에 타서 처참한 몰골이 된 암소는 과연 누가 사려고 할지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일종의 양육비나 하숙비를 얹어 주지 않는 한 데려다 기를 사람은 없었다. 다만, 별로 바쁠 일이 없는 사람들이 일이 어떻게 진전되는가 지켜보다가 한마디씩 참견하는 재미로 둘러서 있을 뿐이었다.
이때, 바산타 씨 부인이 나에게 말했다. 절이 크고 넓어서 담 따라 난 풀만 먹고도 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소똥은 냄새도 안 나고 비료도 되므로 절 마당에 심은 보리수들이 자라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그러니 소들이 당분간 절에서 살 수 있도록 주지 스님에게 잘 말씀 드려 달라는 이야기였다. 스님들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겠기에 그런 부탁으로 부담 드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일리가 있는 이야기였다. 사무실 직원 마에스 씨의 눈에 싱긋한 미소가 들어 있는 것으로 봐서 그도 같은 생각인 것 같았다. 결국 내가 대표로 주지 스님에게 가서 일의 자초지종을 말하게 되었는데, 스님은 내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웃으면서 허락했다. 뿐만 아니라 신축중인 대웅전 뒤편의 공터에 풀이 너무 무성하여 뱀이나 독충이 번식하고 있으므로 소들이 그 풀을 뜯어 먹어 없애는 건 좋은 일이라고 했다.    
다음 날 아침, 바산타 씨 가족은 기뻐하며 떠났다. 바산타 씨의 부인은 암소 가족이 원기를 충분히 회복할 때까지 잘 보살펴 달라고 했다. 사위는 룸비니의 대성석가사야말로 축생까지 돌보아 주는 진정한 불교 사원이라고 칭송했다. 그리고 바산타 씨는 식구들 뒤에서 눈을 찡긋하며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그로부터 20개월이 지나 주지 스님에게 직접 들은 바에 의하면, 화상 입은 암소 가족이 절에 눌러 살게 되자 대성석가사의 인부들이 너도 나도 뒤질세라 자기 집 소나 염소나 양을 끌고 와 대웅전 뒤편에 풀어 놓는 바람에 그 무성했던 풀밭이 말끔해 졌다고 한다. 그리고 화상 입었던 암소는 상처가 완전히 치료된 후의 어느 날 샤워실에 들어갔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다리를 다치는 사고가 있었으나 다시 회복되었고, 송아지들 여러 사람의 보살핌 속에서 귀염둥이로 자라다가 어미 소와 함께 인근 농가로 입양되었다고 한다.

• 글을 쓴 김홍성 님은 산책과 도보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20세기 말에 네팔로 이주하여 설산을 벗하고 살다가 근년에 귀국, 춘천에 머물고 있습니다. 시집 《나팔꽃 피는 창가에서》, 산문집 《히말라야 40일 간의 낮과 밤》, 《천년 순정의 땅 히말라야를 걷다》, 《우리들의 소풍》, 《꽃향기 두엄냄새 서로 섞인들》 등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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