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9호 2010년 여름 살림,살림

[ 교육살림 ]

대학 돌아갈까 넘어갈까

글 현병호


두 마리 토끼인가 수레의 두 바퀴인가
여러 해 전부터 기업들은 대학이 불량품을 자기들에게 떠넘긴다고 불평하고 있다. 대학은 대학대로, 책 읽어내는 능력도 없고 글도 제대로 못 쓰는 학생들을 길러내는 중등교육에 대한 불만이 높다. 말하자면 공교육 시스템 전체가 불량품 생산 라인이 된 셈이다. 교육부가 교육인적자원부로, 다시 교육과학부로 바뀐 뒤 불량 비율이 더 높아지고 있으니, 인간교육이 아닌 인력교육에 ‘올인’한 결과가 참담한 셈이다. 십여 년 전 이른바 ‘학교붕괴’ 현상이 나타나면서 정부와 교사 집단이 한 목소리로 ‘공교육 정상화’를 부르짖고 있지만, 그 주장의 핵심은 근대적 의미의 학교 정상화에 가깝다. 말 잘 듣는 아이들을 기르는 것이 실제적인 교육 목표였던 근대 학교체제를 유지하면서, 세계화·정보화 시대에 부응하는 창의력 있는 인적자원을 양성하고자 하는 모순된 정책 속에서 헤매는 것이 오늘날 한국 교육정책의 현주소이다.
대한민국의 중등교육은 아이들의 인성만 도외시하는 게 아니라 지성도 돌보지 않는다. ‘책 읽지 말고 공부해라’는 이상한 말이 이상하지 않은 곳이 이 나라의 중고등학교다. 일제고사로 아이들을 한 줄로 세우면 경쟁력이 생길 거라고 믿는 지도자(?)들의 사고 수준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무한경쟁을 부르짖을수록 실제적인 경쟁력은 점점 더 떨어진다는 사실을 경쟁 예찬론자들은 깨달아야 한다. 창의성이나 경쟁력은 쫓아가서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 가능성을 꽃피우면 저절로 따라오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공교육의 문제에 일찍 눈뜬 부모들은 아이들이 시험공부만 하지 않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자라기를 바란다. 그래서 다양한 캠프에도 보내고 대안학교도 알아보고 하지만 대학 진학 시기가 가까워 올수록 마음이 오락가락하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 일찍부터 다잡아야 한다고 충고하는 선배 엄마들의 이야기에 불안감이 증폭되면서 갑자기 노선을 바꿔 아이를 닦달하기도 한다.
흔히들 인성교육과 지식교육을 ‘두 마리 토끼’로 비유하지만 지성을 키우는 올바른 지식교육은 인성교육과 따로 가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된 지식교육과 입시교육은 함께 가기 어렵지만 인성과 지성은 함께 자랄 수 있다. 인성과 지성은 두 마리 토끼가 아니라 수레의 두 바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과연 진정으로 전인교육을 바라면서 입시교육도 원하는 부모들이 얼마나 있을까. 지성을 키우는 교육이 무엇인지를 안다면 입시교육이 반지성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 테고, 지성과 반지성을 함께 키운다는 것이 자가당착이란 점도 알 것이다.
그래도 대학이라는 관문 앞에서는 대부분의 부모들이 가슴을 졸이게 된다. 대안학교에서도 고등학교 2학년쯤 되면 부모들이 공공연히 입시준비를 요구하기도 한다. 학교 측에서는 두 마리 토끼를 좇는 부모들의 욕심을 비판하기도 하지만, 대학을 도외시하고 아이들의 진로문제를 생각하기 힘든 상황에서 대체로 현실적인 타협안을 찾는 편이다. 입시교육은 하지 않는다고 입장을 분명히 밝히거나, 개별적으로 또는 그룹을 지어 입시준비를 할 수 있게 교육과정을 조정하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볼 때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대학에 진학하기를 바란다면(기독교 대안학교가 아닌) 비인가 학교는 적절한 선택이 아니기가 쉽다.
사실 지식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입시준비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진짜 책을 가까이 접해본 아이들이라면 교과서 같은 책들은 시시해서 별로 보고싶어 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필요하다면 웬만한 책은 며칠 만에 뗄 것이다. 그런 책을 가지고서 일 년 동안 ‘진도’라는 이름으로 찔끔찔끔 공부하게 하는 공교육의 커리큘럼은 아이들의 지성과 시간을 좀먹는 시스템이나 다름없다. 진짜 책을 보면서 진짜 공부를 한 아이들은 대학 공부도 제대로 할 수 있다. 대학이 사는 길도 여기에 있다. 취업학원으로 변해 쓸데없는 스펙 경쟁을 시키는 한 대학은 기업의 하수인 노릇도 못하게 될 것이다.
학력·학벌 사회, 넘어설 수 있을까
‘스무 살이 되어서도 꿈을 찾는 것이 꿈이어서 억울하다’는 고대생 김예슬의 자퇴 선언문은 이 시대 청년들이 맞닥뜨린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었다. 어린 시절부터 삶을 유예당한 채 선착순 달리기에 내몰린 이십대가 맞닥뜨린 현실. 또 다시 ‘스펙 쌓기’라는 모래성 쌓기 게임에 내몰리고 있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대열에서 스스로 낙오하겠다는 그의 선언은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다. 하지만 먼저 눈뜬 한두 명이 이탈한다 해서 이 대열이 흐트러지지는 않을 것이다.
학력·학벌 사회의 뿌리는 깊다. 교육이 계급 재생산 기능을 한 것은 근대만이 아니다. 서원(사립대)과 성균관(국립대)이 양립하던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대학은 근본에서 입신양명의 발판이었다. 오늘날 학력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면서 대학 졸업장의 효용가치가 떨어지고 있긴 하지만, 그 만큼 대학 졸업장은 기본 스펙인 시대가 되었다. 인플레가 일어나면 빈곤층이 더 힘들어지는 법이다. 한 해 등록금이 천만 원에 이르는 상황에서 오늘날 대학은 계층 재생산의 최종 코스로 되고 있는 실정이다.
평생학습사회로 나아가면서 대학 졸업장을 우려먹던 시대는 저물고 있지만 학력·학벌사회의 꼬리는 생각보다 길게 이어질 것이다. 인맥이나 인간관계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히 정리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쟁도 빼앗아 가지 못하는 재산이 학력과 학벌이라는 것을 기성세대는 경험했다. 이들이 구축해 놓은 학력과 학벌의 거미줄은 이 세대가 은퇴하면서 서서히 약화되어 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회에 대한 신념과 실력으로 무장한 게릴라들이 학벌의 균열을 가속시키겠지만, 또 끊임없이 등장하는 기회주의자들이 그 균열을 땜질할 것이다. 사회의 변혁을 둘러싼 힘겨루기는 어느 시대 어떤 사회에서나 계속되어온 현상이니, 이 유구한 흐름 속에서 지금 나는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 어떤 결단을 할 것인가가 저마다 맞닥뜨린 삶의 과제인 셈이다. 부모는 부모로서, 학생은 학생으로서 어떤 길을 갈 것인가 하는 실존의 갈림길 앞에 우리는 서 있다. 김예슬처럼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기보다 인간의 길을 ‘선택’하는” 삶을 살고자 결단했다고 해서 끝나는 시험이 아니다. 시시때때로 결단을 요구하는 시험대에 서서 발걸음을 뗐다 놓았다 해야 하는 운명이 우리네 인생이 아닌가.
이태 전 <녹색평론>에서는 앞으로 ‘농촌 자녀 대학 보내지 않기’ 운동을 펼치겠다고 했다. 대학진학률이 80%를 웃돌고 청년 백수가 수백만 명에 이르는 상황에서, 이제 웬만한 대학을 나와 봐야 살아가는 데 별 도움이 안 될 게 뻔한데, 대학에 목매달면서 부모와 아이들의 삶을 희생하는 일을 더 이상 되풀이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도시 자녀들도 마찬가지다. 살고 있는 지역의 대학을 다닌다면 숙식비가 따로 들지 않아 조금 유리하긴 하지만, 많은 경우 대학 진학은 삶을 유예하는 것일 따름이다.
지금 십대들이 맞닥뜨릴 사회는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고 일생 동안 새로운 분야의 일을 위해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찾아올 것이다. 아이들의 삶을 진정으로 염려한다면 더 이상 속보이는 대학진학률 높이기에 앞장서지 말아야 한다. 진로교육을 대학진학 요령을 가르치는 것쯤으로 여기는 제도권 교육은 아이들의 미래를 무책임하게 방기하는 것이다. 세상을 읽는 힘,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을 길러주면서 폭넓은 선택지를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진로교육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대학에 국한하지 않고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배움의 장에 대한 정보를 한 데 모으는 작업을 해보면 어떨까. 인맥이 일의 성패를 좌우하다시피 하는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더 길고 튼튼한 연줄을 만들기 위해 ‘SKY 대학’을 가야겠다고 고집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나라 안팎의 다양한 직업훈련 과정과 아카데미 공간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럼 수능시험에 목매달고 십대를 허비하는 일도, 토익과 고시 공부로 이십대를 낭비하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물론 대학을 가지 않는 것이 곧 대안은 아니다. 오늘날 대학이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되다시피 했지만, 대학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있고, 원하는 길을 가기 위해 세상이 요구하는 기준을 맞춰야 하는 경우도 있다. 세상을 좀 더 건강하게 만드는 길이라면 어떤 길이든 가볼 만하다. 그런 길을 갈 수 있는 힘과 실력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선택가능한 길을 되도록 다양하게 보여주는 것이 교사와 부모, 선배들이 해야 할 일이다.
대학 진학 문제를 국제적으로 풀어가는 상상력도 필요하다. ‘IVY 대학’만큼 한국 사회에서 졸업장을 알아주진 않지만 내실 있는 대학들이 적지 않다. 학비도 적게 들고, 생활비를 감안해도 한국에서 대학 다니는 것보다 부담이 덜하면서 내실 있는 대학에 대한 정보를 모아보자. 대안교육 진영에서 진로와 관련한 다양한 정보들을 온라인에 데이터베이스화 하는 작업을 구상 중이다.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같이 이용자들이 알고 있는 정보를 계속 업데이트하면서 정보의 충실도를 높여가면 대안교육 출신뿐만 아니라 제도교육 출신 아이들에게도 유용한 진로 정보가 될 수 있다.
최근 대안학교 가운데 단재학교에서 시도하고 있는 ‘리빙 라이브러리(Living Library)’도 응용해볼 만한 아이디어다. 부모와 교사, 선배들이 저마다 살아 있는 한 권의 책이 되어 원하는 아이들이 대출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건강한 시민 단체 회원들이 적극 참여한다면 쉽게 수백 권의 장서를 갖춘 리빙 라이브러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사이트 한 코너를 살아 있는 도서실로 꾸며서 회원들이 자기소개(책소개)를 하고 독자후기도 올릴 수 있게 해서 정말 살아 있는 도서관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멘토 시스템이자 진로교육을 겸한 폭넓은 네트워크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 글을 쓴 헌병호 님은 대안교육 잡지 《민들레》를 만들며, 학교 울타리 안팎에 구애됨 없이 올바른 길을 찾는 모든 배움의 열정들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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