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9호 2010년 여름 살림,살림

[ 밥상살림 - 가까운 먹을거리 ]

지역의 밥상이 세계를 살린다

글 김현경

한국과 일본이 ‘김치-기무치’ 전쟁을 맹렬하게 치르고 있을 때 그 뒤에서 조용히 웃음을 짓던 나라는 중국이었다. 김치의 시장성을 일찌감치 간파한 일본은 세련된 마케팅을 통해 사람들의 입맛을 공략했고, 종주국 한국은 뒤늦게 김치의 발상지가 자국이라는 사실을 홍보하면서 세계 시장에서 일본을 견제하기에 바빴다. 그 가운데서 중국은 낮은 원가를 무기로 양국의 김치 시장을 조용히 잠식했다. 그동안 중국산 김치에서 기생충 알이나 납 성분이 검출되어 소란이 일었던 적은 있었지만 알게모르게 여전히 많은 식당들의 식탁에는 한국인의 입맛에 꼭 들어맞는 중국산 김치가 소담스럽게 올라온다. 김치를 한국에서 담근다하더라도 배추와 고춧가루, 마늘, 젓갈 등 주요 재료가 중국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까지 먼 거리를 이동해온 김치는 사람들의 입맛을 획일화시켜 지속적으로 중국 김치를 찾게 하고, 국내 농업 기반을 흔든다. 결국 한국과 일본이 벌이던 김치 전쟁의 최종 승리자는 중국이었던 셈이다. 한국의 김치가 세계식량체계 속에서 대표적인 교역품이 되어 국경을 넘나들고 있을 때, 글로벌푸드의 폐해를 일찌감치 겪은 일부 유럽 선진국에서는 이에 대항하기 위해 로컬푸드를 비롯해 지역 자립형 식량체계를 구축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세계화에 대항하는 먹을거리   슬로푸드
1980년대 중반 이탈리아 로마의 중심지 에스파냐 광장에 맥도날드가 문을 열었다. 자국 음식에 대한 자긍심이 높은 이탈리아 사람들은 패스트푸드의 대표 주자가, 그것도 자기 나라의 상징적인 장소에 대형 매장을 냈다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패스트푸드는 정확한 원산지를 알 수 없는 저급한 재료들로, 자극적인 맛과 열량만을 제공하는 대표적인 글로벌푸드다. 이를 기점으로 이탈리아 내에서 반맥도날드와 반세계화 운동이 거세게 일어나는데, 1986년 당시 이탈리아에서 식생활문화 잡지의 편집장이었던 카를로 페테르니(Carlo Peterni)가 이탈리아 문화부흥운동의 일환으로 슬로푸드 운동(www.slowfood.com)을 시작했다.


1989년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슬로푸드 운동에 동참하는 각국의 대표들이 모여 미각의 발전과 음식 관련 정보의 국제적인 교류, 즐거운 식생활을 지키기 위한 국제 연대, 산업 문명에 따르는 식생활 양식 파괴 등을 골자로 ‘슬로푸드 선언’을 채택함으로써 공식적으로 출범하였다. 슬로푸드 운동은 맛의 획일화와 전 지구적 미각의 동질화에 반대하면서, 지역 특성에 맞는 전통적이고 다양한 식생활 문화를 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슬로푸드 운동에 동참하는 (사)슬로푸드문화원(www.sfcc.co.kr)이 ‘깨끗하고, 좋고, 공정한 음식을 위한 사회적 실천과 농촌 공동체 회복’을 목적으로 교육, 체험, 연구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국제슬로푸드협회의 사무총장 파올로 디 크로체(Paolo di Croce)는 “오로지 수익창출만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초국적 거대 식품 자본의 영향 때문에 현재 전 세계의 음식 불평등이 심각하다. 세계 곳곳에서 이런 글로벌 산업체제에 대항하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협력한다면 건강하고 깨끗한 지역 음식을 계속 먹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식품의 이동거리는 짧을수록 좋다  로컬푸드


1994년 영국에서 안전한 식품과 지역유기농업을 지향하는 시민단체, 세이프 연합(SAFE Alliance)(현, 써스테인(www.sustainweb.org))이 내놓은 보고서가 식품 생산, 유통, 소비 분야 전반에 반향을 일으켰다. ‘푸드마일 리포트, 장거리 식품 운송의 위협’이라는 이 보고서는 먹을거리를 둘러싼 복잡한 이해관계에 대해 물리적 이동거리를 근거로 쉽게 설명하고, 이동거리가 짧은 지역먹을거리를 먹는 것이 위기에 처한 영국의 농업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라고 역설했다. 이렇게 등장한 푸드마일, 즉 식품 운동거리의 개념은 지속적으로 확장, 성장하고, 지역 농업 육성과 로컬푸드 운동의 이념적 토대가 되었다.
푸드마일을 줄여서 좀 더 생태친화적이고 지속가능한 농식품 체계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에는 영국 정부도 참여했는데, 이를 위해 영국 환경식품농업부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도구로서 푸드마일을 인식하고 관련 연구 작업과 식품 운송거리를 줄이기 위한 프로젝트를 적극 지원했다. 영국이 정부 차원에서 푸드마일 관련 연구와 사업 지원에 나선 것은 자유 무역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촌 경제를 회생시키려는 생각과 온실가스 감축 의무 대상국이라는 부담감이 작용했다. 지역 농산물과 식품을 이용해 푸드마일을 줄이면 자연스럽게 이동에 필요한 운송, 저장 에너지가 줄어들고 이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온실가스도 줄일 수 있다. 


영국에서 처음으로 개념이 정립된 푸드마일은 일본으로 건너가 ‘푸드마일리지’ 운동으로 확장된다. 푸드마일리지는 식품 중량에 그 이동거리를 곱해서 나온 수치(식품중량(톤)×식품수송거리(km))로 푸드마일리지가 높다는 의미는 식품의 중량이 무겁거나, 수송거리가 길다는 것을 의미한다. 농가에서 생산된 농축산물을 별다른 유통과정 없이 소비자에게 직접 공급해주는 민간단체, ‘대지를 지키는 모임(www.daichi.or.jp)’은 각 식품별로 푸드마일리지를 조사하고 그에 따라 얼마나 많은 양의 온실가스가 배출되는지 조사했다. 이를 토대로 아예 2005년부터는 전국적으로 푸드마일리지 줄이기 캠페인(www.food-mileage.com)을 전개하고 있는데, 회원들에게 공급하고 있는 물품 중 70종을 온실가스 삭감 대상 품목으로 선정하고 수입산과 국내산의 푸드마일리지와 온실가스 배출량을 비교해 포장재, 진열대 등에 표시하고 있다. 회원이 해당 물품 구입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면 일정의 포인트를 제공받을 수도 있다.       
그 밖에도 일본에서는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지산지소(地産地消)’ 운동이 한창이다. 이는 시민들이 주도하여 바른 먹을거리 운동을 전개하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일본에서는 농림수산성이 주축이 되어 시민 참여를 이끌고 있다. 지산지소 운동은 주로 산지 직판장 운영, 학교급식, 지역경제 활성화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다. 전국 1만여 개 이상의 산지 직판장에서는 해당 지역에서 생산된 특산물과 전통식, 가공식품 등이 판매되고 있다. 또한 지산지소 운동이 본격화 되면서 90%가 넘는 초중고교에서 지역 농산물을 이용해 학교급식을 실시하게 되었다. 이를 위해 생산 농가와 학교급식 담당자들이 상호 이해 증진을 위해 정기 모임을 개최하고 지역 농산물의 안정적인 공급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지자체가 직접 나서고 있다.
지산지소 운동은 지역 농산물의 거래를 촉진시킬 뿐만 아니라 지역 경제에 큰 활력이 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지산지소의 이념에 따라 지역 특산물을 위주로 하는 외식업이나 생태 관광이 덩달아 생겨나고, 마을 주민간의 협업 체계가 더욱 굳건해지고 있다. 단순히 인근 지역 농산물을 먹자고 시작한 운동이 지역의 공동체를 탄탄하게 하고 그밖에도 예기치 못했던 여러 부수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이웃 농가와 함께 더불어    테이카이·CSA
지산지소가 빠르게 지역에서 뿌리내릴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는 이미 일본 사회에 1960년대부터 농가-소비자 간의 직거래가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당시 식품 안전에 대한 두려움이 높았던 일본 사회에서 몇몇 주부들이 목장에서 신선한 우유를 직접 공동구매하는 실험을 시작했는데, 이것이 발전해 1960년대 말에 들어서는 ‘농가와 직접 제휴해 교류를 하자’는 직거래 시스템이자 사회 운동인 ‘테이카이(제휴)’가 시작됐다.
당시 운동에 가담했던 일본유기농업협회는 “테이카이는 기존의 관행적인 시장에 의존하지 않는 대안적인 유통시스템으로는 최초의 시도였다”고 말한다. 테이카이는 현재는 일반화되어 있는 직거래 개념을 세우는데 기반이 되었고, 또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단순한 상거래를 넘어서는 상호 이해와 교류, 협력관계를 마련하는 단초를 마련했다. 소비자들은 테이카이를 통해 지역에서 생산되는 신선하고 좋은 먹을거리를 안심하고 조달할 수 있고, 이런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생산자들을 지원하면서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일본의 테이카이는 이후에 여러 나라에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독일, 스위스 등을 거쳐 미국으로 전파되어 1980년대 지역사회가 후원하는 CSA(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가 싹트는 데 기여했다. CSA는 도시민이 가까운 지역 내 농가와 결연을 맺고 그 농가로부터 농축산물을 직접 공급받는 시스템이다. 보통은 수개월에서 1년간 기간을 정해 놓고 소비자가 농가와 약정을 맺으면, 농가에서는 제철 채소와 과일 등을 소비자에게 주 단위로 배달해 준다. 생산되는 농산물에 대해 책임지고 생산하고, 책임지고 소비하는 원칙이 있기 때문에 농산물은 대부분 품질 좋은 유기농으로 재배되고, 소비자들은 약정한 농가를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미국에 정착한 CSA는 로컬푸드, 유기농업에 대한 수요 증대와 더불어 폭발적으로 늘어났는데 2007년 기준으로 미국 내에서만 1만2천 개 이상의 CSA가 결성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CSA는 상업적 이해관계를 떠나 먹을거리를 매개로 생산자와 소비자가 인간 대 인간으로서 교류하면서 지역 내에서 자급순환농업을 실천하고 호혜의 경제체제를 만들어나가는 데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글로벌 정크 푸드에 도전하는  카페150

'Cafe 150'  

2006년 3월 초국적 인터넷 기업 구글은 4천 명에 달하는 마운트 뷰의 본사 직원들을 위해 사내 식당 카페150을 연다. 일종의 실험이라고까지 할 수 있었던 카페150은 유기농, 로컬, 지속가능한 음식의 지지자로 알려진 네이트 켈러(Nate Keller)를 총주방장에 앉히고 대충 한 끼 때우고 마는 구내식당을 탈피해 제대로 정성스럽게 마련된 음식을 내놓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었다. 카페150은 인근에서 생산되는 신선한 제철 채소와 과일들을 이용해 매일 30가지 이상의 새로운 메뉴를 내놓는데, 외부에서는 고급 레스토랑에서나 접할 수 있는 질 좋은 쇠고기로 만든 비프스테이크, 손으로 반죽한 국수, 수제 치즈 소시지, 야생 쌀과 헤이즐넛, 신선한 바질로 만든 샐러드 등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 카페150은 음식을 먹는 것만큼 뒤처리를 하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식당에서 나오는 유기농 음식물 쓰레기는 모두 퇴비로 만들어 사내 조경에 사용하고 있으며, 식당에서 사용하는 일회용 식기 역시 생분해되어 함께 퇴비로 만들 수 있는 것들이다. 식당 이름이 ‘카페150’인 까닭은 반경 150마일 내에서 식재료를 조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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