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9호 2010년 여름 살림,살림

[ 제철살림 ]

여름을 먹는 열무김치 담그기

글, 사진 장영란


“야, 야 그러지 말고 하나 사라. 냉장고도 있는데 그게 뭐 필요한가 했더만, 써보니까 정말 좋더라.” 우리 시어머니가 나만 보면 김치냉장고를 하나 들여놓으라고 하신다. 하지만 아직 시어머니 말씀을 안 듣고 있다. 그게 얼마나 좋은지를 몰라서 그런 게 아니라 한번 그 맛에 길들여지면 못 벗어나리라는 걸 알기 때문에. 
김치냉장고가 있으면 이것저것 저장하기 좋으리라. 여름 장마에 곡식을 거기 두면 벌레도 안 나고. 그사이 벌레 먹은 팥이야 밀, 누룩, 깨를 생각하면 아깝지 않은 투자일 수도 있다. 그래도 안 사고 버틴 덕분에 곡식을 벌레 안 나게 보관하는 방법을 계속 연구하고 있고, 뭐든 오래 두고 먹지를 못하니 철철이 제철에 먹는 법을 몸에 익혀나간다. 사람 할 일을 기계한테 대신시키면 잊고 살았을 살림의 지혜, 비록 작고 오래된 지혜들이지만 이것들을 익혀나가는 일도 재미있다.  
산골로 귀농한지 십여 년, 병원이 마땅치 않은 덕분에 병원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자기 몸 관리하는 법을 배우고, 가게가 몇 킬로나 떨어져 있으니 아이들이 과자를 안 먹고 사는 법을 배우고, 관리사무소나 보수 센터가 없으니 남편이 망치 들고 톱질하며 집을 고치듯…
귀농한 뒤 뭐가 먹고 싶으면 그 씨앗을 구해 그걸 심어 가꾸어 먹으려고 한다. 씨를 구하고 그걸 심어 가꿔 다시 씨를 받으며 곡식한테 배우는 게 많다. 그걸 혼자 알고 있기 아깝고, 또 마음은 있어도 농사지을 수 없는 형편인 이들을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사이 먹을거리에 관한 책을  두 권 냈고 한 권은 올봄에 개정판까지 냈다. 책을 쓸 때는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걸 거기에 쏟아 부었기에 또 쓸게 있으려나 싶다. 그래도 올봄이 또 새로운 봄이듯, 새롭게 와 닿는 제철 살림이야기를 공부하는 마음으로 여기 올려볼까 한다.

 

초여름 기운이 담긴 열무김치
농사지어 보면 어떻게 사는 게 자연스러운 삶인지 엿보일 때가 있다. 무 한 가지만 해도 그렇다. 무는 덥지도 춥지도 않은 서늘한 기운을 좋아해 봄가을에 잘 자란다. 날이 찬 겨울에는 뿌리 식품이 몸에 좋다. 그러니 가을에 자라는 김장 무는 뿌리가 잘 자라고, 이 무를 먹고 우리는 추운 겨울을 이길 수 있다. 푸른 이파리는 몸을 차게 하니 무청을 말렸다가 시래기로 해서 먹는다. 
그렇다면 날이 더운 여름에는 시원한 이파리가 좋다. 그래서 봄에 자라 여름에 먹는 무는 뿌리보다는 푸른 이파리가 잘 자란다. 여름에 먹는 무. 이게 바로 열무다. 열무는 무 집안이지만 무와 달리 뿌리가 발달하지 않고 잎이 발달한 ‘연한 무’다. 김장 무는 석 달 찬찬히 자라 겨우내 싱싱하게 먹을 수 있지만, 열무는 한 달도 채 안 되어 다 자라서 그런지 힘이 없어 절여보면 속절없이 줄어든다.
열무는 후딱 자라니 봄가을 여러 차례 키울 수는 있지만, 오월 늦봄에 심어 유월 초여름에 뽑아 담근 열무김치가 가장 맛있다. 마침 이때가 햇감자, 햇양파와 마늘이 나오는 때. 햇감자를 으깨 풀 국을 대신하고, 햇양파와 풋마늘을 썰어 넣고 담근 열무김치는 초여름의 기운을 담고 있지 않은가! 시원한 열무김치를 먹으며 여름을 이길 힘을 얻자. 


조금만 더 기다렸다가 제철에 먹으면  
써놓고 보니 참 길다. 주부라면 다들 잘 알고 있는 일이지만, 그걸 글로 설명하자면 이리 길다. 여름 먹을거리 이야기가 나온 김에 양파 이야기를 할까 한다. 올봄 그러니까 4월에 양파값이 겁나게 뛰었다는 뉴스가 있었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조금만 더 참으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만일 아이가 그 잠시(?)를 참지를 못하면 그새를 못 참냐고 아이 탓을 한다. 4월 양파 뉴스를 보며 그 잠시를 참지 못하는 건 아이들이 아니라 우리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양파는 한 해에 한 번 생산된다. 8월에 씨를 뿌려 모종밭을 만든 뒤, 가을걷이를 다 끝낸 10월에 모종을 밭에 옮겨 붙인다. 가느다란 실파보다도 더 가는 양파 모종은 그 밭에서 한겨울 추위를 이겨내며 목숨 줄만 간신히 붙잡고 있다가 봄이 오면 조금씩 살아나 자라기 시작한다. 4월 그 뉴스가 한창일 때, 우리 밭에 양파는 잎이 이제 겨우 쪽파 정도로 자란 수준. 이제 초여름 햇살을 받고 양파 잎이 대파처럼 굵어지면 양파는 땅속에 있는 비늘줄기를 통통하게 살찌우기 시작한다. 비늘줄기가 다 자라면 양파 잎이 꺾어지거나 꽃대가 올라온다. 그때가 양파 거두는 때로 6월 중순에서 7월초다. 
그렇다면 지난 해 6월에 뽑은 양파는 어떠한가. 양파를 저장해 보면 알겠지만, 양파는 살아있는 비늘줄기라 잘 보관하지 않으면 싹이 돋아난다. 농작물 가운데 가장 생육기간이 길어서인지 비닐을 씌우지 않고 유기재배를 한 양파라면 2월까지 그러니까 아홉에서 열 달은 싱싱하지만, 이 역시 봄이 오면 싹이 올라오는 걸 막을 도리가 없다. 양파농가는 저온저장고에 보관하다가 내는데 시장에서 살 때는 멀쩡하다가도 집에 가져와 며칠이 지나면 싹이 나고 만다. 그나마 4월이면 지난해 양파가 남아있기 어렵다. 이게 자연의 순리다.


자연에서 양파가 없는 철에 양파를 찾으니 양파가 비쌀 수밖에. 그 두어 달을 못 기다리고 기어이 양파를 먹으려니 비싼 값을 치러야 하고, 도시 소비자 입맛에 맞추느라 농민은 온갖 신기술을 동원해 조기재배를 하느라 난리지만 어차피 봄에 나오는 양파는 별다른 맛이 없는 ‘얼치기 양파’다. 이 얼치기 양파의 유혹에 넘어가면 진짜 양파가 나와도 아무런 감동이 없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봄부터 양파를 기다리고 기다리다 진짜 양파가 나왔을 때 그걸 먹어보라. 톡 쏘는 매운 맛을 살짝 감싸주는 양파 향과 아삭거리는 질감…
양파는 여름에 심어져 실낱같이 가녀린 싹으로 가을 겨울을 이기고 이듬해 봄부터 여름에 이르기까지 자라난다. 누구보다도 긴 생육기간을 가진 양파. 시도 때도 없이 원하는 건 그 즉시 얻으려고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양파에게 배워야 하지 않을까? 다 때가 있음을.


준비물
열무 두 단, 찐 감자 2~3알, 햇양파 1~2개, 풋마늘 2개, 천일염, 마른 붉은 고추 한 줌

1) 열무를 다듬어 깨끗이 씻는다. 열무는 연해서 잘 상하니 물에 살랑살랑 흔들어가며 가만가만 씻는 게 좋다. 
2) 천일염 한 컵에 물을 2/3 바가지 넣고 소금물을 풀어 여기에 열무를 담가 절인다. 30분 정도 지나면 뒤집어 고루 절여지도록 하고 열무에 숨이 죽으면 깨끗한 물에 한번 살살 흔들어 씻어 체에 밭쳐 놓는다. 마지막에 먹기 좋게 썬다. 
3) 풀 국을 쑨다. 겨울에 먹는 김치에는 찰쌉풀이 좋다면, 여름에 먹는 김치에는 밀가루 풀이 어울린다. 하지만 이 맘 때는 아직 햇밀가루가 나오기 전. 햇감자로 풀 국을 대신해 보자. 감자는 여름 들머리에 나오며 칼륨을 많이 담고 있다.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에는 소금을 많이 먹기 마련인데, 칼륨은 소금을 중화시키고 몸 안의 염도를 조절해준단다. 자연에서 제철에 나는 걸 먹으면 이래서 몸이 편안하다. 찐 감자를 곱게 으깨 물에 조물락조물락 풀어 김칫국을 만든다.  
4) 마른통고추를 반으로 갈라 물에 적신 뒤 돌확에 으깨거나 커터기에 넣고 성기게 간다. 그러면 고추가 먹기 좋게 으깨져 김치가 감칠 맛 난다. 오래 두고 먹는 김장김치는 고춧가루로 담그지만, 그때그때 먹는 김치는 이렇게 통고추를 으깨서 먹으면 고추의 영양과 맛이 더욱 살아난다.
5)풀 국에 고추 간 걸 넣고, 천일염을 넣고 간을 맞춘다. 풀 국이 슴슴하면 된 거다. 어떤 요리책에는 꽃소금을 넣으라고 하는데, 꽃소금은 정제소금으로 흰 설탕과 마찬가지로 몸에 좋지 않다. 맑은 바다에서 생산된 천일염을 구해 간수를 빼서 쓰면 맛도 좋고 그 어느 가공소금보다 믿을 수 있지 않은가. 고운 소금을 원하면 천일염을 곱게 빻아서 쓰면 된다.  
6) 햇양파와 풋마늘을 먹기 좋게 썰어 열무와 합한다. 김치 양념으로 설탕이나 심지어 인공감미료를 넣기도 하는데, 햇양파를 넉넉히 넣으면 양파에서 자연의 단 맛이 은은하게 우러나오니 그런 것 없어도 맛있다.   
7) 양념이 된 풀 국을 열무에 넣고 뒤적이듯 양념을 한 뒤, 김치 통에 담아 국물이 자작자작 배도록 누른 뒤, 하룻밤 서늘한 데 놓았다가 맛이 들면 냉장고에 넣고 먹는다.    


• 글을 쓴 장영란 님은 무주에서 자급농사를 하며 자연에 눈떠가고 있습니다. 자연에서 살아가는 맛을 여러 사람과 나누고, 생각이 서로 이어지는 이와 만나고 싶어 틈틈이 글을 씁니다. 그동안 낸 책으로는 《자연달력 제철밥상》, 《아이들은 자연이다》, 《자연 그대로 먹어라》가 있습니다.


http://www.salimstory.net/renewal/sub/view.php?post_id=3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