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9호 2010년 여름 [특집] 설탕, 그 달콤하고 씁쓸함에 대하여

[ 단맛의 추억 ]

씀바귀에게 배우다

글 이시백


잠깐 낮잠을 자고 난 것 같은데 벌써 머리에 서리가 허옇다. 이쯤 되면 아무리 쌀독에 머리 파묻고 사는 바구미 같은 인생이라도 한번쯤은 뒤를 돌아볼 만하다. 대체로 사람의 삶이라는 것이 돌아보자면 단맛, 쓴맛 다 보았다는 말 한 마디쯤은 입에 매달게 된다. 사람이 살아온 날들을 맛에 빗대는 것만큼 절묘한 수사(修辭)가 있을까. 천둥에 개 뛰듯 갈팡질팡, 소 팔러 가는데 개 따라나서듯 우왕좌왕 살아온 날들에 무어 특별히 내어놓을 맛이랄 것까지 남아 있으랴마는, 먼지내 나는 기억들에 혀를 내밀어 이리저리 걸터듬자니 정신이 번쩍 날만한 매운 맛에, 오만상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는 쓴 맛이며, 횟배 앓는 이처럼 어금니에서 침이 흥건히 배어나올 만큼 시큼한 맛도 골라 집을 수가 있건만 막상 단맛은 아득하기만 하다. 


인생은 고해라는 불가의 경구를 빌지 않더라도 쓴맛은 두 다리로 서기에 앞서 일찌감치 겪은 바 있다. 젖을 떼려는 어머니들은 야멸치게도 젖꼭지에다 금계랍을 발랐다. 멋모르고 덥석 물었다가 아이는 인생의 쓴맛이 어떤 것인가를 뼈저리게 알게 된다.


신맛은 어떠랴. 먹을 게 지천인 요즘 아이들이 별미 삼아 돈 주고 사먹는 시큼한 사탕이 있다지만 궁하던 시절에는 개미 똥구멍을 간식거리로 빨아 먹어야 했다. 동무들과 오래 묵은 느티나무에 들러붙어 끈끈이나 다방구를 하다 시들해지면 굼실거리며 기어가는 개미를 붙잡아 시큼한 똥구멍을 빨아먹었다. 우리 동네 개미들은 엉덩이가 반쯤 찌그러져 있게 마련이었다. 여름 저녁에 마실 온 동네 누나들이 봉숭아 꽃잎을 짓찧어 손톱에 물을 들일 때, 물이 곱게 들라고 넣는 백반을 핥아 먹기도 했다. 뱀을 쫓는 데 쓰인다는 백반을 핥아 먹은 탓인지 산과 들을 맨발로 그리 싸돌아다녀도 뱀에게 물려 본 적이 없었다.


매운 맛은 굳이 말할 것도 없다. 건건이 귀한 밥상에 아껴 먹으라는지, 짜고 맵지 않은 음식이 드물었다. 고추나 파, 마늘은 기본이고, 달래며, 장다리무 대궁이며, 주인 모르게 뽑아 먹던 무는 어찌도 그리 맵더란 말인가. 가만히 생각하자면 이 나라의 백성들은 도처에서 매운맛을 보며 자란 셈이다.
이처럼 쓰고, 맵고, 신 것들은 도처에 널려 있건만 단맛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기억을 더듬어 억지로 끌어낸 단맛의 추억은 우선 더럽다. 입가상이가 헐면 입이 크려고 그런다며 찢어진 입에 꿀을 발라 주었다. 절대 핥아먹지 말라는 주의를 주지만 혀를 날름거리며 핥기 바빴다. 꿀은 약으로나 먹는 것인 줄 알았다. 동네 친구 하나가 허옇게 짓무른 입가에 누런 걸 붙이고 나타났다. 행여 꿀이라도 발랐으면 한번 핥아볼 양으로 우르르 그 주변에 몰려들자니 어디선가 구린내가 요란하다. 꿀맛이라도 거저 보려고 혀를 내밀고 몰려들었던 아이들이 코를 쥐고는 뒤로 물러섰다. 누군가 소리쳤다. 똥이다. 핥아 먹지 못해서인지 그 친구는 꿀을 바른 아이들보다 해진 입이 빨리 나았다.


단맛은 거짓되다. 단맛의 지존이라면 단연 설탕이다. 눈부시게 하얀 설탕가루들을 손바닥에 얹어 놓으면 은박을 뒤쓴 성탄절 카드처럼 온 세상이 황홀해졌다. 설탕의 사촌 격인 사탕이 있지만 돈이 있어야 사먹을 수 있는 귀한 몸들이다. 어른들 몰래 부엌의 찬장을 뒤져 설탕을 물에 타먹으려다가 조미료 녹인 물을 마신 기억들이 한두 번씩은 있을 것이다. 설탕이 귀해서 ‘뉴 슈가’나 ‘당원’ 같은 인공감미료를 물에 타먹기도 했다. 벌꿀 냄새가 나는 비누로 세수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비누를 혀로 핥아먹고는 토한 적도 있다.
 

학교 앞에 화덕을 놓고 국자에 설탕을 녹여 반들거리는 철판에 쏟은 뒤 틀로 찍는 ‘찍어먹기’가 있고, 그 틀의 모양대로 뽑아내면 다시 하나 더 주는 ‘뽑기’도 설탕을 녹여 만드는 것이다. 스페이드나 별 모양을 손톱 끝으로 오려내다가 목이 댕강 잘라져서 침으로 살짝 붙여서 동생에게 검사 받고 오라고 보내고는 골목 귀퉁이에서 숨을 죽이고 지켜보던 기억도 한두 번쯤은 지니고 있을 것이다.
대보름날이었다. 쥐불놀이를 한다고 불깡통을 돌리자니, 동네 형들이 폭죽을 사가지고 왔다. 대꼬챙이에 폭약을 넣어 심지에 불을 붙이면 하늘로 날아오르는 폭죽을 형들은 로켓트탄이라고 불렀다. 일곱 살 무렵의 나는 난생처음 보는 구경을 하려고 형들의 뒤를 따라다녔다. 바위에 올라간 형들이 집에서 훔쳐온 성냥골에 불을 일으키는 동안 내게 그 귀한 로켓트탄을 붙들고 있으라고 했다. 처음 만져보는 신기함에다 ‘꼭 붙잡고 있으라’는 말에 나는 떨리는 손에 잔뜩 힘을 주고 대꼬챙이가 부러지도록 단단히 쥐었다. 심지에 불이 붙고, 칙칙 소리를 내며 타들어가는 순간에도 나는 로켓트탄을 힘껏 쥐고 있었다. 형들이 다급하게 던지라고 외쳤다. 폭죽을 멀리 던지려고 등 뒤로 가져가는 순간 로켓트탄은 내 목덜미에 불을 내뿜으며 터졌다. 불에 덴 목덜미가 금세 부풀어 오르고, 화끈거리는 고통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나는 절대 떨어뜨리지 말고 꼭 쥐고 있으라던 폭죽의 대꼬챙이를 여전히 쥐고 있었다. 형들은 구멍가게에 데려가 꿀 대롱을 두 개나 사주었다. 집에 가서 절대 말하지 말라는 약속과 함께. 나는 울면서 촛농 먹인 종이대롱에 든 꿀물을 빨아 먹었다. 한번만 빨아 보자고 모여드는 아이들에게 눈을 부릅뜨면서 나는 벌에 쏘인 듯 달콤한 고통에 괴로워했다. 집에 돌아와서 더 심해지는 목덜미의 통증에 신음하면서도 형들과의 약속을 어기지 않았다. 장롱에 쌓아둔 이불 속에 머리를 처박고 끙끙거리는 나를 이상히 여긴 어머니에게 들켜서 잉크를 잔뜩 바르면서도 나는 불 깡통 돌리다가 데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어린 내게 꿀 대롱의 달콤한 맛은 거짓말의 상쯤으로 여겨졌다.


단맛은 귀하다. 단맛을 볼 수 있는 날은 대체로 명절이나 잔치와 맞물려 있다. 설날이면 떡국과 함께 혀에 빨갛게 물이 드는 알록달록한 사탕이 있고, 엿길금을 고아 만든 조청이 있다. 설이 지나 속이 궁금해질 무렵이면 할머니가 다락에 넣어둔 인절미를 석쇠에 얹어 화로불에 굽는다. 쩍쩍 늘어붙는 인절미에 조청을 듬뿍 찍어 먹는 맛은 가히 단맛의 황제이다. 멀리서 부엉이가 우는 겨울밤에 소여물 쑤느라 뜨끈한 방안에서 먹던 살얼음이 살짝 얹힌 감주는 단맛의 황제 할아버지쯤 되리라. 코를 박고 어적거리며 먹던 참외도 달기로는 그 못지 않지만, 언제부턴가 장에 내다 파느라 구경만 하고 지내게 되었으니 돈으로 주고받지 않는 단맛이 어디에 있을까.
 

없는 것은 아니다. 호박밭으로 날아간 제기를 찾다가 풀숲에서 까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던 까마중이 그러하다. 까맣게 익은 까마중은 돈 없이도 얻을 수 있는 단맛이었다. 단맛에 이끌려 퍼렇게 덜 익은 까마중을 따먹고는 배가 아파 고생을 한 적도 있다. 절겅거리는 가위로 엿 모판을 두드리는 엿장수를 온종일 쫓아다니다가 모판에 떨어진 엿가루를 손가락으로 찍어먹으려다 가위로 머리에 불이 나게 맞은 적도 있다. 돈 없이 얻을 수 있던 처절한 단맛이었다.


이러저러한 단맛의 잔혹사를 돌아보자니 참으로 처절하고 추접스럽고 던적스럽기 짝이 없다. 시작은 달콤하나 끝은 심히 쓰디쓴 것이 세상의 단것이겠지만, 그 반대인 것도 있다. 


봄이 되면 입안이 깔깔해지며 종종 입맛을 잃곤 했다.  없어서도 못 먹던 밥이 입안에서 뱅뱅 돌며, 겨우내 파먹던 김장김치도 군내가 나서 쳐다보기 싫어진다. 그럴 때면 으레 어머니는 바구니를 들고 씀바귀를 캐러 갔다. 뿌리를 부러뜨리면 흰 즙액이 나오는데, 그걸 혀  끝에 대어보면 온몸이 뒤틀릴 만큼 지독하게 썼다. 고추장에 갖은 양념으로 버무려 상위에 올라온 뒤에도 씀바귀는 여전히 썼다. 입에 넣었다가 기겁을 하여 뱉고 싶었지만 어른들은 봄 탈 때 특효라며 억지로 밥 위에 그 쓰디쓴 뿌리들을 얹어 주었다. 신기하게도 그 소태처럼 쓴 씀바귀를 먹고 나면 입맛이 돌아오며, 서걱거리며 모래알처럼 입안에서 뱅뱅 돌던 보리밥도 약식처럼 달기만 했다.


단맛은 쓴맛과 붙어 다닌다. 아, 이즈음에서야 인생이건 밥상이건 단맛이란 것이 쓴맛 뒤에 비로소 다가오는 것임을 반백이 되어서야 깨우치니, 어려서부터 책상 앞 바람벽에 붙여 놓았던 ‘고진감래(苦盡甘來)’의 이치를 건성으로 되뇌다가 이제야 겨우 말뜻을 체득하게 되었다. 쓴 맛을 보지 않고서는 진정한 단맛을 느낄 수 없으니, 단맛부터 입에 익힌 인생들이 앞에 켜켜이 놓인 쓴맛들을 어이 감당하려 하는지 제 일이 아니면서도 심히 걱정이 된다.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맛은 쓴맛이니, 그것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단맛이 돌아옴을 씀바귀에게 배우게 되었다.  

 →글을 쓴 이시백 님은 소설가로 《890만 번 주사위 던지기》, 《누가 말을 죽였을까》, 《종을 훔치다》 등의 소설책을 냈고, 남양주 수동면 광대울 골짝에서 주경야독하며 《시골은 즐겁다》라는 산문집도 낸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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