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9호 2010년 여름 [특집] 설탕, 그 달콤하고 씁쓸함에 대하여

[ 설탕 없는 단맛 ② ]

곡식의 본성이 그대로 살아있는 꿀을 만든다 - 화성한과의 쌀조청

글 김선미 사진 류관희

설탕의 달콤함을 대신하되 몸에도 좋은 것은 무엇일까. 그런데 ‘설탕을 대신할 단맛’이라는 말 자체를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설탕 자체가 값싼 단맛을 얻기 위한 대체재로 부상한 것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인간의 미각을 즐겁게 해주는 단맛은 단연 꿀이 으뜸이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즐거움과 행복의 대명사도 ‘꿀맛’ 아닌가. 설탕을 처음 만난 고대인들이 ‘돌꿀’이라 불렀던 것도 같은 이유다. 벌을 통해 자연 상태에서 꿀을 채집하는 것과 달리 농장에서 대량생산해 낸 사탕수수로부터 찾은 꿀맛을 산업화한 것이 바로 설탕이다. 결국 사람들은 꿀을 대신할 간편하고 값이 싼 ‘꿀맛’을 찾아온 셈이다.

 

화성한과의 쌀조청

 

 

곡식의 본성이 그대로 살아있는 꿀을 만든다

 

설탕이 들어오기 전 우리 조상들은 직접 꿀을 만들어 먹었다. 조청(造淸), 이름 그대로 만들어진 꿀이다. 조청은 여러 가지 곡식을 엿기름으로 삭힌 엿물을 졸여서 꿀처럼 만든 것이다. 전분이 있는 곡물을 찌거나 삶으면 풀처럼 끈끈해지는 것을 호화(糊化)라고 하는데, 여기에 보리에 싹을 틔운 엿기름을 섞어 따뜻하게 데우면 곡물이 삭으면서 달짝지근한 엿물이 만들어진다. 이 엿물을 진하게 졸여낸 것이 바로 조청인데, 재료로 쓰는 곡식에 따라 다양한 빛깔과 향기와 광택, 끈기도 달라진다. 이런 특성은 곡물을 오랜 시간 고아 단맛만을 뽑아내면서도 원재료가 가진 본래의 영양소와 기질이 그대로 살아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조청 역시 꿀만큼이나 귀한 대접을 받았다. 왕실에서는 세자가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늘 조청을 챙겨먹었고, 과거를 보러 떠나는 선비들의 보퉁이에도 빠지지 않는 것이었다고 한다. 명절이나 제사에 쓰던 한과에서나 겨우 맛볼 수 있던 귀한 조청을 요즘은 일상 요리의 조미료로 쉽게 쓸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값싸고 흔한 설탕보다야 귀하지만, 조청을 간편하게 만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우리가 얼마나 단맛의 풍요 속에 살게 됐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조청으로 살리는 쌀과 보리 농사
강석찬, 송희자 부부는 화학첨가제나 정제당을 사용하지 않고 먹을거리 본래의 맛을 찾아내는 것을 꿈꾸며 ‘우리맛 만듦집 (주)화성한과’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부부의 안내로 화성한과의 조청 생산현장을 돌아보았다. 화성한과의 쌀조청은 국산 친환경 쌀 93%와 엿기름 7%로 전통방식 그대로 고아내고 있다. 요즘 시중에 나오는 대부분의 조청은 엿기름 대신 효소를 이용해 대량생산을 해내는 것들이라고 한다. 엿기름에 든 아밀라아제 성분만을 빼낸 효소를 중국이나 네덜란드에서 수입해 쓰는데, 효소를 이용하면 곡물이 빨리 삭기 때문에 기업에서 이 방식을 선호한다고 한다. 보통 전통방식으로 80kg 쌀 한 가마에서 조청 65kg 정도를 얻을 수 있는데 비해, 효소를 사용하면 120%까지 더 뽑아낼 수 있다고 한다.  효율과 경제성만을 따지자면 이 방식을 따라야겠지만 화성한과는 100% 엿기름을 이용한 전통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우리도 조청의 단가를 낮추기 위해 효소 사용을 검토해보았어요. 소비자들이 워낙 가격에 민감해서요. 그런데 우리가 효소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 수가 없었어요. 천연효소라고는 알려져 있지만 미생물이 GMO 농산물을 먹고 내뱉은 결과물이기 때문에 쓸 수가 없었어요.”


GMO 농산물은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 화성한과의 원칙이라고 했다.
“아예 방법이 없으면 몰라도 단지 엿기름이 몇 십 배 비싸다는 이유로 효소를 쓸 수는 없어요. 대신 엿기름을 쓰는 것이 국산 보리를 생산하는 우리 농가를 돕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화성한과는 출발부터 국산 농산물, 그 중에서도 친환경농법으로 재배된 우리 쌀의 소비를 촉진시키자는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직접 농사를 짓지 않지만 땅도 살리고 사람도 살리자는 생각으로 농민들과 한마음으로 일구어 온 기업이다. 화성한과를 이끌고 있는 강석찬, 송희자 부부는 가톨릭농민회 활동을 할 때 처음 만났다. 1985년에 경기도 화성에 정착하게 된 것도 농사를 짓기 위해 귀농을 하면서였다. 그러나 농대를 졸업했지만 농사경험이 없던 남편과 간호조산사이던 아내의 농사 실력만으로는 생계를 꾸려가기가 어려웠다. 호구지책으로 도시의 친구들에게 미숫가루를 내다 판 것이 농산물가공업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였다. 화성한과는 1991년부터 한살림 쌀 가공생산자로 참여하면서 조청과 찹쌀현미엿강정을 만들기 시작했고, 1994년에는 정부의 전통식품지원육성자금을 받아 본격적인 식품가공사업에 나서게 되었다. 현재는 조청과 한과 외에도 20여 종의 떡과 미숫가루와 선식 등의 곡물가공가루와 음료 등 국산 잡곡을 이용한 다양한 전통식품을 생산하고 있다.


1년 동안 멥쌀 370톤, 찹쌀 60톤, 잡곡 140톤 등 총 570톤의 국산 곡물을 가공하고 있으니, 화성한과의 한 해 농사 규모는 결코 작지 않다. 이중 멥쌀의 절반 정도가 쌀조청의 원료로 쓰인다고 한다. 매년 가을 한살림에 참여하는 농민들과 가공업체, 소비자들이 한 데 모여 머리를 맞대고 이듬해 농사 계획을 세우면서부터 화성한과가 한 해 동안 소비할 곡물의 양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래서 화성한과는 우리 맛을 살리는 전통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것 외에도 친환경농산물의 수급상황을 조절하는 중요한 역할까지 맡고 있는 셈이다.
또 흔히들 조청과 비슷한 용도로 쓰고 있는 투명한 요리용 물엿은 옥수수 배아로 만드는데 정제와 표백과정을 거칠 뿐만 아니라 식품공장에서 쓰이는 수입옥수수 대부분이 유전자조작작물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안심할 수 없다. 식당에서 파는 밑반찬들 대부분 이런 물엿을 듬뿍 써서 맛을 냈을 것이다. 이런 물엿과 달리 화성한과 쌀조청이 내는 단맛에는 우리 땅과 생태계를 건강하게 지켜내는 유기농 농부들의 생활을 함께 책임지겠다는 속 깊은 생각이 담백한 맛으로 배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조청이 깊은 산속 바위틈에서 솟아난 옹달샘물이라면 물엿은 실험실에서 나온 증류수나 마찬가지예요.” 송희자 씨의 표현대로 조청에는 원재료인 곡물에 담겨있던 미네랄 성분이 온전히 살아있다. 먹을수록 몸 안에 애써 비축해둔 칼슘 같은 무기질을 빼앗아가는 설탕과는 달리 조청은 몸에 이로운 단맛이라고 할 수 있다. 설탕을 먹을 때 느껴지는 자극에 비해 조청의 단맛이 은근하고 부드러운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천천히 오래 기다려 만들어내는 맛, 화성한과의 조청에서는 대규모 식품산업이 생산하는 패스트푸드화를 거부하는 고집스런 향기마저 느껴진다.
“거의 모든 곡식으로 조청을 만들 수 있는데 곡식의 본성이 그대로 조청에 나타나는 게 놀라워요. 찹쌀로 하면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보리는 풀 같이 끈기가 덜하죠.”
그것은 송희자 씨가 조청을 고우며 깨달은 세상의 이치이기도 하다. 그렇게 자연 그대로 생명의 본성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화성한과도 원칙을 지키며 한 걸음 한 걸음 더디게 자라왔다. 대기업에서 화성한과가 1년 생산하는 물량을 단 한 달 안에 소비할 수 있게 해주겠다며 사업 제안을 해온 적도 있지만 거절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러면 빨리 죽는다. 우리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느는 만큼 같이 커나갈 뿐이다.” 화성한과는 이런 생각을 올곧게 지키고 있다.
이들은 올해 조청의 원료로 쓰던 무농약 쌀을 더 비싼 유기농 쌀로 모두 바꾸었다고 한다. 이것이 아직 제품 가격에 반영되지 않았기에 상반기에만 매달 천만 원 정도 원가부담이 늘었지만 기꺼이 그렇게 했다.
“생산자는 소비자의 생명을 책임지고 소비자는 생산자의 생활을 책임진다는 원칙을 지켜온 한살림이 성장하면서 소비자도 늘어나고 농민생산자도 늘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강석찬 대표의 이런 말에는 ‘돈 되는 일’쪽으로만 온통 몰려가는 요즘 인심과는 다른 가치를 지키겠다는 심지가 느껴진다. 그것은 원칙을 지키며 생명이 살아있는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나 믿음을 가지고 구매해주는 소비자들 양쪽 모두를 위하는 일에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는 신념 같은 것일 터다.
요 근래 일부 생협들마저도 가격 비교를 통한 경쟁을 유도하는 일이 늘고 있어 많은 이들이 고충을 겪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이런 환경 때문에 화성한과에서도 가격을 낮추기 위해 친환경쌀 가운데 잘게 부서진 ‘싸래기쌀’을 원료로 써볼까 고심해본 적도 있지만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포기했다.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 가격비교를 하고 값싼 물품을 찾아 빠르게 옮겨 다니는 것이 소비의 지혜처럼 여겨지는 세태가 결국은 좋은 먹을거리의 생산기반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게 되는 대목이다.
500g들이 쌀조청이 생협 회원들에게 팔리는 값은 5천300원이다. 조청 500g을 만드는 데 유기농 쌀이 대략 660g 정도가 들어간다. 땅과 함께 살아가는 생명체를 살리며 자라난 착한 곡물에서 만들어낸 꿀맛, 생산자의 생활과 소비자의 생명을 책임지는 약속으로 만든(造) 꿀(淸)이 과연 비싼 것인가 생각해보았다. 또 아무리 몸에 좋은 꿀이라도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건강에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한다. 결국 제값을 주고 산 귀한 단맛을 살뜰히 먹는 것만이 건강을 유지하게 하는 비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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