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9호 2010년 여름 [특집] 설탕, 그 달콤하고 씁쓸함에 대하여

[ 설탕 끊고 한 달 살아보기 ]

세상이 온통 설탕 투성이였다니

글 김현경

“설탕이나 합성감미료 없이 한 달쯤 한번 살아보는 거야. 누구는 햄버거만으로 한 달을 버텼다는데 가능하지 않겠어?” 누군가 이런 제안을 했다. 설탕의 폐해를 지적하는 자료가 넘쳐나지만 몸으로 직접 실험해보는 것만큼 실증적인 방법은 없을 터였다. 선뜻 하겠다고 나서는 이가 없기에 무작정 한번 해보겠다고 달려들었다. 단식도 하는 데 그까짓 설탕쯤 못 끊겠냐 싶었고 결혼식을 앞두고 있던 참이라 남들은 일부러 다이어트도 한다는데 설탕을 끊으면 S 라인으로 거듭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살짝 품어 보았다.

 

설탕 끊기 전날_ 아직은 먹을 수 있잖아
내일부터는 설탕을 먹을 수 없다. 믹스커피, 아이스크림, 과자, 빵, 떡볶이, 골뱅이무침, 떡 등등을 자그마치 한 달 동안은 끊어야 한다. 인식하지 못했었는데 새삼 생각해보니 세 끼 밥 외에 좋아하는 음식치고 단맛과 무관한 것은 없었다. 그동안 뭔가에 속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었다. 아이스크림의 차갑고 부드러운 맛, 떡볶이의 매운맛, 떡의 쫄깃함, 과자의 바삭함, 빵의 향긋한 냄새에 단맛이 깃들어 있었다는 걸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 음식에는 예외 없이 백설탕이 주재료로 쓰이고 있었다. 여름날 자주 먹던 ‘더위사냥’을 완전히 녹여서 커피처럼 마셔본 적이 있었는데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달아서 끝내 다 마실 수 없었다. 얼음과자인데다 카페인까지 들어있어 평소에는 설탕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다. 어쨌거나 나쁜 줄 알면서도 대충 먹고 사는 게 대개의 사람 심리다. 당장 내일부터 단 것을 마음껏 먹지 못할 테니 오늘만이라도 마음껏 누리기로 하자.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 ‘투게더’ 아이스크림을 끼고 텔레비전 드라마에 몰입한 채 밥숟가락으로 퍼먹다보니 어느새 반통이나 먹어버렸다.  
 

첫째주_ 세상은 온통 설탕 천지
결연한 마음으로 집을 나서니 온통 설탕만 보인다. 편의점 안 초콜릿과 캐러멜, 지하철 역 안에 뽀얀 눈처럼 설탕가루가 살포시 덮여있는 도넛과 커피, 큰길가 토스트를 파는 아주머니는 철판에 마가린을 두르고 채소와 달걀을 한데 노릇노릇하게 지져 식빵 위에 올린 후 노란 설탕을 솔솔 뿌리고 있다. 아침을 거르고 나온 터라 적당히 보드랍고 촉촉한 토스트 한 개 사들고 출근하고 싶지만 뿌려진 설탕뿐만 아니라 새콤달콤 뿌려진 케첩을 떠올리니 그 속에 들어있을 설탕이 떠올라 단념한다. 사무실 책상 앞에 앉으니 서랍 속 커피믹스 봉지가 눈에 뜨인다. 공정무역 커피라고는 해도 설탕이 커피보다 더 많이 들어있기는 매한가지다. 이 역시 끊어야 한다니 약간 맥이 빠진다. 아무것도 못 먹고 머리 쓰는 일들을 시작하려니 뭐든 단 음식을 먹어야만 할 것 같다. 연료가 바닥난 자동차처럼 뇌가 좀체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다. 체적은 2%에 불과하지만 몸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게 뇌라고 하지 않던가. 에너지원은 당분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조금 초조한 마음으로 냉장고를 뒤져보았다. 누가 넣어두었는지 ‘롯데 제주감귤’과 ‘한살림 감귤즙’이 나란히 서있다. 설탕이나 합성감미료가 들어있지만 않다면 일단 어떤 것이나 상관이 없다. 우선 제주산 감귤을 강조하는 롯데의 주스를 보니 감귤 과즙 50%에 감귤농축액과 정제수, 액상과당, 구연산, 유화제, 합성착향료(오렌지향), 비타민C가 들어가 있다. 결국 주스의 반은 물에다 진하게 졸인 감귤즙을 조금 넣고 인위적인 당과 신맛, 향까지 첨가한 다음에 이 모든 첨가물이 서로 잘 섞일 수 있도록 유화제까지 넣은 셈이다. 어쨌거나 다른 첨가물은 고민에서 잠시 제외해놓고 액상과당이 천연 상태의 것인지를 찾아보니 설탕보다 오히려 더 해로운 합성감미료라는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정제 과당에 옥수수 시럽을 섞어 만든 액상과당은 설탕보다 싸면서 더 강한 단맛을 내기 때문에 음료에 많이 첨가되는데 최근 미국 듀크대병원에서는 음료를 통해 액상과당을 다량 섭취한 사람에게서 지방간 질환이 쉽게 발병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한살림에서 나온 감귤즙의 함량을 살펴보니 무농약으로 재배한 감귤에서 짜낸 즙 외에 아무것도 들어있는 것이 없다. 이제야 간신히 먹을 것을 발견한 셈이다. 시원하게 한잔 들이켰다. 달다. 이제야 살맛이 난다.

 

둘째주_설탕 이전에 과식이 더 문제
설탕 없이 일주일을 살아보니 그간 알게 모르게 군것질을 참 많이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침 빈속에 늘 탐닉하던 달고 기름진 빵, 점심시간에 습관적으로 마시던 커피 전문점의 카페라떼, 습관적으로 타 마시던 커피믹스, 입이 궁금해 먹곤하던 과자, ‘사다리’라도 타게 되면 늘 배달시켜 먹던 떡볶이와 튀김, 아이스크림. 술자리라도 생기면 먹는 음식은 엄청 늘어난다. 설탕과 합성감미료를 딱 끊어보니 이런 군것질거리들 가운데 먹을 만한 게 별로 없다.
회의시간에 간식으로 준비한 과자와 롤 케이크, 그리고 딸기즙. 미처 점심을 못 먹고 온 이들을 배려한 것이지만 양이 많긴 했다. 눈앞에 간식거리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군침을 흘리고 있는데 와삭와삭 먹는 소리들이 더욱 자극적이다. 설탕 없는 과자는 없을 테니 제외하고, 아침에도 안심하고 마셨던 딸기즙을 벌컥벌컥 마셨다. 진하고 향긋한 맛에 새삼 감탄하며 병에 붙은 라벨을 슬쩍 살펴보니, 아뿔사! 설탕이 5% 들어있다. 불과 10일 만에 설탕 끊고 살기 실험이 이렇게 끝나다니. 유기농 식품들도 설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지 싶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아예 이 실험을 그만둬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모르고 먹은 것이지 의지가 꺾인 게 아니니 괜찮다는 주위의 위로와 격려에 못이기는 척 계속 지속하기로 한다.
단 음식을 못 먹은 탓인지 오후가 되니 갑자기 머리가 띵하고 어질어질하다. 사실 요즘은 밖에서 밥을 사먹어도 제대로 먹을 게 없다. 갈치조림에도 살짝 단맛이 돌아 젓가락질을 포기했다. 멸치볶음이나 나물무침에도 물엿이 들어간 게 분명하니 포기. 원래 물엿은 묽게 고아서 굳어지지 않는 액체 상태의 엿, 즉 조청을 말하는 것이지만 요즘 시중에 물엿이라는 이름으로 유통되는 것들은 대부분 옥수수 전분 등에서 추출한 시럽이라고 한다. 배도 고프고 살짝 현기증도 나는데 옆자리 동료가 마늘빵과자를 먹는다. 에잇, 사과나 잘라 먹어야겠다.

셋째주_알고도 모르고도 먹는 설탕
실험 전날 냉동고 뒤편에 꽁꽁 숨겨둔 투게더 아이스크림 반통이 여덟 살 조카에게 발각되었다. 실험이 끝나면 제일 먼저 먹겠노라고 남겨둔 것인데, 허무하면서도 어쩐지 속이 후련하다. 조카가 아이스크림통에 머리 디밀고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자니 어린 시절의 내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설탕, 내 몸을 망치는 달콤한 중독》이라는 책에 보니 ‘나는 얼마나 당분에 중독되어 있나’를 점검하는 표가 있어 살펴보니 내 수준은 ‘심각한 상태다. 당과류만 보면 참지 못하고 후식으로 커다란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을 것’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평소에 남들 다 마시는 콜라, 사이다도 안마시고, 채식 위주의 건강식을 해왔다고 자부했는데 이럴 수가.  설탕 끊기 실험을 더 잘해봐야겠다는 오기도 생긴다. 그리하여 오늘 아침에는 어머니가 밥상을 차리시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해 보았다. 텃밭에서 뽑아온 3년 묵은 더덕으로 무침을 하시는데 설탕 안 먹는 딸 생각에 설탕은 넣지 않는다 하신다. 그런데 고추장 양념으로 한 가지 더 들어간 것이 매실청. 집에서 담갔다고는 하지만 역시나 매실청의 절반은 설탕이다. 더덕무침은 눈요기만 하고 숟가락을 놓아야 했다. 점심시간에는 동료들과 오랜만에 피자집에 가게 됐다. 접시에 가득 담긴 샐러드 위로 달달한 소스가 잔뜩 뿌려져있다. 여러 명이 같이 먹는 접시에 나 때문에 소스 뿌리지 말자고 할 수는 없고 샐러드도 포기. 샐러드바를 둘러보니 단맛 없는 음식은 해바라기씨 뿐이다.
저녁때는 바쁜 일정 때문에 분식집에 갔다. 다들 비빔국수와 쫄면, 떡볶이 등을 주문하는데 나 때문에 다른 곳에 가자고 할 수도 없다. 결국 김밥과 라면으로 대충 저녁을 때우고 집으로 갔더니 알록달록 찰떡이 내 몫이라고 남겨져 있다. 손으로 찔러보니 말랑말랑한 것이 한입만 먹어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다. 이럴 땐 일찍 잠자는 것이 상책이다.

 

넷째 주_설탕이 단맛의 전부는 아니지
이번 주만 넘기면 설탕 금지의 족쇄로부터 해방이다. 그런데 그 순간부터 설탕의 족쇄에 얽매이게 될 수도 있으니 좋아라할 만한 일도 아니다. 어쨌거나 나름대로 설탕 없이 살아가는 데 제법 익숙해져간다. 아침에는 텃밭에서 나오는 채소로 샐러드를 해 먹었다. 포도즙 한 컵에 양파 한 개와 들기름을 넣어 갈아 소스로 뿌리니 고급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샐러드 못지않다. 믹스 커피가 아니라 설탕 없이 인스턴트 커피만 한 술 묽게 타 마시고, 정 달달한 커피가 생각날 땐 꿀을 두 숟가락 넣었다. 커피 애호가들이야 ‘이게 꿀차지, 커피냐’ 할 수도 있겠지만 향긋한 꿀커피가 오후의 나른함을 풀어주는 데 손색이 없다.
또 한 가지, 밥을 가려먹게 되니 오후에는 배가 좀 고파서 집에서 감자나 고구마를 쪄 왔다. 출출할 때 한 개씩 먹으니 감자, 고구마 본래의 맛도 더 느낄 수 있고, 무엇보다 저녁 때 과식을 덜하게 된다. 또 달콤하고 바삭한 과자가 꼭 먹고 싶을 때는 조청으로 만든 한과를 먹었다. 한과에 맛을 들이니 조청이 내는 단맛은 설탕과 달리 뭔가 깊고 진항 풍미가 느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설탕을 못 먹게 되니 의식적으로 과일을 자주 챙겨 먹게 된다. 이 때문인지 피로감이 덜하고, 피부도 더 좋아진 것 같다는 얘기도 들린다.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통해 비타민이나 미네랄, 섬유질을 자연스럽게 더 많이 먹게 된 영향이 아닐까.

 

실험을 마치고_설탕, 끊기는 끊었나?
30일에 걸친 설탕 끊기 실험이 모두 끝났다. 예상만큼 어렵지는 않았다. 의지와 관계없이 모르고 먹은 설탕과 합성감미료도 적잖았다. 모르고 마신 딸기즙으로 시작해 피자에 올라가는 토핑에도 설탕이 가미돼 있었고, 김밥 속에는 합성감미료로 절인 단무지와 물엿으로 졸인 우엉이 들어있었다. 라면 스프에도 설탕과 물엿이, 존경하는 선생님댁을 방문했을 때 정성스레 차린 밥상 위 나물에도 설탕으로 발효시킨 오미자 원액이 양념으로 들어 있었다. 한과라고 무작정 집어먹었는데 조청 외에도 물엿과 설탕이 들어 있는 제품도 있었다. 무엇보다 우연찮게 합석한 술자리에서 생각없이 마신 소주에는 아스파탐이 필수 첨가물로 들어가 있었다. 단맛 나는 막걸리에만 신경 썼는데 ‘쓴 소주’마저 그렇다니.
결국 설탕과 합성감미료를 완전히 끊는 일은 의지와 상관없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설탕은 이미 복잡한 글로벌 경제 체제에서 국가나 기업의 이해에 따라 교역되고 최대한 지속적으로 사먹게끔 마케팅 관점에서 유통되고 가공식품에 쏟아 부어진다. 다만 이 실험이 의미 있었던 것은 무심코 먹던 음식 속에 들어 있는 설탕을 재발견하고 의식적으로 줄일 수 있게 된 점이다. ‘S라인’으로 거듭나지는 못했지만 앞으로도 과일이나 채소 등 자연 상태의 음식을 더 챙겨먹게 될 것 같다. 실험이 끝나면 가장 먼저 먹겠노라고 생각했던 아이스크림에는 여전히 관심이 가지 않는다. 설탕 끊기에 대한 도전은 이후로도 계속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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