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9호 2010년 여름 [특집] 설탕, 그 달콤하고 씁쓸함에 대하여

[ 설탕을 보는 다른 눈 ]

공정무역 설탕은 왜 등장했나

글 편집부

  “매일 아침 식사를 할 때마다, 우리는 지구촌 절반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모두가 연결되어 있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원리입니다.” 

 마틴 루터킹 목사  

우리는 국제무역에서 벗어나서는 먹고 살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전 지구적으로 생산되고 소비되는 ‘세계 상품’에 대해 사람들은 자신들이 처한 입장에 따라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설탕은 지난 10개월 동안 1980년대 이래 가장 심하게 가격이 요동쳤다. 이에 대해 우리 사회에서는 설탕 원료를 100% 수입하는 입장이니 물가와 가계 부담을 우려하는 시각과 설탕과 연계된 금융상품을 출시하고 기후변화와 식량위기에서 이상적인 ‘스위트 스폿(Sweet Spot, 가장 이상적인 투자처)’으로 여기는 입장이 동시에 나타났다. 그 반응은 민감하기는 해도 절박한 것은 아니었다. 이는 우리가 비교적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소비국가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제3세계의 가난한 사탕수수 재배 농민들에게 국제설탕가격이 급변하는 일은 생존과 직결된 절박한 문제일 수 있다. 
 

설탕은 세계 127개국의 크고 작은 수백만 개 생산지에서 매년 약 1억 5천만 톤이 생산된다. 사탕수수는 대규모 단일 작물, 플랜테이션 방식으로 재배된다. 제3세계에서는 지금도 식민통치 시대 노예들의 희생으로 세워진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의 흔적이 남아있다. 제3세계 농업국가들에게 설탕은 국가의 주요 소득원이다. 설탕은 쿠바 전체 수출의 70%, 벨리즈에서는 40%에 달한다. 그런데 국제시장의 가격 변동이 심한 탓에 종종 설탕은 생산원가에도 못 미치는 싼값에 거래되기도 한다. 국제 설탕산업은 1960년대부터 가격 하락이 이어지다가 1980년대 초 코카콜라가 설탕 대신 값싼 옥수수 액상과당을 사용하면서 위기가 가속화되었다. 코카콜라는 매년 60만 톤의 설탕을 소비하는 세계 최대의 구매자였다. 뒤를 이어 경쟁사인 펩시콜라와 다른 식품 회사들도 액상과당을 택했다. 설탕 수요는 급감했다. 게다가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자국 농민 보호를 위해 보조금을 주고 수입 설탕에 높은 관세를 매겼다. 세계 설탕 시장의 수급상황과 상관없이 유럽에서 사탕무와 설탕이 과잉 생산되고 남는 설탕이 원가보다 싸게 국제시장에 풀리면서 설탕 가격의 폭락은 걷잡을 수 없게 됐다. 1980년과 2000년을 거치며 설탕 가격은 76%나 급락했다.
 

제3세계 사탕수수 재배지들은 대개 수백 년 동안 식민통치를 겪으면서 사탕수수 단작체재로 농업구조가 왜곡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설탕 가격 폭락은 가난한 농민과 관련산업 노동자들의 삶을 붕괴시켰다. 필리핀 설탕의 80%가 생산되는 네그로스섬에서는 사탕수수 노동자들이 대량 해고되고 설상가상으로 가뭄과 태풍까지 덮쳤다. 이 때문에 섬 인구의 85%가 절대 기아 상태에 빠졌다. 어린 아이들과 노인들의 희생이 이어지자 UN을 비롯한 국제단체들의 원조가 이어졌다. 제 3세계 설탕 생산지들이 겪는 비극은 식민지통치 시기에 굳어진 설탕 산업의 구조와 불공정한 국제무역 체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모순을 넘어 생산자와 협력하자는 운동이 설탕을 수입해다 먹는 잘 사는 나라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생산지와 소비지가  직거래를 통해 연대하고 국경을 넘어 공동체를 회복하자는 운동이 등장했다. ‘공정무역’이나 ‘민중교역’으로 일컬어지는 대안적인 직거래 방식의 설탕은 이렇게 등장했다.
 

전 세계 설탕 무역량에 비하면 아주 적은 양에 불과하지만 공정무역 설탕은 꾸준히 늘고 있다. 이들은 판매 이익의 대부분을 농장주와 공장에서 독점하는 플랜테이션 경제의 악순환을 넘어서기 위해 소규모 설탕생산자협동조합과 직거래를 통해 생산자에게 좀 더 많은 보상이 돌아가게끔 노력한다. 국제공정무역인증기구(Fairtrade Labelling Organization; FLO)에 등록된 29개 조합 등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에 흩어져 있는 소규모 설탕생산자조합들은 공정무역을 통해 얻는 더 많은 이익을 지역 사회 발전, 생태계 복원, 공정무역 설탕 사업을 발전시키는 데 쓰고 있다고 한다. 이들의 설명에 따르면 사탕수수 단작으로 파괴된 생태계와 지역 농업체제를 극복하기 위해 나서고 있다고 한다.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은 지역 삼림을 파괴하고 관개시설 때문에 물 사용이 집중되는가하면 무분별하게 농약과 화학비료를 살포해 생태계에 미치는 폐해가 크다. 세계자연보호기금(WWF)에 의하면 연간 5백만에서 6백만 헥타르의 농경지가 사탕수수 생산으로 불모지가 되고 있다고 한다. 공정무역 생산자 조합들은  농경지를 지속가능한 생태순환 농업으로 바꿔가고 있다고 한다. 또 지역의 식량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단작을 넘어 다양한 작물과 과일 재배에도 나서고 있다고 한다. 이런 시도는 그나마 공정무역을 통해 설탕가격이 안정돼 여유가 생겼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점점 더 자극적인 음식을 향해 사람들의 식성이 변하고 가공식품이 늘면서 설탕 소비량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발생하는 건강문제도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공정무역설탕은 당장에 설탕을 끊을 수 없는 이들에게 기왕이면 몸에도 덜 해롭고 생산 농민들에게 좀 더 많은 혜택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두레생협연합회가 필리핀 네그로스섬에서, iCOOP생협연합회는 필리핀 파나이에서, 이밖에도 여러 수입업체들이 공정무역 인증 설탕을 수입하고 있다. 이들 생협의 설탕들은 ‘마스코바도’라는 현지의 전통 설탕 제조방식으로 제조되는‘비정제’설탕이라고 한다. 두 생협이 2009년 한 해 동안 수입한 마스코바도 설탕은 150톤 이상이며 해마다 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400g내지 500g들이 설탕 한 봉지에 200원의 ‘교류기금’ 또는 ‘산지지원금’을 포함시켜 이를 생산자공동체의 환경을 개선하는 데 쓰고 있다고 한다. 일부 지원금이 지역의 생태를 복원하는 데 쓰이고 있다지만 공정무역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은 여전히 다양하다. 또 공정무역이 당장에 외면할 수 없는 국제무역체제가 드리운 짙은 그림자를 일거에 개선하는 최선의 방식은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설탕이 지구환경과 인류건강에 끼치고 있는 여러 폐해를 떠올리면 공정무역 설탕은 덜 해로운 선택을 위한 모색 가운데 하나라고 여겨진다.

 

⇒이 글은 국제공정무역인증기구(Fairtrade Labelling Organization; FLO) 웹사이트 http://www.fairtrade.net와 두레생협연합회의 APNet과 iCOOP생협연합회가 보내온 자료, 세계자연보호기금(the World Wildlife Fund;WWF)에서 펴낸 ‘설탕과 환경(Sugar and the Environment)’등을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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