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9호 2010년 여름 [특집] 설탕, 그 달콤하고 씁쓸함에 대하여

[ 설탕 감옥에 갇힌 슈거홀릭 ]

설탕유감

글 정세영

17세기에는 만병통치약으로 약국에서 판매되던 설탕이 오늘날에는 흰 쌀, 흰 밀가루와 더불어 건강을 해치는 주적인 ‘삼백(三白)’으로 지목되고 있다. 입에 단 것이 건강에 좋을 리 없겠지만 그렇다 해도 설탕의 전락은 심각하다. 그 달디 단 맛 속에 얼마나 치명적인 유혹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세기의 패션 디자이너 입생로랑이 오랜 지병으로 숨을 거두던 날, 뉴욕의 거리엔 호외가 뿌려졌다. 약물 과다 복용설부터 당뇨에 이르기까지 그의 사망 원인을 추측하는 언론 기사를 읽으며 첼시의 아주 평범한 피자집에서 나는 피자 한 조각으로 저녁을 때우고 있었다. 그때 무척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옆 테이블에서 엉덩이 둘레보다 허리둘레가 1.5배는 부풀어 오른 전형적인 ‘미국인 체형’을 가진 4인 가족이 나란히 앉아 저녁 식사를 하고 있다. 그런데 엄마와 아빠 사이에 앉아 허겁지겁 피자를 뜯던 아이가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앉은 자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허벅지까지 바지를 내리더니 가방에서 주사기를 꺼내 허벅지에 찌르는 것이 아닌가. 누구의 도움 없이 오랜 시간 주사를 놓아본 듯 익숙한 솜씨였다. 아이의 엄마는 그 광경을 지켜보며 태연하게 아들의 빈 잔에 콜라를 가득 따르고 있었다. 열 살이 갓 넘어 보이는 아이는 소아당뇨 환자였다.       

미국인들에게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질병인 당뇨는 두말 할 것도 없이 식습관이 원인인 질병이다. 아침 대용으로 먹는 초코 머핀, 물처럼 마시는 설탕을 넣은 아이스티, 저녁 식사에 곁들이는 청량음료, 습관적으로 씹어 먹는 초콜릿, 달콤한 치즈케이크 한 판…. 어느 조사에서 보니, 미국인들이 하루 평균 섭취하는 음식에 포함된 설탕의 양이 서른 두 스푼이나 된다고 한다. 매일 서른 두 스푼의 설탕을 입 안에 털어 넣고도 뱃살이 부풀어 오르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인데, 그보다 더 야릇한 노릇은 도대체 왜 그토록 우리 몸은 설탕을 원하는가이다.
 

미국의 인류학자 시드니 민츠는 《설탕과 권력》이라는 책에서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의 미각은 단맛 자체를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인지해 왔다고 했다. 실제로 인간을 포함한 모든 포유류의 젖이 달다는 것과 젖의 대용물로 설탕을 탄 액체가 사용된다는 사실도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미국 농수산부에 따르면 미국인들이 평균적으로 섭취하는 설탕 소비량은 지난 20년 동안 39%나 증가했다. 그 결과 100명 중 8명 이상이 당뇨병에 시달리게 되었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하는 현실 속에 갇혀 있다. 급격히 식습관이 서구화된 우리에게도 이제 당뇨는 흔한 질병이 되었다.
설탕은 우리 몸에 들어갔을 때 GI(Glycemic Index-빈속에 음식을 먹은 후 30분 후의 혈당치 상승률과 식품 100g에 포함돼 있는 당질 함유량을 기초로 산출한 수치) 수치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체내 소화 체계에 재빨리 흡수돼 혈류로 침투하고 혈당을 급상승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이때 췌장에서는 엄청난 양의 인슐린이 분비돼 혈당치를 낮추게 되고, 그 때문에 두뇌활동이 느슨해지면서 더 많이 먹고 싶은 욕구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단맛을 도저히 끊을 수 없는, 설탕을 너무 사랑하는 혹자는 몸무게만 늘지 않는다면 원하는 만큼 설탕을 먹어도 되는 것 아니냐고 질문하기도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진 않다. 워싱턴 DC의 의학 전문 센터에서 연구한 바에 따르면 대부분의 여성들이 총 섭취 칼로리의 25%를 설탕으로 섭취한다. 단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샐러드드레싱이나 파스타소스, 땅콩버터에 들어 있는 설탕까지 외면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의도하지 않더라도 알게 모르게 일정량의 설탕을 섭취하고 있기 때문에 지레 이 정도는 먹어도 살이 찌지 않겠지 생각하는 것은 오산일 수 있다. 영양사들은 총 섭취 칼로리 중에서 10% 정도는 설탕을 섭취해도 무방하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2천kcal의 식단을 기준으로 하면 50g 정도의 설탕은 섭취해도 된다는 것이다. 또 음식에 포함된 설탕을 줄이려고 하기 보다는 콜라를 비롯한 음료수에 녹아 있는 설탕을 조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피자를 먹을 때 콜라 대신 탄산수나 물을 선택하는 것만으로도 뱃살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라고 한다.
 

설탕에 잘 대처하기 위해서는 식품에 붙은 라벨을 치밀하게 읽어야 한다. 일단 포장 음식에 붙어 있는 영양 성분표를 꼼꼼하게 읽어야 한다. 대부분의 식품들은 전체 탄수화물 중 당분의 수치를 따로 표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인공감미료인지, 천연 설탕인지까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이때는 성분 분석표에 설탕이나 옥수수 추출 시럽이 있는지 살펴보라. 이 경우 함유된 당분은 대부분 인공감미료일 확률이 높다. 이러한 제품의 경우, 4~5g(1스푼에 해당하는 양) 이상의 당류를 함유한 것이라면 종류를 막론하고 먹기 전에 심사숙고 할 것. 또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아이스크림, 청량음료, 롤빵, 페이스트리처럼 혀로 단맛이 느껴지는 음식들뿐만 아니라 피클, 케첩, 베이컨을 절일 때도 설탕이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담배나 치약에도 당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니 사람들의 입맛을 끌어 당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제조사들이 단맛을 이용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제품에 표기된 ‘무설탕’이라는 것도 정제 설탕, 즉 수크로오스(sucrose: 사탕수수나 사탕무를 정제해서 만든 시판용 설탕, 자당이라고도 한다)를 함유하고 있지 않다는 말일 뿐, 말토덱스트로오즈나 폴리덱스트로오즈 같은 다른 이름의 당분을 함유하고 있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처럼 다른 이름의 당분 역시 설탕 중독 과정을 촉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무가당이라는 말도 믿을 수 없다. 음료수, 스낵, 캔디, 젤리 등에는 역시 포도당을 비롯한 말토 포도당, 폴리 포도당 같은 다른 형태의 당분들이 많이 들어가 있다.
 

태아들은 이미 자궁 속에서부터 단맛을 인지한다고 한다. 단맛에 이끌리는 것은 어쩌면 숙명일 수 있다. 그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식품 성분표를 꼼꼼히 읽고 의식적으로 ‘설탕류’ 섭취를 줄이는 것, 맹물도 단물처럼 달게 마시는 습관을 갖는 것 정도가 아닐까.
 

→글을 쓴 정세영 님은 월간지 《얼루어》를 거쳐 《행복이 가득한 집》에서 일하며 평화롭고 아름다운 삶에 관한 다양한 글을 쓰고 있다.


http://www.salimstory.net/renewal/sub/view.php?post_id=378